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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66화 (66/200)

00066  슬픈 저녁  =========================================================================

“오빠, 무슨 일이야?”

헤나로는 자기 방을 나서다가 표정이 좋지 못한 로드리고를 보고는 물었다.

“알 것 없어.”

상대하기 싫은지 로드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헤나로는 예전처럼 고집 부리지 못하고 푹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내려뜨린다.

그 모습이 싫은지 로드리고는 잠시 주저하다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답해 주었다.

“낸시말이야. 글쎄 물레를 돌리고 있었어. 그게 말이 돼?!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다쳤으면 침대에서 나을 때까지 쉬고나 있을 것이지 뭐하는 거야?! 바보도 아니고...아니, 바보도 그렇게는 안하겠다! 답답해! 그 계집애, 정말 짜증나고 답답하다고! 젠장맞을 물레! 태워버렸으면 좋겠어!!!”

로드리고는 그렇게 말하고는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신경질적으로 자기 방에 들어가 버렸다.

헤나로는 로드리고의 말을 곱씹었다.

물레?

낸시 언니가 물레를 돌렸다고?

헤나로는 서둘러 물레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는 아무렇게나 엉켜있는 실이 흩어져 있었다.

무릎을 굽혀 그 실을 집어 들었다.

조금은 엉성하지만 아무튼 실이었다.

평소에 낸시 언니가 짜던 실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그건 훨씬 오밀조밀하고 균일했다.

그런데 이건 그렇지 않아.

하지만 그렇게나 아픈데도 이곳에 와서 물레를 돌렸다는 것은 그만큼 언니에게 실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그 순간 헤나로는 한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았다.

내가 이걸 하면 언니가 기뻐해 줄지도 몰라.

가득 실을 짜서 언니에게 보여주는 거야.

그럼 분명히 안심하고 침대에서 몸이 낫는 것을 기다리겠지?

그때까지 내가 열심히 해보자.

헤나로는 집안에서 일하는 마을 아낙을 찾아 물레 돌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어색하던 몸놀림은 차차 구성진 소리를 내며 물레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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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

곡예사 라몬은 순식간에 떠나고 말았지만 그가 저지른 행위는 점차 그 크기를 커다랗게 부풀리고 있다.

낸시는 절름발이가 되었고, 로드리고와 헤나로는 의기소침해졌다.

아내도 심기가 불편하여 말수가 줄었다.

그뿐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고 있다.

라몬이 가져간 은촛대와 쟁반을 찾도록 사람을 고용했다.

어중이떠중이를 고용해봐야 제대로 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꽤 이름 있는 자를 고용했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금세 허덕일 정도는 아니지만 쓸데없는 지출임에는 틀림없다.

포기해 버리면 될 일이지만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물품이다.

나중에 로드리고나 헤나로가 좋은 집안과 혼사를 치룰 때, 체면을 세울 수 있는 물품을 쉽사리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핀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행복한 가정이 흔들리고 있어.

어떻게든 다시 예전의 행복했던 자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

그건 가장으로서의 의무였다.

또한 의무가 아니더라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의 분위기를 그 스스로도 원하고 있었다.

헤나로의 웃음이 다시 집안에 흘러넘치기를 간절해 원했다.

결국 그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낸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저번에 도시에서 데려온 아비슈라는 아이가 꽤 빠르게 일을 배우고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야.

어려서부터 딸처럼 키워온 아이이기는 하지만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되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른 집을 알아봐야겠어.

몸을 좀 움직일 만 하면 적당한 곳을 알아봐서 이곳을 떠나게 해야겠다.

나도 마음은 아프지만 이해해 주겠지.

계속 집에 있으면 이런 우울한 분위기는 도무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게 로드리고나 헤나로를 위해서도 좋아.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이건 가장으로서 해야 하는 결단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낸시는 성실하니까 몸이 좀 불편하더라도 다른 곳에 가서 금세 적응할 테지.

이곳은 그 아이에게도 좋지 못한 기억이 생겨 버렸으니 그편이 모두에게 좋은 거야.

그리핀은 사람을 불러 이웃 영지나 조금 더 떨어져 있는 곳에 낸시만한 일하는 아이가 필요한 집을 수소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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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토 노인은 대충 만들어진 목재 감옥 속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이나 이곳에 있는 것일까?

아니, 이곳을 빠져 나갈 수는 있을까?

그날 밤의 곡예를 떠올려 봤다.

열심히 공중을 비산하고 다시 그의 손에 안착하고 새로운 힘을 받은 채 다시 공중으로 떠오르던 저글링.

사람들은 환호했다.

아이들은 박수를 쳤고,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런 환호를 다시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노인을 흥분시켰다.

아직 내가 사람들이 이리도 좋아하는 재주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젊은 날로 돌아간 것 같은 환상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 순간만큼은 라몬이 고마울 정도였다.

하지만 환상은 결국 깨지게 마련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공연이 전부 끝나고 신세지는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망가진 물품들과 뜯겨져 나간 상자.

엉망이 되어 버린 소녀.

라몬...?

대체 무슨 짓을...

그는 어느새 감옥에 갇혀 버렸다.

