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리고 사가-108화 (108/200)

00108  어두워지는 밤, 밝아오는 새벽  =========================================================================

쾅쾅!

한스는 여전히 문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망할 년! 왜 안 열고 지랄이야?!

안에 있는 어떤 놈팽이 새끼 믿고 이러는 거야?!

씨발...

한스는 순간 오늘 낮에 있었던 핫산과의 일이 생각났다.

또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저년은 내게 진 빚을 갚지 않으려고 할 테지.

그렇게는 안 된다.

그건 내 종자돈이다.

내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해.

그는 두리번거렸다.

마침 주먹만한 돌맹이 하나가 눈에 띠었다.

그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감돈다.

얼른 오른손에 쥐었다.

만약 핫산같은 새끼가 튀어나오면 갈겨 버리면 되는 거야.

대갈빡에 한 대 있는 힘껏 박으면 순식간이지.

그러고도 종알댈 수 있으려고?

이참에 내 무서움을 보여줘야 찍소리도 못하지.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귀찮게 하면 훅 가는 거야. 씨발...

이 개년은 왜 이리 안 여는 거야?!

“야! 야!!! 씨발!!!”

한스는 다시 한 번 고함을 쳤다.

짜증스럽고 위협적인 목소리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덜컥 열렸다.

하지만 튀어나온 건 엘가가 아니었다.

한스는 눈을 부라리며 쳐다본다.

릭이다.

핫산처럼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물건이나 배달해주는 병신 같은 새끼다.

하루 종일 해봤자 얼마나 번다고...

그런 일을 하느니 나처럼 한방을 노리는 것이 훨씬 낫다.

“한스 이 새끼! 너 뭐하는 거야?! 빨리 안 꺼져?! 죽어 볼래?!”

평소 얌전한 편이던 릭이 버럭버럭 고함을 치자 한스는 조금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돈을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

초장에 잃은 건 틀림없이 막장에 만회하게 마련이다.

엄청난 운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걸 포기할 수는 없다.

한스는 살짝 입술을 비틀며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뭐야?! 씨발! 나는 엘가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너나 꺼져!”

한스는 릭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릭은 그런 한스를 힘껏 밀며 막아선다.

“누구 마음대로 들어가?! 내 말 못 들었어?! 그만 돌아가라고! 엘가는 너 같은 새끼한테 조금도 빚 같은 것 없으니까 말이야. 이게 마지막 경고야! 다음번엔 말로 안 끝내! 입안에 옥수수 전부 뱉어내고 싶지 않으면 꺼져!”

한스는 릭을 노려봤다.

릭도 마찬가지로 한스를 노려본다.

한스는 입술이 마르는 걸 느꼈다.

잘 몰랐는데 릭이 노려보자 조금 무섭다.

씨발...씨발...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리며 오른손에 쥐고 있는 돌맹이에 힘을 주었다.

할 수 있을까?

씨발...실패하면 존나 얻어터질지도 모르는데...

막상 하려니까 겁이 났다.

하지만 이렇게 물러나면 내 돈은...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은 착실하게 지나가고 있다.

어쩌면 그가 돈을 얻어 달려가도 이미 그들은 판을 끝내고 가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건 안 된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씨발...어차피 한방이야!

새끼가 날 치면 나도 같이 치면 되지!

까짓거 내가 못할까봐!?

나 한스야!

나 한스라구!!!

그때 운이 좋게도 기회가 왔다.

역시 막장 운이 따르고 있다.

엘가가 릭에게 말을 걸었다.

“그만 해. 릭. 이제 그만 들어와. 응? 문 닫아 버리면 되니까. 괜히 싸우지 마. 이러다간 이웃사람들 몰려올 거야.”

“엘가 너는 가만있어. 내가 해결할 테니까. 다시는 못 오게 본 떼를 보여줘야 한다구. 이제 이건 너 혼자만의 일이 아니야. 내가 내 여자도 못 지킬 것 같아? 금방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안에서 조금 쉬고 있어.”

릭이 엘가에게 말하며 고개를 돌린 것이다.

놈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온다.

한스는 순식간에 오른손에 쥔 돌을 릭의 뒤통수에 박아 넣었다.

퍼억!

제대로 들어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누군가의 뒤통수에 돌을 박아 넣는 건 처음이었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았다.

