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49화
종장 수도 탈환(1)
하야드 나이트쉐도우 후작의 죽음.
그리고 프랑츠 제국을 통제하고 있던 그림자 기사단의 전멸.
이는 베르헨 공작 가문을 몰락시킨 그림자 대공이 내실을 다지지 않고 사우스 왕국으로 남하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 돌아갈 곳은 없다.
그림자 대공은 본의 아니게 배수진을 치게 된 것이다.
다급해진 그림자 대공은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수도에 남아 있는 사우스 왕국의 국민들을 무장시켜 성벽에 배치하는 잔혹한 수까지 썼다.
아이반 왕자가 지휘하는 사우스 왕국군과 에이렌 왕지 지휘하는 위그드라실군은 825년 3월.
수도를 탈환하기 위해 수도를 포위하고 공성 준비에 들어갔다.
* * *
“그림자 대공이 우리 국민들을 무장시켜 성벽에 배치했다고 합니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아이반 왕자에게 왕국 정보부 특수요원으로부터 들은 정보를 전달했다.
정보를 전달받은 아이반 왕자는 책상을 큰 소리가 나도록 내려쳤다.
“더러운 방법까지 쓰는군!”
수도 사우스펠에는 피난하지 못한 많은 국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무장시킬 수 있을 정도로 무기와 방어구도 충분하게 저장되어 있었다.
아마도 지금 밤새 성벽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사우스 왕국의 국민들일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왕자 전하.”
루시드 옆에 서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테일러가 입을 열고 말했다.
아이반 왕자의 시선이 테일러에게 향했다.
“말하도록.”
“남부 레인저 여단의 에이스 레인저들을 지원해주신다면 수를 파악해오겠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지?”
아이반 왕자가 물었다.
테일러는 잠시 동안 계산을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사우스펠의 모든 성벽을 파악해야 하니, 에이스 레인저 50명에 레인저 250명 정도는 필요합니다.”
“테, 테일러. 너무 많은 수가 아닌가?”
옆에 선 루시드가 경악했다.
에이스 레인저 50명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즉시 지원하도록 하겠다. 명령서를 써주겠어.”
하지만 아이반 왕자는 즉시 결단했다.
그는 종이를 하나 꺼내 깃펜으로 명령서를 작성한 뒤 테일러에게 건넸다.
“남부 레인저 여단의 여단장을 찾아가서 명령서를 보여주면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이반 왕자의 막사를 나온 테일러는 즉시 남부 레인저 여단의 여단장을 찾아 명령서를 보여주고 에이스 레인저와 레인저들을 지원받았다.
거기에 알버트와 레드가 합류하여 은밀하게 사우스펠의 정찰 활동을 개시했다.
“생각보다 민병의 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민병의 수를 파악할 수 있는 지점까지 접근했다.
알버트는 육안으로 민병의 수를 대충 헤아린 후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테일러 또한 민병의 수를 가늠해보았지만 알버트의 말대로 민병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림자 대공의 부하들이 그들을 통제하고 있을 게 분명하니 전투가 벌어진다면 민병들의 피해가 극심할 것이다.
민병들을 공격하지 않고 그림자 대공의 군대만 공격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림자 대공의 부하들은 민병들의 등에 창을 겨누고 사우스 왕국군을 공격하도록 지시할 것이다.
겁에 질린 민병들은 어쩔 수 없이 공격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군은 죄 없는 불쌍한 백성들을 창칼로 찔러야만 할 것이다.
“대충 파악했으니 물러나야겠…….”
쾅!
슬슬 물러나자는 지시를 내리는 순간이었다.
폭발음과 함께 북서쪽에서 붉은 불기둥이 솟구쳤다.
“아무래도 아군 정찰대 하나가 발각된 모양입니다.”
동행한 에이스 레인저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테일러의 생각도 에이스 레인저와 비슷했다.
폭발이 터진 방향은 다른 에이스 레인저가 지휘하는 정찰대가 정찰을 하기로 한 곳 부근이었다.
아무래도 거리를 잘못 계산하여 적 마법사의 시야에 진입한 것 같았다.
“레드. 엄호할 수 있습니까?”
테일러가 질문했다.
민병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성벽로 아래를 조준하여 화살 공격을 가할 수 있으면 적이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느라 정찰대를 향한 공격이 줄어들 것이다.
“아니. 너무 멀어. 화살로는 힘들어.”
레드는 고개를 저었다.
활로 공격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큭.”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 알버트는 이를 악물었고 테일러는 안타까운 얼굴로 적의 마법 공격에 노출된 정찰대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다.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 정찰대에 마법사를 배치하지 않은 게 빠른 전멸의 원인이었다.
방어 마법이 없다면 집중되는 마법 공격을 버티는 건 무리였다.
“전멸했습니다.”
에이스 레인저가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보고했다.
정찰대가 전멸한 것을 에이스 레인저의 보고와 육안으로 확인한 테일러는 안타까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귀환한다.”
야영지로 귀환한 테일러는 보고를 위해 아이반 왕자를 찾았다.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반 왕자가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 그리고 하츠 실버레인 후작과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왔군.”
아이반 왕자가 조금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서둘러 보고하라는 눈빛으로 테일러를 바라보았다.
테일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국 정보부의 보고대로입니다. 성벽로를 가득 채운 군대는 모두 사우스 왕국의 백성들을 무장시킨 민병들이었습니다.”
“그 수는 얼마나 되지?”
“약 2만입니다.”
테일러의 보고에 세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2만.
