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타임-129화 (129/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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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the Time(完)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Before the Time

"왜……."

릴리아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는 그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얼굴로 그저 릴리아나를 데리고 그 자리를 피하려 했다.

"거기- 기다려!"

세베루스가 증오심에 가득 찬 얼굴로 제임스를 올려다보며 씩씩거렸다.

"거기- 기다려!"

"뭘 기다리라는 거지?"

시리우스가 차갑게 말했다.

"뭘 하려고, 스니벨리? 코라도 닦으려고?"

세베루스는 온갖 주문과 저주를 줄줄이 내뱉었지만, 지팡이가 3미터나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네 입이나 닦으시지. 스코지파이!"

제임스가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순간 세베루스의 입에서 분홍색 비누 거품이 흘러나왔다. 거품이 온통 입술을 뒤덮자, 세베루스는 숨이 막혀 왝왝거렸다. 릴리아나의 안색이 단번에 창백해졌다. 스네이프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내를 보호하듯이 품에 안아 시야를 차단했다.

"스네이프를 가만 내버려 둬!"

그때, 릴리아나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한 여학생이 외쳤다.

"오, 에반스?"

갑자기 제임스의 목소리가 더 명랑해지면서, 깊고 성숙하게 들렸다.

"그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둬."

릴리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녀는 제임스에 대한 혐오감을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그 아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니?"

"글쎄, 그게 말이지……."

제임스는 짐짓 신중히 생각하는 척했다.

"그냥 저 녀석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지. 네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모르겠지만……."

주위에 몰려든 많은 아이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시리우스와 웜테일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아직도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루핀과 릴리, 그리고 스네이프와 릴리아나만이 웃지 않았다.

"넌 자신이 꽤 웃긴다고 생각하겠지."

릴리가 쌀쌀맞게 말했다.

"넌 단지 거만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인간쓰레기일 뿐이야, 포터. 그러니까 그럴 더 이상 건드리지 마."

"네가 나랑 외출을 해준다면 그렇게 하지, 에반스."

제임스가 재빨리 대꾸했다.

"나랑 같이 외출 한 번 하자. 그럼 두 번 다시 이 못난 스니벨리 녀석에게 지팡이를 휘두르지 않을게."

"설사 너와 대왕오징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도, 난 절대 너랑 외출하지 않을 거야."

릴리가 매몰차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품 안에서 시야가 차단된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릴리아나의 등을 스네이프가 천천히 토닥여 주었다.

"운이 나쁘군, 프롱스."

"앗!"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소란이 일었다.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와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모여 있던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와 시리우스와 제임스, 웜테일이 웃느라 정신이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내려 줘!"

"물론이지!"

쾅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베루스가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릴리아나의 몸이 크게 흠칫하더니, 아까보다 더욱더 떨리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자."

스네이프가 여전히 릴리아나를 안은 채로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아내를 부축하듯이 안고 호그와트 성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뒤에서는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리우스의 것이었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그를 가만 두지 못해!"

릴리가 소리를 질렀다.

"에반스, 내가 너에게 주문을 쏘는 일은 없도록 해줘."

제임스가 진심으로 말했다.

"그럼 어서 저주를 풀도록 해!"

제임스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저주를 푸는 주문을 외우는 것이 바람결에 실려 들어왔다.

"너는 그만 꺼져."

제임스가 빈정거렸다.

"에반스가 여기 있어서 천만대행인 줄 알아, 스니벨루스-"

"난 저런 더러운 잡종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어!"

스네이프와 릴리아나가 호그와트 성 안으로 들어오자, 그 말을 끝으로 모든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던 것이 거짓이라는 듯이 놀랍도록 고요해졌다. 이제는 멀리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심중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릴리아나를 껴안았다. 잠시 복도에는 릴리아나가 훌쩍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스네이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침묵을 유지했다. 마침내 릴리아나가 숨을 헐떡거리며 입을 열었다.

"난……나는……전혀……이런 걸 줄은 몰랐……."

