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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타임(Rotten Time)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로튼 타임(Rotten Time)-(1)
성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심지어 유령들조차 대연회장에서 애도하는 모임에 동참한 듯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기억들이 담긴 수정 플라스크를 꼭 움켜쥔 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교장실을 지키는 이무기 석상 앞에 도착할 때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암호는?"
"덤블도어!"
해리의 간절한 외침에 이무기가 옆으로 비켜서더니 그 뒤로 나선형 계단이 나타났다. 해리가 둥근 교장실 안으로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가 보니, 뭔가 달라져 있었다. 벽에 빙 둘러 걸려 있는 초상화들이 모두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 방에 남아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교장 선생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지켜보기 위해서, 밖으로 뛰쳐나가 성의 복도에 줄지어 걸려 있는 그림들 속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해리는 교장 선생님의 의자 바로 뒤에 걸려 있는 덤블도어의 빈 액자를 절망적으로 흘끗 바라본 다음 돌아섰다. 돌 펜시브는 늘 있던 대로 캐비닛 속에 놓여 있었다. 해리는 펜시브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장자리에 룬 문자가 새겨져 있는 그 넓적한 대야 속에 스네이프의 기억을 쏟아 부었다.
기억들은 은백색으로 기이하게 소용돌이쳤다. 해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해리는 햇빛 속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졌다. 곧 두 발이 따뜻한 대지에 닿았다. 몸을 일으켰을 때, 그는 자신이 한적한 놀이터에 있음을 깨달았다. 거대한 굴뚝 하나가 아득한 지평선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소녀 두 명이 그네를 타고 있었고 웬 말라깽이 소년이 덤불 뒤에서 그들을 엿보고 있었다. 소년의 새까만 머리칼은 지나치게 길었으며, 옷차림은 어찌나 어울리지 않던지 꼭 일부러 골라 입은 것처럼 보였다. 청바지는 너무 짧았고, 어른에게나 맞을 만한 외투는 지나치게 크고 허름했으며, 여자 옷 같은 셔츠는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해리는 소년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스네이프는 기껏해야 아홉 살이나 열 살쯤 되어 보였는데, 혈색이 나쁘고 왜소하고 비쩍 말랐으며 지금과는 다르게 머리를 오랫동안 감지 않은 듯 기름져 보였다. 그는 두 소녀 중에서 언니보다도 훨씬 더 높이 그네를 타고 있는 동생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의 야윈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갈망이 드러나 있었다.
"릴리, 그러지 마!"
두 소녀 중에서 언니가 빽 소리쳤다.
하지만 동생은 그네가 완전히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그네를 놓더니 정말 말 그대로 훌쩍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깔깔 웃으며 하늘로 붕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스팔트가 깔린 놀이터 바닥에 쿵 떨어지는 대신 마치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랐고, 아주 오랫동안 공중에 머물러 있다가 너무나 가볍게 착지했다.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하셨잖아!"
페투니아는 샌들 뒤축을 땅에 질질 끌어서 우두둑거리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그네를 멈췄다. 그리고 발딱 일어나더니 양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엄마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어, 릴리!"
"하지만 난 괜찮은걸."
여전히 키득거리면서 릴리가 말했다. 해리는 자신의 어머니의 어릴 적 모습을 바라보면서 보면 볼수록 릴리아나와 똑 닮은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스네이프의 기억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또 페투니아 이모의 얼굴을 몰랐다면 릴리아나의 기억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투니, 이걸 봐. 내가 뭘 할 수 있나 좀 보라고."
페투니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놀이터에는 자신들과 그리고 비록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스네이프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릴리는 스네이프가 숨어 있는 덤불 앞에서 떨어진 꽃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페투니아는 호기심과 불만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며 가까이 다가갔다. 릴리는 페투니아가 똑똑히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손바닥 위에 놓인 꽃은 마치 입술이 여러 개 달린 괴상한 굴처럼 꽃잎을 오므렸다 펼쳤다 하고 있었다.
"그만 해!"
페투니아가 악을 썼다.
"언니를 해치는 것도 아닌데 뭐."