대처 방안 없이 전투가 벌어진다면 2만 명의 백성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 번의 전투로 수도를 탈환하지 못한다면 그림자 대공은 병장기를 다시 모아 추가로 백성들을 무장시켜 다시 전투에 투입시킬 테니, 어쩌면 2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만약 대처 방안 없이 전투가 벌어진다고 해도 하루 만에 수도를 탈환할 필요성이 있었지만 하루 만에 수도를 탈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아이반 왕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테일러를 포함한 다른 자들도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묘안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다음 날.
묘안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묘안을 낸 자는 바로 가이우스였다.
비살상 제압용 마비 안개를 수도 전역에 확산시키자는 것이었다.
이 마비 안개는 들이마시는 즉시 몸이 굳어 쓰러지게 되지만 인체에 무해했다.
이 마비 안개의 효과에서 벗어나려면 수도 전체에 보호막을 전개해야 했는데, 이런 무식한 마법은 마력의 소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아마도 그림자 대공 휘하의 마법사 전력은 민병을 제외한 아군에게만 보호 마법을 부여할 것이다.
이게 귀찮기는 해도 마력 소모가 전자보다 압도적으로 적었다.
대처 방안이 나오자 수도 탈환을 위해 사우스 왕국군과 위그드라실군은 전진했다.
이미 두 군대는 공격 준비가 끝나 있었다.
민병 대처 방안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대처 방안이 나오기 무섭게 움직였다.
수도로 근접한 순간, 마비 안개가 수도를 뒤덮었다.
가이우스의 예상대로 그림자 대공의 휘하에 있는 마법사 전력은 민병을 제외한 아군에게만 보호 마법을 부여했고 마비 안개를 흡입한 민병들은 힘없이 쓰러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널티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성벽로에 쓰러져 있는 민병들 탓에 사우스 왕국과 위그드라실의 마법사들과 궁병대는 원거리 공격을 하지 못했다.
민병들이 휘말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들은 방어 마법에 전력을 다했다.
전력을 다한 방어 마법 전개 덕분에 공격 마법과 화살 공격을 딱히 전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군의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공격 마법을 받아내며 사우스 왕국군과 위그드라실군은 전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공성탑이 성벽에 다리를 걸쳤다.
그리고 그 속에서 테일러와 알버트, 그리고 북부 군단의 정예 기사단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막아라!”
해상 군단의 해병들이 공성탑에서 쏟아져 나오는 병력을 저지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이려 했지만 성벽로에 쓰러져 있는 민병들의 몸이 방해가 되어 신속하게 저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우스 왕국군 또한 마찬가지였다.
성벽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쓰러진 민병들 탓에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테일러와 알버트와 같은 고위 기사나, 평기사 정도 되는 자들은 어느 정도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게 가능했지만 수습 기사와 같은 기사단원들은 무거운 갑옷 때문에 가뜩이나 움직임이 더딘데 장애물까지 겹치자 거북이가 되어 버렸다.
“죽어라!”
테일러를 향해 날카로운 창을 찌르는 해병.
옆으로 한 걸음 옮기는 것으로 창을 피한 테일러는 전쟁의 나팔로 창을 찌른 해병의 허리를 잘랐다.
내장이 쏟아지고 상체는 성벽 너머로 떨어졌다.
테일러와 알버트, 그리고 기사단이 활약한 덕분에 주변 성벽로를 어렵지 않게 장악할 수 있었다.
“일리아. 실비아. 올라와도 좋습니다.”
안전이 확보되고 테일러는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리아와 실비아를 불렀다.
알폰스와 레드, 그리고 가이우스까지 모두가 성벽로에 집결했다.
“저희는 선봉을 맡습니다. 그리고 왕국의 정예들과 함께 그림자 대공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미 작전 회의 때 들었던 내용이었기 때문에 동요하는 파티원은 없었다.
“테일러 경. 내려가서 성문 탈환을 지원해야 합니다.”
테일러가 뭔가 말하려고 한순간, 함께 성벽로 장악을 위해 싸웠던 리어포드 기사단의 기사단장 케쟌 리어포드 남작이 다급하게 말했다.
성벽 아래, 성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성벽을 장악하고 내려간 사우스 왕국군이 성문을 놓고 그림자 대공의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성벽로를 장악하고 성문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예였지만 성문은 그림자 기사단이 수비를 맡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밀리고 있었다.
테일러는 파티와 함께 케쟌 리어포드 남작의 뒤를 따라 성벽로에서 내려갔다.
수도의 땅을 밟기 무섭게, 테일러는 자신을 향해 함성을 내뱉으며 무서운 속도로 몰려오는 적들을 볼 수 있었다.
“해상 군단 해병대입니다. 전원 전투 준비!”
케쟌 리어포드 남작이 지시를 내리자 리어포드 기사단이 방어 진형을 갖추었다.
전투가 벌어졌다.
해상 군단 해병대는 프랑츠 제국의 정예 군단 중 하나였지만, 비슷한 수의 기사단과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크악!”
마지막까지 버티던 해병대 기사가 알버트가 내찌른 검에 가슴을 꿰뚫려 목숨을 잃었다.
알버트가 검을 뽑으니, 그는 붉은 피를 왈칵 토해내며 힘없이 쓰러졌다.
“리어포드 남작. 성문을 공격하던 병력은 이미 전멸한 것 같습니다만?”
소란스러웠던 성문 쪽은 이제 잠잠해져 있었고 수비를 맡은 그림자 기사단은 진형을 갖춘 채 테일러와 케쟌 리어포드 남작을 맞이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지금 공격한다면 꽤 큰 피해를 볼 것이다.
하지만 리어포드 남작은 자신의 검을 허공에 대고 시험 삼아 휘두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공성추가 파괴된 지금, 안에서 성문을 열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