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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9화 (19/200)

00019  검의 신전  =========================================================================

마차 바퀴는 구르고 굴러 어느새 여행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이제 곧 마을이다.

점심은 집에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비슈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조금은 긴장한 것인지 좀처럼 장난도 치지 않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비슈와는 달리 일꾼들의 표정은 부쩍 살아나 웃음소리와 농담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왜인지 아비슈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냥 그렇게 해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비슈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비슈는 가볍게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귀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집에 도착했고, 또 다른 일꾼들이 모여들어 우리가 새로 실어 온 짐을 내렸다.

이리저리 사람들이 얽혀들어 시끄럽게 웃고 떠들었다.

집에서 어머니와 헤나로, 그리고 낸시가 걸어 나왔다.

헤나로가 나를 보더니 뛰어왔다.

“오빠! 내 선물 사왔어?”

저 계집애는 오랜만에 오빠를 봤는데 한다는 소리가 선물 타령이냐?

확 그냥! 볼기짝을 때려줄라!

내가 말없이 째려보자 헤나로가 보챘다.

“선물! 응? 선무울! 뭐 사왔어? 어디다 뒀는데? 내가 오빠 짐 나르는 거 도와줄까? 응? 헤헤헤. 이 안에 있나? 응?”

“야! 네건 없어. 저리가.”

내 말에 헤나로의 기대감 어린 표정은 금세 돌변해서 한이 서린 표정이 되어 버린다.

“정말?! 아무것도 안 사왔다고?!”

이젠 눈가에 눈물마저 맺힌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셔 아직 헤나로의 상태는 모르시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놔뒀다간 헤나로가 울고, 그럼 이래저래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얼른 대답했다.

“아! 진짜! 사왔어! 사왔다고! 이따가 꺼내 줄 테니까 가만히 좀 있어!”

“헤..헤헤!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그리고는 그제야 눈에 들어왔는지 아비슈를 쳐다본다.

“어? 누구?”

아비슈는 내 뒤편에 서 있다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안녕. 나는 아비슈야. 도련님과는 친구야. 같이 왔어.”

“친구?”

헤나로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진다.

그리고는 아비슈의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소라도 품평하듯 찬찬히 살폈다.

“야! 이 계집애야 그만두지 못해?! 지금 뭐하는 짓거리야?”

하는 짓거리가 어이없었다.

내 얼굴이 다 화끈 거렸다.

“그냥 살펴보는 것뿐이야!”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내게 쏘아붙인다.

“그런 거 실례라고!”

내가 혼내자 다시 헤나로의 눈이 더 가늘어 진다.

“오빠는 저런 타입이 좋아? 비쩍 말라서 볼품없다고.”

“뭐?!”

“아무튼 난 몰라. 이젠 하나도 안도와 줄 거야. 어서 선물이나 줘.”

“너 같으면 주겠냐?! 뭐가 예뻐서?!”

“...그럼...조금만 도와줄지도...”

“대체 뭘 도와!? 계집애가 머릿속에 이상한 것만 잔뜩 들어서...”

나는 대충 가방을 뒤져 헤나로의 선물을 빼냈다.

그건 작은 삽이었다.

나중에 이래저래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사왔다.

필요할 때 헤나로에게 빌려 쓰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겉은 싸구려 가죽으로 둘둘 말아놓았지만 속에는 번쩍이는 질 좋은 철로 된 예쁘장한 모종삽이 들어 있는 것이다.

선물은 무엇보다 실용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몇 번 쓰거나 혹은 어디에다 모셔 두고는 평생 동안 바라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게 뭐야?”

헤나로는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살짝 고개를 갸우뚱한다.

“뭐긴 뭐야? 삽이잖아. 삽. 쓸모가 많을 거야. 평생 간직하도록 해.”

“......”

“넌 고맙다고도 안하냐?”

“...고마워야 고맙다고 하지. 난 좀 더 예쁘고 여성스러운 걸 기대했는데...”

“작은 삽이잖아? 충분히 여성스럽지. 그리고 잘 봐. 나름 예쁘다고. 햇볕에 비춰봐. 보석처럼 반짝여. 그럼 예쁜 거지.”

“하나도 안 예뻐.”

“그건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커서도 모를 것 같은데?”

“암튼 맡아둬. 고맙게 생각하고. 이 오빠의 사랑이니까.”

입이 삐죽 나온 헤나로는 모종삽을 든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아비슈는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때, 헤나로가 다시 물었다.

“낸시 언니 것도 있어?”

