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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07화 (107/200)

00107  어두워지는 밤, 밝아오는 새벽  =========================================================================

“하악...하악...”

가뿐 호흡과 신음이 섞여 나온다.

침대는 삐걱이는 소리를 쉬지 않고 내뱉고, 은은한 어둠은 두 남녀를 부드럽게 안아준다.

흐릿한 불빛이 서로의 알몸을 비추고, 서늘한 손길은 따스한 상대방의 체온을 갈구한다.

“으...으으...엘가...엘가....아...아....”

사내는 신음 중에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지척에서 품에 안겨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왜 나를 부르는 것일까?

엘가는 행위 중에 떠오르는 쓸데없는 의문을 애써 머리 저편에 묻어두고, 사내의 몸짓에 맞추어 움직여준다.

사내의 움직임이 지금까지보다 더욱 거칠게 변한다.

엘가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격정을 향해 치달렸다.

엘가는 곧 있으면 사내가 자신의 안에 무언가를 강하게 쏟아낼 것을 알 수 있었다.

절대로 놓지 않을 것처럼 사내의 강한 팔이 그녀를 압박해 온다.

그의 물건이 그녀의 안에서 힘껏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는 강하게 그녀의 깊숙한 곳에 뜨거운 액체를 뿜어냈다.

사내는 움직임을 멈추고 한동안 몸을 부르르 떨며 잠자코 있었다.

엘가는 사내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모든 행위가 끝나고 이 시간이 되면 그녀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굳이 몸을 움직일 필요는 없다.

그저 상대방이 다시 기운을 차릴 시간을 기다려 주면 될 뿐이다.

젊은 사내는 그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른 편이지만 나이가 꽤 있으면 있을수록 이런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편하다면 편한 시간이다.

자투리 시간임에는 분명하지만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녀는 그래서 항상 이 시간에는 상대방의 호흡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오래라면 오랜 시간인 3년.

그 동안 그녀는 꽤 만은 사내들의 숨소리를 들어왔다.

그래봤자 숨소리일 뿐이지만 그녀는 그 소리가 미세하게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걸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녀의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녀는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딱히 어떤 숨소리는 더 훌륭하고 어떤 숨소리는 형편없다는 평가를 내리는 건 아니다.

그저 귀를 기울일 뿐이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편한 잠시의 시간동안 그녀는 그 일을 하기로 정했을 뿐이다.

차츰 거칠던 숨소리가 잠잠하게 변해가면 그녀는 곧 사내가 몸을 일으킬 거란 사실을 안다.

그리고 보통은 묻는다.

‘좋았어?’나 ‘어때 굉장하지?’ 같은 질문들.

그들은 엘가에게서 뭔가를 갈구한다.

그건 그녀가 창녀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모든 사내들이 여자와 행위를 하고 나면 보통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의 항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반복되는 일이다.

그러면 엘가는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줄 뿐이다.

그것은 돈을 매개로 한 엘가와 사내들 간의 거래다.

그녀는 사내들에게 그들의 가치가 아직 훌륭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혹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녀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해준다.

그것이 정해진 룰이다.

아무리 사내의 행위가 미숙하고 시원치 않아도 사내의 자존심을 무너뜨려 좋을 이유가 없다.

이번 사내도 동일하게 물었다.

“좋았지?”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사내의 목소리에 엘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준다.

“응. 역시 릭이야.”

상냥하고 나른한 그녀의 목소리에 릭은 다시 그녀를 힘주어 껴안았다.

사내는 입술로 엘가의 가슴을 한입 베어 물고는 웃었다.

그 울림을 느끼며 엘가는 사내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사내는 그 손길이 좋은지 눈을 감고 그대로 머리를 그녀의 가슴에 누인다.

귓가로 엘가의 심장 고동이 울려온다.

그것은 어린 시절...아니 그보다 훨씬 더 아득한 언젠가 들어보았던 포근한 음률을 담고 있다.

그의 숨소리는 이미 평온하게 변한 이후이지만 한층 더 소리를 죽이며 그는 귀에 신경을 집중한다.

사내는 한참동안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방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이라곤 엘가의 손길 뿐이다.

마침내 사내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머리는 엘가의 가슴 위에 있었다.

“엘가. 이대로 좋아?”

“뭐가?”

그녀는 여전히 손길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너 말이야. 이대로 계속 몸이나 팔면서 살 거냐고.”

그녀의 손길이 멈춘다.

“그럼? 방법이 없는걸. 나는 이미 3년 전 결정한 거야. 그 이후의 일까지 전부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어.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똑같이 할 걸. 그렇다면 후회 같은 거 해봤자 소용없어.”

“그 말이 아니라...”

“됐어. 릭. 기분 상한 거 아니야. 그냥 이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한 것뿐이야.”

