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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06화 (106/200)

00106  어두워지는 밤, 밝아오는 새벽  =========================================================================

“잠깐! 잠깐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알았지?! 내가 바로 가서 돈 가져올 테니까!”

아직 초저녁에 불과하지만 한스는 벌써 돈을 전부 잃은 모양이었다.

카드와 돈이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놓여있다.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은 사내들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이봐, 한스. 네놈이 어디 가서 돈을 가져온단 말이야? 이제 쫑 났어. 개평이나 좀 줄 테니까 꺼져버려. 암만 집에 가서 마누라를 패도 안 되는 건 안 돼.”

“아니야! 돈 나올 곳 있단 말이야! 금방 가서 가져온다고! 아직 늦은 것도 아니잖아?! 벌써 끝낼 셈이야?! 다음번엔 내가 분명 이긴다니까! 씨발! 여기 가만히 있어! 알았어?!”

“정말 질리지도 않는군. 그래. 그럼 좋아. 앞으로 우리끼리 세 판만 할 거니까 그때까지 가서 돈 가져오면 다시 끼워줄게. 하지만 그 이상은 싫어. 우리라고 여기서 너만 기다릴 수는 없잖아? 솔직히 우린 좀 더 큰 판으로 갈 수 있는데도 너 생각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작은 판만 하고 있는 거야.”

“맞아! 맞아! 이거 우리가 무슨 그 뭐시냐? 자선...사업가? 맞나? 암튼 그런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렇게 선량하게 살아도 되는 거야? 난 정말 모르겠다니까.”

“한스, 너 임마 잊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한테 빚도 있다는 거 알고 있냐? 난 이제 그것 좀 갚았으면 싶다. 계속 한번 크게 따면 갚는다고 하는데 그게 대체 언제야? 너 우리 말고 다른 애들한테도 좀 꾸었던 것 같던데...이러다 수틀려버린 새끼들한테 훅 가는 거 아니야?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냐고? 그냥 돈 떼이면 씨발...네 애새끼하고 마누라 가만 안 놔둬. 어떻게든 돈 받아낼 테니까 명심하라고.”

“그런 거 꼭 갚을 테니까 걱정 마! 내가 운 좋은 날 따기 시작하면 금방이야! 금방! 아무튼 금방 다녀올 테니까 패 빨리 돌리지 말고, 천천히 해. 천천히. 나 주려고 했던 개평으로 술이라도 시켜서 목도 축이고. 알았지? 빨리 돌리지 말고 천천히!”

그렇게 한스는 방을 나가버렸다.

그와 동시에 한 사내가 쿡쿡 웃기 시작하자 다른 사내들도 따라 웃는다.

“크크큭! 저 병신 새끼! 호구가 따로 없다니까. 매번 가져오는 게 푼돈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가져다 상납해주니까 편하긴 하네.”

“그래도 이렇게 푼돈 벌어봤자 뭐한다고? 이제 슬슬 정리해야지.”

“그럴까? 마누라하고 애새끼들까지 걸게 하고 전부 쓸어버리면 인신매매로 좀 벌을 수 있을 테니까.”

“야! 야! 깔끔하게 해야지! 한스 그 새끼도 같이 걸게 해서 멀리 팔아버리자고. 괜히 따라다니면 귀찮으니까. 게다가 애새끼들보단 건장한 새끼가 돈도 더 받을 거 아니야?”

“한스는 병신이라 비싸겐 못 받아.”

“그래도 사지는 멀쩡하잖아? 뭐 팔 때, 대가리 속까지 살피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말 몇 마디 하면 자기가 병신이라고 전부 고해바치는 거랑 뭐가 달라?”

“그럼 말 못하게 하면 되잖아?”

“어떻게?”

사내는 품에서 슬쩍 대거를 꺼내들며 말했다.

“혓바닥 없으면 보통 말은 못하지.”

그때, 한스는 열심히 달렸다.

씨발...존나 머네.

엘가, 이 개 같은 년...집이 왜 이렇게 먼 거야?!

돌아가기 전에 판 끝내면 어떻게 하냐고?!

나는 가족하고 곁다리로 엘가년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대체 하는 게 뭐가 있어?!

오늘은 초장에 운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막판엔 틀림없이 운이 따라주는 날이란 말이야!

이런 날을 그냥 보내면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지.

턱까지 숨이 차오르는데도 쉬지 않고 한스는 달렸다.

엘가년, 아까 좋게 말해놨으니까 순순히 돈 건네줄까?

아니면 씨발...가뜩이나 힘든데 또 쥐어 패야 하나?

그럴 시간 있을까?

아...젠장...신이시여 선량한 저를 위해서 오늘 엘가가 순순히 돈을 건네주게 도와주세요.

저는 별로 저 스스로를 위해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 가족하고, 조금 친분이 있는 엘가년을 위해서 그런 것이니까...

게다가 그년은 저한테 빚을 진 것이니까 제가 돈을 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당하지 않습니까?

돈을 갚지 않으려고 하면 폭력을 휘둘러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의 뜻만 바랄 뿐입니다.

