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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64화 (164/200)

00164  여행길에서(1)  =========================================================================

비욘느에게 너도 주우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애초에 너는 일행도 아니었던 주제에 왜 고집을 부리고 따라와서 이러는 거냐!? 엉?!

그냥 근처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작가로 돌아가란 말이야!

너랑 내 고귀한 친구 로드리고는 어울리지도 않아!

그래도 너는 좋은 집안이라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로드리고가 조금만 더 실력을 키우면 그도 자수성가할 수 있단 말이다!

암튼 그런 건 이제 됐으니까 그냥 나뭇가지를 주우란 말이야!

낸시 양은 몸도 불편한데 성실하게 나무를 줍고 있잖아!? 그러니까 멀쩡한 네 몸뚱이로 어서 손을 놀리란 말이야!

에린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그런 욕구를 다스렸다.

다시 비욘느에게 ‘흥! 울었던 주제에!’같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에린에겐 씻을 수 없는 수치로 다가왔다.

나는 그때 왜 울었단 말인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그래도...낸시 양의 품은 정말 따스했지.

아...다시 한 번...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단 말인가?!

아무튼 비욘느 양의 행동은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로드리고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보자.

하지만...그라면 처음부터 울지 않았을 거야.

그가 갈팡질팡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어느덧 땔감은 충분히 모았는지 낸시는 자리를 잡았다.

작은 솥을 꺼내고 밀가루 포대도 꺼낸다.

곁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자기는 뭘 해야 좋을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에린은 가슴을 두드려댔다.

결국 낸시도 혼자서 모든 걸 하기에는 어려웠는지 솥을 에린에게 건내며 말했다.

“물을 받아다 주시겠어요?”

“걱정 마시오! 내가 반드시 물을 구해 오겠소!”

비장미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에린이 소리쳤다.

그걸 나무에 몸을 기대고 지켜보던 비욘느가 말했다.

“배고프니까 좀 서둘러.”

“......”

에린은 순간 말을 잃었지만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화를 삭였다.

저건 그냥 개다.

그냥 개다.

방금 짖은 것 뿐이야.

그러니까 개다.

개가 짖는다고 같이 멍멍 짖을 수는 없잖아?

무시하자.

그냥 무시해.

결국 둘만 남게 된 낸시와 비욘느.

여전히 낸시는 모포를 내려 혼자서 잠자리를 준비했다.

비욘느는 에린도 멀리 가버린 것 같고, 가만히 있는 것도 지겨워 쭈뼛거리며 낸시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나...나도 그거 할 줄 알아.”

“예?”

낸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거...할 줄 안다고! 하녀들이 하는 거 많이 봤으니까...잠자리 정리하는 거...그러니까 도와 줄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에요. 혼자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께 이런 걸 시킬 수는 없어요. 괜히 우리 때문에 아가씨까지 곤란하게 되셨으니까...미안해요.”

낸시의 말에 비욘느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그래! 바로 그거!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더 이상 돕네 마네 왈가왈부 하지도 않고 비욘느는 낸시가 들고 있는 모포 반대쪽을 잡았다.

순식간에 모포가 쫙 펴진다.

비욘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에린 저 바보 멍청이는 사과할 생각은 조금도 없나봐! 완전히 나를 짐짝 취급하는 거 있지! 너도 전부 봤지?! 나는 그 바보만 아니었으면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제대로 된 일행하고 로드리고를 찾으러 갔을 거야. 훨씬 안전하고 훨씬 편했을 거란 말이지. 물론 나도 좀 까칠하게 그를 대한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가 먼저 제대로 사과했으면 이렇게는 안 됐을 거란 말이야. 그리고 남자가 울긴 왜 울어? 정말 꼴불견인거 있지.”

비욘느는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며 그때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낸시는 그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어딘지 헤나로 아가씨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보고 비욘느는 오해를 한 모양이다.

얼굴에 짓궂은 표정을 짓고는 에린이 우는 모습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흑...흑흑...나는 에린. 잘 울어요. 엉엉...어때 비슷해?”

낸시는 웃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쿡쿡대며 웃었다.

참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비욘느는 낸시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계속해서 흉내를 냈다.

“헤헤! 재밌지? 그렇지?”

그리고 그걸 나무 뒤에서 나오지 못하고 숨어서 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에린이었다.

