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2 어린 시절과의 조우 =========================================================================
“흐음...”
내 눈자위를 이리저리 움직이게 지시하신 의사선생님은 한참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하지만 그 얼굴에 확신은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특별히 이상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제 짧은 소견으로는 뭔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군요.”
“충격이요?!”
어머니께서 표정에 걱정을 가득 담고 물으신다.
하지만 정말 묘한 것이 죽기 전 내 나이보다 한참이나 어린 어머니를 뵌다는 것은 정말 오묘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천국은 지상의 인물들을 전부 그대로 끌어 올려 똑같은 일상을 부여하는 것일까?
나를 진찰하는 의사 선생님만 하더라도 내 어린 시절부터 꽤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건강을 책임져 주시던 분이 아니던가?
굉장한 명의는 아니더라도 자잘한 병은 솜씨 좋게 낫게 하시곤 했다.
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지는 상관없이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어머니께서 다정하지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으셨다.
“로드리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있었니? 응? 조금도 숨기지 말고 내게 전부 말해보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고?
그야...나는 크게 생각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평소의 불평을 그대로 말했다.
“무릎이 쑤시는 거요? 허리도 아프고. 나이를 너무 먹어서 그런지 쉬어도 기력이 생기질 않아요.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벌써 일흔도 넘었으니까...그래도 이젠 그렇지 않겠죠? 여긴 천국이죠? 저는 죽은 거죠? 그렇죠? 그래도 죽고 나서 가장 먼저 가족들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이건 원래부터 그런 건가요? 아니면 우리 가족에게만 뭔가 특별한 선처가 주어진 건가요? 지금 저는 몇 살의 몸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여기서도 나이를 먹나요? 예?”
반짝이는 눈빛으로 기대감을 가득 담아 아이가 어머니를 올려다본다.
무척이나 귀여운 모습이지만 그 어미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 모양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오 가엾은 로드리고...으흑...흑흑흑...”
어머니는 결국 로드리고를 꼭 껴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거지?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일까?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머니의 품이구나.
나는 그 아늑함에 어머니께서 흐느끼시는 것도 잊고 그대로 몸을 기댔다.
“선생님, 아이가 다시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 음성이 그렇게 슬프게 느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속단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분야에는 지식이 거의 없어서...증상이 계속된다면 아마 수도에 가보셔야 할 것 같군요. 물론 그곳에서도 치료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그런...”
어머니께서 더욱 강하게 나를 끌어 안으셨다.
그러나 나는 그 아늑함도 잊고 애써 몸을 비틀며 그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부모님과 의사 선생님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처음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이해가 가는걸요.”
“오! 로드리고, 그 말이 정말이냐?”
아버지의 표정에 화색이 돈다.
“그럼요. 돌아가신 두 분을 다시 뵐 수 있다니...죽기 전에는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말 잘됐다는 생각이 드는 걸요.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죽을 걸 그랬어요. 허리 아프던 것도 싹 사라지고 말입니다. 죽음은 정말 좋은 거죠? 그렇죠?”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아버지는 돌이 되셨다.
그리고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리셨을 때는 의사 선생님을 붙들고 미친 듯이 흔들며 외치셨다.
“수도에 있는 누굴 찾아가야 하는 겁니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습니다!”
내가 지금 상황을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묘하게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난감함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였다.
내 뺨에 화끈한 통증이 어린 것은!
짜악!
나는 두 손으로 뺨을 감싸 쥐고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는 소녀가 서있었다.
내 여동생 헤나로다.
물론 어릴 때 모습이지만...
“헤나로? 하지만 대체 왜? 너는 아직 안 죽었잖아?”
다시 한 번 뺨에 불이 난다.
짜악!
“왜...왜 때리는 거야?!”
내가 한걸음 물러서며 묻자 헤나로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추..충격요법!!!!”
그리고는 다시 나를 때리려고 한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하지만 주변에선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으음...그런 방법이 있었군. 자, 모두 로드리고 군의 양 팔을 붙잡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 충격을 가해봅시다. 딱히 다른 방법도 없고.”
“그..그렇게만 하면 로드리고가 정신을 다시 차릴까요?”
“흑흑..흑흑흑...가엾은 로드리고...그렇지만 다 너를 위한 거니까...”
그날 나는 일흔이 넘은 나이로 엉엉 울면서 부모님께 잘못을 빌어야만 했다.
나는 울면서 부모님과 헤나로가 말해준 대로 나의 신상을 읊어야만 했던 것이다.
“흐끅..흐끅...저는 12살...로드리고 아렌트입니다. 흐끅...여기는 천국이 아니고, 흐끅......”
내가 콧물을 빨아 먹느라 조금 지체하자 헤나로가 눈치를 보다가 슬쩍 손을 들어 올린다.
나는 얼른 서둘러 말했다.
“죽는 건 나쁜 겁니다! 부모님도 저도 헤나로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내 회귀의 첫날은 꽤나 가혹했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을 다시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일평생을 후회하며 살게 했던 과거들을 송두리째 뜯어 고칠 수 있는 것이다.
레이디 비욘느 브라우닝.
내 사랑...
그녀는 지금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겠지.
나랑은 세 살 차이였으니까.
왕국의 내전으로 영지를 잃고 패망해 버린 브라우닝 가.
뭐,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지만 내전 종료 후 별 볼일 없는 우리 가문의 가산은 어떻게든 전공을 내세워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딱히, 후미진 우리 가문의 땅을 탐내는 자들도 없었고.
그렇지만 브라우닝 가는 비욘느 양만을 남기고 일가족이 몰살해 버려 홀로 남은 여자인 그녀로서는 가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
우리 왕국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꽤나 보수적인 편이니까.
아름다운 레이디 비욘느에게 보다 좋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런 낙후된 시골의 토지 좀 가진 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것이 내가 끝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물론, 그녀의 마음이 잘생기고 능력 있고 가문 좋은 조셉에게 기울어져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렇지만 나는 일평생 그녀를 사랑했다.
나는 아직 어리다.
모든 것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녀를 손에 넣고 정말 사랑하는 여자와 일평생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소심한 마음도 버리고 뛰어난 능력도 얻어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
저번 생과는 확연히 다를 거다.
하지만 내 상대는 일평생 친구였던 조셉이다.
내전 때, 전우로 만나 서로 등을 맡길 수 있었던 녀석.
나는 그대로 성장이 멈춰 버렸지만 까마득히 높은 경지까지 올라 결국 왕국 10강의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녀석.
벌써부터 불안해 지지만 예전의 내가 아니다.
일흔이 넘은 어린애는 뭐가 달라도 다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