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66화
25장 부러진 검(2)
“레드가 늦는 것 같습니다. 주군.”
알버트가 어둠에 물든 밤하늘을 외롭게 홀로 비추고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합류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레드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로펜 경. 기사단을 움직여야겠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간 레드는 물론이고, 로니엄 공까지 위험합니다.”
“기사단을 준비시키겠습니다.”
바위에 앉아 있는 고위 기사 로펜 경이 기사단을 준비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여기저기 흩어져 앉거나 서서 쉬고 있던 제이드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모두가 모여들자 테일러는 전진을 명했다.
레드가 갔던 방향을 향해 기병대가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레드가 발견했었던 전장에 도착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레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레드와 전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은 그림자 기사단원과 암살자들의 시체가 테일러와 제이드 기사단을 반겼다.
전장을 훑어본 테일러는 금세 레드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레인저의 직감 스킬이 활성화된다.
[기척 감지! 레인저의 직감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적의 수를 파악합니다.]
[총 211의 적이 확인되었습니다.]
“매복이다! 말에서 내려! 말에서 내려서 말을 방패로 삼아라!”
테일러를 어느 정도 따르기 시작한 제이드 기사단원들은 일제히 말에서 내려 말의 몸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동시에 날카로운 단검과 암기가 사방에서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악!”
“으악!”
비명이 터져 나오고 미처 몸을 숨기지 못한 기사단원 몇 명이 암기나 단검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지만 대부분이 말 뒤에 몸을 숨긴 덕분에 피해는 크지 않았다.
대신 말들의 피해는 심각했다.
하지만 병력 피해를 보는 것보단 낫다고 테일러는 생각했다.
“가이우스! 알폰스! 실비아! 일리아! 혹시 숲이 불에 타게 된다면 아군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머리를 굴려 작전을 생각해낸 테일러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 작전을 사용하기 위해선 타오르는 불로부터 아군을 지킬 방법이 있어야만 했다.
“마법의 힘으로 불을 통제할 수 있네.”
가이우스가 대답했다.
“로렌시아의 이름으로 빛의 결계를 펼친다면 불을 통제하긴 힘들어도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는 있습니다.”
“내가 할 말은 오빠가 해버렸네요.”
알폰스와 실비아였다.
마지막으로 일리아가 입을 열었다.
“불의 정령 군주를 소환한다면 완벽하게 불의 통제가 가능해요.”
불의 정령 군주.
불의 정령 군주는 불길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더 약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더군다나 이곳은 정령 군주의 힘이 강해지는 숲.
불의 완전한 통제가 가능할 것이다.
“좋습니다. 가이우스. 일리아.”
“말하게.”
“말씀하세요.”
그들을 보며 테일러는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숲을 불태우세요.”
테일러의 명령에 숲을 사랑하는 일리아는 크게 망설였지만, 가이우스는 망설임 없이 화염계 고위 마법을 시전해 숲에 불을 질렀다.
뜨거운 불길이 숲의 나무들을 불태우기 시작하자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암살자들이 불에 타오르는 몸을 식히기 위해 바닥에 몸을 내던져 뒹굴었지만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일리아. 숲을 불태우는 게 마음에 걸린다면 불길의 통제라도 부탁합니다.”
“예.”
테일러의 부탁에 일리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불의 정령 군주가 소환되고 방진을 구축한 제이드 기사단에게는 불길이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실비아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축복을 내렸다.
“위스펠 남작! 고용한 암살자들이 죄다 불에 타 죽고 있습니다!”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부하 그림자 기사단원이 다가와 보고했다.
숲을 집어삼킨 뜨거운 화마도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주변은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그림자의 힘으로 결계를 쳐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스펠 남작은 그림자의 힘으로 결계를 유지하며 그림자 기사단원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내가 나서겠다.”
클라크 위스펠 남작은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검을 뽑아들었다.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칠흑의 칼날을 가진 검은 평범한 검이 아니었다.
전쟁의 노래라는 이름을 가진 마병기였다.
강력한 마병기를 든 칠흑의 기사가 전장으로 난입했다.
클라크 위스펠 남작이 전장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테일러는 제이드 기사단을 지휘하면서 바쁘게 전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중앙에 나이가 많고 지휘 경험이 풍부한 로펜 경을 배치하여 전체적인 지휘를 맡겼다.
그리고 테일러는 조금씩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서 기사단을 지휘하여 지원했다. 일리아가 소환한 불의 정령 군주에 의해 불길이 제이드 기사단 근처로는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암살자들은 살기 위해 단검을 뽑아들고 제이드 기사단을 향해 전면전을 걸어왔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림자 기사단 소속이 아닌 평범한 암살자 길드 소속의 암살자들은 왕국의 정예 기사들로 구성된 제이드 기사단과의 전면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가이우스. 슬슬 화염계 고위 마법을 중단해도 될 것 같습니다. 숲을 전부 태워도 곤란하니까요.”
암살자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테일러는 숲을 태우는 화염계 고위 마법을 중단해 달라 부탁했고, 가이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염계 고위 마법 캐스팅을 중단하는 순간이었다.
“적입니다!”
불이 침범하지 않는 안전 구역으로 침입하는 적들의 존재를 케이트 경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보고했다.
케이트 경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위스펠 남작과 17, 18명 정도 되는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불길을 뚫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는 30여 명 정도되는 수의 암살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알버트! 알폰스! 지원해주시겠습니까?”
테일러는 위스펠 남작의 무장 상태를 보고 그가 그림자 기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림자 기사 팔버릭 경을 상대해 본 적 있는 테일러는 그림자 기사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알버트와 알폰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함께하겠습니다.”
“미안하지만 테일러. 저는 실비아를 지켜야 합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알버트는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알폰스는 실비아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여동생을 지키기 위하여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성기사가 된 오빠다운 선택이었다.
