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125화 (12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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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the Time(完)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Before the Time

제임스의 말에 얼굴이 새빨개진 릴리가 그를 향해 무어라 쏘아붙이려다가, 창백한 안색의 릴리아나를 발견하고 입을 딱 벌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몇 번 비비던 릴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릴리아나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 사이로 어색하고 무겁고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릴리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났다는 것 때문에, 릴리아나는 시간을 거슬러 남편의 첫사랑을 실제로 만났다는 것 때문에, 서로 이유는 달랐지만 두 여자는 경악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너……너……나……이게……무슨……."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릴리아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벙긋거리던 릴리는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해 기절해 버렸고, 소망의 거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을 보고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제임스 포터 1세와 릴리 에반스 그리고 마루더즈들과 만나게 된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릴리아나 역시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기절해 버렸다.

"설마 죽은 거야?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데……."

잔뜩 겁먹은 피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죽었을 리가 없잖아! 불길한 소리 좀 하지 마!"

제임스가 피터에게 화를 내면서도 릴리의 상태를 살폈다. 릴리아나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어깨를 흔들던 스네이프 역시 피터 패티그루에게 마주치기만 해도 살해당할 듯한 바실리스크 같은 눈빛을 보내자 피터는 "미안……."이라고 중얼거리며 리무스의 뒤에 숨어버렸다.

때 아닌 기절 소동에 그 자리에 있던 마루더즈와 스네이프가 혼란과 당황에 빠져 있을 무렵, 이십년은 젊어 보이는 덤블도어-스네이프 부부의 입장에서-가 침착한 얼굴로 그들 앞에 나타났다. 덤블도어는 조금 놀란 듯 했으나 이내 단호하면서도 차분하게 기절한 릴리는 병동으로, 릴리아나는 교장실로 옮길 것을 지시했다.

***

릴리아나가 눈을 뜬 것은 점심 무렵이었다. 미간을 살포시 찡그렸다가 눈이 부신 듯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을 여러 번 깜빡거리던 릴리아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스네이프를 발견하고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보던 릴리아나는 자신이 간이로 만들어낸 침대에 누워 있으며, 교장실의 풍경이 그녀의 남편이 쓰던 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채고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릴리아나의 손을 꼭 잡고 있던 그의 뒤로 이십년은 젊어 보이는 덤블도어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어요?"

릴리아나가 작게 속삭이자 스네이프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덤블도어에게 눈짓을 했다. 그녀가 앉아있는 침대 앞에 의자를 만들어내 앉은 덤블도어가 손을 합장하듯이 모았다.

"스네이프 부인?"

"네?"

많이 들어본 호칭이었지만, 덤블도어에게서 들으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부끄러움을 감춘 릴리아나가 입을 열었다.

"릴리아나라고 부르셔도 되요."

"아, 그럼 릴리아나. 세베루스에게 간단하게 이야기를 들었단다. 소망의 거울에서 나오는 빛을 받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더니 과거로 왔다고 하더구나."

"네, 맞아요."

릴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덤블도어 역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갑자기 호그와트에 예외에서 벗어난 일이 생기면 울리는 종이 울려 많이 놀랐었단다. 괜찮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겠니?"

덤블도어의 요청에 릴리아나는 딸의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를-이 부분에서 스네이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떨결에 같이 쫓게 되었는데 소망의 거울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이 떼어지질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거울 속에서 터져 나오는 환한 빛을 받고 기절했더니 마루더즈와 릴리 에반스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조금 더듬거리며 풀어놓았다. 눈을 감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덤블도어가 살며시 눈을 뜨더니 인자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소망의 거울에서 알 수 없는 마법이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발현되어 과거로 오게 된 것 같구나."

"지금 년도가 어떻게 되나요?"

"1976년 이란다."

스네이프의 미간이 미묘하게 찡그러졌다.

"소위 마루더즈라는 제임스 포터, 시리우스 블랙, 리무스 루핀, 피터 패티그루와 릴리 에반스 그리고 여기 있는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5학년인 시기이지."

"그럼 어째서 저와 제 남편이 젊어진 걸까요? 왜 금발로 염색했던 머리가 붉게 돌아온 거죠?"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아마 시간을 거스르며 특정한 나이대로 돌아온 것 같은데 그 때문에 그 나이 당시의 모습이기 때문에 염색했던 머리가 원래 머리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나 싶구나."

"돌아갈 수는 있는 겁니까?"

스네이프가 물었다.

"마법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 돌아갈 수는 있을 걸세.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군."