말을 이으려 애를 쓰던 릴리아나가 또다시 흐느꼈다. 스네이프의 검은 셔츠가 축축하게 젖어가도록 눈물을 흘리는 릴리아나에 그는 어떡해야할지 몰라 그저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괜찮아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릴리아나가 물었다. 스네이프는 잠시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릴리아나가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다시 손을 내려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손 안에서 스네이프의 셔츠가 우그러졌다.

"나는……"

스네이프는 그를 위로하려 하는 아내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괜찮아."

그의 대답이 끝나자 또다시 릴리아나가 훌쩍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쉽사리 눈물이 멈추지 않는지 릴리아나는 오랫동안 그의 품에 안겨 스네이프를 위로하듯 등을 토닥였다.

과거, 스네이프와 제임스, 루핀, 시리우스, 그리고 웜테일의 사이가 정확히 어떻게 나쁜 것인지는 몰랐으나 나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릴리 포터와 친했으나 어느 순간 멀어졌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해 이중첩자 일을 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릴리아나는 뜻밖에 마주하게 된 진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왜……. 왜 안 막았어요?"

릴리 에반스는 스네이프의 첫사랑이었다. 첫사랑과 멀어지게 되어버린, 그에게는 잊고 싶고 후회했을 사건이 바로 앞에서 벌어졌는데도 막지 않은 스네이프가 릴리아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어차피 우리가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나면 우리의 존재는 잊힐 거라고 그러셨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일어난 사건들은 바꿀 수가 없다고요. 그런데 왜……."

숨을 헐떡이며 말을 쏟아내던 릴리아나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스네이프가 천천히 릴리아나의 얼굴에 남아 있는 눈물자국을 지웠다.

"……미안해요."

"뭐가."

"세브에게 안 좋은 기억이고, 어린 세베루스에게도 상처가 될 사건일 텐데……. 세브가 앞으로 많이 힘들고 아파할 것도 아는데……."

릴리아나가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로 가득 찬 아몬드 모양의 녹색 눈을 거칠게 벅벅 닦았다. 덤블도어는 미래의 시간에서 온 그들이 과거에 개입하더라도 그들이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모두 기억하지 못할 것 이라고 했지만, 만약 스네이프가 방금 전 사건에 개입해 릴리에게 세베루스가 잡종이라고 부르는 일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여전히 친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릴리 에반스가 선택한 것은 제임스 포터가 아닌 세베루스 스네이프였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내가……내가 너무 못된 것 같아요. 이러면 안 되는데……."

그녀는 제대로 말을 마치지 못했지만 스네이프는 그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괜찮아. 전혀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스네이프가 미안하다며 훌쩍거리고 있는 릴리아나의 눈물을 다시 한 번 닦아주었다.

"나도 그걸 원해서 막지 않은 거니까."

무심하고 담담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얼핏 다정함을 볼 수 있는 목소리에 릴리아나의 아몬드 모양 녹색 눈이 스네이프를 향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릴리아나를 품에 안았다. 시야가 그의 셔츠로 인해 깜깜해졌지만 한없이 따뜻하고 안심이 되는 품이었다. 차차 깨달아가는 그의 말의 뜻과 동시에 무언가 울컥하고 깊은 곳에 묻혀 있던 뜨거운 것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또다시 터져 나온 소리 없는 울음이 다시 한 번 스네이프의 셔츠자락을 적셨다.

***

세베루스와 릴리는 끝내 사과하지 못하는 듯 했다. 며칠 동안 세베루스가 릴리를 쫓고, 릴리는 도망을 가는 그런 상황이 호그와트 곳곳에서 벌어졌다. 마루더즈가 세베루스에게 퍼붓는 조롱은 커졌고, 그에 못지않게 슬리데린이 릴리에게 퍼붓는 조롱도 만만치 않았다. 그 덕분에 세베루스와 릴리 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하던 세베루스는 스네이프와 예정되어 있던 특별 수업 역시 빠졌다. 7시가 지나고 8시가 지나고 통금 시간이 되도록 오지 않는 세베루스 때문에 그날 수업을 포기한 스네이프가 망토를 여미며 지하 감옥을 나섰다.

