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5 얽히고 설키는 실타레 =========================================================================
토미는 산짐승을 쫓듯 아비슈를 쫓았지만 그녀는 가지 않았다.
이 아이는 대체 어떻게 해야 떨어져 나갈까?
나는 아직 감정적으로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상황인데 뭐, 이런 배려 없는 아이가 다 있담?
예의라곤 알지도 못해!
토미는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좋은 생각 하나가 번쩍 하고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조금 비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봤자 눈이 부어 있어서 그리 비열해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목소리도 왠지 코맹맹이 소리가 섞여 나왔다.
울고 난 여파가 꽤 컸던 탓이다.
아무튼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나한테 관심 있냐?”
“헤에~? 재미있는 말을 다 하네?”
“그..그렇지만 자꾸 따라오면 보통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지. 너는 나를 좋아하는 거야! 그렇지?”
토미는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억지를 썼다.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이렇게 하고 나면 저 이상한 애도 소녀인 이상 부끄러워하며 그만 떨어져 나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비슈는 평범한 혹은 그가 쉽사리 재단할 수 있는 종류의 소녀는 아니었다.
그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곳에서 꽤 오랜 시간 구르며 살아온 역전의 용사쯤 되는 소녀였다.
마침내 소녀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너는 울보잖아? 울보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어. 뭐, 흥미가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맞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건 아니지. 어디까지나 희귀한 짐승을 발견한 호기심 정도랄까? 내가 전에 살던 곳에는 다리가 셋인 개가 있었는데 신기해서 며칠이나 따라다녔었어. 딱히 할 것도 없었고. 그러니까...굳이 말하자면 너는 나한테 다리가 셋 달린 개 정도의 존재인 거지.”
“...너...꽤나 가혹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구나.”
“헤헤. 왜? 또 울려고?”
기대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자 토미가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울어!”
“칫...”
“암튼 나는 개도 아니고, 귀찮게 따라다니지 마. 다리도...보통 사람처럼 두 개니까.”
“응. 두 개네.”
“그럼 나...간다.”
토미는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아비슈는 그가 걸음을 옮기기 전에 물었다.
“이름 뭐야?”
“토미.”
“나는 아비슈. 만나서 반가웠어.”
“아! 네가 도련님이 데려왔다는 애구나.”
“응.”
아비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뜰 것 같던 토미는 이상하게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나 눈알을 굴리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완전히 아비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금 이 순간 토미의 머리는 이때껏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먹구름만 가득 낀 하늘에 한줄기 빛이 비춰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는 입술을 침을 바르더니 슬쩍 아비슈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듣자하니...도련님이 너...너 한테...좋아한다고..그랬다던데? 맞아?”
“응! 그렇지. 뭐...헤...헤헤...소문 났나봐?”
아비슈가 몸을 요상하게 비비꼬며 말하자 토미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두어 차례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했다.
“너...그런데...이건...내가 직접 본 사실인데...저기...너무 충격 받지는 말고...”
“충격?”
“그게...도...도련님이 낸시랑...”
“낸시 언니?”
“으..응...낸시...”
“?”
“막 가슴 만지고 그랬어. 내가 봤어. 두 눈으로! 보통 사이가 아니야. 너...속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바람 핀다고 할까? 낸시가 나쁜 건 아니고! 그냥...도련님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야. 낸시는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뭔가 협박이랄까? 암튼 그런 거. 알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네가 뭔가 한다고 하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헤에~?”
토미는 그 순간 생각했다.
으이구!
저놈의 ‘헤에~’
대체 무슨 의미냐?!
이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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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아비슈는 못 찾겠어. 어디 갔나봐.”
헤나로가 어깨를 늘어뜨린 채 로드리고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러나 로드리고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멍청하게 서서 자기 발만 내려다 볼 뿐이었다.
“오빠?”
헤나로가 재차 로드리고를 부른다.
그제야 로드리고는 고개를 들고 헤나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과연 헤나로의 모습이 그의 망막에 제대로 비춰진 것일까?
그의 움직임은 하나의 조건이 충족되어 기계적으로 반응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의식은 깊고 깊은 자신의 내부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확실히 변해 있었다.
퉁퉁 부은 뺨을 보고는 헤나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오빠?! 얼굴이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어?”
걱정스런 목소리와 자신을 흔들어 대는 손길에 깊은 곳에 침전되어 있던 그의 의식이 마침내 깨어났다.
“뭐?”
지금까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로드리고는 멍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얼굴 말이야? 대체 왜 그래? 넋 나간 사람처럼.”
“아...얼굴...”
로드리고는 그제야 얼굴의 통증을 확인했다는 듯 양 손을 뺨으로 가져다 대었다.
뜨거운 열기가 그의 손을 통해 전해져 온다.