평소 에린은 욕설이나 남을 탓하는 짓 따위는 형편없는 사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해 왔다.

물론 세상을 살며 그런 행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도 사람이고 어떻게든 친절하게 대해주려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근래 들어서는 그게 비욘느였다.

그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차마 지금 같은 상황에 다녀왔다고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두 소녀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정말...정말로 명예라고는 조금도 없는 행위이지 않은가?!

저기에 어디 고상함이 있단 말인가?!

정말 비욘느 저 계집애는 귀족의 핏줄이 맞기는 할까?!

저런 계집과 결혼할 뻔 했었다니...

치가 떨린다.

남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그의 허물과 약점을 들추고 깔깔댈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낸시 양...내가 얼마나 잘 대해줬는데 그렇게 웃을 수 있단 말이오?

다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또 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죽어도 울지 않는다.

아무튼 이제 결정은 내려졌어.

비욘느 저 계집과 함께 여행을 계속할 수는 없다.

이대로라면 낸시 양까지 비욘느에게 나쁜 영향을 받고 말거야.

그건 안될 말이지.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로드리고가 낸시 양을 맡긴 사람이니까 그녀가 나쁜 영향을 받지 않게 하는 것도 내 의무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어.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비욘느가 깨기 전에 마차를 타고 출발해야겠어.

그게 가장 좋겠지.

여기라면 아직 프레사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고.

혼자서라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게 안 된다면 가까운 마을에서 기다리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에린은 그렇게 결심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한참동안 비욘느의 봐주기 힘든 행동과 말이 이어졌다.

내가 저렇게까지 했단 말인가?

아니다.

저건 과장에 지나지 않아.

그저 웃기려는 몸부림일 뿐이지.

조금도 웃기지 않아.

낸시 양이 저렇게 웃어주는 건 어디까지나 비욘느가 윗사람이라 그럴 뿐이야.

결코 나를 비웃는 것이 아니야.

나는 그녀를 믿는다.

아무튼 빨리 헤어져야해.

나쁜 계집애.

정말...나쁜 계집애.

아무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도 끝을 고했다.

적당한 시기에 에린은 나무 뒤에서 솥단지를 가지고 나왔다.

왜 이리 늦었냐며 에린을 탓하는 비욘느를 보며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래. 지금은 얼마든지 그래 봐라.

내일은 일어나서 아무도 없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

그래도 나는 그 표정을 볼 수 없겠지.

왜냐면 거기 없을 테니까!

아무튼 지금은 네 마음대로 해라!

네 마음대로!

낸시는 솥단지에 담긴 물을 조금 다른 용기에 나눠 담고는 적당하다고 생각했는지 솥단지에 남은 물을 끊이기 시작했다.

밀가루를 넣고 마른 고기도 넣었다.

금세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침 배고프던 참이라 에린과 비욘느도 침을 꼴깍 삼키며 낸시 곁에 앉아 음식이 다 되기를 기다렸다.

낸시는 조금 더 끊인 후에 그릇에 담아 에린과 비욘느에게 건넸다.

평소라면 거들 떠 보지도 않았을 음식이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순식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비욘느는 아직 배가 고픈지 말했다.

“조금 더 끊여 봐. 아직 배가 차지 않았어.”

옆에서 에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낸시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아껴야 해요. 여행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 모르니까 아낄 수 있는 건 아껴야죠. 배가 고프면 여기 물이 있으니까 좀 드세요.”

단호한 그녀의 말에 비욘느는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거기에는 금화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이거 하나 줄게. 좀 더 만들어 봐. 응? 배고프단 말이야.”

“이렇게 큰돈을 받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이번만 이에요.”

그렇게 낸시는 다시 물을 붓고 스프를 만들었다.

배불리 먹고 난 다음 에린은 곤란함을 느껴야 했다.

대체 불침번은 어떻게 서야 한단 말인가?

그가 두 소녀를 쳐다보았을 때, 그런 건 애초에 조금도 모른다는 듯 둘 모두 잠자리에 몸을 누인다.

나 혼자 밤을 새야 하는 건가?

울상을 짓는 그에게 비요느가 말했다.

“이거 나도 같이 깐 거야. 그러니까 좀 고마워하라고!”

정작 자신은 잠을 못잘 것 같은데 뭘 고마워하란 말인가?

아무튼 불가에 앉아 불을 지피는 그에게 조그맣게 소녀들이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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