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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타임(Rotten Time)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로튼 타임(Rotten Time)-(3)
"해리야!"
"그가 살아 있어!"
충격에 찬 비명 소리와 함성 그리고 외침이 사방에서 터져나오다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볼드모트와 해리가 서로를 노려보는 동시에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들이 바싹 겁에 질려서 당장 굳게 입을 다물고 말았던 것이다.
"저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않습니다."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완벽한 침묵 속에 그의 목소리는 트럼펫 소리처럼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제가 해야만 합니다."
"포터의 말은 진심이 아니다."
새빨간 눈을 크게 뜨고 볼드모트가 말을 이었다.
"그건 그의 방식이 아니지, 안 그런가? 자, 오늘은 누구를 방패로 쓸 작정인가, 포터?"
"어느 누구도 아니다."
해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의 호크룩스는 없다. 이제는 너와 나뿐이다. 다른 한쪽이 살아 있는 한, 그 어느 쪽도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 한 사람은 영영 사라져야 한다."
"우리 중 하나?"
볼드모트가 비아냥거렸다. 그의 온몸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고, 새빨간 눈은 당장이라도 공격을 가하려는 뱀처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너는 살아남은 게 너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안 그러냐, 요 우연히 살아남은 꼬마야? 왜지? 덤블도어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냐?"
"어머니가 나를 구하려다 돌아가셨을 때, 내가 살아남은 게 우연이란 말이냐?"
해리가 물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완벽한 원을 그리며, 서로에게서 똑같은 걸음을 유지한 채 옆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내가 그 공동묘지에서 싸우기로 결정했을 때도? 모두가 우연이란 말이지? 오늘 밤 내가 스스로를 방어하지 않고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다시 싸우러 돌아온 것도?"
"다 우연이고말고!"
볼드모트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하지만 여전히 공격은 하지 않았다. 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치 돌처럼 굳어지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고, 대연회장의 수백 명 중 그들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숨조차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우연과 운이었다. 그리고 네 녀석이 더 큰 남자와 여자들의 치마폭 뒤에 숨어서 훌쩍거리며, 내가 너 대신 그들을 죽이도록 내버려 둔 덕분이지!"
"오늘 밤 너는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죽이지 못할 것이다."
해리가 소리쳤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원을 그리며 대적했고, 초록색과 빨간색의 두 눈이 서로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너는 다시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나는 네가 이 사람들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꺼이 죽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넌 죽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럴 작정이었고, 그렇게 했다. 나는 내 어머니가 했던 대로 한 것이다. 이제 저 사람들은 너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네가 그들에게 건 주문들이 조금도 그들을 속박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넌 아직도 깨닫지 못했느냐? 이제 너는 그들을 괴롭힐 수 없다. 넌 그들을 건드릴 수 없단 말이다. 넌 그토록 실수를 하고도 깨닫는 바가 없구나, 리들! 안 그런가?"
"네놈이 감히 그런……!"
"그래, 나는 감히 그럴 수 있다."
해리가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모르는 사실들을 알고 있으니까. 톰 리들. 나는 네가 모르는 중요한 것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단 말이다. 말해줄까?"
볼드모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다만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었다.
"또 그 사랑 타령이나?"
이윽고 볼드모트가 입을 열었다. 뱀같이 생긴 그의 얼굴에 조소가 떠올랐다.
"덤블도어가 제일 좋아하는 해법인 '사랑' 말이냐? 그자는 사랑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 그런데 사랑은 그 작자가 탑에서 떨어지는 걸 막아 주지도 못했고, 낡아 빠진 밀랍 인형처럼 부서져 버리는 것도 막아 주지 못했다. 안 그러냐? 사랑, 그건 내가 한낱 바퀴벌레처럼 네 잡종 어미를 짓밟아 버리는 것도 막지 못했어, 포터. 게다가 이번에는 앞으로 뛰어나와 내 저주를 대신 맞아 줄 만큼 널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구나. 그렇다면 내가 널 공격하면 이번에는 네가 죽는 걸 뭐가 막아 주겠느냐?"
"딱 한 가지가 있지."
해리가 대꾸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몰두한 채 원을 그리며 돌었다. 단 한 가지 마지막 비밀만이 그들을 갈라놓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이번에 너를 구해 줄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네놈은 내가 터득하지 못한 마법을 자신이 할 줄 안다고 믿고 있는게 분명하군. 아니면 내가 가진 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냐?"
볼드모트가 말했다.
"나는 두 가지 다 믿는다."
