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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52화 (152/200)

00152  프레사를 떠나며  =========================================================================

제이미경과 베드렘경이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난처함을 느꼈다.

울고 있는 비욘느 아가씨와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작님.

이대로 다시 나가야 할지 아니면 여기서 그대로 기다려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 기사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자작이 다음 행동 방침을 결정해 주었다.

자작이 손짓으로 그들을 가까이 오라고 부른 것이다.

“제이미 경, 그자가 추천하는 잔가?”

“그렇습니다.”

제이미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베드렘경의 어깨를 치자 그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펴...평기사 베드렘! 자작님을 뵙습니다!”

자작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이미 경에게 시선을 주었다.

“유능한 자가 맞나?”

제이미 경은 평온한 말년을 위해 뻔뻔한 표정으로 일관하며 말했다.

“아직 젊어서 그렇습니다. 훌륭한 자작님 앞에 서서 긴장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을 추적해서 찾는 일은 이처럼 젊고, 성실하고 열정 있는 인재가 제격인 법입니다.”

제이미 경의 말을 듣는 동안 베드렘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단장님이 자신을 이렇게 생각해 왔다는 사실이 지금까지의 노력을 전부 보상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작도 제이미 경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말했다.

“베드렘 경, 이건 중요한 임무네. 성공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얼마나 빨리 찾아내느냐의 문제일세. 알겠나?”

“알고 있습니다! 이미 단장님에게 임무 내용은 들었습니다!”

“좋군. 그렇다면 자네는 로드리고 군의 생김새를 알고 있나?”

순간 베드렘은 말을 잊고 제이미 경을 슬쩍 쳐다보았다.

제이미 경은 재빨리 나서며 말했다.

“송구스럽지만 기사단 중 로드리고 군의 생김새를 알고 있는 자는 저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설명을 해준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흐음...하지만 생김새를 모른 데서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나는 그런 혼선을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전에 제거하고 싶군.”

“하지만 그래서는 제가 직접 로드리고 군을 찾으러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좋으시다면...”

물론 제이미 경은 절대로 자기가 직접 찾으러 갈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한 데에는 자작이 자신을 그런 하찮은 일에 보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자작은 고개를 저었다.

“기사 단장인 자네를 직접 보낼 수는 없지.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순간 제이미 경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는 못했다.

그때, 비욘느가 자작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제가 로드리고의 얼굴을 알아요.”

모두의 시선이 비욘느에게로 옮겨간다.

“제가 따라가면 그런 걱정은 없는 거잖아요? 예?”

아직도 물기가 어린 눈으로 자작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자작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작이 망설이는 그때, 제이미 경이 먼저 반대하고 나섰다.

“그건 안 됩니다! 아가씨께서 얼마나 걸릴지 알지도 못하는 그런 여행을 하신다니요. 천천히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급할 경우에는 밤을 새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아직 어린 아가씨께서 하실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그보단 차라리 로드리고 군이 데리고 다니던 그 소녀를 따라 보내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자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되네. 분명 그 소녀도 로드리고 군의 얼굴을 알지만 우선 다리도 온전치 못하고, 여행 간에 무리해서 병이라도 난다면 큰일이야. 게다가 그 소녀는 만에 하나 우리가 그를 찾지 못했을 때, 그가 스스로 다시 여기를 찾아오게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일세.”

“그럼 고용인들 중에 로드리고 군을 봤던 이들을 불러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요?”

“흐음...아무래도 그것이 좋겠군.”

자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미 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전적으로 베드렘을 추천하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을 사람을 골랐을 뿐, 실력이나 능력 면에서 최고를 뽑은 인선이라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 비욘느 아가씨가 따라간다면 두 발 뻗고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제가 직접 갈래요!”

“아가씨!”

제이미 경이 이례적으로 자작 앞에서도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비욘느는 어리지만 알고 있었다.

어차피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버지다.

제이미 경이 아닌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자작에게 향해 있었다.

“로드리고를 찾으면요?”

“뭐?”

자작이 살짝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되묻는다.

