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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43화 (43/200)

00043  얽히고 설키는 실타레  =========================================================================

“그...그런...”

토미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청한 소리를 흘렸다.

낸시가 고개를 저으며 뭐라 말하려 했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다.

“그러니까 오해라니까. 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낸시가 당황한 얼굴로 뭐라 말했지만 전부 내 웃음소리에 묻혀 버렸다.

토미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미안해...나는...그것도 모르고...하...하하...그렇구나...도련님한테...마음...있었구나...난...완전히...민폐였던 거네...귀...귀찮았겠어...그럼...이...일이 있어서...”

낸시는 입을 뻐끔거리며 두 손을 뺨에 붙이고 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나 토미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 새끼야! 얼른 가버려라!

뭐, 나타난 타이밍은 좋았지만 아무튼 저런 놈이 감히 낸시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제 나도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낸시를 좋아한다.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놀리는 맛이 있고, 같이 있으면 재미있다.

무엇보다 편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좀 도와주고 싶기도 하다.

뭐...과거의 속죄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나름...행복하게 해줄 용의도 있다.

아무튼 내 것이었던 사람을 남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가 낸시 없으면 못살고 그런 것은 아니다.

흠흠! 뭐...아무튼 그런 건 아니다.

오해하면 안 된다.

토미는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축 처진 어깨로 힘없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만족스런 미소를 띠우고, 그 모습을 감상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려 진다.

하지만 낸시, 요 계집애가 잘 가고 있는 토미 새끼를 불러 세우고 말았다.

“토미 오빠!”

젠장!

자꾸 오빠! 또 오빠!!!

눈앞에 남편이 있는데 요 계집애가 뭐하는 짓이야?!

지금 대놓고 바람피우냐?! 엉?!

열이 뻗친다!

아주 잘~알~~한다!

잘 해!!!

토미 새끼는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곧바로 돌아서며 낸시와 시선을 맞추었다.

놈의 눈빛은 새롭게 발견한 희망에 반짝거렸다.

똥개가 똥을 발견한 눈빛이 저러할까?

엉덩이에 꼬리가 있었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방정맞게 이리저리 흔들렸겠지.

가서 뺨이라도 몇 대 갈겨줄까?

아니면 정강이라도 차줄까?

이를 갈며 낸시와 토미 새끼를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는데 낸시가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감자...떨어뜨렸어요...”

“......”

“......”

“......아까...떨어뜨린 것 같은데...”

“......”

“......”

그녀의 말과 동시에 우리들 사이에선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모두 토미가 떨어뜨렸을 것이 분명한 감자에 시선을 맞추었다.

큼지막한 감자 두 개였는데 조금 전 토미가 서있던 자리에 흩어져 있었다.

처음으로 정적을 깬 것은 토미였다.

“그..그러네..하..하하...고..고마워...”

토미의 눈빛에선 다시금 썩은 동태 눈깔이 자리 잡았다.

입가에는 난처한 미소가 띠워져 아무도 없는 곳에 가게 되면 분명 울음으로 바뀔 것 같았다.

나는 놈이 계집애처럼 소리 내서 엉엉 울 거라는 사실에 100골드도 걸 수 있었다.

아무튼 그 순간만큼은 밉고, 얄밉기만 하던 토미 새끼가 좀 불쌍해졌다.

나는 연민이 가득 담긴 눈으로 놈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낸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낸시, 요 맹한 계집애...

혹시 바보 아닐까?

그냥 석녀가 아니라 멍청했던 건 아닐까?

뭔가 반응하고 싶었어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잠자코 있었던 건 아닐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마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본 누군가한테 들었겠지.

‘낸시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니까 너는 그냥 말하지 말고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뭐, 우리 어머니나 혹은 헤나로 정도가 떠오른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우리 사이의 자식들 중에서는 그렇게 저능아 놈은 없었다.

뭐, 그야 내가 워낙 출중했으니까 상쇄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는 안쓰러움을 가득 안고, 토미가 멍청하게 서있는 곳 근처까지 가서 직접 땅바닥에서 감자를 주워서 놈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놈의 얼빠진 표정은 너무도 불쌍해 보여 기어코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내 감자는 아니었지만 인심 쓰듯 말했다.

“가다가...출출하면 먹어...울고 나면...배고플 거야.”

“...저...저는...우..울지 않습니다...”

미친놈아, 너 벌써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거든?

그렇지만 남자 대 남자로 사실을 말할 수는 없어서 놈의 어깨에 손을 얹고 두드리며 말했다.

“하..하하..말이 헛 나왔네. 걷다가 출출하면 먹어.”

하지만 놈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이제...감자는 못 먹을 것 같습니다. 좋지 못한 추억이 생겨서...먹으면...얹힐 것 같아요.”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네!