해리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비록 금세 사라지긴 했지만, 뱀처럼 생긴 볼드모트의 얼굴에 충격이 스치는 것을 목격했다. 볼드모트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고, 그 웃음소리는 그의 비명보다도 더 무시무시했다, 유머라곤 전혀 없는, 광기 어린 그 웃음소리는 적막한 연회장 안에 메아리쳤다.
"네 녀석이 나보다도 더 많은 마법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느냐?"
볼드모트가 물었다.
"나보다 더? 덤블도어 자신조차 꿈도 꿔 보지 못한 마법을 부려 온 바로 나, 볼드모트 경보다 더 말이냐?"
"오오, 그분도 그걸 꿈꾸시긴 했었다."
해리가 대꾸했다.
"하지만 그분은 너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셨어. 네가 한짓을 하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알고 계셨지."
"네 말은 곧 그가 나약했단 뜻이지!"
볼드모트가 소리쳤다.
"너무 나약해서 감히 그럴 수 없었던 거야. 너무 나약해서 자기 것이 될 수도 있었던 그것을 차지하지 못했지. 결국은 내것이 될 그것을 말이야!"
"아니, 그분은 너보다 똑똑하셨던 거다."
해리가 말했다.
"더 훌륭한 마법사였고, 더 훌륭한 사람이었어."
"알버스 덤블도어를 죽게 한 건 바로 나였어!"
"물론 넌 네가 그랬다고 생각하겠지."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네 생각은 틀렸어."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술렁거렸다. 벽 앞에 둘러서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쉬었다.
"덤블도어는 죽었어!"
볼드모트는 해리를 향해 내뱉듯 말했다. 마치 그 말들이 해리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기라고 할 것처럼.
"그자의 시체는 이 성의 운동장에 있는 대리석 무덤 속에서 썩고 있단 말이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포터. 그는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래, 덤블도어 교수님은 돌아가셨다."
해리는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분을 죽인 건 네가 아니야. 그분은 스스로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셨어.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이미 선택을 하시고, 네가 너의 부하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함께 모든 걸 분비하셨던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어린애 장난 같은 소리냐?"
볼드모트가 소리쳤지만, 여전히 공격은 가하지 않았다. 새빨간 그의 두 눈은 해리에게 고정된 채, 흔들리지 않았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네 부하가 아니었다."
해리가 말했다.
"스네이프는 덤블도어 교수님의 사람이었다. 네가 나의 어머니를 뒤쫓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덤블도어 교수님의 사람이었어. 그런데 넌 전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지. 왜냐하면 네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바로 사랑 때문이었어. 너는 스네이프가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안 그래, 리들?"
볼드모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상대를 갈기갈기 물어뜯으려고 하는 늑대처럼 계속해서 서로를 노리며 맴돌았다.
"스네이프의 패트로누스는 암사슴이었다."
해리가 말했다.
"지금은 바뀌긴 했지만 내 어머니의 것과 똑같았지. 왜냐하면 두 사람이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스네이프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넌 그걸 알아차렸어야만 했어."
볼드모트의 콧구멍에서 뜨거운 숨이 뿜어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해리가 말했다.
"스네이프는 너에게 그녀를 살려 달라고 간청했지, 안 그런가?"
"그는 그저 그 계집을 욕망했을 뿐이야. 그게 전부였다."
볼드모트가 조소했다.
"하지만 그 계집이 죽고 나자, 세상에는 다른 여자들도 많다는 걸, 자신에게 걸맞는 순수혈통의 여자들이 많이 있다는 걸 그도 인정했다."
"물론 너한테는 그렇게 말했겠지."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네가 그녀의 목숨을 위협한 그 순간부터, 스네이프는 덤블도어의 첩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줄곧 너를 막기 위해 노력해 왔던 것이다! 스네이프가 덤블도어 교수님을 죽였을 때, 교수님은 이미 죽어 가고 계셨단 말이다!"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볼드모트가 빽 소리쳤다. 지금까지 열중해서 한 마디 한 마디 귀 기울여 듣고 있던 그는, 이제 낄낄대며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스네이프가 내 사람이었는지 덤블도어의 사람이었는지, 그딴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 작자들이 내 앞길에 어떤 시시한 장애물들을 놓으려 했었는지도 말이다! 나는 스네이프의 위대한 짝사랑 상대였던 네 엄마를 박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자들을 모두 박살내 버렸으니까! 오오, 그런데 모든 게 다 이해가 가는구나, 포터. 물론 네 녀석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덤블도어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내가 갖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스네이프가 그 지팡이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나는 너보다 그 사실을 먼저 깨달았지, 이 꼬마야. 네가 그 지팡이에 손도 대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지팡이를 손에 넣었다. 네 녀석이 따라잡기 전에, 난 그 진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세 시간 전에 벌써 죽였다. 딱총나무 지팡이, 죽음의 지팡이, 운명의 지팡이는 이제 진정한 내 것이 되었다! 덤블도어의 최후의 작전은 결실을 보지 못했어, 해리 포터!"