잘 안 될까봐 걱정했던 스스로가 바보처럼 생각될 정도다.

릭의 몸이 그대로 넘어가 버린다.

쿵!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 그의 몸이 커다란 소리를 냈다.

그제야 릭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엘가의 모습이 보였다.

엘가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릭이 쓰러진 거지?

그녀는 시선을 들어 문 앞에 서있는 한스를 바라보았다.

한스는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크..크큭...날 무시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씨발...봤지? 응?! 봤지?! 흥! 이 개새끼! 일어나 봐라! 응?! 또 나한테 욕해보란 말이야?! 창녀 앞에서 폼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제야 알았냐? 새끼가!!! 이 병신 새끼!!! 뭐라 지랄해보란 말이야!? 뭐가 네 여자냐?! 응?! 한번 박으면 전부 자기 여잔 줄 아는 거야 뭐야?! 거지같은 게 좇같은 소리만 해대고 있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릭을 있는 힘껏 발길질 해대며 한스가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엘가가 한스를 밀어내며 말했다.

“그..그만 둬! 돈이라면 줄 테니까 이제 그만 하란 말이야!!!”

한스는 숨을 몰아쉬며 발길질을 멈추었다.

그리곤 곧바로 엘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는 말했다.

“그래! 돈! 이년아 돈 어딨어?! 응?! 빨리 내놔!!! 급하단 말이야!!! 오늘은 반드시 딴다고!!!”

엘가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눈에서는 쉬지 않고 눈물이 흘러 나왔다.

한스가 손으로 사정없이 그녀의 뺨을 내려쳤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릭은 어떻게 된 거지?

왜 움직이지 않을까?

대체 한스는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녀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릭을 바라보았다.

그가 조금 전 그녀에게 속삭인 부드러운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데...

험악한 욕설이 들리고 곧이어 한스의 주먹이 엘가의 얼굴을 강타했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정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곤 머리가 몹시 어지러웠다.

몸에 조금도 기운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이래선 안 되는데...

릭...

릭.....

눈에 힘을 주어보지만 의식이 멀어져 간다.

“이년아 돈 어디있냐구!?”

한스의 외침도 그녀의 의식을 잡아둘 수는 없었다.

소란스런 소리 때문인지 이웃에 사는 몇 명이 기웃거린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소리쳤다.

“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

“뭐야? 무슨 일인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스는 돈을 찾는 것을 멈추었다.

그제야 다시 두려움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모여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는 사람들이 릭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사람들을 거칠게 밀치며 빠져나갔다.

누군가 뒤에서 그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미친 듯이 뛰어갈 뿐이었다.

젠장...젠장...

뛰다가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다시 일어나 뛰었다.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내 잘못이 아니야.

엘가가 돈을 안주니까...

괜히 릭 새끼가 잘난체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라고...

돈만 받았으면 조용히 돌아갔을 텐데...

나는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이야!!!

막판은 분명 운이 좋았을 텐데!!!

씨발...씨발...

호흡이 거칠다.

미친 듯이 가슴이 오르내렸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대체 어디를 가는지 알 수 없다.

그냥 지금 있는 곳에서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긴 어딜까?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가는 걸까?

그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어디선가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건 뭐지?

엘가의 비명과 닮아있는데?

왜 비명 따윌 지르는 거야?!

아니..아니야.

어쩌면 지금서야 그때의 비명을 내 뇌리에서 인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어디인지를 살폈다.

평소엔 잘 오지 않는 거리다.

커다란 가도, 잘 차려입은 사람들.

그런데 왜 전부 나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왜 내게 손짓하는 거야?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쾅하고 뭔가에 부딪혔다.

온몸을 짖 밟는 뭔가에 순식간에 난자당한다.

그리고 뒤늦게 그의 귀에 말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는 뭔가를 말하려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소리도 내뱉지 못하고 그렇게 끝을 맺고 말았다.

다만 그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마차에서 내린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빈민가 새끼들! 왜 여기까지 기어 나와서 일을 만들어?”

“이봐, 무슨 일인가?”

“아이고! 별일 아닙니다. 거지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멈추었을 뿐입니다요. 다행히 말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았으니 염려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곧바로 출발합지요. 나으리. 으랴! 으랴!”

마차는 덜컹거리며 한스의 시체 위를 그렇게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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