암담한 덤블도어의 말에 릴리아나가 작지만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스네이프가 주먹을 쥐었다. 축 가라앉은 분위기에 덤블도어가 박수를 짝 소리 나게 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돌아갈 시기가 올 때까지 호그와트에서 머물면 되니까. 아까 릴리아나는 마법약 교수를 맡은 적이 있고, 세베루스는 마법약 교수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맡았다고 들었는데 마침 마법의 약을 맡고 계신 교수님께서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되어 몇 달간 대체할 교수가 필요했다네. 두 사람이 학년을 나누어 가르치는 것이 어떠한가?"

릴리아나는 흔쾌히 허락했고, 약간의 고민 끝에 스네이프 역시 허락했다. 두 사람이 머물 방을 보여주겠다고 덤블도어가 일어나자, 릴리아나는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질문에 재빨리 덤블도어에게 물었다.

"저기 교수님."

"뭐니?"

"우리는 미래에서 왔고 이곳은 저희에겐 과거잖아요. 만약 우리의 행동으로 과거가 달라지면 미래에 어떠한 영향이 가지 않을까요?"

그녀의 질문은 꽤나 날카로웠는지 덤블도어는 조금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간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고 예민하단다. 어디까지나 내 가정일 뿐이지만 별 다른 영향은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단다. 소소하고 작은 줄기들은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미래에 일어날 큰 줄기를 바꿀 수는 없어. 음…….그리고 이것 또한 어디까지나 내 가정일 뿐이지만, 스네이프 부부는 지금 과거에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이지 않니? 부부가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이곳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이건 어떻게 보면 일종의 시간의 실수거든. 시간은 실수를 지우려고 할 터이니 미래를 바꾸려 시도를 하고 그것을 과거의 사람들이 목격하더라도,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잊힐 거란다. 그렇다면 미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과거 그대로 흘러가겠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오히려 알 수 없어진 이유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부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자상해 보이는 미소를 짓던 덤블도어가 그 분위기를 날려버리듯 쾌활하게 말했다.

"자, 그럼 돌아갈 때까지 머무를 방을 보러 갈까?"

***

원래 스네이프가 쓰던 지하 감옥의 사무실은 지금 마법의 약을 맡고 있는 교수님이 쓰고 있었기에 덤블도어는 주로 손님들이 머무는 방을 내주었다. 방을 배정받고 난 후, 1976년의 호그와트가 궁금하다는 릴리아나의 의견을 따라 그들은 호그와트를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가 학생이었던 시절에만 존재했던 그림이나, 나무 같은 것을 기억을 더듬어가며 설명을 해주자 릴리아나는 매우 신기한 듯 감탄했다.

흔치 않은 따뜻한 햇볕을 쬐려 나온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적한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은 릴리아나가 입을 열었다.

"또 다시 교수를 하게 되었네요. 두 번째로 하는 교수라니. 세브는 어떤 학년을 맡고 싶어요?"

"글쎄. 당신은?"

"음…….일단 당신은 1학년은 절대 안 돼요. 아이들이 분명 무서워할걸요."

릴리아나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말하자 스네이프는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입만 몇 번 벙긋거리다가 다물었다.

"당신은 마법약 천재니까 고학년들을 맡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화과정이기도 하고 실력이 좋은 아이들이 듣는 수업이니까 나보다는 여보가 더 잘 어울리겠죠."

"그럼 내가 4학년부터 7학년까지 가르치고 아나 당신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좋아요. 그럼 그렇게……어? 세브다!"

말을 하던 릴리아나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스네이프의 시선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같이 햇볕을 쬐러 나온 것인지 릴리 에반스와 어린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너도밤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제대로 머리를 감지 않아 기름진 검은 머리와 왜소한 체격, 창백한 피부의 어린 세베루스가 신기한 듯 릴리아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네이프의 미간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5학년 무렵부터 머리도 감고 옷도 잘 갖춰 입고 다녔던 것 같은데 아직 변화하기 전의 모습인 것 같았다. 미래의 아내가 과거의 그를 볼 일이 생길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좀 씻고 다닐 걸 생각하던 스네이프는 릴리아나가 갑자기 그의 손을 아플 정도로 꽉 쥐자 그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보."

릴리아나가 싱긋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평소의 다정하고 상냥하던 미소와는 달랐다. 어딘가 화를 참고 있는 것 같은 미소에 스네이프의 시선이 저절로 릴리와 어린 세베루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아내가 화가 난 이유를 깨달았다. 스네이프는 어린 자신에게 저 멍청한 자식이라고 퍼부어주고 싶은 욕구를 느끼며 릴리아나의 눈치를 보았다.