"정말 그런 거라고 생각하나?"
해리가 물었다.
"안타깝지만 네가 생각한 것은 틀렸어.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살아 있다. 그는 벌써 세 시간 전에 프랑스로 떠났어."
볼드모트의 동공이 가느다랗게 수축했다. 그의 눈가가 하얗게 질렸다.
"네가 죽이라 명령하고, 죽은 줄 알았던 살아있는 릴리아나를 만나기 위해 말이야."
해리의 말에 볼드모트가 정신을 차린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 보니 스네이프의 패트로누스가 바뀌었다고 했지. 그 대용품 잡종 계집의 패트로누스로 바뀌었다는 것이냐? 그 위대한 짝사랑의 대용품으로?"
"……그래서 네가 사랑을 모른다는 거야, 톰."
해리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지팡이는 여전히 너를 위해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엉뚱한 사람을 죽였으니, 아니 죽이려고 했으니까.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네가 죽였더라도 너는 딱총나무 지팡이의 진짜 주인이 되지 못했을 거다. 그는 덤블도어 교수님과 싸워 이긴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스네이프가 죽였……."
"내 말을 똑똑히 듣고 있는 건가? 스네이프는 단 한 번도 덤블도어 교수님을 이긴 적이 없단 말이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죽음은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 교수님은 싸워서 패배당하는 일 없이 죽을 작정이었어. 그 지팡이의 진정한 마지막 주인으로서 말이야! 만약 모든 게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그 지팡이의 힘 또한 교수님과 함께 소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결코 지팡이를 빼앗긴 적이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포터! 덤블도어는 그 지팡이를 나에게 그냥 안겨준 것이나 다름없다!"
볼드모트의 목소리는 사악한 희열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지팡이를 마지막 주인의 무덤에서 훔쳐 왔으니까 말이다! 난 그 지팡이의 마지막 주인의 의지에 반해서 그것을 빼앗아 왔다! 그러므로 그 지팡이의 힘은 이제 내 것이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군, 리들, 안 그래? 그 지팡이를 소유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손에 쥐고 사용하는 것만으로 그 지팡이를 진짜 네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단 말이다. 넌 올리밴더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군? 지팡이가 마법사를 선택한다. 딱총나무 지팡이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죽기 전에 새 주인을 알아보았어. 그 지팡이에 손 한번 대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지. 그 새로운 주인은 덤블도어 교수님의 뜻을 거슬러서 그로부터 억지로 그 지팡이를 빼앗았어. 정확히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다시 말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팡이가 그에게 충성을 바쳤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야."
볼드모트의 가슴이 빠르게 들썩거렸다.
"딱총나무 지팡이의 진짜 주인은 드레이코 말포이였다."
한순간 얼빠진 듯한 충격의 표정이 볼드모트의 얼굴에 스쳤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게 뭐가 문제지?"
볼드모트가 조용히 물었다.
"비록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포터, 그건 너와 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넌 더 이상 불사조 지팡이를 갖고 있지 않지. 이제 우리는 오직 실력을 겨룰 뿐이라고. 일단 널 죽이고 난 다음, 드레이코 말포이에게 신경을 쓰면 되겠지."
"하지만 넌 이미 늦었다."
해리가 말했다.
"넌 기회를 놓쳤어. 내가 먼저 성공했거든. 난 드레이코를 몇 주 전에 이겼다. 그리고 이 지팡이를 그로부터 빼앗았다."
해리는 산사나무 지팡이를 홱 휘둘렀다. 연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 지팡이에 집중되었다.
"결국엔 이렇게 된 거지, 안 그래?"
해리가 속삭였다.
"네 손에 있는 그 지팡이는 자신의 마지막 주인이 무장해제 마법에 당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면……그 딱총나무 지팡이의 진짜 주인은 바로 나니까 말이야."
갑자기 불그스레한 황금색의 강렬한 빛이 마법에 걸린 천장을 가로질러 그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눈부신 태양의 가장자리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창문턱 위로 살짝 고개를 내민 것이다. 찬란한 햇빛은 두 사람의 얼굴을 동시에 비추었고, 그러자 볼드모트의 얼굴이 갑자기 번쩍이는 반점처럼 보였다.