“대체 무슨 일이야?”
“...아니...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마을 어귀까지 나가보자. 곡예사가 오는지 보러 말이야.”
“괜찮겠어? 많이 아프면...가지 않아도 좋아.”
헤나로는 자기 나름대로 오빠를 신경 써 주었다.
물론 몹시도 가고 싶기는 하지만 얼굴이 잔뜩 부어있는 오빠를 억지로 끌고 갈 만큼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헤나로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로드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프지 않아. 그냥...얼얼할 뿐이야.”
“누구한테 맞았어?”
“그냥...모르는 편이 좋아.”
“오빠도 비밀?”
“...응...그래. 비밀.”
로드리고는 그렇게 말하고 헤나로의 한 손을 잡고는 걸음을 옮겼다.
헤나로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로드리고가 가는 대로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꼬치꼬치 묻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이야기 해줄 것 같지 않았다.
칫...전부 비밀뿐이야.
나도 비밀을 만들어서 낸시 언니도, 오빠도 궁금해 미치도록 만들고 말아야지.
지금은 힘들지만 머지않아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대단한 비밀이 생기고 말 거야.
그렇지만 그건 비밀이니까 아무리 말하고 싶어도 말하면 안 돼.
그런데...그럼 아무도 놀라지 않잖아?
그런 비밀이 생겨도 나는 그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헤나로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스스로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분명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할 것이 분명하다.
쉬지 않고 걸었지만 헤나로가 여기까지 생각하는 동안에도 아직 마을 어귀까지는 꽤 거리가 남아 있었다.
더 이상 뭔가 생각해보려 해도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어서 헤나로는 옆에서 같이 손잡고 걷고 있는 로드리고를 불렀다.
“오빠!”
다행히도 로드리고는 조금 전처럼 멍하고 이상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왜?”
평소와는 좀 다르게 차분하고 가라앉은...그래서 어딘지 조금은 우울한 목소리가 로드리고의 성대에서 흘러 나왔다.
“나 어제 아비슈랑 좀 친해졌어.”
칭찬받고 싶어 역력한 마음을 담아 헤나로가 말했다.
“헤에~ 그래? 그거 잘 됐네.”
로드리고는 적당히 응수했다.
“내가 먼저 같이 놀자고 그랬다?”
로드리고가 조금 더 반응을 보이길 원하는지 헤나로는 몇 마디 말을 보탰다.
“그래?”
그러나 역시 로드리고의 응수는 그리 훌륭한 것이 아니었다.
아주 아니올 시다는 아니지만 헤나로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는 한참이나 밑돈 달까?
“응. 나 잘했지?”
결국 헤나로는 자기 스스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네.”
아무튼 울며 겨자 먹기로 칭찬은 받았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또 이야기가 끊기고 마을 어귀까지는 심심하게 가야 할 것 같아 헤나로는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그리고 어젯밤에는...”
“어젯밤에는?”
딱히 궁금할 것 없다는...하지만 적당히 상대방에게 나는 네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대응이 이어진다.
하지만 헤나로는 그 순간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
어젯밤 일 말해도 좋은 것일까?
오빠가 날 겁쟁이라고 놀릴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딱히 무서웠던 것은 아니고...그냥 아비슈랑 놀아주려던 것뿐이니까...
우리집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래도...
뭔가 꼬치꼬치 물어 보면 혹시 들킬지도 모른다.
“헤나로?”
로드리고가 부르자 헤나로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아무 것도 아니야.”
“뭐가?”
“헤헤...비밀.”
“뭐?”
로드리고는 싱거운 녀석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헤나로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헤나로는 별일 아니었지만 그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비밀은 상대방을 싫어하거나 믿지 못해서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니구나.
그냥..뭔가 창피하니까 숨기고 싶은 거야.
그럼, 내가 낸시 언니한테 딱히 서운해 할 필요도 없는 걸까?
언니도 뭔가 창피한 것이 있었던 것뿐이니까.
나를...귀찮아하는 것이 아니라...
“오빠!”
“또 왜?”
“아니...그냥 고마워서.”
“뭐가?”
“비밀. 헤헤헤...”
“너 오늘 이상하다.”
“오빠도 얼굴 이상해. 잔뜩 부어서.”
“그 이야기 하지 마.”
“왜? 아파서?”
“몰라. 바보야.”
“히히..히히히...”
“암튼 점심때까지만 기다릴 거야. 그때까지 곡예사 안 나타나면 너 혼자 기다리던지 마음대로 해.”
“칫...하긴...이래야 우리 오빠지.”
“뭐?”
“아니. 비밀.”
“다 들었거든?!”
로드리고는 헤나로의 머리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서 머리를 톡톡 치면서 응징했고, 헤나로는 그 와중에도 비명을 지르며 웃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