가뭄 들면 쥐새끼도 잡아먹거든?

새끼가 오냐오냐 해줬더니 아주 끝도 없이 기어오르고 있어!

확! 그냥!

그래도 나는 괜히 딴지 걸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돌아섰다.

이것이 어른의 행동이겠지.

암! 그렇고말고.

토미는 그렇게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이렇게 말하면 좀 멋지게 보이겠지만 실상이 어디 그렇던가?

놈은 비틀거리며 내가 쥐어준 감자를 든 채 건물 뒤편으로 사라졌다.

어쨌든 토미 새끼는 완전히 격침당했다.

적어도 놈에게 있어서 낸시와 나는 서로 가슴을 만져대는 사이인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한 표현을 빌리자면 낸시는 도련님인 나를 사모하고 있고, 내게 가슴을 만져지는 것을 좋아하는 발랑 까진 소녀인 것이다.

뭔가 야릇하다.

“아...! 토미 오빠....”

낸시는 뭔가 아쉬운 목소리를 내며 토미 새끼 이름을 불렀다.

자기가 완전 끔살시키고 뭐하는 짓이야?

병 주고 약 주냐? 계집애가 양심은 있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낸시가 물었다.

“왜요?”

“너...알고 있어? 토미, 완전히 오해했을 걸?”

낸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도련님이 그렇게 오해 사게 말했는데 당연히 그렇겠죠!”

뭐야?

이 계집애 전부 지가 저질러 놓고 나한테 전부 덮어씌울 생각인가?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나쁜 계집애네?

내가 눈살을 좁히며 쳐다보자 낸시가 계속해서 말했다.

“어차피 도련님이 오해 살만한 말만 계속 할 텐데 그럼 어떻게 해요?! 감자 떨어뜨렸으면 그거라도 가지고 가야죠.”

“뭐?!”

“토미 오빠는 이런저런 소문내고 다니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제대로 말하면 믿어줄 테고. 처음엔 당황했지만 오빠는 누구랑 다르게 제대로 된 사람이니까! 뭔가 꼬투리 잡았다고 그걸로 이상한 것 요구하지도 않고....”

뚜둑!

방금 그 소리는 내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자존심이 뭉개지는 소리였을까?

아무튼 내 안에 꽤나 중요한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 계집애가~~~!!!!

그러니까...지금...토미 새끼는 믿음이 가서 괜찮다?

나는 완전 쓰레기 병신이고?

부글...부글...부글...

“그래? 그거 정말 다행이네? 믿을 수 있는 놈이 있으니까 말이야. 나랑은 다르게 아주 든든하겠어?”

“몰라요. 이젠 가볼래요. 물레 돌려야 하니까...”

낸시는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뛰어가서 낸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뒤로 돌려 세웠다.

“왜...왜요?”

“하던 거는 마저 해야지?”

“예?!”

“가슴 말이야. 만지라며?”

그와 동시에 내 손은 스스럼없이 낸시의 가슴에 착 달라붙었다.

말캉~!

조물조물...

다시 말캉~!

낸시는 한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멍하게 입을 조금 벌린 채 ‘아..아아..?’하고 소리를 냈다.

나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그럼, 이제는 심장 고동을 좀 빠르게 해봐. 그게 처음의 약속이었잖아? 그렇지?”

급속하게 달아오른 낸시의 얼굴은 곧 폭발할 것만 같았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런데 너 지금도 굉장히 빠르게 뛴다. 정말 이것보다 더 빠르게 뛸 수 있는 거냐? 응?”하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별을 보았다.

짜악~!

짝~!

양 볼에서 불이 난다.

“시..싫어~~~!”

소녀의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는 비명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고 뺨에서는 여전히 통증이 이어진다.

짜악~!

“야! 그만...벌써 세 대나...”

짜악~!

“너...지금..나 네 대나 맞았...”

짜악~~!

“그만 하라니까...”

짝~!

짜악~!

짝~! 짝!

기억하기론 이쯤에서 몇 대 맞았는지 세는 것을 잊었다.

아무튼 이후로도 꽤 많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남자였다.

생각해보면 이쯤에서 가슴에 올려져있던...아니 정정하겠다.

꽉 움켜쥐었던 손을 치웠더라면 분명 몇 대 더 맞고 끝났겠지만 난 꽤 끈덕지게 손을 놓지 않았다.

내거다.

아무리 뭐라 해도...이건 내 가슴이다.

그러니까 나도 고집을 피우는 거다.

낸시...너도 그걸 인정해야 해.

그리고 내 앞에서 토미랑 날 한번만 더 비교하거나 혹은 놈을 칭찬하면 정말 혼날 줄 알아...

짜악~!

계집애...손 진짜 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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