“내 말은 너 결혼 같은 거 안 할 거냐는 의미라고!”

“결혼?”

엘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늘은 농담이 과한데? 될 턱이 없잖아? 나 같은 창녀를 누가 데리고 살겠어? 몇 명하고 몸을 섞었는지 나도 잊었는 걸? 아직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만 해도 운이 좋았어.”

릭은 엘가의 가슴에서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어둠속에 희미하게 빛나는 불빛에 의지해 그녀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내...내가 데리고 살..거야....너만...좋다면...”

순간 엘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릭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지금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스스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엘가는 이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릭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한다.

“널 좋아해. 그냥 돈이 생기면 욕구나 분출하러 여기 오는 게 아니라고. 나는...정말로...널 좋아해서...”

엘가는 가슴이 조금 아파오는 걸 느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녀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온다.

감동이나 기쁨 같은 그런 감정은 아니다.

그녀는 그런 감정이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구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건 무슨 감정일까?

릭은 좋은 남자다.

가끔씩 찾아와서 엘가와 몸을 섞고, 절대로 돈을 떼먹지도 않는다.

그리고 손찌검을 한 적도 없다.

항상 성실하게 일거리를 찾아다니고, 도둑질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건 내게 찾아온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떠나 내가 소망하는 작고, 따스하고,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기회.

거리에서 자주 보아왔던 아이들.

내게도 그런 아이들이 생기는 거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릭이라면 좋은 아버지가 되어 줄 것만 같았다.

도박 같은 것에 손을 대지도 않고, 성실하게 엘가 자신과 그녀가 낳게 되는 둘 사이의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겠지.

그녀의 가슴이 조금 두근거린다.

얼굴은 옅게 홍조가 어렸다.

입가에 자리 잡는 미소.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곧바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건 그녀가 릭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몸을 섞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그런 일을 해서 지난 3년간을 살아왔다.

누군가 딱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도 않았다.

하지만 릭은 나를 견딜 수 있을까?

그것이 그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었다.

엘가는 많은 사내들을 보아왔다.

그리고 몸도 섞었다.

처음엔 점잖은 모습으로 시작해도 나중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 사내들이지 않던가?

지금까지 보아온 릭의 모습이 정말 그의 전부일까?

그가 술을 마시고 들어왔을 때, 어떤 모습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한동안 조금도 예정에 없었던 기회가 그녀는 무서웠다.

하지만 어쩌면 릭이 내게 있어 정의의 기사님일지도 몰라.

비록 내가 상상해왔던 기사들처럼 멋진 검과 갑옷은 없어도 말이야.

“엘가! 거짓말이 아니야! 정말로 너를 사랑해. 그동안 열심히 모아서 돈도 좀 있고, 원한다면 여기를 떠날 수 있을 거야. 우리 새로 시작하자. 응?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말이야.”

릭이 엘가의 손을 잡고 묻는다.

엘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지 못하는 미래 때문에 지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앞으로 릭을 사랑하자.

릭은 엘가를 꼭 껴안고 말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정말 행복하게 해줄게.”

하지만 그때, 거칠게 누군가 문을 두드려댔다.

“씨발! 야! 엘가 빨리 나와 봐! 돈 얼마 벌었어?! 응? 지금 급하다고! 얼른 돈 갖고 나와 보라고!”

엘가는 서둘러 옷을 걸쳤지만 대꾸는 하지 않았다.

릭도 자기 옷을 입으며 밖을 향해 외쳤다.

“어떤 새끼야?!”

“뭐야? 손님 있어? 그럼 돈도 있겠네? 그렇지? 야! 엘가 빚 갚아! 응? 빚 말이야. 나 빨리 가봐야 하니까 문 열고 돈이나 빨리 내놔. 그럼 금방 갈 테니까.”

릭은 엘가를 향해 시선을 주며 묻는다.

“저거 한스야? 무슨 돈을 이야기하는 거야?”

엘가는 자초지종을 대충 설명했다.

그 말을 듣고 릭은 화가 났는지 소리쳤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내가 가만 놔두지 않겠어! 다시는 여기서 행패 부릴 수 없게 할 테니까 엘가 너는 아무 걱정 말라고!”

릭이 문을 열려고 하자 엘가는 그를 막아서며 말했다.

“그러지 마. 그냥 이대로 좀 있으면 갈 거야.”

“그래선 끝이 없어. 이참에 내가 혼을 내줘야 정신을 차리지!”

“그냥 내버려 둬. 제발. 누가 다치는 건 싫으니까.”

“내가 저런 놈한테 다칠 것 같아서 그래? 걱정 마. 조금 겁 좀 주면 금방 꼬리 말고 도망갈 거야. 한스가 겁쟁이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릭은 그렇게 엘가를 밀어내고 기어코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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