"아바다 케다브라!"
"엑스펠리아르무스!"
마치 대포를 쏘는 듯이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폭발한 금빛 불꽃들은, 그들이 따라 걷고 있던 원의 한복판, 즉 그들의 마법이 충돌한 지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볼드모트의 초록색 광선이 해리의 주문과 부딪히더니,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까맣게 보이는 딱총나무 지팡이가 높이 날아오르더니, 마법이 걸린 천장을 가로질렀다. 그 지팡이는 빙글빙글 돌면서 허공을 뚫고 날아왔다. 마침내 자신을 완전히 손에 넣은, 그러므로 결코 죽일 수 없는 주인을 향해서.
해리는 수색꾼다운 완벽한 솜씨를 발휘해 아무것도 쥐지 않고 있던 손으로 그 지팡이를 붙잡았다. 한편 볼드모트는 두 팔을 벌린 채 벌러덩 쓰러졌다. 새빨간 눈의 가느다란 동공은 위로 휙 뒤집어졌다. 톰 리들은 바닥에 쓰러져 평범한 최후를 맞았다. 그의 몸은 힘없이 움츠러들었고, 새하얀 두 손은 텅 비었으며, 뱀처럼 생긴 얼굴은 공허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볼드모트는 거꾸로 튀어나온 자기 자신의 저주에 맞아 죽은 것이다. 해리는 양손에 각기 지팡이를 하나씩 쥔 채, 껍데기만 남은 적의 모습을 뚫어지게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전율하는 찰나의 순간 동안, 침묵과 충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곧이어 해리의 주위에서 소동이 벌어졌고, 구경꾼들의 고함과 갈채와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강렬하고 새로운 태양이 유리창을 눈부시게 비추었고, 사람들은 해리를 향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해리를 향해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론과 헤르미온느였다. 그들의 팔이 그를 꼭 감싸 안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외침 소리에 귀가 멍할 지경이었다.
곧이어 지니와 네빌, 루나가 달려왔고, 프레드와 조지를 포함한 위즐리 가족 모두와 리무스, 통스, 해그리드, 킹슬리, 맥고나걸, 플리트윅 그리고 스프라우트가 다가왔다. 그들이 외치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해리를 붙잡고, 끌어당기고, 조금이라도 안아 보려 애쓰는 이 손길이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는데, 모두 살아남은 이 해리를 한번 만져 보기로 단단히 결심한 듯했다.
태양은 점점 호그와트 위로 떠올랐고, 대연회장은 빛과 활기로 찬란하게 빛났다. 환희와 애도, 축하와 비탄이 뒤섞인 이 들끓는 격정 속에서, 모두들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이자 상징이며 구원자이자 길잡이인 그가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하길 바랐다. 그가 한잠도 자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들 중의 몇 사람하고만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 따위는 어느 누구의 머리에도 떠오르지 않는 듯 했다.
결국 루나의 도움으로 투명망토를 쓰고 대연회장을 빠져나온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그가 펜시브에서 보았던 것과 숲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하여 비록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행선지를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걸음이 저절로 향하고 있던 그곳에 마침내 도착했을 때, 그들 두 사람은 엄청난 충격과 놀라움을 미처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해리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래로, 교장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무기 석상은 부서져 있었다. 그것은 약간 얻어맞고 얼빠진 표정으로 비스듬하게 서 있었는데, 해리는 과연 그것이 더 이상 암호를 알아들을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올라가도 될까요?"
해리가 이무기 석상에게 물었다.
"마음대로 해."
석상이 끙끙대며 말했다. 그들은 이무기 석상을 타 넘었다. 그리고 나선형 돌계단에 올라서자, 계단은 에스컬레이터처럼 서서히 위쪽으로 움직였다. 꼭대기에 이른 해리는 문을 밀어 열었다.
그는 자신이 책상 위에 두고 간 돌 펜시브를 힐끗 곁눈질했다. 바로 그때 귀청이 찢어질 듯한 큰 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해리는 비명을 질렀다. 어디선가 저주가 날아오거나, 혹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되돌아오거나, 볼드모트가 부활했을 거란 생각이 언뜻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박수갈채 소리였다. 벽을 빙 둘러싼 남녀 교장 선생님들이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모자나 가발을 들어 흔들고 있었고, 액자 너머로 팔을 뻗어 서로의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혹은 그림 속에 그려진 의자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오직 교장 선생님의 의자 바로 뒤에 걸린, 가장 커다란 초상화 속에 서 있는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이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에서부터 긴 은빛 수염 속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의 얼굴에 가득한 자부심과 고마움은 불사조의 노래처럼 해리의 마음에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마침내 해리가 양 손을 들어 올리자, 초상화들은 일제히 정중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환한 웃음을 띤 채, 눈물을 훔치며 열렬히 그의 연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리는 덤블도어를 향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주 신중하게 어휘를 선택했다.
