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123화 (12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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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 Time(외전 맛보기)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After the Time

"정말 엄마 없어도 괜찮아?"

"괜찮아요."

시리우스의 품에 안긴 세비나가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하지만 릴리아나는 여전히 걱정되는 듯 했다.

"세바스찬 삼촌이랑 시리 삼촌 말 잘 듣고. 잠자기 전에 이 꼭 닦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인사 꼭 하고. 알겠지?"

"네."

"그럼 이브를 잘 부탁해요. 괜히 폐 끼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아가씨."

"아니야. 오랜만에 이브랑 같이 있으니 나야 좋지."

세바스찬과 시리우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릴리아나는 계속해서 삼촌들 말을 잘 들으라는 당부를 늘어놓은 다음에야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가 뿅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이동으로 사라지자, 시리우스가 세비나를 고쳐 안으며 물었다.

"자, 그럼 우리 공주님. 뭐 하고 놀까?"

"음…….소꿉놀이요."

"소꿉놀이?"

"네."

참으로 여자아이다운 놀이에 시리우스가 미소를 띠며 허락의 말을 내놓으려고 했다.

"세바스찬 삼촌이 아빠하고 시리 삼촌이 엄마해요."

세비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시리우스와 세바스찬 사이의 공기가 살짝 굳는 듯 했다. 하지만 이브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더욱 활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브는 아기 할게요."

양손을 모아 한쪽 뺨에 갖다 댄 세비나가 잠자는 시늉을 했다. 여전히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제야 이상한 것을 눈치 챘는지 세비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리우스와 세바스찬을 바라보았다.

"이……이브…….그건……좀……."

세바스찬이 당황한 목소리로 더듬거리자 정신을 차린 시리우스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여자처럼 목소리 톤을 높여 애교가득하게 말했다.

"왜 그래용 자기."

"하지 마세요!"

세바스찬이 정색하며 싫어하자 시리우스는 더욱 장난기가 생긴 듯 했다.

"섭섭하게 왜 그래용 자기."

"하지 마십시오!"

기겁하는 세바스찬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세비나가 까르르 맑은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시리우스 역시 세바스찬을 놀리는 재미가 들렸는지 계속해서 여자같이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같이 산 세월이 얼마……."

"이브, 쿠키 먹고 싶지 않아요? 이브가 놀러온다고 쿠키를 구워 놓았어요."

"와!"

급하게 시리우스의 말을 자른 세바스찬이 화제를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이브는 쿠키라는 말에 금세 관심을 바꾸었다. 시리우스에게서 세비나를 빼앗은 세바스찬이 아이를 안고 주방으로 향했다. 뒤에서 시리우스가 계속해서 "자기! 자기! 어디가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세바스찬은 철저하게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세바스찬은 커다란 쿠키들로 회유하려 했지만, 소꿉놀이를 향한 세비나의 열정은 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아빠 역의 시리우스, 엄마 역의 세비나, 지나가던 집사 역의 세바스찬으로 합의를 보았다.

세비나가 장난감 달걀을 깨트려 요리하는 척 하는 것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던 삼촌들은 아이가 접시에 장난감 토스트를 가지고 오자 격렬한 반응을 보여 이브를 웃게 만들었다.

"맛있게 드세요, 여보. 맛있게 드세요, 집사님."

"고마워요."

아빠 역의 시리우스가 대답했다. 한입 먹는 시늉을 한 세바스찬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며 커다랗게 감탄을 내뱉었다.

"맛있어요!"

"맛있어요?"

"네! 너무 맛있어요. 누가 만든 거예요?"

"이브가 만들었어요. 여보도 드세요."

"알겠어요."

시리우스 역시 한입 먹는 시늉을 하더니 감탄했다.

"맛있어요."

"맛있으면 뽀뽀."

세비나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하얗고 보드라운 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귀여운 아이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던 삼촌들이 차례로 아이의 볼에 입을 맞췄다.

"누구한테 이런 귀여운 걸 배웠어."

시리우스가 이브의 하얀 뺨을 가볍게 꼬집으며 말하자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가 아빠한테 이렇게 했어요."