"혼날래요?"

떨어진 거리에서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어린 세베루스의 얼굴에 가득한 홍조와 부끄러워하는 태도는 누가 보아도 릴리 에반스를 짝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절했었던 릴리는 정신을 차린 것인지 멀쩡한 얼굴로 재잘거리고 있었지만, 어린 세베루스는 아직도 그녀가 걱정되는 것인지, 아님 릴리의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기회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인지 릴리의 이마에 손을 얹고 열을 재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이 상황을 잘 넘겨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스네이프는 여러 가지 말들을 생각해가며 그에 따른 예측 가능한 상황을 재빠르게 상상하고, 마침내 최상의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릴리아나를 한 팔로 끌어안은 스네이프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나. 나한텐 아나 당신밖에 없는 거 잘 알잖아."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스네이프의 예상과는 다르게 릴리아나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응? 아나……."

싸늘한 반응에도 포기하지 않고 붉은 머리로 돌아간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지분거리며 가볍게 머리카락에 입을 맞춘 스네이프가 속삭였다.

"금발인 게 더 좋은데."

"그럼 지금 나는 안 예쁘다는 거예요?"

릴리아나는 지금 이 상황이 남편이 그녀를 알기 전의 과거이고, 그가 릴리 에반스를 짝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광경을 보게 되니 자기도 모르게 끓어오르는 질투심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스네이프에게 화를 내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멋대로 삐죽삐죽한 말이 튀어나갔다.

"당연히 지금도 예뻐."

여전히 그를 흘겨보고있던 릴리아나가 뾰족한 말을 내뱉으려 하자, 스네이프는 재빨리 그녀의 말을 막으며 문장을 덧붙였다.

"난 당신이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했을 거라고."

릴리아나의 새하얀 이마에 입을 맞추며 질투로 딱딱해졌던 몸이 조금씩 다시 말랑하게 녹아드는 것을 느낀 스네이프가 애절하게 말했다. 평소의 스네이프를 알던 사람들이 보았다면 기함을 토했을 상황이었지만, 그는 지금 결혼생활 약 20년 만에 닥친 최고의 위기 때문에 그를 알던 사람들이 보일 반응 따위는 고려할 시간이 없었다.

"아나…….제발…….응?"

"……그럼 내가 5학년 수업도 맡을 거예요. 당신은 4학년, 6학년, 7학년 해요."

쌀쌀맞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릴리아나가 중얼거리자 스네이프는 아내의 화가 거의 풀렸음을 알아차리고 안도하며 어깨를 감싸고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4학년 학생과 5학년 학생의 미래의 희비가 엇갈렸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알겠어. 그렇게 할게. 고마워."

스네이프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자 릴리아나는 도도한 여왕처럼 흥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아직 기분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으니 주의하라는 경고였지만 그로써는 한없이 다행스럽기만 했다. 연신 그녀의 손을 입술로 지분거리던 스네이프가 새침한 얼굴로 그를 흘겨보고 있는 릴리아나의 얼굴로 위치를 옮겼다.

새하얀 이마에서 콧대로,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눈가로, 부드럽고 약간의 홍조를 띄고 있는 볼로, 그리고 붉은 입술로 차례로 내려오던 스네이프가 이제 릴리아나를 마시멜로우처럼 말랑하게 녹일 겸, 사심도 채울 겸, 그녀를 본격적으로 탐하려고 했다.

"오호, 이게 뭐야?"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하면서도 얄미운 목소리에 스네이프와 릴리아나가 화들짝 놀라며 동시에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운 나쁘게도 사건사고라면 빠지지 않는 피브스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스네이프와 릴리아나를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라보던 피브스는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허공으로 솟아오르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에반스랑 스네이프가 키스했대요! 키스했대요! 세상에나! 스니벨루스와 백합소녀가 키스했대요!"

소리의 요정답게 우량하게 퍼져나가는 소리는 호그와트 전체를 빠짐없이 채웠다.

"피브스!"

스네이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외쳤지만 피브스는 얄밉게 혀를 내밀더니 깔깔거리며 다른 곳으로 날아가며 자신이 본 특종을 고래고래 전파하기 시작했다.

"피브스!!"

피브스를 부르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무서운 기세로 외치던 스네이프는 고함에 섞여 무어라 알 수 없는 욕설로 추정되는 말들을 내뱉었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아직 새로운 마법약 교수님들은 소개되기 전이었고, 따라서 피브스가 말한 사람들이 부부라는 것을 모르는 학생들에 의해 스네이프와 에반스가 키스했다는 소문은 호그와트 전체로 널리널리 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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