"스니치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을……."
해리가 말문을 열었다.
"숲 속에서 떨어트렸어요.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걸 다시 찾으러 가지 않을 생각인데, 교수님도 찬성하시나요?"
"그렇단다, 얘야."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반면 그림 속에 있는 그의 동료들은 어리둥절하고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참으로 현명하고도 용감한 결정이로구나. 내가 기대했던 대로야. 그런데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것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고 있니?"
"아무도 몰라요."
해리가 대답하자, 덤블도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침을 꿀꺽 삼킨 해리가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교수님, 스니치 안에 숨겨진 것을 숲 속에서 사용했는데요……거기서 제 부모님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런데 그분들은 시리우스와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했어요. 그 말은……."
"숨겨서 미안하구나, 해리."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네 예상대로다. 시리우스는 살아 있단다."
해리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시리우스가 죽음을 위장해야 했었던 결정을 내려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그래야만 네가 진정한 어른이 되어 더 넓은 곳으로 겁 없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그는 어디 있나요?"
"불사조 기사단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독일에 갔을 거란다. 아마 지금쯤 리무스가 연락을 취했을 거다."
덤블도어가 여전히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해리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한껏 치솟아 오르려는 입 꼬리를 제어하지 못했다. 그런 해리의 얼굴을 바라보던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다, 해리. 세베루스는 어떻게 되었니?"
"그는 프랑스로 갔을 거예요. 릴리와 아기를 만나기 위해서요."
해리의 대답에 덤블도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잘됐구나."
"저……. 교수님은 릴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왜……."
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네이프 교수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가 없었단다. 내가 그녀에게 불사조와 그에 관한 기록을 남겨 주긴 했지만 그것을 사용했을지, 사용하지 않았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단다."
덤블도어가 조금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해리가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자 침울한 표정을 풀고 물었다.
"또 궁금한 것이라도 있니?"
덤블도어의 물음에도 잠시 머뭇거리던 해리가 입을 열었다.
"사실……스네이프가 릴리, 그러니까 릴리아나를 정말 사랑했는지 모르겠어요. 볼드모트는 릴리아나가 그저 제 어머니의 대용품이라고 했어요. 저는 '그래서 네가 사랑을 모른다는 것'이라고 대답하긴 했는데……. 사실 저도 리들의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오오, 왜 그렇게 생각하니?"
덤블도어가 인자하게 물었다.
"저는 그의 기억을 봤어요. 스네이프의 패트로누스가 바뀌었고, 릴리아나와 이브를 만나기 위해 죽을 것이라는 암시와 저에게 빈 묘지들에 대한 기억을 남겨 자신의 시신을 그곳에 묻어달라는 부탁 같은 것을 남기긴 했지만……. 하지만 그는 처음에 릴리아나를 제 어머니의 환생, 뭐 그런 것으로 봤었어요. 릴리아나는 스네이프를 오랫동안 짝사랑 했잖아요. 죽은 첫사랑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좋아한다고 다가오면 당연히 흔들리지 않을까요? 그가 제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해리가 횡설수설하자 덤블도어가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겠다. 스네이프가 지금 릴리아나를 아주 조금이라도 릴리 포터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하는 것이지?"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덤블도어가 두 손을 합장하듯 모으며 인자하게 말했다.
"나는 그가 릴리아나 양을 온전한 그녀 자체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스네이프 교수에게 릴리와 릴리아나 양 사이의 관계는……그래, 로튼 타임(Rotten Time, 썩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로튼 타임?"
해리는 '썩은'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에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의아한 듯 되물었다.
"이해가 가질 않는 모양이구나."
"음……. 저는……네, 잘 모르겠어요."
해리가 인정했다. 덤블도어는 작게 킬킬거리더니 다시 현자 같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썩는다'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란다, 해리. 물론 부정적인 어감이긴 하지만 말이다."
덤블도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렴. 무언가가 썩었던 자리에는 그것을 양분으로 새로운 것이 더욱 아름답게 피어난단다."
