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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the Time(完)
로튼 타임(Rotten Time)
Written by. 아르카나
Before the Time
"찾으셨다고요?"
"그렇단다. 소망의 거울이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신호를 보내왔지."
몇 달간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 치고는 간단하면서도 어딘가 허탈한 방법이었다. 스네이프가 물었다.
"그럼 이제 언제든지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겁니까?"
"그렇겠지. 잘 된 일이야."
덤블도어가 껄껄 웃었다.
"나도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말로만 들어도 매력적인 세비나 양과 세바스찬 군을 보고 싶구먼. 그리고 여기 세베루스는 과거로 보내버린 제임스 군에 대해 한시라도 빨리 처리하고 싶은 게 있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을 것 같고."
덤블도어가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자 스네이프는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의 얄미운 얼굴이 기억났는지 인상이 험악해졌다. 릴리아나가 힘이 들어가려는 스네이프의 손을 잡았다.
"자, 그럼 이제 가지. 소망의 거울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말이야. 챙길 짐들을 가지고 3층 구석 복도로 오게."
덤블도어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꿰뚫어 볼 것 같은 하늘색 눈으로 어둠 속 어딘가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퀸 교수에게 안겨 어린아이 마냥 울었다는 사실에 창피해 기숙사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재촉하던 세베루스는 릴리아나가 부르는 '세브'라는 애칭에 자신을 부른 것인 줄 알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지만 릴리아나가 부르는 '세베루스'는 그가 아니었으며, 대답한 것은 세바스찬 유안 교수였다. 릴리아나 퀸 교수는 세바스찬 유안 교수를 세베루스라고 부르고 있었다.
처음에 어린 세베루스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 줄 알았지만 퀸 교수는 계속해서 유안 교수를 세베루스라고 불렀다. 유안 교수 역시 자신의 이름이 세베루스라는 듯이 매우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게다가 불현듯 나타난 덤블도어의 목소리 역시 유안 교수를 세베루스라고 부르고 있었다. 유안 교수의 본명이 세바스찬 유안이 아니었나를 고민하며 혼란스러워 하다 보니 어느새 두 교수와 교장선생님은 매우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를 피하려고 해도 기숙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거나, 혹은 기척이 나 들킬까 어린 세베루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쥐 죽은 듯이 서 있어야 했다.
덤블도어와 두 명의 교수가 나누는 이야기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원래의 시간, 과거, 떠난다……. 마치 두 교수가 미래에서 왔다는 것 같은 암시에 세베루스는 평소 침착하고 냉소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머리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퀸 교수와 유안…….세베루스…….어떤 이름이 되었던 두 교수는 떠난다고 했다. 아마 미래로…….
덤블도어는 어린 세베루스가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는 듯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는 그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침내 두 교수마저 떠나고 나자 비로소 지하 감옥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세베루스가 다리 힘이 풀린 듯 주르륵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모든 교수들이 사라졌으니 그는 기숙사로 돌아가면 되었다. 하지만 무언가 찝찝했다. 미련이 남은 것 같이,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외면한 것 같은 불쾌함이었다. 상념을 털어버리듯 고개를 휘휘 저은 세베루스는 다리에 힘을 주어 기숙사 안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침실로 돌아와 벌렁 누워버린 그는 두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며 방금 전 혼란과 충격으로 굳어버렸던 머리를 천천히 재가동 시키며 그가 들었던 사실을 짜맞춰보기 시작했다.
그가 들은 것이 맞다면 유안 교수의 본명은 '세베루스'이고,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베스찬 유안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유안 교수와 퀸 교수는 미래에서 왔으며 아마 오게 된 계기는 소망의 거울을 통해서 일 것이었다. 세비나와 세바스찬이라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며, 제임스라는 사람이 두 교수를 이곳으로 보내버린 장본인인 듯 했다.
역시 제임스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쾌한 듯 미간을 찡그렸던 세베루스가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나갔다.
덤블도어는 소망의 거울이 준비를 끝냈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래 살던 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늘 밤 떠날 것이었다…….
세베루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잘 감지 않아 기름진 머리를 벅벅 긁은 그는 어떤 점이 마음에 걸렸는지를 알아차렸다. 릴리아나 퀸 교수였다.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도망쳤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던 것이었다.
