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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37화 (37/200)

00037  떨어져 나온 개깍지, 눈에 붙은 콩깍지  =========================================================================

“뭐..뭐라는 거예요...바..바보같이...”

“...그..그래도...나...도련님인데...바보라니...그런 말 하면 안 되지...”

“그..그래도...바보 같은 말 하니까...”

“그냥 침대에 누워보는 것뿐이고...별 것 아니니까...나 춥고...뭐랄까? 치료의 일환이랄까? 뭐...그런 거지.”

“아무튼 마님한테 말씀드리고 올게요. 도련님 아프니까.”

낸시가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로드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자꾸 왜 이래요? 어리광이나 부리고...마님께서 아시면 어떻게든 해 주실 테니까...”

로드리고는 붉어진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가 어떻게든 해주면 되잖아?”

“그럼 제가 의사 선생님을 모셔올까요?”

순진한 표정으로 낸시가 묻자 로드리고는 불만 가득한, 그러나 역시나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그거 말고...”

“그럼요?”

전혀 모르겠다는 듯 낸시가 다시 묻는다.

“네...해줘...”

로드리고의 목소리는 너무 작은 소리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네?”

“네...몸으로 따뜻하게 해줘!!!”

작던 목소리는 쥐어짜듯 마지막엔 고함이 되어 버렸다.

한참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던 낸시는 서서히 그 의미를 깨닫고는 반문했다.

“...네에~~~~!?”

경악하는 표정이다.

“해줘...추...추우니까...콜록...콜록...”

로드리고는 적당히 추임새도 넣어가며 설득력을 더했다.

그러나 이정도로 넘어올 낸시는 아니다.

“마...마...말...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낸시가 말했다.

“콜록...콜록...하아...하아...”

로드리고는 연신 기침을 토해내면서 낸시의 손만은 절대 놓지 않았다.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나...죽으면...양지바른....”

그러나 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낸시가 말을 끊어 버린다.

“주...죽지 않아요!!!”

더듬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일까?

로드리고는 밀고 나갔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그러니까...마지막 소원이야...”

간절한 표정이다.

가늘게 뜬 눈으로 처량한 빛을 내어 보인다.

눈에는 한가득 눈물도 고여 있었다.

그것이 진실 된 눈물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겉보기에는 그럴듯했다.

“왜 하필 그런 게 마지막 소원이에요?! 저...저는...”

낸시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이런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그냥...나를 놀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자꾸만 자신을 곤란하게 하는 도련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거절해야 했다.

그녀는 떠듬거리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제대로 뭔가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 틈에 다시 로드리고가 끼어든다.

“저는 뭐?”

로드리고는 속으로 앙큼한 생각을 하면서도 주저하는 낸시의 모습에 몹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낸시가 살짝 입술을 깨물고 눈빛이 흔들리는 모습은 꽤나 귀여웠다.

왜 예전엔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그랬다면...나는 아마도...낸시를 사랑했을 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내 잘못 때문이었을까?

이상하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보다 더한 고통처럼 느껴지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았다.

기둥이 무너져 내렸다면...그렇다면 다시 세우면 되는 것 아닐까?

전에 세웠던 것이 형편없는 것이었다면 이번엔 좀 더 그럴듯한 것으로 세우면 되는 거야.

그 첫 번째는...여기 있는 낸시부터...

더 이상 널 비난하지 않고, 네 탓으로 돌려 나를 두둔하는 짓은 하지 않아.

이젠, 뭔가 달라질 테니까.

앞으로 뭐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그래도...전과는 다르겠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는 않으니까.

마침내 낸시는 어떻게든 머릿속이 정리된 것인지, 아니면 억지로 뭔가를 떠올려 낸 것인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야..약속 있으니까...그만 가볼래요...”

“무슨 약속?”

로드리고는 조금의 틈도 놓치지 않고 되물었다.

“...아..아가씨하고 약속 있어요.”

“그러니까 무슨 약속?”

“무..무슨 약속?”

“그래. 무슨 약속?”

“이...인형 놀이 일까나...?”

낸시는 슬쩍 시선을 내리깔고 말았다.

스스로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닫는 모양이었다.

“나...아파...”

로드리고는 여전히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술술 거짓말을 해대며 ‘나 아파요.’ 전술을 밀고 나갔다.

“그러니까 마님께...”

“아! 아...너무...너무 아파...”

낸시의 말을 얼른 막으며 로드리고는 고통을 호소했다.

“어..어떻게...어떻게 해...소...손을..놔주면...”

그러나 절대로 손은 놓지 않았다.