릴리는 그렇게 말했지만 손바닥을 오므리더니 꽃을 다시 땅바닥에 던졌다.
"이건 나쁜 짓이야."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페투니아의 눈길은 여전히 땅으로 떨어지는 꽃을 뒤쫓으며 한동안 떠날 줄을 몰랐다.
"넌 어떻게 이런 걸 하는 거지?"
페투니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야 뻔하지, 안 그래?"
그때 스네이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덤불 뒤에서 뛰쳐나왔다. 페투니아는 비명을 지르며 그네 쪽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릴리는 분명히 깜짝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스네이프는 불쑥 나타난 것을 후회하는 것 같았다. 릴리를 보자 누르스름한 그의 양쪽 뺨이 희미하게 물들었다.
"뭐가 뻔하다는 거야?"
릴리가 물었다. 스네이프는 초조하고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는 멀리 떨어져서 그네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페투니아를 흘끗 바라보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무슨 뜻이야?"
"너는……너는 마녀야."
스네이프가 속삭였다. 릴리는 모욕을 당한 표정이었다.
"남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그건 나쁜 짓이야!"
릴리는 고개를 쳐들고 휙 돌아서더니 언니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그게 아니야!"
스네이프가 말했다. 이제 그의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다. 해리는 어째서 그가 그 우스꽝스러운 외투를 벗지 않는지 답답했다. 외투 속에 입은 셔츠를 보이기 싫어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스네이프는 외투를 펄럭거리며 소녀들을 뒤쫓아 갔는데 그 모습은 묘하게 나이 든 후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였다.
자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술래잡기에서 술래가 쫓아올 수 없는 지점이라도 되는 듯이 그네 기둥을 각자 하나씩 붙잡고 있었다.
"너는 그거야."
스네이프가 릴리에게 말했다.
"넌 마녀라고. 난 한동안 널 지켜봐 왔어. 하지만 그건 전혀 잘못된 게 아니야. 우리 엄마도 그랬고 나 역시 마법사인걸."
페투니아의 웃음은 마치 차가운 물처럼 싸늘했다.
"마법사라고?"
페투니아가 빽 소리쳤다. 이제 그녀는 예기치 못한 스네이프의 출현으로 인한 충격을 극복하고 용기를 되찾은 듯했다.
"나는 네가 누군지 알고 있어. 넌 스네이프네 자식이지!"
그리고는 릴리를 보고 말했다.
"쟤네 식구들은 저 아래 강가에 있는 동네, 스피너즈 엔드에 산다고."
그녀의 말투로 보아 그 동네를 깔보고 무시하는 것이 분명했다.
"왜 우리를 엿보고 있었던 거야?"
"엿보고 있었던 거 아니야."
화창한 햇빛 아래 지저분한 머리를 고스란히 드러낸 스네이프는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서 말했다.
"아무튼 널 엿보고 있었던 건 아니야."
그러더니 그가 경멸에 찬 어조로 한마디 덧붙였다.
"너는 머글이니까."
페투니아는 분명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말투를 못 알아듣진 않았다.
"릴리, 우리 가자! 어서!"
그녀가 날카롭게 말했다. 릴리는 즉시 언니의 말에 따랐다. 그리고 스네이프에게 눈을 부라리며 그곳을 떠났다. 그들이 놀이터 문을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동안 스네이프는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이제 그곳에 남아서 그를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인 해리는 스네이프의 쓰라린 실망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스네이프가 이 순간을 한동안 계획해 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이다…….
그 장면이 흐릿해지더니 해리가 미처 알아차릴 틈도 없이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지금 그는 작은 숲 속에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이 보였다. 나무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곳에 서늘한 초록빛 그늘이 생겨났다. 두 아이가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지금 스네이프는 외투를 벗고 있었는데 그의 기묘한 셔츠는 반쯤 햇빛이 가려진 그늘 속에서 한결 나아 보였다.
"……그리고 네가 학교 밖에서 마법을 행하면 마법부는 너를 벌줄 수 있어. 너는 편지를 받겠지."
"하지만 난 이미 학교 밖에서 마법을 썼는걸!"
