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5 프레사를 떠나며 =========================================================================
정보 길드 앞에 마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왔을 때와 다름없이 사내들이 몇 모여있을 뿐이다.
사내들의 시선이 모아지자 로드리고가 입을 열었다.
“다니엘 만나러 왔는데요.”
“다니엘!!!”
로드리고의 말에 나른한 표정의 사내가 목청껏 사내를 불러준다.
다니엘은 구석진 곳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여어! 꼬마. 다음날 다시 올 것처럼 굴더니 한참 만에 오면 어떻게 해?”
“조사해 봤어요?”
“너는 돈도 안줬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왜 그렇게 뻔뻔하냐?”
“그래도 시간은 많이 줬잖아요?”
다니엘은 머리를 두 손으로 마구 문지르며 말했다.
“으아아아!!! 야! 내가 뭐라고 했어? 돈 가져오지 않으면 일에 착수할 수 없다고 그랬잖아? 그게 길드 규정이라니까.”
“그래서 조사 안 해봤어요?”
“해보긴 했지. 일이 항상 있는 건 아니니까. 짬짬이 시간 날 때마다. 물론 전부 해보고 나선 헛고생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왔으니 헛고생은 아니죠.”
“아무튼 명단이 꽤 되니까 어느 정돈지 다리 저는 애도 데려왔으면 보여줘. 걷는 거 보고 추려줄 테니까.”
“없어요.”
“뭐?”
“없다고요. 저 혼자 왔으니까.”
“이것 참. 아무튼 그럼 네가 다시 보여줘. 어느 정도냐? 직접 흉내내봐. 그거에 맞춰서 추려줄 테니까.”
로드리고는 직접 일어서서 그가 기억하는 낸시의 움직임을 흉내 냈다.
생각보다 힘들었다.
멀쩡한 다리로 흉내만 낼 뿐인데도 한쪽으로만 힘을 주니까 몸의 균형이 심하게 흔들린다.
젠장...이렇게 힘들었으면 좀 더 도와달라고 할 것이지.
하여간 멍청한 계집애야.
뭐, 이젠 에린 자식이 어떻게든 해주겠지만.
금세 우울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버린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건데?”
“그것도 말해야 해요?”
로드리고가 짜증스럽게 묻자 다니엘도 짜증스럽게 답한다.
“그럼 새끼야, 목록 전부다 넘겨줄 테니까 그냥 전부다 찾아다닐래? 응? 생각해서 물어봐줬더니 아주 발랑 까져가지고.”
“알았어요. 알았어. 도끼에 맞았어요. 뼈는 완전히 으스러졌고. 처음에 포션이 있었으면 완치되었겠지만 지금은 포션이 있어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한 번 뼈가 굳어졌으면 포션을 사용해도 소용이 없대요.”
“흐음...그럼 이것도 안 되겠네.”
다니엘은 끄적거린 양피지에 사선을 긋는다.
로드리고가 눈치껏 조금 읽어보자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갈린트의 제리. 부러진 개다리를 잘 고침.’
순간 로드리고가 탁자를 손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뭐하자는 거예요?! 개다리 고치는 사람이 어떻게 낸시를 고치냐구요?!”
“아! 진짜! 이 새끼가...야 임마! 그래서 내가 제외시켰잖아?”
“그런 건 처음부터 명단에 넣지를 말란 말이에요.”
“너 진짜 까칠하다. 암튼 기다려. 그리고 돈도 어서 내고.”
로드리고는 주머니를 뒤져 1골드를 건넸다.
다니엘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한 다섯 명 쯤으로 추려줄게. 이 중에 한명은 고칠 수 있을 거야. 비용적인 문제는 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전에는 비용적인 부분도 고려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물론 고려하지. 그러니까 다섯인 거야. 아니면 한명만 골라주지 뭣 하러 다섯이나 추려주겠어?”
“됐어요. 내가 말을 말지. 빨리나 해요.”
“하고 있잖아.”
“아저씨 일 잘 못하죠?”
“뭐?”
“아니...그냥 너무 느려서요.”
“우와아아아~!!!”
“깜짝이야!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요?”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고객을 때릴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도 앞으로는 소리 지르지 말아요. 어디서 돼지 잡는 줄 알았으니까.”
“.......”
“그 주먹 내려놔요.”
“...그래. 내가 빨리 끝내고 말지.”
