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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40화 (40/200)

00040  떨어져 나온 개깍지, 눈에 붙은 콩깍지  =========================================================================

어둠은 오랜 시간 범세계적으로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어딘가에는 이런 의견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중의 하나가 아비슈였다.

어둠.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두려움도 공포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익숙한 일상의 영역에 불과할 뿐이다.

그녀의 첫 기억은 어둠에서 시작한다.

컴컴한 골목, 추운 바람.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

거기서 그 기억은 끝이 난다.

단편적으로 다른 저편의 무언가와 이어지지 못한다.

완전히 동떨어진 하나의 기억으로서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심지어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자기 자신인지 혹은 다른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부모?

그런 것은 그녀에게 애초에 없었다.

기대한 적도 없다.

하루하루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어둠 속에 숨어서 기다렸다.

손쉬운 먹잇감이 나타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뱃속에 울려 퍼지는 배고픔의 경적을 무시했다.

성급함은 좋지 못했다.

그런 부류는 숱하게 보아 왔다.

덜 취한 취객은 위험했다.

그것도 몹시 위험했다.

그들은 항상 무언가에 강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어디를 향한 분노인지는, 무엇에서부터 비롯된 분노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그것은 확실히 존재했고 필요하다면 무척이나 폭력적인 형태를 띠고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취한 상태에서 비틀거리면서도 바쁘게 무언가를 찾아 움직였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차츰 시간에 비례해 경험이 쌓이면서 아비슈는 그들이 찾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항하지 못하는, 혹은 저항하더라도 자신이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들.

그들의 분노를 마음껏 풀 수 있는 것.

바로 거리의 부랑아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비슈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들이 찾아 해매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숨 죽여라.

어둠 밑에 숨어 그들이 힘을 잃을 때까지 기다려라.

차디찬 바닥.

코골이 소리.

그제야 나는 일어나 먹을 것을 찾네./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부르는 이상한 노랫말은 그런 의미에서 꽤 값진 교훈을 담고 있었다.

성급하게 그런 자들에게 다가가 필요한 것들을 취할 경우 죽거나 병신이 되었다.

병신이 되는 것.

그것은 역시나 죽음을 의미했다.

병신이 된 아이들의 생명은 보통 새롭게 찾아온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안면이 있는 아이들이 가끔가다 던져주는 먹거리가 그때쯤이 되면 뚝 끊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시간적으로 좀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죽었다.

아비슈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뭔가 뚜렷한 꿈이나 희망이 있던 것은 아니다.

현실은 고통스러웠고, 주변에 그리 친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에게 있어 꿈은 뭔가의 거창한 이상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고통스럽다.

......

저것도 괴롭다.

......

하나씩 좋지 못한 것들을 소거해 나가다보니 나중에 남게 된 것은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였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그리 녹록한 것이 되지 못했다.

그것이 꿈이나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인지 아비슈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그래도 된다고 말해준다면 아비슈에게도 꿈이란 것이 생긴 셈이었다.

언제부턴가 아무것도 없던 그녀의 가슴속에 미지근한 희망이 자리 잡았고, 그건 그녀의 끈질기고 괴로우며 지루한 기다림을 조금은 덜 힘들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둠속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삶이 여기서 이대로 끝이 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희망...혹은 꿈이 망가져 버릴 때, 훨씬 더 거대한 고통과 아픔이 그녀를 찾아들어 뒤흔들지도 모른다.

나중에는 소리 없는 흐느낌만 남게 되겠지.

하지만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착실하게 거짓된 꿈과 희망을 마음에 품고,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딜 따스한 무언가를 모으자.

그때까진 어둠은 내 친구야.

포근하지도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지만 친구가 되지 않으면 따스한 것을 모두 모으기 전에 그 때가 올지도 몰랐다.

이것이 바로 얼마 전까지의 아비슈였다.

지금 자신의 앞에서 눈에 가득 힘을 주고, 그렁그렁한 눈물을 참고 있는 아가씨를 보며 아비슈가 느끼는 감정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꽤나 의외의 것이었다.

처음엔 이것이 무엇일까?

그 실체를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

뭔가 크게 한몫 챙긴 녀석들에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그래...부럽다.

나는 부러워하고 있어.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도...어둠을 두려워하게 될 날이 올까?

그리고 그걸...행복이라고 불러도 될까?

답은 모른다.

정답을 알기에는 아비슈는 너무 어렸고, 아는 것도 편파적이었다.

그래도 이젠 많은 것이 달라질 거란 것은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산산조각 날 꿈을 대비해 따스한 것을 모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제 아비슈에게는 꿈이 없었다.

