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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49화 (49/200)

00049  얽히고 설키는 실타레  =========================================================================

“그러니까 눈도 귀엽고...”

“아, 정말!!! 오빠! 그러니까 눈이 어떻게 귀여운데? 응?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르잖아? 내 귀여움을 제대로 표현해 보란 말이야!!! 정말로 귀엽다 귀엽다고만 하고...그런 말은 이제 지겹단 말이야. 뭐...매일같이 듣는 말이니까...흐음...다른 거 없어?”

눈을 반짝이며 추궁하는 어투로 헤나로가 로드리고에게 열심히 얼굴을 들이밀며 묻는다.

이 계집애야 그럼 귀엽다는 말 하게 만들지 말란 말이야!!!

나도 하기 싫은데 네가 자꾸만 하게 만들잖아!!!

어느새 로드리고의 꽉 쥔 주먹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헤나로가 여동생만 아니었다면...그랬다면 정말로 죽방 날리고 싶다.

그러나 아직 아쉬운 것은 자신이다.

이대로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로드리고는 엄청난 압박감과 심한 거부감을 느끼며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움직여 말했다.

“어...그..그러니까...바..반짝인다고 할까?”

“반짝여?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마치 인심 써서 들어주겠다는 어투다.

로드리고는 이마에 툭 튀어나오는 혈관 마크를 눌러 집어넣으며 떠듬떠듬 말했다.

“어! 그..그렇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려! 별 이쁘지?”

“응!”

“네 눈도 그래. 그러니까 예쁜 거지.”

“그렇구나! 그리고 다른 데는?”

“...다...다른데?”

“응! 다른데! 또 없어?”

이 계집애...나를 죽일 셈이냐?!

이미 충분해 해줬잖아?!

정말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이제 여동생이라도 죽방을 날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어금니 꽉 깨물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지만 낸시가 그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했던 ‘정말 싫어’란 말은 유감없이 위력을 발휘해 주었다.

“그 정도면 되지 않았나? 그냥 전체적으로 다 귀여워서...”

한참 전부터 손가락을 꼬아 두었던 로드리고는 입술에 미친 듯이 침을 발랐다.

“그래도! 그래도! 조금 더 귀여운 데! 응? 잘 봐봐! 응? 있지? 이렇게나 귀여운데 또 없을 리가 없잖아?”

로드리고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어 생각나는 단어 하나를 아무거나 내뱉었다.

“그럼...손가락이 귀여워.”

“에? 손가락?”

그러더니 헤나로는 자기 손을 쫙 펴서 손가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살짝 구부렸다 폈다 하며 한참을 들여다보던 계집애가 다시 물었다.

“어떤 손가락?”

눈가를 파르르 떨며 로드리고는 ‘검지’라고 말했다.

하마터면 ‘이 년~!’이라고 할 뻔 했지만 그는 불굴의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그러자 헤나로는 자기 검지 손가락을 까닥이고 이리저리 위아래 살피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응! 내 검지 손가락 귀여운 것 같아! 나도 눈치 채지 못했는데 오빠 제법인 걸?”

그러더니 내 옆구리를 쿡 하고 팔꿈치로 찍는다.

쿨럭!

이 계집애...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야.

젠장...

옆구리 약하다고!

욕 나오는 거 간신히 참으며 계속 걷다보니 상대편에서 오던 사내 둘이 꽤 가까워져 있었다.

그냥 사람 둘이라고 간단히 정의를 내렸던 존재는 어느덧 헤나로가 그렇게나 어디가 어떤지 묻는 세세한 부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적인 것은 파악할 수 있는 거리에 서 있었다.

노인 하나. 그리고 젊은이는 아니더라도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의 사내 하나.

둘 다 짐을 등에 지고, 그렇게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오고 있다.

이상한 것은 노인이 더 큰 짐을 등에 지고 걷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곡예사 맞나?

짐을 제대로 확인하면 대충 알 수 있을 테지만 그걸 확인할 길은 없다.

옆을 보니 헤나로도 그들이 꽤 가까워 졌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더 이상 귀여움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고 말했다.

“곡예사! 그치? 맞지?”

나한테 물어서 어쩌려는 걸까?

너 기억하고 있냐?

나도 지금까지 계속 너랑 같이 있었거든?

로드리고는 약간은 퉁명스런 목소리로 답했다.

“하아~..그러니까 모른다고...”

“어이~! 안녕~!”

헤나로는 내 말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듯 까치발을 서서 손을 머리위로 높게 올린 후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그들은 잠시 움찔 하더니 어색하게 손을 들고 흔들어 주었다.

이 계집애, 쪽팔리게 뭐하는 짓이람?

하지만 뜯어 말리기도 그래서 그냥 놔두고 좀 더 걸었다.

헤나로는 신이 나서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곡예사! 곡예사!’하고 외쳤는데 제정신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저런 것을 믿고 낸시와 화해하는 걸 도와 달라고 했다니...

스스로의 선택에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내 주변을 돌던 것도 더 이상 헤나로의 흥분을 잠재워 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급기야 이 계집애는 그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야! 같이 가! 뭐하는 거야?!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내가 소리쳤지만 헤나로는 멈출 생각은 않고 웃음소리를 흘리며 계속해서 뛰어 갔다.

저 계집애~!

낸시랑 화해만 하고 나면 아주 배로 갚아주마!!!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녀를 따라 뛰었다.

마침내 그들 앞에 당도한 헤나로는 쉼 없이 어깨를 들썩이면서도 이렇게 물었다.