오늘밤 대박나면 집에 맛있는 것도 좀 사들고 가고, 마누라한테 따뜻한 말도 해주면서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마누라한테 몸 팔라고 하는 것도 한결 수월해 질 테니까,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이번 일만 잘 되면 신전에 조금 기부도 하겠습니다.

그는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신이 기도를 들어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량한 신이라면 기도를 들어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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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빨리 일 보고 오세요. 내일 목발 받으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저녁 식사 후에 낸시는 로드리고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바쁘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바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난처했다.

아...어디 가 있지?

딱히 갈만한 곳이 없다.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로드리고는 지나가는 나이 지긋한 남자에게 물었다.

“아저씨, 여기 정보 길드 어디 있어요?”

남자는 대충 손으로 방향만 가르쳐주고 가버렸다.

로드리고는 그렇게 몇 번에 걸쳐 겨우 정보길드를 찾아낼 수 있었다.

딱 봐도 그다지 훌륭한 건물은 아니었지만 곧 무너지게 생긴 건물도 아니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 있던 사내 몇 명이 시선을 준다.

그 중 하나가 꾸물거리며 일어서서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심부름 왔어?”

“아니요. 좀 알아볼 게 있어서요. 의뢰요.”

남자는 찬찬히 로드리고를 살폈다.

입고 있는 옷이 안전 허당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잣집 아이도 아니다.

이런 애가 대체 뭘 의뢰한단 말일까?

잃어버린 개라도 찾아달라는 걸까?

그건 용병길드에 의뢰하는 편이 더 싸게 먹힐 텐데...

“뭔데?”

“절름발이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주세요.”

“뭘 치료해?”

“절름발이요. 이렇게 절뚝이며 걷는 애들이요.”

로드리고는 직접 흉내를 내며 보여주었다.

일반적인 절름발이보다 훨씬 휘청거렸지만 의미는 전달된 것 같았다.

“됐다. 됐어. 그만 해도 되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마법사나 의사 같은 거 말이지?”

“그렇죠. 너무 먼데는 말고요.”

“증상이 어느 정도 인데? 네가 보여준 것만큼 절어?”

“글쎄요. 항상 안고 다녀서...”

로드리고의 대답에 사내는 생각했다.

대체 뭐하는 놈이야?

왜 항상 안고 다니는데?

“어느 정도 인지 알아야 적당한 사람을 찾아주지. 너무 유명한 사람 소개시켜주면 비용을 감당도 못할걸. 뭔가 희귀병이나 그런 거면 연구차원에서 무료로 해줄지도 모르지만 절름발이는 어떻게 봐도 희귀병은 아니잖아.”

“흐음...그건 생각을 안했네요. 하지만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거죠?”

“글쎄. 그건 조사해봐야 알지. 그런데 너 돈은 있냐?”

“의뢰비 말이에요?”

“그렇지. 우리도 땅 파서 먹고 사는 건 아니니까. 세상일은 전부 돈이지.”

“얼마나 들어요?”

“1골드.”

“뭐가 그렇게 비싸요?!”

“넌 어린애라 싸게 해주는 거야. 임마!”

“확실해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자 사내는 가슴을 치며 말했다.

“됐다! 됐어! 나가! 1골드 안 벌고 만다.”

“그냥 물어본 것뿐이잖아요. 그냥 사람 이름 몇 개 가르쳐 주는 건데 너무 비싸니까...”

“그 이름을 추리는 게 어려운 작업이야. 암튼 지금 돈이 없으면 나중에 다시 들려. 내 이름이 다니엘이니까 다음에도 날 찾으면 돼. 다시 말하지만 나니까 1골드에 해주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도 가격 물어봐도 되요?”

“너 정말 얄미운 놈이구나! 한 대 때려도 되냐?”

“절대 안 되죠.”

“암튼 잘 봐! 야 거기 있는 놈들! 내가 꼬마가 절름발이 고치는 사람 찾아달라는 의뢰를 1골드 받고 해준다고 했는데 이게 비싼 거냐 싼 거냐?!”

“뭐야? 그거, 조사비도 안 나오겠는데? 하하하!”

“이거야말로 자선사업이네. 하여간 다니엘은 무르다니까.”

“봤지?”

다니엘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로드리고는 한번 어깨를 으쓱거렸을 뿐이다.

“암튼 다음엔 다리 저는 애도 데려올 테니까 직접 보고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을 찾아가야 하는지 알려 주세요.”

“바로는 안 돼. 나도 조사할 시간은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다음번엔 반드시 돈은 가져와야해. 그렇지 않으면 길드 규칙상 일에 착수할 수 없다고.”

“알았어요. 알았어. 생각보다 돈이 많이 깨지네...젠장...”

“넌 임마, 엄청 싸게 해줬는데 고맙다고도 안하냐?”

“아직 아무것도 안했잖아요. 나중에 진짜 뭔가 하게 되면 그때 충분히 고맙다고 할 테니까 지금은 보채지 말아요.”

“으으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 대 때려도 되냐?!”

“머리 정말 나쁘네. 안된다고 말했잖아요!”

로드리고의 대답에 주변에 앉아있던 사내들이 깔깔대며 웃어댄다.

다니엘은 어서 나가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만 가라. 정말 때릴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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