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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30화 (130/200)

00130  속임수, 오해와 욕망과 질투  =========================================================================

두 노인이 다투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던 비욘느는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자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낸시였다.

그러고 보니 저 아이는 항상 로드리고와 붙어 다녔지.

그럼 결국 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가장 낫겠네.

이상한 포즈 취하는 것도 지겹고.

아무래도 제이미경이 알려 준 건 조금 미심쩍단 말이야.

세뇨르 선생의 반응만 봐도 알겠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비욘느는 낸시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낸시는 조바심을 내며 제이미경과 세뇨르 선생이 다투는 것을 보고 있다가 누군가 자기를 건드리자 흠칫 하고 놀라 쳐다보았다.

비욘느가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올리고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낸시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욘느가 낸시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끼리 조용히 나가자.”

높은 아가씨가 명령하는데 거절 할 수도 없어 낸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방을 나서자마자 비욘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일단 여기서 좀 더 떨어지자. 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면 제이미경은 자기 결백을 밝혀달라고 하면서 나를 찾으려 할 거야. 그건 귀찮으니까.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고.”

“하지만 몸싸움까지 벌이시는 걸요?”

낸시가 걱정스런 어투로 말하자 비욘느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제이미경은 강하니까 세뇨르 선생을 다치게 하진 않을 거야. 그럼 나중에 더 곤란해 질 테니까.”

“그..그래도..”

“괜찮다니까! 자! 가자!”

낸시는 그렇게 비욘느의 손길에 이끌려 목발을 짚고 절뚝이며 자리를 떠나야 했다.

비욘느는 이정도면 되었다고 생각되었는지 곧 멈추고는 낸시에게 말했다.

“그런데 너는 항상 로드리고하고 같이 다니잖아, 그렇지?”

“항상은 아니지만 자주 같이 있는 편이죠.”

“그럼 너도 검술을 익혔어?”

“검술요? 아니요. 저는 그런 거 몰라요. 몽둥이는 좀 두드려봤지만 검은 전혀요.”

낸시는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던 것을 이야기 한 것이었지만 듣는 비욘느의 입장에서는 마치 낸시 본인도 로드리고처럼 강하지만 사용하는 무기가 다르다고 말하는 걸로 들렸다.

자연히 비욘느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대단한데? 하지만 몽둥이라니...흔치 않은 걸 사용하네?”

“흔치 않다뇨? 우리 마을에서는 모두 몽둥이를 사용하는 걸요? 그것만큼 두드리기 편한 건 없으니까요. 여자들은 보통 몽둥이죠.”

“그런 거야? 그래서 나는 제이미경이나 아버지께서 좀처럼 허락해 주시지 않은 건가?”

“?”

“저기 혹시 말이야, 나도 몽둥이 배울 수 있어?”

“몽둥이를요? 글쎄...그런 건 배워서 뭣하시게요? 아가씨는 굳이...”

“아니야! 나도 배우고 싶어! 나 잘할 자신도 있고! 물론 정말 배우고 싶은 건 검이지만 그래도...모든 여자들은 몽둥이를 배운다면 그럴 수밖에...그렇지만 나 검을 아주 포기한 건 아니니까...”

낸시는 그제야 비욘느의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잠깐요! 저는 빨래하는 걸 이야기 한 거예요. 검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솔직히 저도 도련님이 어디서 그런 걸 배웠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빨래라고?! 그럼 너는 전혀 강하지 않아?”

낸시는 자기 다리에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강하지 않아요.”

“아이 차암...좋다 말았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저기 괜찮다면 로드리고가 좋아하는 걸 말해줘. 그에게 잘 보여서 검술을 배워보고 싶어서 말이야. 응?”

“도련님이 좋아하는 거요?”

낸시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도련님이 좋아하는 게 뭐가 있더라?

나 놀리는 걸 좋아하는 건 분명하지.

자랑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누가 치켜 올려주면 또 좋아하고.