"우린 괜찮아. 우린 아직 지팡이가 없잖아. 아직 어린이이이고 어쩔 수 없었을 때에는 제외시켜 주니까. 하지만 네가 열한 살이 되면……."
스네이프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널 훈련시킬 거야. 그때부턴 조심해야 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릴리는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더니 허공에 대고 휘저었다. 해리는 그녀가 그 끝에서 불꽃이 발사되는 광경을 상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나뭇가지를 다시 떨어트리더니 소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정말이지, 그렇지? 농담 아니지? 페투니아는 네가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래. 호그와트 같은 건 없다고 말이야. 하지만 진짜지, 그렇지?"
"우리에게는 진짜야. 페투니아한테는 아니지만. 우리는 곧 편지를 받게 될 거야. 너랑 나는."
"정말로?"
릴리가 속삭였다.
"그렇고말고."
스네이프가 말했다. 엉망으로 자른 머리와 괴상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서 팔다리를 쭉 펴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묘하게도 꽤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걸 정말 부엉이가 배달해 주니?"
릴리가 속삭였다.
"보통은 그래."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하지만 너는 머글 태생이니까 학교에서 누군가 나와서 너희 부모님한테 설명해 줘야 할 거야."
"머글 태생인 게 무슨 차이가 있어?"
스네이프는 주저했다. 초록색 그늘 아래에서 열의에 가득 찬 그의 까만 눈동자가 짙은 붉은색 머리를 한 새하얀 얼굴을 훑어보았다.
"아니, 그건 아무 차이가 없어."
"다행이다."
릴리가 긴장을 풀고 말했다.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넌 마법을 참 많이 할 줄 알더라."
스네이프가 말했다.
"내가 봤어. 그동안 줄곧 널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릴리는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대신 잎이 무성하게 깔린 땅바닥 위에서 기지개를 쭉 펴더니 머리 위를 지붕처럼 덮고 있는 잎사귀들을 올려다보았다. 스네이프는 놀이터에서 그녀를 지켜보았을 때처럼 갈망에 찬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희 집은 요즘 어때?"
릴리가 물었다. 스네이프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좋아."
"엄마 아빠는 더 이상 안 싸우시고?"
"물론 싸우지."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리고 나뭇잎을 한 움큼 쥐더니 그것들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도 난 머잖아 떠날 텐데 뭐."
"너희 아빠는 마법을 안 좋아하시니?"
"우리 아빠는 아무것도 좋아하는 게 없어."
"세베루스?"
릴리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스네이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응?"
"디멘터 얘기 다시 해 줘."
"디멘터에 대해 알아서 뭐 하려고?"
"만약 내가 학교 밖에서 마법을 쓰면……."
"그들은 그런 일로 너를 디멘터에게 보내지 않아! 정말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나 디멘터에게 보내는 거야. 디멘터는 마법사들의 감옥인 아즈카반을 지키거든. 넌 절대 아즈카반에 끌려가지 않을 거야. 넌 너무……."
스네이프는 다시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또다시 나뭇잎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때 뒤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해리가 돌아보았다. 나무 뒤에 숨어있던 페투니아가 발을 헛디딘 것이었다.
"투니!"
릴리가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후다닥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엿보고 있는 사람이 누구더라? 뭘 바라는 거야?"
페투니아는 갑자기 발각된 것에 놀라 말문이 막혔다. 해리는 그녀가 뭔가 상처가 될 만한 말을 생각해 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네가 입고 있는 건 뭐니?"
페투니아가 스네이프의 가슴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희 엄마 블라우스야?"
딱 소리가 나더니 페투니아의 머리 위에 있는 나뭇가지가 뚝 떨어졌다. 릴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 나뭇가지는 페투니아의 어깨를 쳤고 그녀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투니!"
하지만 페투니아는 이미 달아나고 있었다. 릴리는 스네이프를 향해 돌아섰다.
"네가 한 짓이지?"
"아니야."
그는 반발하면서도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네가 그랬잖아!"
릴리가 그에게서 뒷걸음치고 있었다.
"네가 그랬어! 네가 언니를 다치게 했어."