임시로 배정받은 방으로 향하던 그는 살금살금 움직이는 인영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세베루스였다. 스네이프를 멈추게 한 주인공은 그가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도 모르는지 그리핀도르 탑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스네이프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그가 릴리에게 사과를 하러 그리핀도르 탑을 찾았던 때임을 알아차렸다. 못이 박힌 듯 제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잠시 고민하던 스네이프는 결심한 듯 발걸음을 죽이고 세베루스의 뒤를 따랐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그의 뒤를 쫓던 스네이프는 새어나오는 릴리와 세베루스의 대화를 듣고 그리핀도르 탑이 나오는 계단의 반 층 밑에서 멈춰 섰다.

"미안해."

"난 관심 없어."

"미안해!"

"조용히 해. 나는 단지, 메리가 네가 밤새 여기서 잘 거라고 위협했다기에 나온 것뿐이야."

"그랬어. 그리고 정말로 그랬을 거야. 난 절대로 널 잡종이라고 부르려고 한 게 아니었어. 그 말이 그냥……."

"무심코 나왔다고?"

릴리의 목소리에는 동정심이라곤 전혀 없었다. 반 층 아래서 대화만 듣고 있었지만 스네이프의 머릿속에서는 그 당시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 했다.

"너무 늦었어. 난 몇 년 동안 줄곧 너를 옹호해 왔어. 네 친구들은 아무도 내가 왜 너랑 말을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해. 너와 너의 그 귀하신 애송이 죽음을 먹는 자 친구들…….거봐, 넌 부인도 하지 않는구나! 넌 심지어 네가 뭐가 되고 싶어 하는지 부인조차 하지 않잖아! 넌 그 사람에게 합류하고 싶어서 못 견디겠지, 그렇지?"

릴리는 싸늘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난 이제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어. 넌 네 길을 택했고, 난 내 길을 택한 거야."

"아니야, 들어 봐! 난 그런 뜻이 아니었단……."

"나를 잡종이라 부를 뜻은 없었다고? 하지만 넌 나와 같은 출생을 지닌 모든 사람들을 잡종이라고 부르잖아, 세베루스. 어째서 나만 그들과 달라야 하는 거지?"

그들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세베루스가 릴리를 붙잡으려고 하는지 무언가 바람에 손끝이 스치는 소리가 났지만, 쾅 하고 초상화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 후로는 침묵만이 유지되었다.

반 층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세베루스의 감정은 그대로 느껴져 왔다. 아무 말 없이 싸늘한 바람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던 복도에 세베루스가 뚱뚱한 여인에게 애원하는 목소리가 실려 왔다. 들어가게 해 달라, 한번만 들어가게 해 달라.

하지만 뚱뚱한 여인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거절했다. 세베루스는 황망한 듯 말이 없었다. 싸늘한 바람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던 복도에 간간한 울음소리가 짧게 실려 들려왔다. 계단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꼼짝하지 못하던 스네이프가 두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울고 있는 어린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굳이 걸음 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있던 세베루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재빨리 사라지려고 했지만,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스네이프의 모습에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듯 했다.

"……유안 교수님."

"스네이프."

표정을 갈무리하며 애써 태연한 얼굴을 하려고 했지만 세베루스의 까만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어린 그를 향해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따라와라."

스네이프는 어린 그를 이끌고 익숙한 지하 감옥의 사무실로 향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그를 따르던 세베루스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문을 쾅 닫은 스네이프는 턱으로 의자에 앉으라 가리켰다.

세베루스는 아무런 대답 없이 스네이프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스네이프 역시 그의 맞은편에 앉자 세베루스가 입을 열었다.

"……징계는 무엇인가요. 슬리데린에 얼마나 감점이 되죠?"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는 듯 말하는 세베루스에 스네이프는 침묵을 유지했다. 어린 그를 불러놓긴 했지만 어떤 이야기부터 꺼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위로는 그의 분야가 아니었다. 한참 고민하던 스네이프는 결국 어린 시절 그 당시 자신에게 해주고 싶던 말을 꺼내기로 결정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보셨군요."