로드리고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괜히 다니엘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딱히 다른 곳에서 풀 수도 없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를 자극해봤자 기분이 더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잠시 더 끙끙거리던 다니엘이 양피지 조각을 건넸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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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유왕 테레사
2. 마법왕 마나우스
3. 법왕 라파엘
4. 도피네 지방의 모닉
5. 마르슈 지방의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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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는 잠시 동안 쪽지를 들여다보다가 다니엘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뭔가요?”
“뭐긴? 명단이잖아?”
로드리고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다니엘은 그런 로드리고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는다.
“지금 장난하세요?”
“돈 받고 하는 일에 장난을 칠 수야 있나?”
“그럼 왜 대륙 10강 중 3명이나 포함된 거죠?”
“그야 그 사람들이 고칠 수 있을 테니까.”
“...날 만나줄 리가 없잖아!!!???”
로드리고가 다니엘에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는다.
“아니...이 꼬마 새끼가 오냐오냐 해줬더니?! 임마 그래서 내가 네 번째랑 다섯 번째도 적어 넣었잖아?!”
“이게 1골드냐?! 응?!”
로드리고는 더 이상 존대도 하지 않았다.
“야! 많든 적든 고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다섯 사람한테 전부 치료 받을래? 응? 그냥 네 번째랑 다섯 번째 만나면 되지. 이것 좀 놔. 시간도 없는데 이정도 했으면 잘 한 거야.”
“뚫린 입이라고 진짜...”
“진정해. 진정.”
“돈 돌려줘.”
“그래도 내가 어른인데 자꾸 반말하면 안 되지.”
“돈 돌려주면 다시 존대해주지.”
“돈을 못 돌려줘.”
“왜?”
“요즘 쪼들려서.”
“저기...내가 좀 쌔거든?”
로드리고가 다니엘에게 경고한다.
하지만 다니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꼬마야 너도 생각해 봐라. 시간을 많이 줬다고 해도 이건 그다지 제대로 의뢰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했으면 나도 성의를 보인 거야. 너도 좀 물러날 줄 알아야지. 그게 어른의 세계란다. 너도 이렇게 좀 쓰린 경험을 통해서 차차 키가 커가듯 마음도 커지는 거란다.”
“까지마!”
“칫...”
“방금 혀 찼지?”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좋아. 며칠 기다려. 그럼 제대로 해줄 테니까.”
“며..며칠?”
“그래. 며칠.”
로드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에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머물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떠난다고 메모까지 남기고 온 마당에 다시 에린이나 낸시를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아직 준비가 덜 되어서 좀 더 머물기로 했어.’
죽어도 그런 말은 하지 못한다.
그 말과 함께 로드리고의 자존심은 산산조각 나고 말테니까.
어쩔 수 없이 로드리고가 말했다.
“저기..밑에 두 사람은 확실한 거죠?”
“그렇지. 나는 거짓 정보는 취급하지 않아.”
“믿음이 안 가는데요?”
“그냥 믿어. 신용사회잖아?”
“...절반만 받으면 안 되나요?”
로드리고가 쭈뼛거리며 아쉬운 소리를 한다.
다니엘은 로드리고를 안 되었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물었다.
“여행 경비가 부족해?”
“예.”
“많이?”
“예.”
로드리고는 애써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다니엘은 로드리고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었다.
로드리고는 곧바로 그 손을 쳐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다니엘이 매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힘든 여행이 너를 성장시킬 거야. 그러니까...절반만 받을 수는 없단다. 다 너를 위해서...”
무언가 머릿속에서 뚝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
이번에는 로드리고가 조금 전 다니엘이 질렀던 것과 비슷한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아이고...그만...이 꼬마가...야! 너희들 구경만 하지 말고 좀 도와줘!”
“크크큭...고객은 일대일로 상대하는 게 원칙이잖아? 알아서 하라고. 다니엘.”
아무튼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다니엘은 끈질겼다.
절대로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좀 더 폭력을 사용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두드려 패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어차피 치료는 한 사람에게 받는 거니까.
그리고 여행경비는 그다지 부족하지 않다.
원래 남아 있던 것도 있고, 에린에게 받은 것도 있다.
절반을 남겨두고 왔다고 하더라도 굳이 다니엘에게 지불한 돈을 다시 돌려받아야 할 정도로 궁핍한 것은 아니다.
다만 치료비가 부족하다고 할까?
얼마나 달라고 할지 모르니까.
그러나 그건 다니엘에게 주었던 1골드를 다시 돌려받아도 마찬가지일 테지.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는 선량한 사기꾼을 남겨둔 채 로드리고는 건물을 나섰다.
이제 엘가에게나 가보자.
떠나기 전에 잠시 얼굴이라도 보고 싶으니까.
그렇게 로드리고는 마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