"아니야, 안 그랬어!"
하지만 그런 거짓말로 릴리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릴리는 마지막으로 한 번 분노에 가득 찬 눈길로 쏘아보더니 작은 숲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저 멀리 언니를 쫓아갔다. 스네이프는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제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해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는 9와 4분의 3번 승강장에 있었고 스네이프는 바로 옆에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그와 매우 닮은 한 여자가 홀쭉하고 누르스름한 얼굴에 심술궂은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스네이프는 조금 멀리 있는 네 명의 가족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가족 중에서 여자아이 두 명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좀 떨어져서 서 있었다. 릴리는 언니에게 뭔가 애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엿듣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미안해, 언니. 정말 미안해! 내 말 좀 들어 봐."
페투니아는 자꾸만 손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는 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아마 내가 거기에 가면…….아냐, 들어 봐, 언니! 아마 일단 내가 거기에 가면 덤블도어 교수님을 만나 뵙고 마음을 바꾸시도록 어떻게든 설득해 볼 수 있을 거야!"
"난……난……가고 싶지 않아!"
페투니아가 소리치며 동생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 뺐다.
"넌 내가 그 멍청한 성에 가고 싶어 하는 줄 아니? 그래서 마……마……."
페투니아의 옅은 눈동자가 승강장과, 주인의 품에서 야옹거리는 고양이들과, 새장 속에서 퍼덕거리며 서로를 향해 부엉부엉 울고 있는 부엉이들, 그리고 학생들 위를 쓱 둘러보았다. 학생들 중 몇몇은 이미 길고 검은 망토를 입은 채 트렁크를 진홍색 증기기관차에 싣고 있거나 혹은 여름방학 동안 헤어졌다가 만난 기쁨에 함성을 지르며 서로서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넌……내가……정……정신병자가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니?"
마침내 페투니아가 손을 완전히 뿌리쳤을 때, 릴리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난 정신병자가 아니야. 그런 끔찍한 말을 하다니."
"거기가 바로 네가 가려는 곳이야."
페투니아가 고소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정신병자들을 위한 특수학교. 너와 그 스네이프 녀석……별종들, 그게 바로 너희 두 사람이라고. 너희 같은 애들이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격리되는 건 좋은 일이지.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야."
릴리는 부모님 쪽을 흘끗 쳐다봤다.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승강장 주면을 두리번거리며 그 광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릴리는 다시 언니를 돌아보았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사나웠다.
"언니가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써서 자기를 받아 달라고 졸랐을 때는 그 학교가 그런 정신병자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았잖아."
페투니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졸라? 난 조른 적 없어!"
"난 교장 선생님의 답장을 봤어. 아주 친절하게 쓰셨던데."
"네가 왜 내 편지를 읽는 거야?"
페투니아가 속삭였다.
"그건 내 사생활인데, 네가 어떻게 감히……."
릴리는 근처에 서 있는 스네이프를 힐끗 곁눈질하며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자 페투니아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저 자식이 그걸 찾았구나! 너랑 저 녀석이 몰래 내 방에 숨어들어 왔었어!"
"아니, 몰래 들어간 게 아니야."
릴리가 이제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세베루스가 그 봉투를 봤어. 그는 머글이 호그와트와 연락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것뿐이야! 그는 비밀리에 우체국에서 일하면서 돌봐 주는 마법사들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그랬어. 그러니까……."
"보아하니 마법사란 족속들은 아무 데나 쑤시고 다니는가 보구나!"
페투니아가 소리쳤다. 새빨갰던 그녀의 얼굴이 이제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미친 것!"
페투니아는 동생을 향해 내뱉듯이 말하고는 부모님이 서 계신 곳으로 뛰어갔다…….
장면은 다시 사라졌다.
스네이프는 호그와트 급행열차의 통로를 따라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 열차는 어느 시골을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이미 교복 망토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아마 그 흉측한 머글 옷을 벗어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오자마자 당장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마침내 그는 한 무리의 소년들이 떠들썩하게 얘기를 하고 있는 객실 밖에서 걸음을 멈췄다. 릴리는 얼굴을 유리창에 바싹 붙인 채 창가 옆의 구석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스네이프는 객실 문을 열더니 릴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지만 릴리는 그를 흘긋 쳐다보고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그녀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너랑 얘기하고 싶지 않아."