그에게 환호하던 사람들은 돌변해서 침을 뱉었고, 욕설을 퍼부었다.

자신의 마지막이 그리 행복한 장면은 아닐 거라는 사실은 그도 익히 짐작해 왔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마지막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포션을 달라고 하는 소년에게 그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떠나 버렸다.

라몬이 저질러 잘못을 무마했던 포션은 그와 함게 떠나버리고, 이제 빈손으로 남은 노인이 그 목숨으로 그 속죄를 해야 한다.

그는 죽음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매일같이 주어지는 식사는 말끔히 먹어 치웠다.

밤이 되면 찬바람이 불었지만 노숙에는 익숙해서 그런지 아니면 누군가 던져준 모포 때문인지 좀처럼 몸이 축나지는 않았다.

낮에는 마을 아이들이 노인을 구경하러 와서는 막대기로 그를 찔러 보기도 했다.

하지만 딱히 심술궂은 짓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밖을 내다보는 그를 잠시 찔러보고는 다시 멀어질 뿐이었다.

돌을 던지지도 않았고, 어른들처럼 욕설을 퍼붓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곡예는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자는 것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과거를 추억하는 것뿐이었다.

그 시간은 그리 유익한 것이 되지 못했다.

라몬을 원망하거나 자기 삶을 후회했다.

그것은 고통스러웠다.

간혹 눈물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은 어김없이 그에게 뭔가를 하게 강요했다.

그러지 않으면 시간은 절대로 흐르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를 추억했다.

그것은 원망이나 후회보다 훨씬 덜 고통스러웠다.

오히려 과거에 느꼈던 기뻤던 감정을 고스란히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의 추억은 그의 현실을 바꿔주지는 못했다.

그는 여전히 감옥 안이었고, 죽음을 혹은 그보다는 조금 덜한 다른 형태의 형별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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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어찌된 일인가? 훈련에 건성이군?”

황혼의 기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의욕이 나질 않는군요.”

“의욕? 그것 참 이상하군. 자네가 보여준 요 며칠간의 의욕은 꽤나 대단했는데...”

“원래 그런 것은 쉽사리 꺾이게 마련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활활 타오를 것 같아도 어느 날 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어져 버리죠. 이상할 건 조금도 없어요.”

로드리고는 더 이상 깊게 이야기하기 싫은지 여기서 대화를 끊으려고 했다.

하지만 황혼의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일반적인 견해일 뿐이야. 그리고 자네가 지금 하려는 일은 결코 일반적인 일이 아니네. 이렇게 설렁설렁 해버리면 자네는 한 달이 지나도 원하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없어.”

“그래도 당신이 해주어야 하지 않나요?! 당신은 제게 약속했으니까!”

“나는 분명히 약속했네. 그래서 이렇게 문제를 지적하고 그걸 해결하려는 걸세. 하지만 자네가 비협조적이라면 그건 내가 아니라 신이라도 불가능 할 거야.”

“......”

“말해보게. 마음이 불편하다면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면 되는 거야. 뭘 걱정하나? 자네가 하는 모든 말은 나만 알고 있을 뿐인데 말이야. 자네의 마음에 혼잣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로드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죠.”

“뭐가 말인가?”

“당신 앞에서는 제대로 숨길 수 없으니까요. 서슴없이 저를 몰아치고,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까지 끄집어내서 저를 힘들게 하지 않습니까?!”

“그래. 분명히 그랬지. 하지만 그래서 자넨 예전보다 성장하지 않았나?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어.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네. 그럼에도 나는 말하고 싶다네.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야. 나는 자네를 도와줄 수 있네. 단순히 검술의 경지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성장을 말이야.”

“후우~...모르겠습니다.”

“어서. 주저하는 만큼 한 달 뒤의 자네도 그만큼 더뎌지는 거야.”

“좋습니다. 오늘 낸시가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로드리고는 그렇게 오늘 자신이 보았던 일을 황혼의 기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차분히 그의 말을 들었다.

모두 듣고 난 후에 황혼의 기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뭔가를 기대했던 로드리고는 기다리다 지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까? 해결을 내주셔야죠.”

“해결이라니? 그런 것은 없어. 나는 그저 내가 생각했던 것을 자네에게 말할 뿐이지.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라네. 그리고 이번 일이 바로 내가 모르는 부분에 해당하는 것 같군.”

“예?”

“잘 모르겠네. 소녀의 마음이란...연심이라면 좀 알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나도 쉽사리 어떻다 말하기가 그렇군.”

“정말...뭐 좋습니다. 그냥 수행이나 하죠.”

하지만 황혼의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네. 자네가 직접 나가서 해결하고 오게. 이곳 검의 신전에 쳐 박혀 있지 말고 말이야.”

“뭐라고요?!”

“어차피 자네는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한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빠른 시일 내에 낸시라는 소녀와 자네 사이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아. 뭔가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나도 단편적인 부분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단 말이야. 자네가 직접 어떻게든 해보게.”

“싫습니다! 그냥 수행이나 하죠!”

“또 이러는 군. 회피는 성장을 방해하네. 직접 직면하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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