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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51화 (151/200)

00151  프레사를 떠나며  =========================================================================

베드렘은 기사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다.

동료들과 간단한 검술 동작을 연습하며 몸을 풀었다.

그때, 종자가 다가와 단장님이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베드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단장님이 찾을 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기사 베드렘! 단장님 호출로 찾아뵈었습니다!”

긴장한 표정과 목소리다.

하지만 제이미 경은 밝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잘 왔네.”

“무슨 일이신지...?”

베드렘이 조금 긴장을 풀며 물었다.

아무래도 질책을 하려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제이미 경은 딱히 서두르는 기색 없이 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좀 앉지.”

“아! 예.”

제이미 경이 손수 음료를 따라주며 건넸다.

베드렘은 엉거주춤 잔을 받았다.

“이보게 베드렘, 자네는 평민 출신이지?”

“그렇습니다. 영지 북쪽의 가란 마을 출신입니다.”

제이미 경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평민 출신이라면 나중에 골치 아파질 일이 없다.

제이미경이 보았을 때, 이번 임무는 성공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희박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사내 아이 하나를 무슨 수로 찾는 단 말인가?

이런 일에 영지 내에서 꽤나 비중 있는 자들의 자녀를 보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무마시킬 자신은 있지만 그래도 그 귀찮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느니 처음부터 별 탈 없는 녀석을 하나 골라서 자작님을 안심시키고, 영지 내의 다른 귀족이나 관리들과도 얼굴 붉히지 않고 좋게 지내는 편이 훨씬 나았다.

“자네 임무는 맡아 본적이 있나?”

“작년 영주님께서 영지 순찰을 가실 때,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제이미 경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건 딱히 임무라고 하기 힘들지.

기사 10명이 같이 가는 것이고 언놈이 갑자기 영주님께 달려들지 않는 이상 위험이라고 할 만한 요소도 거의 없으니까.

굳이 말하면 그냥 연례 업무 중 하나일 뿐이다.

책임도 총괄한 부단장이 전부 지는 것을 무슨 임무라고 떠들어 댄단 말인가?

내가 젊었을 적에는...

아니..아니다.

지금 와서 소싯적 일을 떠올릴 필요는 없지.

“그것 훌륭하군! 그렇다면 이제 개인 임무도 맡아보아야 할 때가 되었어.”

“제..제가 개인임무를 말입니까?! 하지만 제 선배들 중에도 아직 개인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본적이 없는 분들이 많은데...”

“쿨럭! 쿨럭!”

“괜찮으십니까?”

제이미 경이 갑자기 기침을 해대자 베드렘이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이 이상 없음을 알렸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찔리는 것이 있었다.

녀석...그냥 그렇구나 하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을...

“흠! 흠흠!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세. 아무래도 기사단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보니 각각의 기사가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를 눈여겨보게 된다는 말이지.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자네라네.”

“저..저를 말씀이십니까?!”

베드렘이 감탄스런 어투로 되물었다.

제이미 경은 무척이나 단순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 더 썰을 풀었다.

“그렇지. 자네는 아주 훈련도 열심히 하고, 다른 기사들과도 잘 지내지 않나? 내가 전부 보고 있네. 결코 자네의 선배 기사들보다 못하지 않지.”

“그렇게까지 저를 생각해 주고 계셨다니...단장님...”

베드렘이 얼굴을 붉히고 제이미 경을 사랑스런 목소리로 부르자 제이미 경은 슬쩍 심기가 불편해 지는 걸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온몸을 근육으로 도배한 사내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흠흠! 아무튼 이번 임무는 자네에게 주기로 결정했네. 하지만 이건 기회일 뿐이야. 자네가 실패한다면 어떠한 메리트도 얻을 수 없다네. 아니..오히려 자네에 대한 주변의 평가가 안 좋아 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겠지. 뭐, 자네가 내키지 않는다면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다네.”

제이미 경은 슬쩍 눈치를 보며 나는 아무것도 아쉬운 것이 없다. 다만 너에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네가 실패하면 어디까지나 네 무능이고 그에 대한 결과는 전적으로 네가 책임져야 한다. 나를 원망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런 뉘앙스를 열심히 풍겨 주었다.