“응. 빈손으로 오긴 그러니까. 절대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그냥...그 뭐시냐...고생하잖아? 매일 일하느라 힘들 테니까 별거 아닌 걸로 하나 사왔지.”

“언니 것도 삽이야? 혹시 큰 삽?”

“아니야.”

큰 삽은 회귀 전 처음 결혼하고 사다준 선물이었다.

왜인지 그 삽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창고에 넣어두려고 했지만 낸시는 완강히 거부하고 방에 고이 모셔놓았다.

자주 그리고 꼼꼼히 시간이 날 때마다 낸시는 삽을 마른 헝겊으로 닦았다.

그 삽은 내가 죽을 때까지 반짝반짝 광이 났다.

그러나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삽은 쓰라고 있는 것이다.

고이 모셔두면 그건 삽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삽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가끔 중얼거렸다.

‘삽아, 미안해.’하고.

물론, ‘괜찮다’는 대답을 들은 적은 없다.

그저 낸시는 삽을 굉장히 좋아하는 구나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삽을 사다줄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래봤자 방에다 모셔두고 죽는 날까지 닦기만 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그건 내 지론과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어떤 선물을 사다주든 도무지 사용할 것 같지는 않아 그렇다면 방에다 두고 볼 때, 예쁘기라도 하라는 생각에 인형을 사왔다.

나는 가방에서 잘 쌓아놓은 곰인형을 꺼내들었다.

포장이 잘 되어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뭔지 알기 힘들었다.

마침 낸시가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얼른 그걸 낸시에게 내밀었다.

“...선물이야. 저기...무사히...다녀왔어...내가...알아서...말이야...네가 걱정해줘서 그런 건 아니고.”

“으이구! 오빠야말로 말 참 예쁘게 하네!?”

곧바로 헤나로가 끼어든다.

뭔가 울분에 찬 목소리였다.

저 계집애, 선물을 줘도 지랄이야. 확! 그냥...

낸시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 조금 표정이 움찔하고 흔들렸지만 금세 본래대로 무표정하게 돌아와서는 순순히 받아든다.

“고...고마워요....”

낸시가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때, 다시 헤나로가 끼어들었다.

“언니, 뭔지 얼른 뜯어봐. 난...삽이야...이것 봐...어이없다니까 정말. 오빠는 완전히 바본 가봐...그러니까 크게 기대는 하지 말고.”

“나...나는 좀 더 나중에 뜯어볼래요.”

“아이, 정말! 어서 뜯어봐. 응? 궁금하단 말이야. 그렇게 무겁지는 않은데 뭘까?”

헤나로가 자꾸만 보채자 결국 낸시는 내켜하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포장지를 뜯었다.

“이...인형?! 곰인형~~~! 나는 삽인데 언니는 곰인형?! 내가 더 어린데?”

헤나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돌아봤다.

“왜?”

내가 묻자 헤나로는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는 내 눈 앞에 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도 바꿔줘!”

“웃기지 마. 그보다 조만간 좀 쓸 일 있으니까 내가 사용하고 돌려줄게. 그때까지는 맡아두지.”

나는 얼른 헤나로의 손에 들린 모종삽을 받아 들었다.

순식간에 삽을 빼앗긴 헤나로는 다시 돌려달라고 떼를 썼다.

알다가도 모를 아이다.

어차피 나중에 빌리면 되니까 다시 돌려주고는 어머니께로 갔다.

아비슈가 나를 따랐다.

아버지께서 아비슈를 소개했고 사정을 들은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머닌 내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이곤, 아비슈의 머리는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셨다.

아비슈가 움찔했지만 저항하진 않았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손길에 당황한 것 같았다.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습이 웃겨 쿡쿡 거렸지만 어머니의 꿀밤이 한 번 더 이어졌을 뿐이다.

아비슈에게 비어 있는 방 하나를 내어주고, 가족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식사동안 계속해서 다리를 떨었다.

낸시는 식사동안 간간히 그런 아비슈를 몰래 훔쳐보았다.

아닌 척 했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와 어쩌다 시선이라도 마주칠라면 괜히 얼굴을 붉혔다.

식사 후에는 머뭇거리는 아비슈를 빈 방에 집어넣고, 곧바로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검의 신전에서 찾아온 낡은 반토막 난 쇠붙이를 꺼내들었다.

밝은 데서 보니 더욱 볼품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아...젠장...카메론의 기연은 이대로 물건너 가는 건가?’

그렇게 누워있자 솔솔 잠이 왔다.

나는 그대로 낡은 검을 손에 쥔 채 잠들었다.

그리고......신세계를 보았다.

그건 분명히 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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