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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70화 (170/200)

00170  여행길에서(2)  =========================================================================

“로드리고라고 그랬지?”

마차만 몰기에는 심심했는지 호레라는 사내는 로드리고에게 말을 걸었다.

“아! 예! 로드리고 맞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로드리고라고 있는데 말이야.”

호레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그런 가요? 하하...좋은 사람인가요?”

“아니. 내 돈을 떼먹었지.”

순간 로드리고는 말문이 막혔다.

식은땀도 흐르는 것 같았다.

“...죄..죄송합니다...”

“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이름이 같을 뿐이야. 너와 그놈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니까.”

그럼 대체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거냐?!

좀 더 칭찬할만한 사람과 동일시하란 말이야!

“그보다 나에게 지긴 했지만 꽤 재능이 있더군. 좋은 스승만 만나면 상당한 실력을 얻을 수 있을 터인데...정말 아깝단 말이야.”

“하..하하하...좋은 스승님은 이미 있습니다.”

순간 호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열심히 곁눈질 하던 로드리고는 그걸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뭐..뭔가 문제라도?”

“하하! 아니야. 그냥...네가 좋은 스승이라고 말하는 그자는 어쩌면 그렇게 좋은 스승이 아닐지도 몰라.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 남자의 감이랄까?”

세상 살면서 여자의 감이란 소리는 들어봤지만 남자의 감이란 소리는 처음 듣는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감이란 원래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니까 뭐...”

“아니! 내 감은 꽤 잘 맞는단 말이야.”

“구체적으로 어느 때 맞았었는데요?”

“흐음...어느 때일까? 그래도 남자니까 승부를 점칠 때라고 할까? 보통은 내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대부분 맞지.”

당연한 말이다.

대륙 10강 중 하나인 호프레를 이길 가능성이 있는 자는 10명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10강 중 2명은 강함 때문에 10강이 된 것이 아니다.

보통 이정도면 감이 아니라 확률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호프레의 정체를 모르는 로드리고의 입장에서도 그의 말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의미심장한 뭔가가 숨겨진 말일지도 모른다.

“그야 그렇게...강하시니까...”

“하! 하하하! 내가 강한 거 알겠어?”

호레는 로드리고의 어깨를 툭 치며 껄껄 거렸다.

만면에 지어진 웃음이 한참을 이어진다.

“당연합니다. 아주 강하세요!”

물론 ‘어린애를 팰 만큼.’이란 말은 마음속에 묻어 둔다.

호레는 눈을 반짝이며 로드리고의 어깨를 손으로 살살 만졌다.

로드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뭐야?

왜 이렇게 쳐다보지?

나 뭔가 잘못했나?

아니면...설마...아니지?

아니겠지?

어린애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그런 사람은 아니겠지?

그렇게까지 망가진 남자는 아니기를...제발...아니기를...

만약 그가 나를 원한다면...엘가 미안하지만 도저히 안 되겠어..

지켜준다고 약속했지만...나...어쩌면 자살할지도...

젠장...게으름 피우지 말고 좀 더 제대로 수련할걸 그랬어.

어쩌지?

방심했을 때, 있는 힘껏 한 대 때리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당할 것 같냐?!

내 입안에 네 물건 집어넣기만 해봐라!

있는 힘껏 씹어서 잘라줄 테니까!

로드리고가 이렇게 혼자서 입안이 바짝 말라오고 있을 때, 호프레라고 마음이 편했던 것은 아니다.

이 꼬마, 대체 뭐야?!

멋진 모습 보여줬잖아?!

게다가 칭찬도 해주고, 좋은 스승 밑에서 배우면 어떠냐는 암시도 이렇게 넌지시 주었는데 왜 내 제자가 되겠다고 말하지 않는 거야?!!!

내 강함에 대해 감탄한 걸 보면 이 꼬마도 아주 생각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지만...부끄러워하는 건가?

사내자식이 이런 걸로 부끄러워하면 어쩐단 말이야?

곧바로 무릎 꿇고 제자 삼아달라고 해도 부족할 판에...

답답한 녀석...그래도 생각해보면 놈도 속으로 끙끙 앓고 있겠지.

내가 좀 더 암시를 줘야겠어.

그래도 대륙 10강이나 되는 내가 먼저 권할 수는 없잖아?

