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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5화 (15/200)

00015  카메론의 기연을 찾아서  =========================================================================

둘은 무너져 내린 공간을 비집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건물 지붕이 상당부분 부서져있어 달빛이 비춰 들었다.

미처 횃불을 준비하지 못한 로드리고에게 있어서는 정말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달빛으로는 세세한 부분까지 살피기에는 무리였다.

“정말 여기 맞아? 여긴 내가 사는 키베라 보다 더 형편없는데?”

아비슈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틀림없어. 여기야.”

“흠...이런 곳에 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그건 지금부터 찾아봐야지.”

“뭐?”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는 몰라. 하지만 분명히 여기 있어.”

로드리고는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생각해도 뭔가를 찾기에는 무리가 있는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셔? 그럼 이건 어때?”

아비슈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깨진 벽돌 하나를 집어 들고 물었다.

“확실히 그건 아니야.”

로드리고가 답하자 아비슈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는 또 다른 벽돌을 주워든다.

“벽돌 1번은 아니고, 그럼 벽돌 2번?”

“농담 아니야. 내겐 정말 중요한 것을 찾는 거니까.”

“넌 집은 부자지만 정신이 온전치는 못하구나. 정말 네 말대로야.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나봐.”

“난 제정신이야!”

“그럼 내가 이상하다는 거야? 뭔지도 모르는 걸 어떻게 찾아? 벽돌 1번부터 벽돌 수천 번까지 일일이 번호를 매겨야 하니?”

“이봐, 아비슈. 하나는 분명히 말해줄게. 나는 벽돌을 찾으러 온 게 아니야.”

“그렇지만 그게 뭔지는 모른다?”

“그렇지.”

“흐음...어쨌든 네가 말해준 덕분에 찾아봐야 할 물건이 대폭 준 것은 사실이네. 적어도 벽돌은 아니니까. 절반은 쉬워졌어. 다행이야. 자세히 설명해 줘서.”

아비슈가 한껏 비꼬며 손에 든 벽돌을 뒤편으로 던져버렸다.

벽돌은 ‘쿵’하고 소리를 내고는 바닥에 떨어졌다.

“좀 더 소중히 다뤄!”

바닥에 벽돌 정도 던진다고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방금의 대화로 기분이 상한 로드리고가 아비슈에게 짜증을 냈다.

“뭘? 벽돌을?”

“그게 아니라!”

“됐어. 나는 좀 쉴 테니까 너는 네가 직접 찾아봐. 너를 여기까지 안내하느라 지쳤으니까.”

“길은 나도 알고 있었거든?”

“그러셔? 키베라에서 길 잃고 오줌 지리며 떨고 있던 건 누구더라?”

“오줌 싸지 않았거든?!”

“아! 나는 네가 너무 떨고 있어서 그런 건줄 알았지. 너도 알겠지만 키베라는 평소에도 지린내가 진동하니까 냄새로는 쉽사리 구분하기 힘들거든. 게다가 어두웠고.”

“흥! 여기까지 같이 오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것은 너야. 나는 혼자서도 상관없으니까 찾기 싫으면 가버려!”

“쉬고 나서 찾을 거야. 하지만 뭘 찾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으라는 말이야? 괜히 내가 찾아내면 내 소원을 들어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잖아? 역시 부자들은 다 저모양이야.”

더 이상 상대해봤자 자기만 손해라고 생각했는지 로드리고는 돌아서 버렸다.

소녀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억울하기는 했지만 딱히 소녀가 수긍할 수 있도록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혼자 찾으러 올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여건이 좋지는 않지만 직접 찾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점이 있었다.

로드리고는 좀 더 내부로 들어섰다.

무너진 곳은 많았지만 이리저리 장애물을 돌아서 가면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끄트머리에는 제단 같은 것이 하나 놓여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오른쪽은 완전히 무너져 기울어져 있고, 절반만 예전 모습을 짐작케 했다.

로드리고는 참담함을 느꼈다.

이런 곳에서 기연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정말로 기연이 있을까?

어쩌면 카메론이 거짓을 말했을지도 모른다.

혹 거짓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사정이 그리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아는 것이라고 해봤자 수천 번, 알 수 없는 누군가를 거치고 걸친 어그러진 소문뿐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터덜터덜 힘 빠진 걸음으로 제단에 다가섰다.

그의 걸음에 맞추어 먼지가 피어올랐다.

먼지를 볼 수는 없었지만 계속해서 기침이 나와 알 수 있었다.

볼품없는 제단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검술서도, 명검도 없었다.

손으로 온전한 부분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느껴지는 것은 먼지뿐이다.

그래.

어린 시절로 돌아왔더라도 그뿐이다.

한평생 주변에 별 관심도 없이 한심하게만 살아왔고, 그리고 죽었다.

회귀 좀 했다고 생각처럼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텅비어버린 제단은 마치 ‘너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나는 회귀 전에 느꼈던 후회와 패배감을 느끼며 기나긴 시간을 다시 한 번 흘려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아니다.