릴리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왜?"
"투니가 날 미워해. 우리가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이 보내신 편지를 봤다고."
"그게 뭐 어때서?"
그러자 릴리는 몹시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쏘아봤다.
"투니는 우리 언니라고!"
"걔는 그저……."
하지만 스네이프는 잽싸게 뒷말을 삼켰다. 릴리 역시 남몰래 눈물을 닦느라 바빠서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떠나고 있어!"
스네이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올 게 온 거야! 우리는 호그와트로 떠나고 있다고!"
릴리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슬리데린에 배정되면 좋을 텐데."
약간 밝아진 릴리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스네이프가 말했다.
"슬리데린이라고?"
객실에 함께 앉아 있던 남자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 그 말을 듣자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때까지는 릴리나 스네이프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던 아이였다. 오직 창가의 두 사람에게만 온통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해리는 비로소 아버지를 발견했다. 호리호리한 그는 스네이프와 마찬가지로 검은 머리였지만 어쩐지 보살핌을 듬뿍 받고 자란 듯한, 심지어 애지중지 키워진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스네이프에게는 아주 두드러지게 결핍된 것이었다.
"누가 슬리데린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나 같으면 차라리 학교 관두겠다, 안 그래?"
제임스가 그의 맞은편 좌석에 나른하게 앉아 있는 소년에게 물었다. 해리는 그가 시리우스라는 사실을 깨닫고 흠칫 놀랐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죄다 슬리데린 출신이야."
"젠장, 그래도 넌 아주 멀쩡해 보였는데!"
제임스의 말에 시리우스가 씩 웃었다.
"어쩌면 내가 그 전통을 깰지도 몰라. 너는 만약 자기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갈 거야?"
제임스는 보이지 않는 칼을 치켜드는 시늉을 했다.
"그리핀도르!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지! 마치 우리 아빠처럼 말이야."
그러자 스네이프가 나지막이 구시렁거렸다. 제임스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만 있냐?"
"아니야."
스네이프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살짝 떠오른 비웃음은 전혀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만약 네가 머리를 쓰기보다는 몸이나 쓰는 인간이 되고 싶다면."
"넌 어디 가고 싶은데? 보아하니 넌 머리를 쓰는 쪽도 몸을 쓰는 쪽도 아닌 것 같은데?"
시리우스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제임스가 요란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몸을 곧게 세우고 앉은 릴리는 얼굴을 붉히며 제임스와 시리우스를 경멸하는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자, 세베루스. 다른 객실을 찾아보자."
"오오……."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그녀의 거만한 목소리를 흉내 냈다. 그리고 제임스는 스네이프가 지나갈 때 발을 걸려고 했다.
"또 보자고, 스니벨루스!"
객실 문이 쾅 닫히는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장면이 또 다시 사라졌다…….
이제 해리는 스네이프 뒤에 서 있었다. 그들은 넋 나간 얼굴로 줄지어 서서 촛불이 밝혀진 기숙사 테이블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맥고나걸이 말했다.
"에반스, 릴리!"
해리는 어머니가 다리를 후들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낡아 빠진 의자에 앉는 것을 바라보았다. 맥고나걸이 마법의 모자를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놓았고 모자는 붉은 머리에 닿자마자 소리쳤다.
"그리핀도르!"
해리는 스네이프가 나지막이 신음하는 것을 들었다. 릴리는 모자를 벗어 맥고나걸에게 건네주고는 곧 환호하는 그리핀도르 학생들을 향해 달려갔다. 도중에 그녀는 스네이프를 힐끔 돌아보았는데 그 얼굴에 서글픈 미소가 희미하게 어려 있었다. 해리는 시리우스가 그녀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긴 의자에서 옆으로 조금 옮겨 앉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릴리는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열차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 낸 듯이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등을 돌렸다.