하지만 이미 기회라는 말, 그리고 제이미 경에게 한껏 추켜 올려진 자신에 대한 평가로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베드렘은 당장에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저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혹 실패하더라도 제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저에게 임무를 맡겨 주신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제이미 경은 기특한 부하를 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럼. 이미 후회하지 않는다네.

내 말년을 그런 시끄러운 종자들이 찾아와 망치게 둘 수는 없지.

역시 골치 아픈 일에는 평민 출신이 최고지.

“하지만 아직 자작님께서 허락하신 건 아닐세. 일단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셔야 할 텐데...”

“자...자작님...”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했던 베드렘은 최고 상급자가 언급되자 다시 표정이 굳고 말았다.

하지만 제이미 경은 베드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 주었다.

“내가 자네의 곁에 함께 있을 걸세.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나는 자네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볼 생각이니까. 조금 전 말하지 않았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은 뭔가?”

“죄송합니다! 단장님!”

“되었네. 그럼 가지. 임무에 대해서는 이동하면서 설명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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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는 로드리고를 생각했다.

갑자기 읽지도 못하는 쪽지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나버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에도 짓궂은 장난을 많이 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도가 지나치다.

대체 무슨 생각이람?!

오늘은 마을로 돌아가기로 해놓고 이렇게 사라져 버리면 어쩌란 말이야?!

그녀의 손에는 로드리고가 두고 간 돈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낸시로서는 손에 쥐어 본 적이 없는 큰돈이다.

금화도 몇 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작은 금속 몇 개가 그녀를 든든하게 만들지 못한다.

돈은 왜 두고 간 것일까?

나가려면 돈이라도 가지고 갔어야지.

정말...바보야...

혼자라도 마을에 돌아가야 할까?

하지만...도련님 없이는 돌아갈 수 없었다.

주인님과 마님이 도련님에 대해 물었을 때, 고개를 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분들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는 것은 싫었다.

누가 다리 고쳐 달라고 했냐고?!

정말 시키지도 않는 일은 왜 그렇게 열심인 걸까?

매번 장난이나 치고...

걱정이나 시키고...

손수건도 됐다고 했는데 기어코 찾아오고...

멀쩡히 다른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도...굳이...가출까지 해서....그래서...

낸시는 눈앞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집나간 철없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러할까?

도련님이 또 어딘가로 혼자서 가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무얼하고 있었단 말인가?

......

순간적으로 낸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건 에린을 떠올려서 그의 왕자님 같은 모습에 가슴이 설레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드는 감정은 창피와 부끄러움 그리고 자괴감이었다.

내가 미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도련님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미리 알고 그를 막았어야 했어.

그런데 나는 에린 공자님에게 정신이 팔려서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단 말이야.

혼자서 돌아갈 수는 없어.

그렇다고 여기서 도련님이 다시 찾아오길 기다릴 수도 없고.

도련님을 찾으러 가자.

어떻게든 찾아서 집으로 데려가야 해.

그녀가 막 그렇게 결심한 순간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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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가 남긴 메모 보여줘요.”

비욘느는 당연하다는 듯 자작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작은 그런 딸아이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무실을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아침 인사도 건네지 않고 이리도 뻔뻔히 자기가 원하는 것만 요구할 수 있다니...

세뇨르 선생...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는 것이오?

교육에 진척은 있소?

조만간 불러서 진지한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작은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메모를 비욘느에게 건네주었다.

비욘느는 곧바로 메모를 뚫어져 쳐다보았다.

이미 전부 읽고도 남았을 법한 시간이 몇 번이나 지나도 비욘느는 메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설마...모르는 글자라도 있는 것일까?

글은 전부 배웠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거짓말이었단 말인가?

순간 가슴이 덜컥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세뇨르 선생....

조금도 딸아이의 행동에 자신의 문제는 생각지 못하고 전적으로 세뇨르 선생 탓만 하는 자작이었다.

마침내 비욘느가 고개를 들고 울먹이는 표정으로 자작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없어요!”

“뭐?”

“내 이름은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으아아앙~!”

비욘느는 자작의 품에 안겨들어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자작은 난감한 기분이 들면서도 어딘지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느꼈다.

그는 생각했다.

내 딸도 여자 아이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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