이대로는 아니다.

로드리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제단 위에 버젓이 기연이 기다리고 있을 리 없다.

당연한 것이다.

그랬더라면 카메론보다 먼저 누군가 찾아갔을 테니까.

분명 여기 있다.

처음부터 생각했지 않은가?

쉽게 찾을 생각은 버리자.

조금 손이 가게 되었다고 기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로드리고는 제단의 무너진 부분을 손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돌을 하나씩 집어 옆으로 던지며 쉬지 않고 계속해서 파냈다.

여기가 아니면 다른 곳도 전부 뒤져본다.

절대로, 이대로 주저앉고 같은 삶을 다시 한 번 반복할 수는 없다.

나는 로드리고.

회귀자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유리한 이점을 이대로 파묻고 시골에 틀어 박혀 비욘느만 그리워하고, 조셉만 부러워하며 살 수는 없다.

점점 로드리고의 손이 빨라졌다.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이마에선 땀이 흘러 내렸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한참동안 로드리고는 제단을 파냈고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절반쯤 무너진 제단을 파고들었을 때였다.

뭔가 돌과는 다른 것이 만져졌다.

로드리고는 침을 삼켰다.

이것일까?

이건 뭐지?

조심스럽게 주변의 돌을 주워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흥분 때문인지, 혹은 아직 어린 몸으로 많은 돌을 옮겨서 그런지 알 길은 없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그의 손에 들어온 것은 낡을 대로 낡은 검이었다.

그러나 제단처럼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반 토막 난 검이다.

검의 기능은 절대로 수행할 수 없는 모양새다.

한창 작업을 하던 로드리고가 손을 베지 않았던 것은 운이 아니었다.

검은 더 이상 날카롭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된 것일까?

그 세월이 녹록치 않다.

세월의 풍파를 모두 이기고 지금껏 일부나마 남아있다는 건 이 검이 당시에는 꽤나 대단한 장인이 만든 검이라는 걸 짐작케 했다.

그러나 부러지고 낡은 검은 기연이 될 수는 없다.

검을, 아니 한때 검이었던 것을 조심스럽게 옆에 놓아두었다.

기연은 아니더라도 겨우 찾아낸 뭔가를 아무렇게나 던져 놓기는 싫었다.

다시 제단을 파내기 시작했다.

먼지가 심하게 나서 기침이 계속 나왔다.

숨에서 흙냄새가 섞여 나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바닥까지 샅샅이 파냈지만 더 이상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낡은 검의 부러진 나머지 절반도 없었다.

허탈했다.

그러나 여기가 아니면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찾는다.

카메론이 얻었던 기연을 얻을 때까지 반드시!

그때였다.

아비슈가 걸어오며 물었다.

“뭣 좀 찾았어?”

로드리고는 엉망이 된 몰골로 낡은 반검을 들어 올렸다.

“그게 네가 찾던 거야?”

“아니. 이건 아니야.”

아비슈는 좀 더 다가와 로드리고의 손에 들린 반검을 들여다봤다.

“검?”

“그랬나봐. 지금은 아니지만.”

“...이런 거 하나 찾으려고 저걸 전부 파낸 거야?”

아비슈가 질렸다는 투로 물었다.

“이걸 찾으려던 건 아니야.”

로드리고도 고생해서 찾아낸 것이 고작 이런 것이란 사실이 창피했던지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래도 대단한데? 부잣집 도련님이 말이야.”

“도와줄 것 아니라면 저리 가.”

“흐음...까칠하긴...”

웬일인지 아비슈는 더 이상 로드리고를 놀려먹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손을 거둬 붙이고 로드리고가 했던 것처럼 돌을 파내고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로드리고와 아비슈는 밤이 새도록 찾았다.

그러나 성과는 전혀 없었다.

“하! 정말...여기서 벽돌이 아닌 건 네가 찾아낸 썩은 고철 덩어리 말고는 없네.”

아비슈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똑같은 포즈로 옆에 드러누운 로드리고는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말했다.

“그러게.”

“이봐, 도련님. 나는 아무래도 빠질래. 벽돌을 아무리 파내도 뭔가 그럴 듯한 것이 나오면 기운이라도 나겠는데 이건 그것도 아니잖아? 대체 뭘 찾는 거야?”

“기연...”

“뭐?”

“기연이라고.”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듯 지친 목소리로 로드리고가 말했다.

“...내가 미쳐!!!”

아비슈가 억울하다는 듯 바닥을 손바닥으로 탕탕 두드리며 외쳤다.

“바보도 아니고 이런 곳에 기연이 있을 리가 없잖아?! 하여간 이래서 부잣집 도련님들은...”

“......이제 가봐야겠다. 해가 뜨기 전에.”

“같이 가! 바보야!”

로드리고의 손에는 반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걸 보고 아비슈가 물었다.

“그건 뭐하게?”

“가져갈 거야. 벽돌이 아니었던 건 이게 유일하니까 기념으로 이거라도 건져야겠어.”

“예...예. 도련님 어련 하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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