“살라다르 경!”
결국 테일러는 살라다르 경을 불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두 개의 장검을 든 살라다르 경이 청색 망토를 펄럭이며 다가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알버트만큼은 아니지만 살라다르 경 또한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고위 기사 작위를 얻어낸 천재였다.
두 명의 천재가 함께하고 있다.
그림자 기사를 대하는 테일러는 두려움을 잊었다.
하지만 클라크 위스펠 남작이 평범한 그림자 기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후퇴를 명했을 것이다.
[성기사의 가호가 집중됩니다. 방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알폰스는 함께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던 것인지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 성기사의 가호를 테일러에게 집중시켰다.
방어력이 대폭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선공은 제가 하겠습니다. 파마의 검으로 놈의 마력검을 약화시킬 것이니, 틈을 노려주십시오. 알버트. 그리고 살라다르 경. 부탁한다.”
알버트와 살라다르 경이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테일러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나는 클라크 위스펠. 그림자 기사 작위를 가지고 있지.”
검이 다가오는데 위스펠 남작은 여유롭게 자신을 소개하며 검을 들었다.
케이트 경과 제이드 기사단원들이 주변의 암살자 그리고 그림자 기사단원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하고 테일러의 검과 칠흑의 기사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검이 충돌했다.
“이럴 수가!”
보통은 파마의 검 스킬을 가지고 있는 테일러와 검을 충돌시키면 놀라는 쪽은 언제나 적이었지만 이번에는 테일러가 경악했다.
분명 파마의 검 스킬이 활성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검에 깃든 마력검은 아무런 피해도 없이 건재했던 것이었다.
테일러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위스펠 남작의 마병기 전쟁의 노래의 기능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마력검이 부서지지 않는다.
전쟁에 울려 퍼지는 전쟁의 노래처럼 끊이지 않는다.
테일러에게 있어선 끔찍한 상성이었다.
알버트와 살라다르 경은 적의 마력검이 건재한 것을 목격했지만, 공격을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춘다면 테일러가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기사단장! 지원하겠습니다!”
살라다르 경이 두 개의 검을 폭풍처럼 휘둘렀다.
위스펠 남작은 그림자의 힘으로 만들어낸 검은 마력의 창을 잡고 조금씩 움직이는 것으로 살라다르 경의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면서 알버트의 일격을 검으로 받아쳐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고위 기사 2명의 공격을 막아내고 쳐내면서도 위스펠 남작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던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그마한 틈이 생겼다.
테일러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푸른 마력검이 깃든 검을 든 채 허리를 향해 파고들어 검을 내찔렀다.
하지만 테일러의 검은 단단한 벽을 때린 듯 허망하게 튕겨져 나오고 말았다.
“큭!”
손목에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은 테일러가 뒤로 다급하게 물러났다.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몸에는 검은 마력 갑옷이 입혀져 있었다.
“마, 마력 갑옷.”
마력 갑옷의 등장에 테일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 그를 향해 검은 마력의 창이 찔러 들어왔다.
피하기엔 너무 늦은 상황 테일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스킬의 발동을 기대하며 허리를 살짝 스쳐 지나가도록 몸을 움직였다.
“크윽!”
“기사단장!”
“주군!”
검은 마력의 창이 테일러의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스킬은 발동하지 않았다.
검은 마력의 창은 철제 흉갑을 종이처럼 가르고 들어가 살을 베고 지나갔다.
60에 가까운 레벨의 효과로 추가된 방어력과 스킬로 인해 추가된 방어력이 갑옷의 방어력에 더해졌지만 검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었다.
알버트와 살라다르 경이 다급하게 테일러를 불렀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성녀 실비아 그레이의 신성 기도문이 벌써 테일러의 상처를 포근하게 감싸 치유해주고 있었다.
자신을 찌른 검은 창이 빠지기 전에 테일러는 검을 휘둘러 강하게 쳐냈다.
“지금입니다!”
검은 마력의 창을 쳐내면서 위스펠 남작의 팔이 옆으로 열렸다.
그 탓에 그의 몸이 살라다르 경의 앞에 훤히 드러났다.
테일러는 살라다르 경에게 즉시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검과 마주 하고 있는 알버트와 다르게 살라다르 경이라면 마력 갑옷이 미처 가리지 못하는 머리를 노리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높았다.
“국왕 폐하를 위하여!”
살라다르 경은 거친 목소리로 기합을 내지르며 두 개의 검을 위스펠 남작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렀다.
만약을 위해 각자 다른 방향에서 휘둘렀다.
치명적인 공격이었지만 그로 인해 위스펠 남작과 마찬가지로 몸이 훤히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위스펠 남작의 공격 수단은 알버트와 테일러에 의해 막힌 상태였기 때문에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보였는데.
“파도.”
칠흑의 기사 클라크 위스펠 남작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이며 기술의 발동을 지시하자 가슴 쪽의 마력 갑옷을 이루고 있는 검은 마력이 매섭게 돌진하는 살라다르 경을 향해 쏘아진 것이다.
“크악!”
검은 마력의 파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살라다르 경은 비명을 내질렀다.
검은 마력의 파도를 이루고 있는 검은 마력은 날카로운 칼날의 형상을 띄고 있는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살라다르 경의 갑옷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지고 전신에는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한 상처가 무수히 많이 생겨났다.
피투성이가 된 살라다르 경이 힘없이 쓰러졌다.
“나를 잊지 말게나!”
살라다르 경을 끝내기 위해 위스펠 남작은 검은 창을 들어 올렸지만, 가이우스가 캐스팅한 강력한 불덩이가 그의 가슴을 강타했다.
마력 갑옷이 조금 희미해졌지만 깨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