호명이 계속되었다. 해리는 루핀과 페티그루, 그리고 아버지가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 있는 릴리와 시리우스의 곁으로 합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열두 명 남짓한 학생들만이 기숙사 배정을 기다리며 남아 있었다. 그때 맥고나걸이 스네이프의 이름을 불렀다.
해리는 그와 함께 의자까지 따라 걸어갔고 그가 모자를 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슬리데린!"
마법의 모자가 외쳤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릴리와 멀리 떨어진 연회장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는 슬리데린 학생들이 그를 환호하며 맞이하고 있었다. 그가 옆에 앉자 가슴에 반짝이는 반장 배지를 단 루시우스 말포이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었다…….
릴리와 스네이프는 성의 안뜰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었는데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대화를 엿듣기 위해서 서둘러 그들을 따라잡았다. 그들 곁으로 다가갔을 때, 해리는 그 두 사람이 얼마나 키가 많이 컸는지 깨달았다. 기숙사 배정 이후로 벌써 몇 년이 흐른 듯했다.
"……난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닌가?"
스네이프가 말했다.
"맞아, 세브. 하지만 난 너랑 같이 어울려 다니는 애들 중에 어떤 애들이 싫어! 미안해. 그렇지만 애버리와 뮬시버는 정말 끔찍하게 싫어! 뮬시버! 도대체 너는 걔를 뭘 보고 만나는 거니, 세브? 걔는 아주 소름 끼쳐! 걔가 전에 메리 맥도널드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
릴리는 기둥으로 다가가서 몸을 기대더니, 스네이프의 누르스름하고 야윈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건 별일 아니었어."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건 그냥 장난이었어. 그게 전부야."
"그건 어둠의 마법이었다고! 그리고 네가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포터와 그 패거리들이 치는 장난은 어떻고?"
스네이프가 따져 물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아마도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것 같았다.
"그게 포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릴리가 물었다.
"걔들은 밤에 학교를 몰래 빠져나갔어. 게다가 루핀이라는 녀석은 뭔가 기분 나쁜 구석이 있단 말이야. 그는 왜 계속 외출을 나가는 거지?"
"그 앤 아파."
릴리가 말했다.
"그 애는 아프댔어."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만?"
스네이프가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릴리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하지만 도대체 왜 네가 걔네들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하는데? 밤에 걔네들이 뭘 하고 다니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난 단지 다른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애들이 그저 멋진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 주려는 것뿐이야."
그의 눈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릴리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그 애들은 어둠의 마법을 쓰지는 않아."
릴리가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게다가 너는 정말 고마워할 줄을 모르는구나. 지난밤에 있었던 일 나도 들었어. 네가 커다란 버드나무 옆 통로로 몰래 들어갔는데, 제임스가 그 통로 안에 있는 무언가로부터 너를 구해 줬다고……."
순간 스네이프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침을 튀기며 말했다.
"구해 줘? 구해 줬다고? 넌 그가 영웅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는 자기 목숨이랑 자기 친구 목숨을 구했던 거야! 너 설마 걔를……난 너를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나를 뭐? 나를 뭐?"
릴리의 밝은 초록색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스네이프가 즉시 말을 바꿨다.
"난 그런 뜻이 아니라……난 그냥 네가 웃음거리가 되는 걸 바라지 않을 뿐이야. 그 녀석이 널 좋아하고 있어. 제임스 포터가 널 좋아하고 있다고!"
그 말은 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아니야…….물론 모두 생각하지……대단한 퀴디치 영웅이라고……."
스네이프는 혐오감과 비통함에 사로잡혀서 점점 더 두서없이 떠들었고, 릴리의 눈썹은 점점 더 치켜 올라갔다.
"나도 제임스 포터가 시건방진 건달이란 건 알고 있어."
릴리가 스네이프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그런 말까지 해 줄 필요는 없어. 하지만 뮬시버와 애버리의 유머 감각은 정말 너무 악랄해. 악랄하다고, 세브. 난 어떻게 네가 그런 애들이랑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
하지만 해리는 과연 스네이프의 귀에 방금 릴리가 뮬시버와 애버리에 대해서 말한 비난이 들렸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녀가 제임스 포터를 욕하자마자, 그의 온몸에서 긴장이 쫙 풀렸던 것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을 때, 스네이프의 발걸음에는 다시 새봄이 찾아든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장면이 사라졌다…….