다시 한 번 기름진 머리를 벅벅 긁은 세베루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자신이 고맙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꼬박꼬박 건네고 그 자리에서 건네지 못한 감사인사를 찾아가면서까지 하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얼굴을 찡그리며 입술을 깨물던 세베루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차피 오늘 미래로 떠날 사람이면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예외를 만들어도 될 듯 했다. 덤블도어는 3층 구석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었다. 아마 그곳에 가면 유안 교수와 퀸 교수가 있을 것이었다.
기숙사 침실을 나서려던 세베루스는 그래도 특별 수업을 맡아주었던 교수고 미래로 떠날 사람인데 무언가 선물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가진 물건이라고는 없는 세베루스가 선물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발까지 동동 굴러가며 고민하던 세베루스는 눈을 질끈 감고 몇 달간 돈을 모아 준비했던, 어머니께 생신선물로 드리려던 옅은 보랏빛의 심플한 귀걸이를 들고 3층 구석 복도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숨이 헉헉 막히도록 뛰면서도 세베루스는 늦지 않기 위해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퀸 교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지 못해 찝찝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의문이 풀리고 나서도 여전히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어떤 이유 때문이었는지를 생각해내기 위해 미간을 찌푸렸던 세베루스는 3층 구석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덤블도어와 두 교수의 목소리에 생각하고 있던 이유를 잠시 머릿속 한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자, 그럼……."
"잠시 만요!"
세베루스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릴리아나와 스네이프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덤블도어는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잠깐만요…….잠깐만……."
숨을 고르며 세베루스는 연보랏빛의 귀걸이를 릴리아나에게 내밀었다. 릴리아나는 무척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저…….그게……."
막상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고 선물까지 주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뛰어와서 그런 것인지 부끄러워서 그런 것인지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옆으로 돌린 세베루스가 기어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원래 하려던 말에서 벗어난 말을 중얼거렸다.
"……이거 받으시던가요."
"세브!"
릴리아나는 무척 감동스러운 것인지 아님 마지막이라 귀여워서 껴안아주는 것을 망설이지 않은 것인지 세베루스를 애칭으로까지 불러가며 그를 꼭 껴안았다. 무척이나 편안하고 따스한 품이었다. 한 번도 애정 어린 포옹을 받아본 적이 없던 세베루스는 당황하여 새빨개진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나 주는 거니?"
세베루스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어린 그를 껴안고 있던 그녀가 속삭였다.
"이렇게 예쁜 선물을 주다니. 나도 무언가를 줘야 할 텐데."
"……필요 없어요."
세베루스가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릴리아나는 포옹하고 있던 팔을 풀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가디건 주머니와 원피스에 달려있던 주머니까지 모두 뒤진 릴리아나는 마땅히 줄 선물이 없었는지 자신이 하고 있던 보석이 촘촘하게 박힌 머리핀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5학년 때, 스네이프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머리핀이었다.
"저는 괜……."
"받아줘. 부탁이야. 나중에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야."
릴리아나가 세베루스의 손을 꽉 잡아 머리핀을 감싸게 만들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렴, 세베루스. 괜찮아 질 거야.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싱긋 웃은 릴리아나가 세베루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정말 멋진 남자란다. 자기 자신을 외적이든 내적이든 잘 가꾸고 있으렴. 그러면 분명히……."
릴리아나가 거울 앞에 서 있는 스네이프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스네이프는 부끄러운 듯이 그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몸 건강히 잘 있어야 해. 알겠지?"
세베루스의 양 볼을 양 손으로 감싼 릴리아나가 그의 이마와 양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Au revoir(또 만나자)."
저러다 터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빨개진 얼굴의 세베루스에게 미소를 지어준 릴리아나가 남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작별 인사는 끝난 거니?"
덤블도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세베루스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버렸다. 그 모습이 귀여운 듯 피식 웃음을 터트린 릴리아나가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거울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새파란 빛을 내고 있던 거울 주위가 더욱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신기하다 못해 환상적으로까지 보이는 그 현상을 조금은 놀란 기색으로 바라보고 있던 세베루스가 불현듯 찝찝하게 느껴졌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유안 교수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풀어놓았던 이야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조언들.