세베루스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평소 그는 존경심을 스네이프에게 보이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원수를 보는 듯 했다. 잠시 망설이던 스네이프가 순순히 시인했다.

"그래."

"교수님도 교수님 애인처럼 저를 비웃으시려고 저를 부르신 건가요?"

"비웃어?"

지난 몇 달간 릴리아나가 어린 세베루스가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스네이프는 어린 그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스네이프가 그런 태도를 보이건 말건 어린 그는 그동안 쌓였던 화를 모두 풀어내겠다는 듯이 세베루스는 그 답지 않게 평정심을 잃고 씩씩거리며 마구 되는대로 마을 퍼붓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언제나, 빠짐없이 저를 볼 때마다, 릴리와 똑같은 얼굴로 항상 저를 우스운 듯이 비웃었던 퀸 교수님처럼 교수님도 그러시려고 저를 부르신 건가요? 그때마다 얼마나 비참했는데. 지금은 퀸 교수님뿐만 아니라 본인에게서 그런 표정을 보게 되었는데, 이제는 유안 교수님도 저를 비웃으려고 하시는 건가요? 나는! 나는……."

꾹꾹 마음속에 눌러왔던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내던 세베루스가 릴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려고 하자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을 다문 조개마냥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다분하게 보였다.

어린 그가 릴리아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줄까 하다가, 스네이프는 자신의 입으로 '귀엽다.'라는 말을 꺼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침묵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었다. 한 40년쯤 후에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가 부부를 소망의 거울이 있는 방으로 몰아넣는다면.

이유가 어찌되었건 여전히 분노가 느껴지긴 하지만 일단 세베루스가 조용해지자 스네이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을 끝났나?"

"……죄송합니다."

말로는 죄송하다고 했지만 세베루스의 눈매는 여전히 반항적이었다. 스네이프는 그 당시 어린 그가 느꼈던 감정과 하고 싶었던 말들이 눈앞에 보이는 어린 세베루스의 속에서도 똑같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작게 한숨을 쉬듯 숨을 내뱉었던 스네이프가 잠시 머릿속에서 말을 골랐다.

"내가 말을 해도 크게 위로가 되지도, 와 닿지도 않을 거라는 것 잘 안다."

스네이프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세베루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제대로 감지 않은 머리, 왜소한 체격, 마치 그늘 속에서 자란 식물 같았다. 찬찬히 어린 그를 살피던 스네이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비밀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에 세베루스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으나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는 것과, 자신이 이 이야기를 들어야 사무실을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이내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원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들의 존재는 잊힐 터이니 릴리아나의 말대로 일어난 사건들은 바꿀 수 없었다. 릴리에게 잡종이라고 말을 했던 이후로 스네이프가 어떠한 행동을 해도 릴리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는 없었으니, 그가 어린 자신에게 약간의 조언을 해준다 해도 미래가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었다. 깊게 심호흡을 한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어떤 남자가 살았다. 목숨을 걸 정도로 사랑했던 첫사랑과 완전히 엇갈리고 난 후, 어떤 사람과 한 약속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아가며 약속을 지킨 후 어서 죽기만을 바라는 남자였지.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여자가 나타났어. 착하고 예쁘고 과분할 정도로 좋은 여자였다."

스네이프의 시선이 어린 그가 아닌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과거의 여자의 흔적을 찾았다. 그 당시에 남자는 새로 나타난 여자가 과거의 여자와 비슷하다고, 완전히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 남자는 그것을 일종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얻지 못했던 첫 번째 여자가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는 그런 기회로. 그래서 새로 나타난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그의 곁을 맴돌아도 밀어내지 못했다."

어린 세베루스의 시선은 아래로 향해 있어 그가 스네이프의 이야기를 듣는지 듣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새로 나타난 여자는 과거의 여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점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자는 매우 혼란스러워하며 과거의 흔적을 붙잡으려고 애를 썼어. 밀어내고, 차갑게 대하고, 무시하고 그렇게 하면 과거의 흔적을 붙잡을 수 있을지 알았지."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스네이프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어린 세베루스에게 하는 말인지는 말을 하는 당사자만이 알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었어. 그럴수록 과거의 흔적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는 새로 나타난 여자의 것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지. 남자가 사실을 직시했을 때는 이미 남자에게로 와준 여자로 세상이 가득 찬 후였어."