해리는 다시 스네이프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표준 마법사 수준 시험을 치른 후 대연회장에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가 성에서 멀리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제임스와 시리우스, 루핀 페티그루가 함께 앉아 있는 너도밤나무 그늘 근처를 배회하는 것을 지켜봤다.
제임스가 세베루스를 공중에 거꾸로 매달고 그를 조롱했다. 릴리가 스네이프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굴욕감과 분노에 사로잡힌 스네이프가 그녀를 향해 용서받지 못할 말을 외쳤다.
"잡종."
장면이 변했다…….
"미안해."
"난 관심 없어."
"미안해!"
"조용히 해."
밤이었다. 잠옷 차림의 릴리는 팔짱을 낀 채, 그리핀도르 탑 입구에 있는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단지, 메리가 네가 밤새 여기서 잘 거라고 위협했다기에 나온 것뿐이야."
"그랬어. 그리고 정말로 그랬을 거야. 난 절대로 널 잡종이라고 부르려고 한 게 아니었어. 그 말이 그냥……."
"무심코 나왔다고?"
릴리의 목소리에는 동정심이라곤 전혀 없었다.
"너무 늦었어. 난 몇 년 동안 줄곧 너를 옹호해 왔어. 네 친구들은 아무도 내가 왜 너랑 말을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해. 너와 너의 그 귀하신 애송이 죽음을 먹는 자 친구들…….거봐, 넌 부인도 하지 않는구나! 넌 심지어 네가 뭐가 되고 싶어 하는지 부인조차 하지 않잖아! 넌 그 사람에게 합류하고 싶어서 못 견디겠지, 그렇지?"
스네이프가 잠깐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 없이 다시 다물었다.
"난 이제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어. 넌 네 길을 택했고, 난 내 길을 택한 거야."
"아니야, 들어 봐! 난 그런 뜻이 아니었단……."
"나를 잡종이라 부를 뜻은 없었다고? 하지만 넌 나와 같은 출생을 지닌 모든 사람들을 잡종이라고 부르잖아, 세베루스. 어째서 나만 그들과 달라야 하는 거지?"
그는 어떻게든 말을 이어 가려고 애를 썼지만, 릴리는 경멸에 가득 찬 눈길을 한 번 던지더니, 휙 돌아서서 다시 초상화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 버렸다…….
복도가 사라지고, 다음 장면으로 다시 바뀌는 데에 약간 시간이 걸렸다. 해리는 마치 휙휙 움직이는 색과 형체들 속을 뚫고 날아가는 듯했다. 마침내 주위 배경이 다시 자리를 잡았고,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추위에 떨며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바람이 씽 불고 지나갔다.
이제 성인이 된 스네이프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꼭 쥔 채,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의 두려움이 해리에게까지 전해졌다. 물론 자신이 해를 입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스네이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해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눈부시게 날카로운 하얀 광선이 허공을 뚫고 날아왔다. 해리는 번갯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스네이프가 털썩 무릎을 꿇고 쓰러졌고, 그의 지팡이는 손에서 날아가 버렸다.
"저를 죽이지 마세요!"
"그럴 의도는 없었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에 덤블도어가 순간이동으로 나타나는 소리가 묻혀 버렸던 것이다. 그는 망토 자락을 휘날리며 스네이프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지팡이 불빛이 밑에서부터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래, 세베루스! 볼드모트 경이 나에게 무슨 전갈을 보낸 거지?"
"아닙니다, 전갈은 없습니다. 제가 용건이 있어서 온 겁니다!"
스네이프는 초조하게 손을 비틀고 있었다. 마구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서 꼭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저……저는 경고를 드리려고, 아니, 요청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덤블도어가 지팡이를 까딱 흔들었다. 그러자 여전히 잎사귀들과 나뭇가지들이 그들 주위의 어두운 대기 속을 날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스네이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자리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죽음을 먹는 자가 내게 무슨 요청이 있단 말이지?"
