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2 어두워지는 밤, 밝아오는 새벽 =========================================================================
그날 밤, 로드리고는 여관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돌아가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엘가의 집이 무척이나 불편했고, 만나러 온 그녀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시체가 두 구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어쩌면 엘가가 죽였을지도 몰랐다.
막혀있는 공간엔 역한 피 냄새가 진동했고, 공기는 무거웠다.
그는 분명히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엘가는 신체의 기능이 어느 순간 정지해 버린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스의 시체 곁에 멍하니 서있다.
간간히 오르내리는 그녀의 가슴 실루엣이 그녀가 아직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해주는 유일한 표시였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슬퍼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기뻐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떠한 감정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면 그건 누구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마른 입술에 쓸쓸히 침을 바르며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의문을 꾹꾹 눌렀다.
어찌 되었든 그는 돌아가 보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하릴없이 밤은 깊어만 갔다.
로드리고는 낸시를 생각했다.
딱히 그녀가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엇이라도 생각해야 했고, 마침 떠오른 것이 그녀였다.
답답해도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다면, 속으로 끙끙 앓으며 마음속에 뭔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낸시는 방에 홀로 남아 있다.
침대 모서리 같은 곳에 앉아 있겠지.
하염없이 방문을 쳐다보며 나를 기다고 있진 않을까?
방은 이곳처럼 어둡지 않다.
램프 하나 정도는 분명히 켜져 있을 것이다.
그건 여관비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추가 비용은 없으니까 딱히 아낄 필요도 없다.
무료한 시간에 지쳐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가 사다준 손수건이나 그녀가 원래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손에 쥐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어도 딱히 이상하진 않다.
갑자기 그 공간이 그리워졌다.
거기엔 평안과 휴식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마음껏 할 수 있다.
아무리 하찮은 말이어도 낸시는 들어줄 것이다.
간혹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라면 무시로 일관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그는 낸시가 어떻게든 반응하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노곤한 몸을 언제든 눕히고 잠을 잘 수도 있다.
돌아가고 싶다는 그의 욕구는 무척이나 커져 버렸다.
이 답답한 공간에서 도망치고 싶은 욕구와 뒤엉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시체를 두구나 여기에 남기고 혼자서 돌아가 버리는 건 역시나 마음에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한스의 시체를 그냥 내버려두고 여길 떠나는 것 때문에 마음에 걸린다하더라도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어차피 시체는 그가 하나 가져오기 전에 이미 있었지 않은가?
시체가 하나든 두 개든 그게 그거일 것 같았다.
거리낄 만한 것이 아니다.
물론, 여기에 시체가 없었고, 그가 가져온 한스의 시체가 전부였다면 그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뭔가 민폐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시체는 두 개다.
하나쯤 더 있다고 피 냄새가 딱히 더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엘가는 알아서 한스의 집으로 그걸 보내주지 않을까?
나는 여기까지 그를 데려온 것만 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전부 한 셈이다.
더 이상 개입할 필요는 없다.
그건 괜한 오지랖일 뿐이다.
가자.
어서 가자.
여기를 떠나자.
엘가는 강하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다.
내가 위로해 주려고 해도 다 공기 중에 흩어질 뿐이야.
그는 이렇듯 스스로를 두둔하며 온갖 핑계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런 그의 노력은 꽤 효과가 있었다.
왜인지 그녀에게 가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답답한 분위기 정도는 사정없이 깨어 버리고 상쾌한 공기가 있는 저 밖으로 이제는 나갈 수 있다.
그는 엘가의 곁으로 가서 살짝 그녀의 팔을 건드려 보았다.
그녀의 목이 천천히 움직였다.
어딘지 늙은 개의 게으른 움직임과 닮아 있다.
엘가는 어둠속에서 보이는 실루엣을 어림잡아 로드리고를 보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응? 왜?”
음울한 목소리에 다시금 목이 말라 왔지만 그래도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저기...이제 갈까 하고요. 밤도 늦었고.”
“뭐?”
엘가는 로드리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다시 물었다.
로드리고는 조금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만 돌아간다고 말했는데요.”
“아...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엘가는 자기 이마를 손으로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로드리고는 이쯤에서 그녀를 부축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그녀를 부축했다가는 오늘밤 안에 저 문을 나서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을 잇기가 힘들었지만 이 무거운 공기 속에 그대로 남는다고 생각하자 어떻게든 입술은 계속해서 움직여 주었다.
“이제 가야 하니까...저...이 시체는 부탁할게요. 그럼 이만...”
그가 더 이상은 모르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엘가가 한걸음 그에게 내딛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엘가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순간적으로 로드리고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말랑한 감촉이 그대로 손에 전해져 온다.
손을 막 떼어내려고 했을 때였다.
엘가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너무 아파. 텅 비어버린 것처럼 뭔가 이상해.”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손을 떼어낼 수는 없었다.
“그게...저기 자고 일어나면...좀 괜찮지 않을까요?”
그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말은 내뱉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입술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그를 옭아매었다.
“그럼 내가 자는 동안 내 옆에 있어줘.”
다시 한 번 그의 몸이 움찔 하고 만다.
“예?”
“...오늘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심정적으로는 절대로 싫었다.
시체가 두 구나 있는 집에서 하룻밤을 나고 싶지는 않다.
잠이 오겠냐?!
하지만 그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입술은 끝끝내 열리지 않았다.
엘가는 그의 손을 꼭 잡고 그를 자신의 침대로 이끌었다.
어?...어어? 하는 순간 그는 그녀의 곁에 눕고 말았다.
침대는 꽤 축축했다.
그리고 그녀의 품은 따뜻했다.
그녀는 로드리고를 꼭 껴안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오늘밤 찾아와줘서...하지만 내일은...내일은 어떻게 하지? 밤은 매일 찾아오는 거잖아? 아마 손님을 받을 수 있겠지. 그럼 괜찮을까? 아마...괜찮겠지. 내게 필요한 건 조금 따스한 체온뿐이니까. 그거면 될 거야...”
그건 로드리고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그 답을 구하는 혼잣말에 지나지 않았다.
로드리고는 결국 이 집을 떠나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엘가와 밤을 보냈고, 침대에 누워 서로의 체온은 느낄 수 있었지만 육체관계를 갖은 것은 아니었다.
로드리고는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귓가엔 규칙적인 엘가의 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소리가 슬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여관으로 도망가 버리지 않은 건 잘한 일 같았다.
잠이 든 그녀를 어둠속에서 지켜보며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엘가에겐 오늘밤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것이 꼭 나일 필요는 없었지만 아무튼 누군가가 필요한 것은 분명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날이 밝아 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밖에 몇몇이 새벽일을 나가며 나누는 대화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물건을 하역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해가 완전히 뜬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쯤 여관으로 돌아가 봐도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