세바스찬의 미소가 석화되었다. 시리우스는 흥미로운 듯이 물었다.

"엄마가 이렇게 해? 아빠한테?"

"네."

"여보- 그러면서?"

"여보라고 할 때도 있고 자기라고 할 때도 있고 세브라고 할 때도 있어요. 가끔은 교수님이나 오빠~ 라고 해요."

이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수 재연해 보이더니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그런데요, 삼촌."

"왜 그러니?"

"왜 이브가 엄마를 해야 해요? 세바스찬 삼촌이 엄마하면 안되는 거예요?"

"음…….그건……."

시리우스가 무엇이라 말을 해야 할지 단어를 선택하고 있을 무렵, 돌처럼 굳어있던 세바스찬은 이브의 물음에 단번에 깨져버렸다.

"둘이 결혼했잖아요."

"아니에요!"

단어를 고민하고 있던 시리우스가 다시 커다랗게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세바스찬이 새빨개진 얼굴로 자신의 억울함을 표현했다.

"결혼 안했어요!"

"결혼해서 같이 사는 거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세비나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같이 살면 결혼한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럼 왜 같이 살아요?"

"그건……."

결혼해 실패한 세바스찬이 밀려오는 서러움에 말꼬리를 흐렸다. 아가씨가 결혼하는 것 까지 보고 결혼하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해 왔지만, 이상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사랑하니까 같이 사는 거 아니에요?"

"어……."

"싫어하면 같이 못살잖아요."

세바스찬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져 있을 때, 시리우스는 도움이라고는 주지도 않으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뒤에서 커다랗게 낄낄거리고만 있었다.

"시리 삼촌 사랑하니까 같이 사는 거잖아요."

"이브……."

아이의 '사랑한다.'라는 기준은 순수할 정도로 플라토닉 한 것이었지만, 그것에 순순히 대답하기엔 기준이 너무나도 순수해 순수하지 못한 어른들의 귀에는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입을 몇 번 벙긋거리던 세바스찬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결혼을 못해서 그래요……."

어쩐지 조금 울먹거리는 것 같이 들렸다. 세바스찬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고르더니 세비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브, 이브는 삼촌 사랑하죠?"

"네."

"그런데 같이 못살잖아요. 사랑한다고 다 같이 사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삼촌은……."

"이브 양! 차 한 잔 더 줘요!"

시리우스가 애잔하다는 듯이 세바스찬을 구원해 주었다. 세비나는 밝은 목소리로 네 라고 대답하며 장난감 찻주전자를 들고 시리우스의 찻잔에 차를 따르는 시늉을 했다.

간신히 공포의 '왜?'에서 풀려났지만 어쩐지 상처로 가득한 것 같은 마음을 안고 터덜거리며 세바스찬이 의자에 앉자, 반대편에 앉아 있던 시리우스가 물었다.

"술?"

세바스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파이어위스키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한잔만 하자 한 것이 두 잔이 되고 조금만 더 마시자 한 것이 반병이 되고 한 병까지만 마시자 하는 것이 두병이 되고 하는 것이 술이었다. 뜻하지 않게 알게 된 스네이프 부부의 호칭에 대한 충격과 잠시 묻어두었던 결혼 실패에 대한 충격이 합쳐져 술은 쭉쭉 들어갔다.

소꿉놀이를 하던 것도 뒤로한 채, 세비나는 흥미롭다는 듯이 헬렐레한 상태가 된 삼촌들의 술주정을 지켜보았다.

미친 듯이 낄낄거리던 시리우스는 애니마구스로 변한 것 마냥 월월 짖어댔고, 세바스찬은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듯 구슬픈 곡조를 뽑기 시작했다.

"이브야 이브. 우리 이브!"

시리우스가 짖던 것을 멈추고 말꼬리를 길게 끌며 혀가 잔뜩 꼬인 채 물었다.

"엄마가 아빠를 정말 오빠라고 불뤄?"

"가끔씩요."

시리우스는 릴리아나가 스네이프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상상하는지 킬킬거리다가 정말로 상상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통은 뭐라고 하는데에?"

"세브나 여보나 자기나……."