"그……그 예언……그 예고……트릴로니……."
"아, 그렇군."
덤블도어가 말했다.
"볼드모트 경에게 얼마나 많은 걸 전해 주었나?"
"전부 다……제가 들은 내용은 모두 다 전했습니다!"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래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분은 그 예언이 릴리 에반스를 뜻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은 여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는데."
덤블도어가 말했다.
"칠월의 마지막 날 태어난 사내아이에 대해 말했지."
"제 말뜻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분은 그 아이가 바로 그녀의 아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녀를 추적할 겁니다. 그들 모두 죽일 거라고요!"
"그녀가 자네에게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분명 볼드모트 경은 그녀의 목숨을 살려 주지 않겠나? 아들을 넘겨주는 대신, 그 어머니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할 수 없었단 말인가?"
덤블도어가 말했다.
"저는……저는 그분께 요청했습니다."
"자네는 정말 구역질나는군."
덤블도어가 말했다. 해리는 한 번도 그토록 경멸에 찬 덤블도어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스네이프는 약간 주눅이 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녀의 남편과 아이는 죽어도 상관없단 말인가? 자네가 원하는 것만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은 전부 죽어도 좋단 말인가?"
스네이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만 덤블도어를 올려다보았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를 숨겨 주십시오."
스네이프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아니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십시오."
"그렇다면 자네는 대가로 나에게 무엇을 줄 건가, 세베루스?"
"대……대가요?"
스네이프가 입을 딱 벌리고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그가 당연히 반발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한참 후에 그가 말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언덕이 사라졌다. 이제 해리는 덤블도어의 교장실 안에 서 있었는데, 무언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끔찍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바로 스네이프가 앞으로 몸을 푹 숙인 채, 의자에 주저앉아 있었고, 덤블도어는 침통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스네이프가 고개를 들었다. 그 황량한 언덕을 떠난 이후로, 마치 고통 속에서 백 년쯤은 살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저는……저는 당신이……그녀를 무사하게……지켜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녀와 제임스는 믿어서는 안 될 사람을 신임했네."
덤블도어가 말했다.
"자네와 비슷하지, 세베루스. 자네도 볼드모트 경이 그녀를 살려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나?"
스네이프의 호흡이 가빠졌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살아남았다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러자 스네이프가 진저리나는 파리를 쫓듯이 갑자기 머리를 움찔했다.
"그녀의 아들이 살아 있다네. 그 아이는 바로 그녀의 눈을, 그녀와 아주 똑같은 눈을 갖고 있지. 분명히 자네는 릴리 에반스의 눈매와 색깔을 기억하고 있겠지?"
"아니요!"
스네이프가 울부짖었다.
"끝났어요……죽었어요……."
"후회하고 있나, 세베루스?"
"저는……차라리 제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덤블도어가 싸늘하게 말했다.
"자네가 만약 릴리 에반스를 사랑했다면, 정말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면, 자네 앞에 놓인 길은 분명하다네."
스네이프는 마치 혼미한 고통 속에 갇혀 간신히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덤블도어의 말이 그에게 도달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다.
"무슨……무슨 말씀이시죠?"
"자네는 그녀가 어떻게, 그리고 왜 죽었는지 알고 있네. 그러니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게. 내가 릴리의 아들을 보호하는 것을 도우란 말일세."
"그 아이는 보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둠의 마왕은 사라졌습니다."
"어둠의 마왕은 돌아올 것이고, 그때는 해리 포터가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될 걸세."
긴 침묵이 이어졌다. 스네이프는 서서히 자제력을 되찾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침내 그는 말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하지만 절대, 절대 말하지는 마십시오, 덤블도어 교수님! 이것은 오직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의 일이어야만 합니다! 맹세해 주십시오! 저는 참을 수 없습니다…….특히 포터의 아들이라니…….약속해 주십시오!"
"세베루스, 지금 나더러 자네의 가장 훌륭한 행동을 밝히지 말라고 하는 건가?"
덤블도어는 고뇌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스네이프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탄식했다.
"자네가 정 고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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