덤블도어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서 있는 해리를 바라보며 인자하게 말했다.
"스네이프 교수의 시간은 릴리 포터가 죽은 이후로 멈춰버렸단다, 해리. 멈춘다면 썩기 마련이란다. 그것은 이 세상 어느 것도 피해갈 수 없지. 심지어 시간이라도 말이다. 릴리 포터가 죽은 이후로 멈춰버린 그의 시간은 조금씩 썩어 들어가기 시작해 그를 점점 차지하고 있었단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공허하고 메말랐던 까만 눈을 기억해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네이프 교수도 처음에는 릴리아나 양이 릴리의 얼굴을 갖고 있기에 일종의……그래, 대용품처럼 보았던 것은 사실이란다. 내 말을 끝까지 들으렴, 해리. '릴리와 똑같은 얼굴'이라는 양분, 그러니까 이유 때문에 그가 릴리아나 양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 역시 사실이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릴리아나 양과 릴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 갔고, 마침내 온전한 그녀만을 사랑하게 되었단다. 멈춰버려 썩어가고있던 릴리 포터와의 시간은 뒤로하고 릴리아나 양과의 시간이 새롭게 피어난 것이지. 나는 개인적으로 릴리 포터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이후 과거의 시간에 멈춰 있던 스네이프 교수를 릴리아나 양이 사랑으로 그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 주고 미래를 보며 나아갈 수 있도록 구원해 주었다고 생각한단다."
덤블도어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패트로누스가 그 증거란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패트로누스로 변하기 위해서는 해리, 그저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는 안 된단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패트로누스를 갖기 위해서는 그 사람 그 자체를 온전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해야만 한단다. 궁금한 점이 풀렸니?"
덤블도어의 말을 곰씹던 해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가 갑자기 생각 난 듯,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해리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내밀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경외심을 품고 그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해리가 말했다.
"전 이걸 원치 않아요."
"뭐?"
순간 론이 큰 소리로 외쳤다.
"너 제정신이야?"
"저도 이게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걸 알아요."
해리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전 제 지팡이를 쓸 때가 더 좋았어요. 그래서……."
그는 목에 건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더니, 두 동강 난 서양호랑가시나무 지팡이를 꺼냈다. 그것은 아직도 아주 가느다란 불사조 깃털 한 가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해리는 부러진 지팡이를 교장 선생님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딱총나무 지팡이로 그것을 건드리며 말했다.
"레파로."
그러자 지팡이가 다시 붙으면서, 그 끝에서 빨간 불꽃이 뿜어 나왔다. 해리는 자신이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서양호랑가시나무와 불사조 깃털 지팡이를 집어 드는 순간, 지팡이와 손이 다시 만난 것을 기뻐하기라도 하는 듯이, 갑자기 그의 손아귀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저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해리는 엄청난 애정과 찬탄이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덤블도어를 향해 말했다.
"그것이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놓겠습니다. 그건 그 자리에 있어야 해요. 제가 만약 이그노투스처럼 자연사한다면, 그 지팡이의 힘은 사라지겠죠, 그렇죠? 지팡이의 이전 주인이 결코 패배를 당하지 않은 셈일 테니까요. 그렇게 하면 그걸로 끝이 날 거예요."
덤블도어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럴 작정이야?"
론이 물었다. 딱총나무 지팡이를 바라보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희미한 갈망이 느껴졌다.
"해리 생각이 옳은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말했다.
"저 지팡이는 귀중한 것이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말썽거리야."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말썽이라면 난 이미 평생 신물이 나도록 겪었어. 아, 그래도 이그노투스의 선물은 간직할 수 있겠죠?"
"그건 물론이지, 해리. 그건 영원히 네 거란다. 네가 그걸 물려줄 때까지는 말이다!"
덤블도어가 경쾌하게 답해주었다. 용건이 끝나자 해리는 초상화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핀도르 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네 기둥 달린 침대와 크리처가 침실로 샌드위치를 하나 가지고 올라올 수 있을지를 생각하던 해리가 머릿속에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았다. 덤블도어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의 패트로누스는 릴리아나가 패트로누스 마법을 쓸 수 있기 전에 바뀌었어요. 그의 기억에서 스네이프는 제가 5학년이던 크리스마스 방학 무렵쯤에 패트로누스가 바뀌었거든요. 릴리아나가 패트로누스 마법에 성공한 건 그 다음 해, 부활절 휴가가 끝나고 나서였어요."
해리의 말에 덤블도어가 하늘색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새로운 시간이 피어났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