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44화
57장 윈터레일 산맥 전투(1)
“전하.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로이츠 펠베런.
엘프 왕국 위그드라실의 친위대장인 그가 하이 엘프 왕 에이렌 레인 앞에서 무엇인가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었다.
“굳이 인간들을 도와야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것은 그들의 전쟁이 아닌가?”
하이 엘프 왕 에이렌 레인은 녹색 눈동자를 빛내며 로이츠에게 말했다.
로이츠는 위그드라실의 왕 에이렌에게 사우스 왕국을 도울 군대를 파병해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이츠는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하이 엘프 왕 에이렌은 인간들을 도와야 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테일러를 마음에 들어 하긴 했지만, 인간들 전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위그드라실 수비대장 하일리드 핀셔처럼 인간을 적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중립에서 적대를 향해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그들의 전쟁입니다. 그렇지만 저희의 전쟁이기도 합니다. 반도를 장악한 프랑츠 제국이 가만히 있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로이츠는 회귀 전에 보았다.
사우스 왕국을 장악한 프랑츠 제국의 칼날이 다음으로 향한 곳이 어디였는지.
그리고 그곳이 어떻게 유린당하여 무너졌는지, 그때 보았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처절했던 비명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위그드라실은 프랑츠 제국의 날카로운 창을 막지 못했다.
그날이 또다시 반복되게 할 순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로이츠.”
“엘프들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사우스 왕국과는 달리, 프랑츠 제국은 엘프들에게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반도의 엘프 연방을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로이츠의 말대로 프랑츠 제국은 엘프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전통처럼 전해져 온 적대감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었다.
만약 사우스 왕국이 무너진다면 회귀 전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고 위그드라실은 불탈 것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로이츠는 답답했다.
“이 문제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있겠군.”
에이렌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로이츠는 아쉬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부디…… 결정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 *
“내일이면 수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사 지도를 펼친 채, 아군의 이동 속도와 수도까지 남은 거리를 계산해 본 테일러가 아이반 왕자에게 보고했다.
아이반 왕자의 군대 11만은 휴식 시간을 적극적으로 줄여서 이동을 계속한 덕분에 예정보다 2일 정도 빨리 수도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야영을 하지 않고 움직인다면 언제 도착할 수 있지?”
아이반 왕자가 질문했다.
다른 자들을 상대할 때보다 테일러를 상대할 때는 편한 것인지 말을 상당히 낮추는 모습을 보였으나, 테일러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흠.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테일러는 아이반 왕자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다시 계산을 했다.
기존에 계산했던 값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새벽쯤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이동한다.”
테일러의 대답을 들은 아이반 왕자는 계속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할 순 없었다.
지금도 수도는 공격당하고 있을 것이다.
야영지를 건설하고 쉬는 동안에도 수도의 병사들은 도움을 기다리며 죽어갈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쉴 수 없었다.
쉬지 않고 수도로 움직이겠다는 말에 귀족 지휘관 한 명이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왕자 전하, 강행군으로 인하여 병사들의 피로가 많이 누적되었습니다. 수도에 도착하면 전투가 벌어질 것인데, 그때를 대비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휴식 시간을 최소화하고 계속하여 움직인 탓에 병사들의 피로는 상당히 많이 누적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이 없어진다면 의미가 없다.”
아이반 왕자가 대답했다.
막상 도착했을 때 지켜야 할 대상이 없다면 그것만큼 허무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명령을 전파하겠습니다.”
루시드는 전령들에게 아이반 왕자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아이반 왕자의 명령은 전령들의 통해 전군에 전파되었다.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는 명령에 병사들은 당연히 반발했고, 소수의 지휘관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이반 왕자는 흔들림 없이 지휘를 계속했다.
나일 쉬바스 백작과 그를 따르는 주요 지휘관들이 목숨은 잃는 것으로 인해 11만 병력을 지휘하는 기사와 장교들은 대부분 아이반 왕자의 뜻을 지지하게 되었다.
소수의 반대 목소리는 묵살되었고 자신들의 의견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자들은 침묵했다.
휴식 시간마저 반납하고 강행군을 계속한 결과, 그들은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수도가 보이는 곳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합니다. 적군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위 기사 한 명이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여 멀리 있는 수도 근처를 살피며 말했다.
당연히 수도를 포위하고 있어야 할 그림자 대공의 군대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3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적이 수도의 함락을 포기하고 후퇴한 경우.
두 번째는 적이 아이반 왕자의 군대가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고 기습을 가하기 위해 매복을 한 경우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수도가 이미 함락되어 있다는 좋지 않은 경우였다.
“당장 마법사를 불러오게!”
불안한 기운을 느낀 아이반 왕자는 즉시 마법사를 호출했다.
거리가 제법 멀었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탑에 걸린 깃발의 구분이 불가능했다.
마법의 힘이 필요했다.
테일러는 고개를 돌려,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가이우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이우스!”
테일러의 부름에 가이우스는 즉시 테일러와 아이반 왕자의 사이로 말을 몰았다.
“부르셨습니까, 왕자 전하.”
“즉시 마법을 이용해 탑에 걸려 있는 깃발을 확인하게나.”
“예. 알겠습니다.”
아이반 왕자의 명령을 접수한 가이우스는 스태프를 살짝 흔들었다.
마력이 두 눈에 깃들고 시력이 강화되었다
마치 매의 눈과도 같은 날카롭고 정확한 시력을 얻은 가이우스는 수도의 성벽에 붙어 있는 탑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차가운 바람에 펄럭이는 검은 깃발을.
