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1 속임수, 오해와 욕망과 질투 =========================================================================
“어때? 재능이 넘치는 것 같아?”
비욘느가 생기발랄한 표정으로 로드리고에 물었다.
로드리고는 잠시 고민했다.
딱히 자신이 누군가의 재능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의 감상으로는 조금도 재능이 없었다.
그래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녀가 에린을 싫어하게 된 것처럼 자신도 싫어하게 되겠지.
이로서 그의 대답은 간단하게 정해졌다.
“재능이 있군요. 확실히 훌륭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분명 이름을 날리는 굉장한 여기사가 될 거야. 어쩌면 구국의 영웅이 될지도...”
“그럼요. 될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로드리고는 양심이 쑤시는 것을 느끼고 서둘러 몰래 검지와 중지를 꼬았다.
그의 행동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한 비욘느는 마냥 좋아하며 자신의 멋진 미래의 모습을 꿈꿔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기서 끝이 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비욘느는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로드리고에게 던졌다.
“그럼, 로드리고 너와 비교해보면 내 재능은 어느 정도야? 응? 비슷한 정도? 아니면 내가 조금 더 대단한가?”
“......”
로드리고는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젠장...그걸 말이라고 하냐?!
나도 그다지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비욘느는 황혼의 기사가 와서 가르쳐도 그다지 진도를 빼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황혼의 기사는 그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으로 어떻게든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난처함을 느낄 것이다.
“로드리고?”
비욘느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 거리며 다시 물었다.
로드리고는 서둘러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저도 아직 배우는 입장에서 어떻게 재능의 정도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후로는 노력이 수반될 필요가 있을 뿐이죠.”
비욘느는 로드리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응!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절대로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으면 ‘재능이 어떻네’ 하는 질문 따위는 했을 리 없다.
그러나 로드리고는 그저 웃어줄 뿐이었다.
그는 한차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해가 지려고 하네요. 그만 돌아갈까요?”
“하지만 조금 더 해보고 싶은 걸?”
비욘느는 로드리고의 단검을 바라보며 아쉬운 듯 말했다.
로드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손에서 검을 받아 들었다.
“오늘은 이정도가 좋아요. 나중에 다시 가르쳐 드릴 테니까 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또 가르쳐 줄 거야?”
비욘느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로드리고에게 거의 안기듯 달라붙어 물었다.
하지만 그다지 로드리고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뭔가가 비욘느에겐 아직 없었다.
그러니까...슴가라고 할까?
그저 딱딱한 느낌만 있을 뿐이다.
이런 걸로는 조금도 므흣한 생각을 할 수 없다.
물론 낸시도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와는 오랫동안 몸을 섞었던 기억이 있어 자기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그녀는 말캉한 것이 있기는 있다.
“예. 하지만 비밀입니다. 누가 알게 되면 곤란해질지도 모르니까요.”
“당연하지! 자! 약속!”
비욘느가 손을 내민다.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바라보며 로드리고도 머뭇거리다 손가락을 내밀었다.
어색한 손놀림으로 오랜만에 손가락을 걸고 흔들었다.
조금 창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비욘느는 로드리고의 곁에서 걸으며 물었다.
“그런데 로드리고는 에린 공자랑 친해졌어? 둘이 친구 사이라고 그러던데?”
“자작님이요?”
“응. 에린 공자랑은 이제 그다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으니까.”
“......”
로드리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
에린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것은 로드리고도 마찬가지였다.
낸시가 이상하다.
그것도 엄청 이상하다.
전부 에린 그 자식 때문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다는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하겠지.
하지만 봐라.
그 잘생긴 얼굴로 모든 여자를 섭렵할 수 있을 줄 알았냐?!
여기 비욘느는 너 같은 거 싫어하거든!
괜히 어깨를 조금 들썩이며 로드리고가 말했다.
“뭐, 그 심정은 이해합니다.”
“정말?”
“에린 공자는 조금 거만한 경향이 있으니까요.”
“맞아! 내말이 바로 그거야!”
비욘느는 드디어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듯 무척이나 좋아했다.
지금까지 자기가 에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모두 그녀를 탓하며 에린 공자는 여러모로 훌륭하다는 이야기만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드리고는 처음으로 그녀와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저 같은 볼품없는 것을 에린 공자가 친구 삼아준 것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죠.”
그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어차피 나는 몰락 귀족 출신이고, 시골 유지 정도의 수준일 뿐이니까.
얼굴도 에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낸시 이 나쁜 계집애...
그래도 너는 결국 나한테 오게 되어 있어.
나중에 내 다리 붙들고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기만 해봐!
......
뭐, 그러면 결국 조금 놀리다가 첩을 삼아 주겠지만...
그래도 오늘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어.
그가 혼자서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고함 소리가 귀를 울렸다.
“바보~~~!!!!!!!”
로드리고는 깜짝 놀라 곁에 서있는 비욘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그에게 보였던 호감어린 눈초리는 어디 갔는지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저건 험악한 표정이 아니라 분한 표정일까?
당황한 로드리고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기억을 더듬으려 할 때, 비욘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절대로 로드리고가 볼품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앞으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란 말이야!”
그녀가 로드리고 면전에 삿대질을 해대며 말하자 그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로드리고는 훌륭해. 그 나이에 검술이 그렇게 훌륭하다니...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결국 뼈를 깎는 노력을 한 거잖아?”
“...그...그런가요?”
자기 일인데도 확신이 없는지 로드리고가 되묻듯 답하고 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열심히 했다고는 하지만 고작 한 달이었고, 스스로 생각해도 실력이 너무 늘어 버렸다.
양심상 뼈를 깎는 노력이란 표현은 사용하기 좀 꺼려진 달까?
물론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입에 미친 듯 침을 바르며 결국 사용할 테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비욘느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 로드리고를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누구를 훌륭하다고 말하겠어? 그런 실력을 가졌는데도 조금도 우쭐하지 않고 날 모욕주지도 않았잖아? 상냥하게 검술도 가르쳐 주고 말이야. 난 로드리고가 좋아. 에린 공자 같은 사람보다 몇 배는 더 좋다고! 그는 알량한 실력으로 우쭐해서 나를 비웃었단 말이야.”
그녀의 말은 분명 로드리고를 위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로드리고가 스스로 생각할 때, 에린은 좀 우쭐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그를 무척이나 얄밉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의 검술 실력은 훌륭하다.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이란 그에게나 어울리는 표현이다.
비록 나 같은 얼토당토않은 녀석이 나타나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제대로만 성장 한다면 명성을 날릴 것이 분명하다.
비욘느의 칭찬이나 격려는 내게는 적당하지 않다.
로드리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자격이 없다고 할까?
그래도 그녀가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것이 조금은 기쁘다.
로드리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비욘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욘느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의 손을 쳐내지는 않았다.
로드리고가 말했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너무 탓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는 비욘느 아가씨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하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아가씨,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로드리고가 비욘느의 머리에서 손을 치우려고 하자 비욘느는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덥석 로드리고의 손을 잡았다.
“아직...조금만...더...이대로 있어.”
“예?”
“조..조금만...더...”
비욘느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한 채 그렇게 속삭였다.
“그리고...로드리고가 뭐라고 해도 나는 네가 굉장하다고 생각하니까...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지 마. 그건 바뀌지 않으니까...”
로드리고는 손에 힘을 빼고 그대로 그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대로 놓아두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느끼며 조금 더 제대로 된 그녀의 편린을 찾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