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4 어두워지는 밤, 밝아오는 새벽 =========================================================================
쾅! 쾅!
험한 발길질이 사정없이 이어진다.
문이 크게 흔들렸다.
아직도 용케 견디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엘가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가슴 설레는 기대감도 차오른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 아이가 올지도 몰라.
내가 곤란할 때 날 구해주는 기사님처럼 말이야.
스스로도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도 근거 없는 희망일 뿐이다.
아마 어제의 만남이 마지막이었을 텐데...
하지만 그래도...
“엘가 이 개년아! 빨리 문 안 열어?! 너 내가 들어가면 아주 쥐어 터질 줄 알아?! 오늘밤 눈탱이 파랗게 돼서 실실대고 싶냐?”
험악한 목소리가 고래고래 울려 퍼졌다.
“이봐, 한스 무슨 일이야?”
지나가는 누군가가 한스가 하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이렇게나 소란을 떨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빈민가가라고 해도 소란에는 민감하다.
“알거 없어! 가던 길이나 마저 가라고! 나는 저년한테 빚을 받을 것이 있어서 이러는 것뿐이니까. 아주 합당한 빚이란 말이야. 나에겐 권리가 있지.”
“하하! 무슨 헛소리야? 어린애도 믿지 않겠다. 빚이라면 네놈한테 있겠지. 너 매번 공짜로 엘가하고 하잖아? 안 그래? 이봐, 한스 우리 같은 인생도 지킬 건 있는 거야. 엘가 그만 괴롭히고 집이나 가라고. 창녀 구멍 값이나 떼먹으면서 그래봤자 모양새가 영 아니야.”
한스를 비난하는 투가 역력했다.
자연스레 한스의 대답도 거칠어진다.
“핫산! 너나 닥치고 꺼져버려! 배에 구멍 나기 싫으면!”
“뭐라고?! 이 새끼가 정말?! 누가 너 따위를 겁낼까봐?! 힘없는 여자들 등골이나 빼먹는 새끼가 입만 살았군. 어디 내 배에 구멍 낼 수 있으면 내봐.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짜악~! 짝!
뺨을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다시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그만 둬. 누가...정말 쑤신다고 했나...말 하다 보니까 흥분해서 그랬지.”
“그럼 그렇지! 한스, 네놈이 여자 패는 거하고, 어린애 때리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있냐?! 크큭! 겁쟁이 새끼! 어디 다시 한 번 그 입 놀려 보지 그래? 응? 왜 못하는데? 응?”
짝~! 짜악~!
다시 뺨을 호되게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미안해. 내가 잘못했으니까...”
“넌 사과를 그따위로 하냐?! 내가 너랑 같은 급인 줄 알아?! 씨발! 다시 말해봐! 응?! 다시 말해보라고!”
퍼억! 퍽!
“흐윽! 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
“병신새끼! 퉤!!”
곧이어 멀어져가는 걸음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엘가는 숨죽인 채 밖의 동태를 살폈다.
이대로 해결되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한스는 떠난 것일까?
하지만 멀어져간 소리는 핫산이었나 보다.
한스가 문틈으로 작게 속삭이듯 말한다.
“씨발! 엘가, 너 때문에 다쳤잖아?! 개썅년! 빨리 문 안 열어?! 씨발...이 씨발...핫산한테 맞은 거 다 네년 때문이잖아?! 문 빨리 열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멍청한 년!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거야? 내가 여길 떠날 것 같아?! 네년 나올 때까지 절대로 안 가! 방금 핫산한테 얻어맞은 것까지 톡톡히 받아낼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존나 아파...씨발...코피 나잖아...젠장...나중에 성공하면 핫산 새끼도 가만 안 놔둬...미친 새끼...내가 내 빚 받겠다는데 괜히 지랄이야. 그래봤자 이런 곳에서 막노동이나 해대는 새끼가! 나중에 그 새끼 술 취해서 비틀거릴 때 반드시 뒤에서 찔러 버릴 테니까...씨발...그때도 잘난 체 할 수 있나 보자. 개새끼! 땅바닥을 기면서 살려달라고 암만 빌어도 소용없어! 내가 그때도 봐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단 말이야!”
“도..돈 없어. 그 아이도 더 이상 여기 없고. 그러니까 돌아가 줘.”
엘가가 조그맣게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스가 물러나진 않는다.
“헛소리! 내가 다 알아! 내가 들어가서 찾아내면 어쩔래?! 응?! 돈 나오면 앞으로 네가 구멍으로 벌어들이는 돈 전부 내가 갖는다?! 씨발년! 누굴 호구로 아나?! 빨리 열어. 문짝 부숴버린다?! 어차피 핫산 새끼 멀리 갔거든?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구! 내가 못할 것 같아?! 응?! 넌 내가 핫산 새끼 무서워하는 줄 알지? 전혀 아니거든! 그런 새끼 아무것도 아니야. 괜히 일 커지는 거 싫어서 내가 맞아준 거니까...씨발...빨리 좀 열어. 응?! 진짜 확 부숴버린다니까?! 너 같은 년 누가 신경이나 쓸 것 같아?! 핫산 새끼도 어쩌다보니 끼어들었을 뿐이지 금방 가버렸잖아? 애초에 네년 목숨 따위 전부 관심도 없단 말이야!”