세바스찬의 구슬픈 곡조가 한층 더 커졌다. 착잡한 얼굴로 다시 파이어위스키를 홀짝거린 시리우스가 물었다.

"그럼 엄마랑 아빠랑 싸우면 누가 이겨?"

"엄마요."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붉은 머리들은 머리색깔처럼 불처럼 강인하다니까."

낄낄거리던 시리우스가 단번에 그리운 얼굴이 되어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붉은 머리들은 그랬어…….그랬지……."

"우리 엄마는 금발인데……."

시리우스의 말은 마치 릴리아나가 붉은 머리인 것 같이 들렸기에 세비나는 조금 어리둥절해하며 중얼거렸다. 한번 딸꾹한 시리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너희 엄마 붉은 머리였어."

"정말요?"

세바스찬의 구슬픈 곡조가 더욱 더 커졌다.

"그런데 왜 지금은 금발이에요?"

"궁금하니?"

세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바스찬은 탁자에 얼굴을 묻은 채 아까보다 더욱 슬픈 곡조를 뽑아내고 있었다. 어지러운 듯 잠깐 휘청했던 시리우스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그의 시도는 성공적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여전히 혀가 꼬인 발음도 발음이었지만, 스네이프 부부의 지인들은 그들의 자식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기로 암묵적인 동의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시리우스의 뇌는 그곳까지 미처 생각이 닿지 못하는 듯 했다.

"왜냐하면……."

그리고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전직 죽음을 먹는 자였던 호그와트의 마법약 교수와 교수의 첫사랑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소녀의 러브 스토리 자체로도 충격이었지만, 그 당시 릴리아나의 옆에서 자세한 상황을 보아왔던 세바스찬의 흐느낌 가득한 증언이 더해지자 이브의 충격은 배가 되었다.

불행하게도 이야기 도중 세바스찬과 시리우스 모두 과도한 알코올 섭취로 인하여 정신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스네이프 씨의 고난과 역경으로 이어졌다.

***

다음날 오전 9시에 찾아온 릴리아나는 아이를 두고 기절할 때까지 술을 퍼마실 수 있냐는 잔소리 폭탄을 시리우스와 세바스찬에게 퍼부었다. 그들이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로 숙취를 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괘씸한 마음에 마지막까지 폭풍 같은 잔소리를 한 릴리아나는 기어들어갈 것 같은 사과를 받아낸 후, 퉁퉁 부어있는 눈으로 잠들어 있는 세비나를 안아 집으로 돌아왔다.

막 플루가루 네트워크를 타고 벽난로에서 나오자 퉁퉁 부어있던 아이의 눈이 떠졌다.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은 붓기로 인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세비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집인 것을 깨닫고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릴리아나가 물었다.

"이브? 왜 우니? 이브?"

이유모를 눈물에 아이의 등을 토닥거리며 달래던 릴리아나가 계속해서 이유를 물었지만, 세비나는 고개를 저으며 연신 "아니야…….아니야……."만 반복할 뿐이었다.

"무슨 일이야?"

멈추지 않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스네이프가 응접실로 황급히 들어왔다. 세비나는 스네이프를 보더니 아까보다 더욱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와 이브를 향해 다가왔지만 아이의 도리질은 더욱 거세졌다.

"이브? 왜 그러니?"

스네이프가 릴리아나에게서 세비나를 받아 안으려고 했지만 아이는 원망스러운 얼굴로 아빠의 손을 거칠게 탁 쳐냈다. 평소 고집을 부리지 않는 아이였기에, 릴리아나는 세비나가 보인 거친 반응에 놀랐다가 엄한 얼굴로 말했다.

"이브! 사람을 때리면 어떡해! 아빠 손을 쳐서 미안하다고 사과해."

"아빠 아니야!"

"세비나 스네이프."

평소에는 부드러운 그녀였지만, 엄할 곳에서는 엄했기에 릴리아나는 낮은 목소리로 세비나의 풀 네임을 불렀다. 하지만 세비나는 여전히 펑펑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다.

"아빠 아니야! 이브는 아빠 없어!"

엉엉 울면서 말하는 사랑스러운 딸의 외침에 스네이프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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