“아저씨! 곡예사 맞죠?! 그쵸?! 재주 부려 봐요?! 예?!”

그러자 중년 사내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야! 저리 가! 애들은 가! 애들은...”

너무도 익숙한 어투로 사내가 헤나로를 쫓는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면 헤나로가 아니다.

“왜요~? 아침부터 저기서 기다렸단 말이에요~! 저기! 보이죠? 저~기 높은 언덕이요! 제가 졸라서 오빠도 같이 마중 나왔어요! 보세여! 저기 우리 오빠! 마을에서 곡예사 오는 거 전부 알고 있을 걸요! 기대가 아주 커요! 헤헤! 그러니까 작은 거 하나만 미리 보여줘요? 예? 그래도 되죠? 그렇죠? 제가 제일 먼저 이렇게 마중 왔으니까! 예? 되잖아요?”

하지만 사내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돼! 이것도 다 돈이야. 내 재주는 공짜가 아니란 말이야! 보고 싶으면 이따 부모님 손 붙잡고 같이 와서 보던가. 부모님 돈 챙기게 하는 것 잊지 말고. 그때 오면 신기한 거 많이 볼 수 있으니까 그리 알고. 암튼 돈! 그게 중요해. 없으면 하나도 못 봐. 잊지 마.”

“에이~! 쩨쩨하게 굴지 말고~! 응? 으응? 응?!”

헤나로는 두 손을 마주잡고 두 눈을 빛내며 입가에 귀여운 미소를 두르고 사내에게 졸라 댔다.

하지만 사내도 보통내기는 아닌 듯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훠이~! 훠이~!’하며 손을 내젖는다.

헤나로는 좀처럼 사내가 재주를 보여주지 않자 발을 동동 구르다가 내게로 시선을 주었다.

뭔가 좋지 않다.

왜 그렇게 보는데?!

난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데 그냥 따라온 것뿐이잖아?!

“오빠! 오빠!”

부르지 마!

나는 못들은 척 딴전을 피웠지만 그래봤자 벌 수 있는 시간은 수초에 불과했다.

헤나로는 내 팔을 잡아당기며 졸라댔다.

“오빠가 어떻게 해봐? 응? 오빠는 똑똑하잖아?”

이럴 때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인정 안하던 계집애가!?

솔직히 무시하고 싶었다.

더 이상 얽혀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여기까지 와준 것으로 헤나로와 나의 거래는 끝이 났다고 해도 무방하다.

나는 이미 헤나로에게 원래 주려고 했던 것 이상을 주었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정신적 데미지도 입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어찌되었든 헤나로의 부탁을 들어주어야만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헤나로는 처음 약속이 어떻든 간에 그런 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마지막에 자기 부탁 들어주지 않은 것만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 헤나로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내 고생은 완전히 공중에 붕 떠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 뻔했다.

이런 현실을 원망하려 해도 그 대상은 마땅치 않다.

낸시야...대체 왜 이런 애랑 친한 거야?!

결국 로드리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벌써 저만치 걷고 있는 사내와 노인을 따라 빠르게 걸었다.

그런 로드리고를 뒤쫓아 가며 헤나로는 계속해서 물었다.

“오빠? 어떻게 할 거야? 저 아저씨, 재주 보여줄까?”

“나도 몰라. 조용히 좀 있어 봐. 너 결과가 어떻든 이따 낸시한테 말 잘해줘야 해! 알겠냐? 아휴...귀찮아...”

“...알아! 안다구! 그치만 내 귀여움으로도 어쩔 수 없었는데...내 검지손가락, 저 아저씨한테 보여줄까? 응?”

“...그냥 가만히 좀 있어. 그게 도와주는 거야.”

“아무튼 저 아저씨는 눈이 나쁜가봐.”

“......”

그냥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네가 귀엽지 않은 거야, 바보야!!!

로드리고는 헤나로를 무시하고 계속 걸어 사내를 따라잡았다.

“아저씨! 재주 간단한 거 하나만 보여 줘요! 그럼 바로 집에 갈 테니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아요.”

“돈 있어?”

로드리고는 주머니를 뒤졌지만 마땅히 마을에서 돈을 사용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사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쩔 수 없어. 돈이 없으면 재주도 없는 거야. 그게 이 세상의 진리지. 꼬마야 잘 기억해 둬라. 크크큭.”

사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저걸로 먹고 사는 경우 돈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침부터 기다린 애한테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서 쫓아 버리는 건 너무하는 처사였다.

로드리고는 별로 곡예사의 재주 따위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오빠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에게도 입장이란 것이 있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냥 아무거나 간단한 거 하나 보여 주세요. 이따가 아버지 졸라서 갈 테니까. 그때 돈도 드릴게요.”

“하! 하하하! 이놈 보게? 내가 그런 거짓말 한두 번 들어본 줄 아냐? 헛소리 하지 말고 어서 안가?! 그냥 확!”

사내는 로드리고를 위협하듯 손을 머리 높이로 들어 올렸다.

그때,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노인이 말했다.

“됐어! 그만 하게. 꼬마야, 내가 저글링을 보여주마. 돈은 필요 없어. 마을에 가면 재미있다는 소문이나 내주면 된단다.”

그러나 노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사내는 거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뭐하는 짓거리야?! 이 미친 늙은이가!!! 내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헤나로는 그 모습에 겁먹었는지 로드리고의 옷깃을 잡고 바짝 붙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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