"……그 이야기를 제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세베루스가 반항적으로 물었다.

"그건 마치 제가……제가 릴리를, 아니 에반스에게 어떠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위로하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제가 에반스를……에반스를……."

세베루스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더니 눈가를 거칠게 한 번 슥 닦았다. 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을 가장한 후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감점과 징계는 어떻게 되었나요. 없으면 나가봐도 되겠습니까?"

스네이프가 아무 말이 없자 세베루스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빠른 걸음으로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 성큼성큼 걸으며 저절로 흐려지는 눈앞 때문에 다시 한 번 거칠게 닦으며 모퉁이를 돈 세베루스는 누군가와 세게 부딪혔다.

"아야……."

가냘픈 여자의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었던 세베루스는 눈앞에 있는 릴리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나동그라지듯 주저앉아있던 릴리아나가 꽤나 아픈 듯 인상을 찌푸렸다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세베루스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세베루스?"

"……릴리."

세베루스가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릴리를 불렀다. 깜짝 놀란 릴리아나가 물었다.

"우니? 무슨 일 있어? 왜 이 시간에 기숙사 밖에 나왔니?"

아픔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난 릴리아나가 걱정된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고 있는 세베루스와 시선을 맞추려고 했다.

"괜찮아?"

릴리아나가 세베루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는 반항하지 않았다. 릴리아나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고 있는 세베루스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세베루스는 순순히 끌려와 릴리아나의 품에 안겼다. 그가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자, 그곳에서부터 축축하게 물기가 젖어가기 시작했다.

"릴리……."

"그래, 그래."

세베루스가 중얼거리자 그녀는 안쓰럽다는 듯이 아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질 거야."

"……릴리……."

세베루스는 마치 릴리아나가 릴리라는 듯이 계속해서 굴었다. 그 역시도 그녀가 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린 그가 나가자,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사무실을 나왔던 스네이프는 복도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릴리아나의 목소리에 자리에 멈춰 섰다. 힘없이 그녀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고 있는 어린 자신을 바라보는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묘했다.

한참동안 그녀의 어깨에 기대 눈물을 쏟아내던 세베루스는 정신을 차린 듯 새치름한 얼굴로 릴리아나에게서 떨어졌다.

"괜찮아? 무슨 일 있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베루스는 다른 사람 앞에서 울었다는 것이 과나 부끄러운 듯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릴리아나의 시선을 피했다.

릴리의 이름을 부르며 펑펑 우는 것으로 보아 그가 릴리와 절대 예전 사이로 돌아갈 수 없다고 확정 받은 일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었지만, 릴리아나는 울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은 듯 강한 척하는 세베루스의 모습을 지켜주기로 결정했다.

결국 기숙사로 돌아가겠다며 도망친 세베루스와, 그걸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던 릴리아나와, 그제야 어둠속에서 밖으로 나온 스네이프가 물었다.

"……여기서 뭐하나?"

"아, 세브!"

릴리아나가 반갑다는 듯 외쳤다.

"아무리 기다려도 당신이 안 돌아와서 지하 감옥에 있나 확인하러 가고 있었어요."

릴리아나의 볼에 손을 올려 얼음장같이 차갑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가 물었다.

"안 추워? 당신 추위 잘 타잖아. 오랫동안 밖에 있었어?"

"잠깐 세베루스를 만나서요."

스네이프의 미간이 잠깐 못마땅한 듯이 찌푸려졌으나 이내 원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렇군."

"오, 세베루스. 릴리아나. 여기 있었구나."

어둠 속에서 그림자같이 걸어 나온 덤블도어 때문에 릴리아나가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자 미안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구나. 방에 가봤는데 없어서 말이다."

"무슨 일이세요?"

릴리아나의 물음에 덤블도어가 빙그레 웃으며 부부가 그토록 기다리던 말을 꺼냈다.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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