엇갈렸던 첫사랑, 첫사랑과 비슷한, 똑같은 여자가 나타나 다시 돌아온 기회라고 생각했던 남자, 밀어내려고, 과거의 흔적을 잡으려 했지만 새로운 여자로 가득 차 버렸던 남자의 세상.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 항상 말조심해라, 자주 씻어라, 지나고 보면 그것이 고생할 원인이 될 것이다, 마음고생 심하게 한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누군가에게 공격당한다.
세베루스와 혈연관계가 아닐 정도로, 나이가 든 모습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던 유안 교수, 그리고 유안 교수의 원래 이름은…….
"저……!"
세베루스가 경악한 얼굴로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거울 속에서부터 퍼져 나오던 환한 빛은 점점 더 커져가더니 시야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번쩍였다. 두 눈을 찌르는 것 같은 고통에 세베루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창 밖에서는 환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미간을 작게 찌푸렸던 릴리아나가 눈이 부셔 반쯤 감은채로 눈을 뜨자, 그녀의 옆에서 세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아빠! 정신이 좀 드세요?"
"……이브?"
그녀가 반쯤 감겨있던 눈을 마저 떴다. 몇 번 눈을 깜빡이자 시야가 또렷하게 잡혔다. 그녀의 앞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세비나와 세바스찬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네이프 역시 릴리아나와 비슷하게 일어난 것인지 눈부신 햇살 때문에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그게 저……."
낮은 목소리로 묻는 스네이프에 세비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세바스찬을 바라보았다. 세바스찬은 한숨을 쉬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형이 가둬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그 방으로 다시 갔어요. 그런데 두 분이 안계시니까 형은 알아서 탈출했을 거다 뭐다……."
세바스찬이 한심하다는 듯이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누나랑 제가 아무리 기다려도 두 분이 돌아오시지 않으니까 결국 교감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어요.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가 동이 터와도 돌아오시지 않아서 혹시 몰라 다시 그 방으로 찾아가 보니까 정신을 잃고 누워 계시기에 병동으로 옮겨왔어요."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스네이프는 잊고 있던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에 대해 생각이 났는지 무시무시한 얼굴이 되었다. 세비나는 그런 아빠의 눈치를 보며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애교 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브를 구원해 준 것은 릴리아나였다.
"여보, 피곤하지 않아요? 어서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은데. 빨리 가요. 오늘이……토요일이었던가?"
몇 달 동안 1976년에서 살다 돌아오니 무슨 요일인지도 헷갈렸다. 세비나가 재빨리 토요일이 맞다고 긍정했다.
제임스 시리우스 포터를 지금 당장 살해하지 못해 아쉽다는 듯, 결국 스네이프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리핀도르에서 50점을 감점한 후, 제임스를 응징하는 것은 점심 무렵으로 미뤘다.
세비나와 세바스찬의 배웅을 받으며 교장실로 돌아온 스네이프 부부는 플루가루 네트워크를 통해 순식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상으로는 하루 만에 돌아온 것이었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몇 달간의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여보 표정 풀어요. 덕분에 어린 세브도 보고 좋았잖아요."
"……그게 문제가 아니야."
스네이프는 감히 자신의 딸과 교제하고 싶어 하는 제임스를 어떤 방법으로 벌을 줄지 고민하느라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릴리아나가 다시 금발로 발견한 머리를 발견하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어?"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보석류의 감촉에 놀란 릴리아나가 황급히 머리에 걸려있는 것을 떼었다. 그녀가 세베루스에게 주었던 머리핀이었다. 분명 주었는데 어째서 다시 그녀에게 있는 것인지 어리둥절하면서도 놀란 릴리아나가 황급히 가디건 주머니 속을 뒤졌다.
혹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오며 세베루스가 주었던 선물은 사라져버린 것인가 했지만 가디건 주머니 안에는 세베루스가 주었던 귀걸이가 얌전히 들어 있었다.
"여보, 이거 봐요. 세브가 준 귀걸이에요."