그렇지만 이런 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잖아?

“칭찬일까요?”

“칭찬? 그렇지! 칭찬은 모두가 좋아하니까. 뭘 칭찬하면 좋아해?”

순간 다시 한 번 낸시는 말문이 막혔다.

도련님을 칭찬해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녀가 보았을 때는 물가에 내놓은 말썽쟁이 동생처럼 생각될 뿐이다.

“그..글쎄요. 그런 건 직접 찾아보시는 편이...”

“그런가? 하긴 평소에 자주 듣던 칭찬을 듣게 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한창 둘이서 로드리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저편에서 에린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딱 봐도 무척이나 표정이 어두웠는데 그걸 보고 에린이 이죽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어머~! 에린 공자 표정이 좋지 않네요? 무슨 일인가요? 아! 맞다. 오늘 로드리고에게 패하고 말았죠?”

에린은 그제야 비욘느와 낸시를 알아보곤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낸시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에게 지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소. 레이디의 그런 말이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는 못하오. 그리고 그에게 지는 것은 결코 흉이 아니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말투였다.

하지만 비욘느는 여유있게 싱긋 웃으며 다시 입을 놀렸다.

“그럼 크레이머 남작님이 패한 것은 어떤가요?”

순간 에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예의에 어긋나는군. 더 이상 당신과는 말을 섞지 않겠소.”

그렇게 에린이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비욘느는 그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뭔가 나쁜 일이라도 꾸미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 제가 예의에 어긋나는 게 아니라 에린 공자 당신의 표정이 문제라고요! 알아요?! 남의 집에 왔으면 좀 더 표정에 주의하세요!”

그녀는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에린은 급하게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나..나쁜 일이라니...그..그런 건 없소. 저리 비키시오!”

그렇게 말하곤 에린은 비욘느를 거칠게 밀치고 가버렸다.

비욘느는 몇 걸음이나 물러난 후에야 다시 균형을 잡고는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아휴~! 열 받아! 빨리 자기네 영지로 돌아가 버렸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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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은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비욘느의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쁜 일....

...나쁜 일...

아니다.

이건...나쁜 일이 아니야.

전부 로드리고를 위한 일이니까...

잘만 이야기 하면...그러면 그에게 약을 사용할 필요는 없어.

그만 영지로 데려올 수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 보지 않았어?

비욘느는 절대로 로드리고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야.

그런 교양 없는 여자는 안 돼!

나는 그러니까...나쁜 일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

아버지 말씀이 맞아.

그렇지만 좀처럼 그의 손은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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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맘때 로드리고는 낸시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이 계집애가 정말...

나가 있으라고 했으면 그냥 문 밖에서 주구장창 기다리면 될 걸 가지고 어디까지 가버린 거야?!

성치도 않은 다리 해가지고 빨빨대고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아...내가 정말 낸시 계집애 때문에 늙는다. 늙어!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눈에 익은 시녀를 발견했다.

분명히 낸시와 같이 방을 나선 시녀 누나였다.

로드리고는 급하게 달려가서 그녀를 불렀다.

“저기요! 저기!”

시녀가 돌아보자 로드리고는 급하게 말했다.

“낸시 어디 있는지 알아요?”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냉랭한 어투가 돌아온다.

“그치만 아까 방에서 같이 나갔잖아요? 영주님이 저하고 둘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니까...”

그제야 시녀는 로드리고를 좀 더 제대로 쳐다보고는 표정을 찡그렸다.

“흥! 그 계집애 이야기였구나. 몰라! 세뇨르 선생이 데려갔으니까! 다 그년 때문에 나는 일거리를 잃었단 말이야! 저리 비켜! 네가 영주님의 손님이든 뭐든 이젠 내 알바 아니니까!”

로드리고는 그녀의 기세에 밀려 얼른 물러났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저 시녀에게 물어봤자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튼 빨리 낸시를 찾자.

그보다 세뇨르 선생은 또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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