그 후로도 한참동안 한스는 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문을 큰 소리 나게 두드리지는 않는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더 이상 핫산 같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슬슬 저녁이 가까워졌을 때, 한스는 온갖 욕설을 퍼부은 후에 말했다.
“개년아 잘 들어! 오늘도 괜찮은 판이 벌어져서 이만 가지만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아무튼 내가 너한테 받을 돈 존나 많으니까 함부로 돈 쓰지 말고 전부 모아놓으라고! 어제 저녁에 내가 끼지 못했던 판에선 보나마나 엄청나게 내가 벌었을 텐데 너하고 그 건방진 애새끼 때문에 끼어보지도 못했어. 그것까지 전부 값으로 치러서 줘야 해! 알고 있어?! 나는 반드시 받아낸다! 오늘 저녁때 게으름 피우지 말고, 존나 사내새끼들 막대기 빨아주고 많이 벌어라. 내일 왔을 때, 맘에 들만큼 없으면 쥐어터질 테니까! 젠장...그리고 씨발...내 마누라도 조만간 몸 팔게 할 거니까 소문도 좀 내놓고. 알겠냐? 그게...씨발 내 입으로 소문내긴 좀 그러니까...네가 알아서 해. 알겠어?! 대답 안하지?!”
그가 문을 쾅 하고 강하게 발로 찬다.
하지만 여전히 엘가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심정의 변화가 일어난 건지 갑자기 한스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바뀐다.
“야! 엘가...너 씨발...기억하냐? 우리 어렸을 때? 마누라랑 나랑 너랑 암튼 좋았잖냐? 너 몸 팔기 전까진 그게...씨발...암튼 내가 이러는 거 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그러는 거 아니야. 너도 알지? 내가 큰 판에서 몇 번만 따게 되면 빚도 전부 갚고, 이런 우중충한 곳 떠난다고! 그럼 내가 혼자 가겠냐? 응?! 내가 그렇게 의리 없는 새끼 아니거든. 너도 당연히 데려가지. 아까 겁줘서 미안한데 이게 이번에 꽤 괜찮은 판이 많이 생겼거든. 그래서 내가 좀 조급해지니까...너도 그...뭐냐 잘 사는 사람들이 하는 말로, 그 투자라는 거 좀 해보라는 거지. 열심히 너하고, 이제 내 마누라도 이쪽 일 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구멍으로 한푼 두푼 벌어들이는 거지. 그런데 그거 암만 거기 헐게 해봤자 수입이 뻔 하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머리를 잘 써야 하거든. 나한테 네가 벌은 푼돈 주면 그게 확 대박 나서 엄청 부자 되고, 좋은 동네로 이사 가고...무슨 말인지 알겠지? 나는 다 계획이 있어. 내가 그냥 아무렇게나 사는 것처럼 보여도 전혀 그렇지 않거든. 그러니까 너도 더 이상 돈 없네 뭐네 하는 그런 거짓말 하지 말고, 그동안 모아 놓은 거 있을 테니까 나한테 전부 넘겨. 순식간에 2배, 3배 된다니까. 그리고 그 애새끼, 정말 여기 없냐? 만약에 어디 있는지 알게 되면 나한테 좀 말해봐. 그 새끼가 돈 좀 있는 거 같거든. 그럼 네가 10년 구멍 팔아야 하는 거 확 1년만 팔아도 되게 할 수 있거든. 내가 아무도 모르게 처리할 테니까 넌 걱정 말고. 뭣하면 여기로 좀 부르던가. 네가 그 새끼 살살 녹이고 있을 때, 내가 확 뒤에서 목 따버리고, 주머니 뒤지면 되니까. 시체는 고기라고 사람들 나눠주면 걸신들린 듯 처먹을 테니까 아무 문제없을 거야. 잘 생각해 봐라. 내가 또 강요는 안하지만 네가 자꾸 멍청한 선택을 하려고 하니까 잘 아는 오빠로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거지. 그럼 오늘 많이 벌어라. 내가 지나가면서 사람들한테 너 오늘 거기 촉촉하니 아주 죽여준다고 소문 내줄 테니까 평소보다 꽤 장사가 괜찮을 거야. 내일 수금하러 올 테니까 알았지?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엄밀히 말하면 다 투자지. 그러니까 괜히 오늘밤 찾아오는 새끼들한테 이상한 소리해서 나한테 뭐라 하지 않게 잘 하란 말이야. 내가 오늘 엄청 맞았는데 이건 그냥 넘어가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 그렇게 나쁜 놈 아니니까. 그런데 네가 암만 벌어도 그게 네가 나한테 진 빚에 이자밖에 안될 것 같거든. 물론, 내가 대박내면 다 변재해 줄 테니까 큰 문제는 없지만...내 마누라도 이제 곧 벌 테니까 구멍 두 개면 부자 되는 것도 금방이야. 내 도박 실력만 믿으라고. 암튼 나 간다. 오늘 장사 잘해.”
멀어져가는 걸음소리를 들으며 엘가는 테이블에 앉아 이마를 짚었다.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온다.
오늘은 이렇게 지나갔지만 내일도 괜찮으리란 법은 없다.
분명 오늘밤 도박으로 모든 돈을 전부 잃게 되겠지.
매번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이젠 안나 언니도 몸을 팔게 할 모양이다.
점점 망가져가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엘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