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3 어린 시절과의 조우 =========================================================================
간밤엔 무척이나 흥분 되서 제대로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이것저것 가능한 굉장한 일들이 쉬지 않고 떠올랐다.
나이 든 이후로 오랫동안 잊었던 감정들이 사정없이 내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부자가 되는 것?
최고는 좀 어려울지 몰라도 누구나 부자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부를 쌓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세한 것은 기억할 수 없지만 커다란 사건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언제 내전이 시작되어 곡물 값이 오르는지 정도는 아는 것이다.
최악의 흉년도 대충 기억하고, 어디에 질 좋은 철광이 발견되는지도 안다.
철광이야 그곳에 직접 가 본적이 없어서 정확한 장소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광석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데려다가 그 근처에서 찾아보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쉽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커다란 덩어리는 내가 알게 된다고 해도 실제로 혼자서 낼름 먹기에는 무리가 있다.
능력 밖의 것을 먹으려 들면 결국 자의든 타의든 토해내게 되는 법이니까.
재수 없으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고.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실력을 길러서 먹어야 한다.
그래야 탈이 나지 않는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연 무력을 뽑을 수 있다.
대륙 10강정도 되는 1인 군단의 힘을 얻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것은 얻고 싶다고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내가 죽기 전 한창 명성을 날리던 녀석들 중 몇 정도는 그 기연이 워낙 유명해서 나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있지만 과연 기연만으로 그들만큼 강해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회의적이다.
물론 내가 그런 기연들을 전부 독식하면 꽤 괜찮은 화력이 나오겠지만 그것이 대륙 10강에 버금가는 무력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더라도 그 굉장한 기연들을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좀 뒤처지는 감이 있겠지만 내 재능도 완전히 꽝은 아니다.
나도 이전 생에서 검을 수련했었다.
그것도 한때는 꽤 검의 매력에 빠져 열심히 수련했었다.
결국 왕국 내전이 종전된 후에는 흥미를 잃고 그만 두었지만 당시 세간의 평가를 참고해 보면 그럭저럭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뭣해도 내전 중에는 훗날 대륙 10강까지는 아니어도 왕국 10강에 들게 되었던 조셉이 괜찮은 편이라고 말해주었던 실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봤자 그가 보았을 때는 어린애 장난이었을 뿐이겠지만.
대륙 10강이 얻었던 기연을 얻는다면 적어도 조셉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왕국 10강만 되어도 꿀릴 것은 없다.
실제로 조셉은 유명 가문의 영애들을 얻어 삼처사첩 삼아 호의호식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비욘느가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이번 생에는 그럴 일은 없다.
나는 일편단심 비욘느만 사랑할 테니까.
내전은 내가 22살이 되던 해에 일어났었다.
왕국은 피폐하게 변해버리고, 난만이 발생했다.
거의 5년가량 이어지던 지긋지긋하던 전쟁.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건 기회의 시기이지 않던가?
비록 모두 휩쓸려 이곳도 형편없게 변해버리고 근처의 유력한 귀족에게 전부 몰수당해 버리지만 어찌되었든 다시 되찾을 수 있다.
이곳을 빼앗기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상 대대로 일구어온 땅이기는 하지만 이곳에 집착해서 저번 생과 같은 우물 속 개구리로 살아갈 생각은 없다.
빼앗겨도 좋다.
황폐해져도 좋다.
다만 내가 날개를 펴고 비욘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첫 발판이 되어준다면 그 역할은 끝인 셈이다.
어차피 12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돈을 벌 나이도 아니고, 인재를 얻을 나이도 아니다.
우선은 자기 내실이다.
기연부터 찾아야 한다.
대륙 10강 중 희대의 검의 천재로 불렸던 자.
1대 다수 싸움에서 최강의 능력을 보였던 검사, 용병왕 카메론의 기연을 얻자.
정확히 그가 무슨 기연을 얻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의 굉장한 실력을 볼 때, 그가 얻었던 검술서는 희대의 보물임에 틀림없다.
내가 얼마나 그 능력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리상으로도 가깝고 당장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이 근처에서 가장 큰 도시, 에르줌!
거기라면 1년에도 몇 번씩 가보던 곳 아니던가?
이맘때 나이라면 수확한 곡식을 팔러 가는 상행을 따라 자주 들렀던 기억이 난다.
그곳의 낡은 검의 신전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정확히 뭘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론이 거기에서 뭔가를 얻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기다려, 비욘느.
내가 널 행복하게 해주겠다.
나는 그런 생각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당장이라도 아버지에게 달려가 에르줌에 가야 한다고 떼를 쓰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문 앞에는 누군가 내 방에 들어서려하던 때였다.
나는 얼떨결에 그 상대방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꺄아~!”
꽤 귀여운 음성이 귓전을 울렸다.
나는 허우적대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그럴수록 내 밑에 깔린 누군가는 더욱 비명을 질러댔다.
“하..하지 마요...도련님...잠시만 가만히 좀....”
나는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서고 싶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질 않았다.
내가 짚은 것은 뭔가 물컹한 것이었다.
부드럽고 뭔가 그리운 기분이 든다.
“잠깐...거긴...도련님!”
고개를 들고 내 밑에 깔린 사람을 내려다보자 생전 한평생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내 마누라 낸시였다.
여전히 내 손은 소녀의 봉긋한 가슴 위에 올려져있다.
그건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것이 뭐가 잘못인지 알지 못했다.
아마도 생전의 습관과 기억이 그대로 남아 그랬던 것 같다.
여기엔 결코 음흉한 생각이 없었음을 미리 밝혀두고 싶다.
낸시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그녀의 위에 걸터앉아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꾹 누른 상태로 내려다본다.
우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녀는 당황스런 상황이라 말을 잊은 것 같았고, 나는 잠시 허리를 삐끗 한 것 같아 그대로 그녀의 위에서 한숨을 돌리는 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침내 낸시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저기...소..손 좀...도련님...손 좀...”
“응? 손? 아! 손.”
나는 내 손에 다시 시선을 주고는 뭔가 잘못된 건가 생각하며 힘을 주어 보았다.
부드럽고 살짝 물컹한 것이 그 존재를 더욱 과시한다.
음...이상 없는데.
“하하! 내 손은 다치지 않았어. 걱정하지 마. 낸시.”
하여간 낸시는 너무 걱정이 지나치다니까.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안도하는 표정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붉어져 뭔가 화가 나는 것을 참는 표정이랄까?
“소..손 치우라고요....제...가슴 위에서...”
“응?”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정말 모르겠다는 어투로 묻자 그녀는 살짝 입술을 깨문다.
“그야...제...가슴이니까...”
“이게? 하지만 매일 만졌잖아?”
“대체 언제요?! 그랬던 적 없거든요?! 지...지금 굉장히 큰일 날 소리 하고 있으시거든요?!”
갑작스런 그녀의 고함에 나는 당황스러워 나도 모르게 생전의 호칭대로 묻고 말았다.
“왜 그래? 마누라?”
“마...마...마.....마....마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