모양도 나지 않고...

“아~! 요즘은 애들이 참 귀여워 보인단 말이야! 로드리고는 몇 살쯤 되었지? 응?”

로드리고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걸 느꼈다.

계속해서 어깨를 살짝살짝 만지는 호레의 손길이 무척이나 불길하다.

그래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속단해선 안 돼!

놈과 다시 한 번 붙는 건 어쩔 수 없을 때로 정해 두자.

아직은...아직은 아니야.

“여...열 두 살입니다. 헤...헤헤...”

“오호~! 12살! 참 좋을 때지! 그맘때 훌륭한 사내를 만나서 그가 이끌어 주는 대로 따르면 굉장할 텐데 말이야! 정말 굉장할 텐데...더구나 그 사내가 꽤 연륜도 있고 세상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실력도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호프레는 급한 마음에 로드리고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다.

그와 동시에 로드리고의 몸이 마부석에서 펄쩍 뛰어 올랐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얼굴색도 파랗게 질려 버렸다.

확실하다.

더 이상 확인 할 것도 없어.

놈은 그렇고 그런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어.

틀림없어.

지금 눈 찡긋 거렸잖아?

날 유혹하고 있는 거야.

확실해.

젠장...내가 너무 잘생겨서 그래서...

이럴 때, 에린 그 자식이 있었으면 좀 좋아!

그러면 둘이 붙여 놓고 곧바로 떠나버리면 될 텐데...

그래도 은밀하게 반복해서 말하는 걸 보아서는 억지로 하는 타입은 아닌 모양이야.

내가 적당히 ‘싫어요’나 ‘하지마세요’같은 걸 하면 손을 대지는 않을 지도 모르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단 며칠이라도 입에서 단내 나도록 황혼의 기사에게 배워야 해!

그러지 않으면...끝이다.

엘가에게 말하지도 못해.

창피해서 죽고 말거야.

살다 살다 별 이상한 놈을 다 본다.

오늘밤이 고비일지도 모르겠군.

괜찮다면 엘가에게 같이 자도 되냐고 물어봐야겠어.

혼자는 위험하니까.

그래도 누군가 곁에 있으면 억지로 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아마도...그렇겠지?

한편 호프레는...

놈! 그렇게나 좋았단 말인가?

몸을 그렇게나 튕길 정도로 기뻐하다니...

역시나 내 제자가 되고 싶은 거야!

하하하! 하긴 누가 그렇지 않겠어?

자그마치 대륙 10강 중 하나인 이 호프레님이신데 말이야!

이정도 언질을 주었는데도 내게 사부가 되어주기를 청하지 않는다면 그건 바보나 다름없지. 허허허!

....................

.............

........

....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로드리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덜덜 떨고 있을 뿐이다.

어라?

이건 사부가 되는 걸 허락한 거나 다름없는데...

그런데...왜?

좀 소심한 성격일까?

내가 방랑왕 호프레인걸 녀석에게 가르쳐 줘야 하나?

아니지.

정말로 소심한 성격이라서 내게 제자가 되길 청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건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거야.

내 커다란 위명 아래 잔뜩 주눅 들어서 입하나 뻥끗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이럴 때는 칭찬해서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것이 좋겠지.

정말...제자 하나 얻기 힘들군.

아~! 이런 건 정말 하기 싫었는데...그래도 어쩔 수 없나?

“허허! 로드리고는 참 귀엽네! 응? 정말 괜찮다면 확 데려가 버리고 싶다니까! 하하하!”

호프레가 굳건하고 긴 팔고 로드리고의 어깨를 감싸며 확 껴안아 버린다.

로드리고는 갑자기 당한 거라 제때에 ‘싫어요’나 ‘하지마세요’를 할 수 없었다.

그저 몸을 딱딱하게 굳힌 채 사내 냄새가 물씬 품기는 호프레의 품에 안겨 딸꾹질을 시작했을 뿐이다.

호프레는 손으로 로드리고의 아직 가녀린 어깨와 팔을 몇 번이고 오가며 어루만져주었다.

무척이나 상냥하고 부드러운 손놀림이다.

아들에게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애정표현이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제자를 얻고자 하는 열망에 이끌려 자상한 사내의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해냈다.

게다가 로드리고의 눈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로드리고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간신히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억지로라도 하는 타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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