그건 이미 형태를 갖추고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더 이상 산산조각 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현실이 깨어지지 않는 이상은 그대로 아비슈의 곁에 존재할 것이다.

“자, 그럼 같이 화장실 가요.”

아비슈는 씽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헤나로는 잠시 주저하다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손부터 잡고!”

“그래요. 손부터 잡고.”

문을 나서며 헤나로는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실은 나...안가도...되는데...”

그래도 조금 전처럼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소녀의 마주잡은 손에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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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께서 뭔가 생각나셨는지 손가락으로 머리를 한번 두드리고는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옆 마을에 곡예사가 온 모양이더구나. 어제 그쪽 마을 사람을 만났는데 들었단다. 꽤 재주가 뛰어난 것 같던데 운이 좋으면 우리 마을에도 올지 모르겠구나.”

쳇! 곡예사 따위...

로드리고는 관심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빵을 씹었다.

눈살도 살짝 찌푸린 채다.

그런 것은 어린애 들이나 좋아하는 것이다.

물론, 시골이라 이벤트가 거의 없는 이곳이라면 어른들도 꽤나 관심을 갖는다.

게다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화재거리에 오르기도 한다.

뭐라 해도 이곳은 무척이나 수준 낮은 시골 마을이니까.

보통 마을에는 2년마다 한번 꼴로 곡예사가 들르는데, 그럴 때마다 성황이었다.

곡예사는 싸구려 재주를 좀 보이고는 그에 걸 맞는 푼돈을 챙겨서 마을을 떠난다.

공짜로 구경하려고 옆에서 알짱거리면 얼마나 호되게 혼을 내는지...곡예나 팔며 세상을 이리저리 방황하는 녀석 중에 제대로 된 녀석들은 거의 없다.

사기도 치고, 놀음도 하고, 마을 밖의 길목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강도와 다름없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한다.

개중에 어떤 녀석은 살인도 몇 번쯤을 했을 것이다.

그런 녀석들을 마을에 들이다니...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쯧쯧쯧...

그래도 이곳에선 인기 있고, 간혹...정말 더럽게 간혹 괜찮은 녀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녀석들은 아직 연륜과 경험이 부족할 따름이다.

아직도 선량한 놈은 그 과도기의 어느 부분에 서있어서 그래 보일 뿐이다.

결국 언젠가는 로드리고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막장을 향해 치닫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객사할 테고.

뭐, 나는 관심 없으니까 혹 이 마을에 오더라도 구경 가거나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이곳에는 어린애라고 불러도 무방한 지적 생명체가 무려 3명이나 더 있었다.

그 중 로드리고와 거의 비슷할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아니,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는 자리에서는 오히려 그 권력이 좀 더 강해지는 헤나로가 신이 나서 말했다.

“정말요?! 아빠, 정말요?!”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정말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 마을에 오면 같이 보러 가자꾸나. 사람들이 많이 몰려도 아빠 어깨 위에서 보면 분명히 훤히 잘 보일거야. 하하하!”

아버지는 헤나로의 모습이 마냥 좋으신지 헤실헤실 웃으시며 말을 꺼내길 정말 잘 했다는 표정이었다.

“좋아요! 아빠 최고야!”

헤나로가 식탁에서 손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좋아하자 어머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헤나로! 여자아이가 조용히 못하겠니?! 네 오빠를 좀 보렴! 저렇게 의젓한 모습을 보여야지. 조신하지 못하면 좋은 신랑감을 구하기 힘들어요!”

어머니의 꾸중에 헤나로는 금세 시무룩해져 다시 빵을 집어 씹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참 귀여운 딸내미의 ‘세상에서 아빠가 최고야!’를 좀 더 듣고 싶었던 아버지는 눈치를 보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작은 소리였다.

굳이 말하자면 개미 기어가는 소리 정도?

아마...가장으로써 ‘어머니보다 내가 좀 더 강하 단다. 역시 가장은 나지!’를 헤나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음성 속에는 어머니를 자극하고자 하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왜...애한테...”

소심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어쩌면 처량하기까지 했다.

로드리고가 그 음성을 듣고 떠오른 생각은 심지어 ‘나는 절대로 아버지처럼은 안 산다.’였을 정도로 남성의 호기로움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요?!”

날카롭다.

“...아...아니...그러니까...애한테...괜히 그러니까...”

중언부언하는 아버지...

“크게 이야기해요!”

“...아..아니야...아무것도...”

아버지는 시선을 얼른 피하고, 역시나 열심히 빵만 스프에 찍어서 묵묵히 식사를 이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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