1976년에 받았을 때는 반짝거리는 새것이었는데, 지금은 세월이 지난 티가 나는 연보랏빛 귀걸이가 의아하면서도 신기하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릴리아나가 스네이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저 귀걸이를 스네이프가 잊을 리가 없었다. 학창시절 없는 돈들을 모아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샀다가 잃어버렸던 귀걸이니까. 아직도 기억은 생생했다. 분명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귀걸이를 살펴보기 위해 손에 쥐었던 것 까지는 기억하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귀걸이는 사라져 있고, 그 대신 처음 보는 투명한 보석이 박힌 머리핀이 있었다.
결국 귀걸이 대신 생겨난 투명한 보석이 촘촘하게 박힌 머리핀을 선물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모았던 돈으로 산 선물이라 꽤나 속이 쓰렸었다. 그런데 그 귀걸이가 어째서 릴리아나의 손에 있는 것인지 그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같이 오다니. 신기하네요. 시간을 같이 뛰어넘었나 봐요. 그런데 왜 머리핀도 돌아온 거지?"
릴리아나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귀걸이를 차 보았다. 이십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귀걸이는 여전히 찬란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갑자기 덤블도어의 말이 스네이프의 머릿속을 탁 치고 지나가는 듯 했다.
'시간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고 예민하단다. 어디까지나 내 가정일 뿐이지만 별 다른 영향은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단다. 소소하고 작은 줄기들은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미래에 일어날 큰 줄기를 바꿀 수는 없어. 음…….그리고 이것 또한 어디까지나 내 가정일 뿐이지만, 스네이프 부부는 지금 과거에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이지 않니? 부부가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이곳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이건 어떻게 보면 시간의 실수거든.'
"아."
스네이프가 감탄하듯 짧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릴리아나가 놀랄 정도로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덤블도어는 어차피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면 잊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덤블도어의 말은 사실이었기에 스네이프를 포함한 과거 사람들의 기억에서 미래에서 온 그와 릴리아나의 기억은 사라졌다. 하지만 또한 덤블도어의 말은 사실이었기에 비록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그 변화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어머니께 선물로 드렸던 머리핀은 그의 어머니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후,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교수와 제자에서 연인으로 관계가 변했던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선물을 주어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막상 어떤 선물을 주어야할지는 잘 몰랐던 스네이프는 한참의 고민 끝에 그에게 특별한 사람인 릴리아나를 위해 선뜻 어머니의 유품을 선물로 건넸었다.
막상 그 당시에는 패트로누스가 바뀌었다는 사실과 시리우스와 벌였던 뜻밖의 말다툼 때문에 도망치듯 그리몰드 광장을 떠났던지라 별다른 설명 없이 릴리아나에게 선물을 건넸고, 후에도 딱히 그 말을 꺼낼 일이 없어 그동안 잊고 지냈었다.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지만 시간이 지워버렸던 기억과 그가 다시 겪었던 기억들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자 원래의 시간이 어땠는지가 보였다.
릴리아나는, 사랑하는 아나는 그가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숙이, 훨씬 더 오래 전에 이미 그의 시간에 개입되어 있었다.
"세브? 갑자기 왜 그래요?"
갑자기 커다랗게 소리까지 내어가며 웃는 남편의 모습이 이상한지 릴리아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채로 금발로 돌아온 릴리아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아니…….그냥……."
영문을 알지 못하는 것 같이 보이는 릴리아나의 붉은 입술에 입을 맞춘 스네이프가 속삭였다.
"고마워. 내게 와줘서."
릴리아나는 눈으로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지를 묻고 있었지만 스네이프는 아무 말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릴리아나를 품에 안았다.
"사랑해."
스네이프가 더욱 힘을 주어 아내의 작고 여린 몸을 안으며 릴리아나의 머리에 턱을 괴고 숨을 크게 들이셨다. 릴리아나 특유의 익숙하고 편안한 향이 코끝에 감돌았다. 그들은 그들의 기억보다 훨씬 전에 만났고, 이미 서로의 시간에 엮여 있었다. 정말 만족스러운 사실이 아닐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 작품 후기 ============================
둘은 1991년에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그 전에 만난 적이 있었으며 그들은 이미 운명으로 엮여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릴리아나가 버렸던(113화) 머리핀과 목걸이는 플뢰르가 다시 회수해서 릴리아나가 영국에 돌아왔을 때 돌려주었습니다. 이에 관한 암시는 119편에, 내용은 개인지에 언급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