틀림없는 그림자 기사단의 깃발이었다.
“그림자 기사단의 깃발입니다. 왕자 전하!”
“아아!”
가이우스의 보고에 말에 올라탄 아이반 왕자의 몸이 흔들렸다.
“왕자 전하!”
“전하!”
바로 옆에 있던 왕실 근위기사단원 2명이 아이반 왕자가 말에서 떨어지지 않게 부축했다.
“왕국 정보부로 통신할 수 있는가?”
아이반 왕자는 정신을 수습한 뒤, 가이우스에게 질문했다.
가이우스 대신 테일러가 입을 열었다.
“주변에 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통신 마법을 전개할 경우 위치가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통신 마법으로 인한 마력 파장.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
그림자 대공이 근처에 정찰대를 매복시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큭.”
통신 마법으로 왕국 정보부에 연결하여, 아버지인 유리 사우스 국왕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게 힘들다는 것을 테일러에 의해 깨닫게 되자 아이반 왕자는 이를 악물었다.
“병사들의 상태는 어떻나?”
“보시다시피, 모두 지쳐 있습니다.”
루시드가 대답했다.
그동안 강행군을 해오기도 했거니와, 수도 근처에서 잠을 자는 것도 포기하고 수도를 향해 이동한 탓에 병사들은 모두 상당히 지쳐 있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휴식한다.”
“예. 알겠습니다.”
아이반 왕자의 명령이 다시 전파되었다.
당장 휴식을 취하지 못하다는 것에 많은 병사가 불만을 토로했지만, 당장 적이 근처에 있어서 위험하다는 설명을 하자 어느 정도 병사들의 분노는 가라앉았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아이반 왕자는 즉시 가이우스에게 왕국 정보부와 통신을 연결할 것을 명령했다.
다행히 왕국 정보부와 통신은 연결되었고 왕국 정보부의 통신 담당 마법사는 국왕이 무사히 수도를 벗어나 남부 군단의 병력과 합류하여 윈터레일 백작령으로 몸을 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의 말에 의하면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을 포함한 주요 귀족들도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다행입니다. 왕자 전하.”
루시드가 말했다.
아이반 왕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긴장이 풀려 힘이 빠진 것인지 막사 안의 의자에 힘없이 앉았다.
“쉬바스 백작령을 우회하여 윈터레일 백작령으로 향할 것이네. 다른 군에도 전달하게나. 집결지는 원테레일 백작령이라고.”
“즉시 전달하겠습니다.”
루시드가 대답하고 아이반 왕자의 시선이 옆에 걸려 있는 군사 지도로 향했다.
“곧 반격이 시작된다.”
* * *
유리 사우스 국왕은 북진하던 남부 군단의 병력과 합류하였다.
국왕과 합류한 남부 군단의 병력은 즉시 반전하여 윈터레일 중심도시로 향했다.
유리 사우스 국왕과 남부 군단이 윈터레일 중심도시에 입성한 순간, 아이반 왕자의 11만 병력역시 윈터레일 백작령에 발을 들여 놓았고 재정비를 끝낸 그림자 대공의 군대가 소수의 병력만을 수도에 남겨두고 출발했다.
그 수는 8만.
모두 최정예 또는 정예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었다.
아이반 왕자의 군대가 11만으로 수는 더 많았지만, 대부분이 비정규군이었기 때문에 맞붙을 경우 패배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만약을 위해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윈터레일 중심도시.
그 서쪽에서 1만 정도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문의 탑에서 보고입니다! 1만 정도 되는 수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내성에서 통신을 담당하는 고위 마법사가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이 쉬고 있는 방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들어와 보고했다.
사실상 전멸한 중앙 수비군의 지휘관이었던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윈터레일 중심도시의 경계를 맡게 되었다.
그림자 대공의 부하들에게 하나둘 쓰러진 부하들과 동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고위 마법사의 다급한 보고에 깊은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벽에 기대어 놓은 검을 집어 들어 요대에 고정했다.
그리고 청색 망토를 두르고 고위 기사 브로치로 망토를 고정했다.
“서문으로 가겠다.”
지휘부 건물을 나온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나타난 군대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부관과 함께 말을 타고 내성을 벗어나 외성의 서문으로 향했다.
“상황은?”
말에서 내린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달려온 수습 기사에게 말의 관리를 맡기고 서문의 탑으로 올라가 물었다.
탑에서 주변을 경계하다가 가장 먼저 군대의 모습을 확인한 에이스 레인저는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켰다.
적지 않은 수의 군대가 아주 천천히 중심도시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쪽을 향해 거리를 좁혀 오고 있습니다.”
“부관, 아무나 좋으니 고위 마법사를 데려오도록.”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군대를 주시했지만, 소속을 확인할 수 있는 깃발이나 군복의 색 등을 파악할 수 없었다.
아직 너무 멀리 있었다.
적의 수는 대충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소속을 확인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래서 마법으로 시력을 강화할 수 있는 마법사를 데려오도록 부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부관은 고개를 끄덕인 뒤, 탑을 내려갔다.
이윽고 그는 젊은 마법사 한 명을 데려왔다.
“마법으로 시력을 강화해서 깃발을 확인하도록.”
“알겠습니다.”
젊은 마법사는 즉시 마법으로 시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깃발을 찾아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였다.
곧 깃발을 찾아낸 그는 군대의 소속을 밝히기 위해 입을 열었다.
“위그드라실의 깃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