“그를 찾으면 어떻게 다시 데려올 건데요? 예?”

자작은 당연한 걸 묻는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야 당연히...”

하지만 처음 두 마디 이후로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정말로 어떻게 데려오지?

자기가 싫다고 떠났는데?

시녀를 한 명 보살피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어서 데려가라고?

그렇지만 편지에는 에린 공자에게 시녀를 부탁하지 않았던가?

자기가 싫다는데 데려올 명분이 딱히 없었다.

억지로 끌고 오려고 해도 베드렘이란 기사가 로드리고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기사들을 여럿이나 보낼 형편도 되지 않는다.

병사 몇이야 더 차출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많이는 안 된다.

앞으로 자금을 대게 될 남작가가 던전 개발이 어떻게 진행될지 계속해서 살피고 견제해야 한다.

남작이 어떤 뒷 공작을 펼지 모르는 이때에 자작가의 핵심 무력이라 할 수 있는 기사들을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가 데려올게요. 그는 제게 약속한 것이 있으니까 제가 부탁하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 줄 거예요.”

자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딸아이를 딸려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

하지만 비욘느가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자작이 시선을 돌려 베드렘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비장한 눈빛으로 뭐든 해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 저렇게 의욕 넘치는 사내라면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제이미 경이 그렇게나 칭찬하지 않던가?

여기서 내가 베드렘 경을 의심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주군이라 할 수 없겠지.

내가 신뢰하는 제이미 경과 충성을 다하는 베드렘 경을 배신하는 행위가 될 뿐이야.

언제부터 이렇게나 약해졌단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자칫 잘못했으면 로드리고 군을 찾아내도 아무 소용이 없을 뻔했어.

오히려 비욘느가 그 점을 지적해 주어서 정말 다행이군.

아끼는 딸아이라도 가문의 번창을 위해서는 결단을 내려야 해.

게다가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나 비욘느가 의욕을 보이고 있어.

자작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비욘느, 항상 조심해야 한다.”

비욘느는 말없이 그저 자작을 꽉 껴안았을 뿐이다.

그것으로 자작은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이미 경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자...자작님! 그렇지만 너무 위험...”

자작은 손을 들어 제이미 경의 말을 잘랐다.

“그만 하게. 나를 못난 영주로 만들 셈인가? 자네가 그토록 추천한 베드렘 경이라면 충분히 비욘느의 안전을 지키면서 로드리고 군을 찾아 올 수 있겠지. 나는 자네를 믿고, 그리고 내게 충성을 맹세한 저 의욕 넘치는 젊은이를 믿는다네. 나는 그 믿음을 이번 임무에 비욘느를 따라 보내는 것으로 보여주겠네.”

“...자작님...”

제이미 경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그는 정말로 울고 싶었다.

처음부터 비욘느 아가씨가 따라간다면 절대로 베드렘을 뽑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인선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나 진지하게 말하는데 어떻게 사실을 밝힌단 말인가?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베드렘까지 입을 열고 말았다.

“자작님!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하하! 부탁하네. 베드렘 경.”

제이미 경은 생각했다.

베드렘, 넌 이미 나를 실망시켰다. 젠장...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내 안위를 위해서 대충 뽑았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이제는 같이 따라가게 될 병사들을 가장 뛰어난 놈들로 고르는 수밖에 없어.

자작은 다시 제이미 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선 프레사 주변의 모든 마을로 기병을 보내게. 어린 소년 혼자서 여행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니까 결국 그가 어디를 지나갔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베드렘 경, 자네는 여행을 떠날 준비를 서두르게. 소식이 들어오면 곧바로 떠날 수 있도록 말이야. 알겠나?”

“예!”

“제이미 경, 베드렘 경이 준비하는 걸 도와주게나. 적당한 인원도 선발해 주고 말이야. 하지만 병사는 10명 정도로 제한하겠네.”

“너무 적습니다. 적어도 20명은...”

“내게도 사정이 있다네. 그래서 더더욱 자네에게 도와주라고 하는 것일세.”

“...예. 자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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