“마지막 부탁이었는데...이대로 가는 구나. 짧은 인생이었어. 마지막은...따뜻한 체온을 느끼며...가고 싶었는데...그런데...낸시는...마음이 강철로 되었나봐. 하아...”

“그러니까 안 죽는다니까...요...바..바보같이 자꾸 죽는다는 말만 하고...”

“후우...정말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무슨?”

“울었던 거....말할지도 모르겠네.”

“!!!?”

“헤나로에게도...그리고 부모님한테도...나중엔 마을사람들한테도...전부 말할지도...”

“야..약속했잖아요?!”

“그랬지.”

“그럼...말하면 안 되죠.”

“그렇지. 약속은 지켜야지. 암.”

“후유...”

낸시는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이어지는 로드리고의 말에 낸시의 안도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말할지도 모르겠다.”

“왜요?! 대체...이랬다 저랬다...”

“가끔 약속은 피치 못할 일 때문에 지키지 못할 때도 있는 거야. 아마도 지금이 그 피치 못할 일인 것 같아.”

“아마도...피치 못할 일이 아닐 거예요. 그렇게 간단히 피치 못할 일이 생길 리 없어요.”

“아니. 이건 피치 못할 일이 분명해.”

“대체 무슨 근거로!?”

“여기.”

그렇게 말하고는 로드리고가 낸시의 손을 자신의 가슴 부위로 잡아끌었다.

얼떨결에 낸시의 손은 로드리고의 가슴 위에 놓이게 되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일까?

낸시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로드리고를 쳐다보았고, 그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두근거리지? 이게 그 근거야. 피치 못할 일이 분명해.”

“예?! 하지만 제 가슴도 하루 종일 두근거리는 걸요?! 그게 어떻게 피치 못할 일이 되는 건가요?!”

“그랬어?!”

로드리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오히려 반문했다.

그 예기치 못한 반응에 오히려 낸시가 당황하고 만다.

“다..당연히 그렇죠. 가..가슴은 매일 두근거리는 거예요. 거기에 심장이 있으니까...그러니까 그건...피치 못할 일은 아닌 셈이죠.”

“그렇군.”

낸시는 아주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로드리고를 보며 드디어 그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안심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로드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건 달라. 자, 잘 느껴봐.”

여전히 낸시의 손은 로드리고의 가슴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대체 뭘 느껴 보라는 말일까?

“알겠어?”

“뭘요?”

“정말 모르겠어?”

“...예.”

“이건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뛰고 있어. 그러니까 피치 못할 일이지.”

“예?!”

“응. 피치 못할 일. 이해했지?”

“아니요.”

낸시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쯤에선 이해해야 하는데.”

아쉽다는 듯 로드리고 말했지만 그런 얼토당토 않은 말에 설득될 리가 없다.

“원래 가슴은 하루에도 수십 번은 빨리 뛰고 느리게 뛰고 그래요. 저도 일이 급해서 서두르고 그러면 막 숨차고, 가슴도 빨리 뛰고 그러니까...”

“그랬어? 정말?”

“당연하죠! 지금 절 놀리는 거죠?”

“아니. 조금도 놀리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네 말이 사실인지 난 알 리가 없잖아?”

“그건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 모두 아는 사실이에요. 상식이라고요!”

“나에겐 상식이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증명해줘야겠는데. 이것만 증명해주면 피치 못할 일은 없어질 것 같아. 그럼 네가 울었다는 사실도 비밀로 남게 되겠지.”

다시 로드리고가 약속을 지켜주겠다고 말하자 낸시는 선뜻 그 방법을 물었다.

“어떻게요?”

“간단하지. 내 손으로 네 가슴의 두근거림을 직접 느껴보면 될 것 같아. 자, 가슴을 이리 대봐. 그리고 이거 끝나면 네가 말했던 것처럼 좀 더 빨리 뛰게 만들어봐. 그럼 내가 그 두 개를 비교해서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면 모두 해결되는 거야.”

“...!!!”

“자, 어서.”

어느새 로드리고의 손은 낸시의 손을 놓은 후였다.

그의 손가락이 앞뒤로 꿈틀거리며 낸시의 가슴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나 목적한 바를 이루기 전에 뺨에서 느껴진 어마어마한 통증으로 그는 침대에서 떨어져 바닥에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그의 귀에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퍼억~!

“바...바보옷!!!!”

낸시는 곧바로 방을 뛰쳐나갔고, 로드리고는 바닥에서 조금 전 자신이 떨어뜨렸던 루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하...하하...이것 참. 너무 놀렸나?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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