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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71화 (171/200)

00171  여행길에서(2)  =========================================================================

옷차림도 화려하고 생김새도 멋지다.

하지만 거만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남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무척이나 익숙해 보인다.

금장식이 달린 기다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무료한 목소리를 흘린다.

“요즘 호프레는 어디 있지?”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 하나가 지체하지 않고 답한다.

“여전히 방랑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만한 사내는 손가락을 까딱거려 대답한 자를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그가 지척에 이르자 뺨을 소리 나게 때리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어디냐고? 말 두 번씩 하게 만들래?”

“그건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아...유능한 놈들이 없어서 짐은 아주 피곤해. 하여간 눈치가 없다니까. 전부 고리타분하고.”

곁에 선 사내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조금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다.

다년간의 갈굼 속에서 터득한 스킬인 듯하다.

“호프레...그놈도 멍청했지. 그래도 놈은 실력 하나는 괜찮았어. 흘러가는 추세가 어떤지를 이해시킬 수는 없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제대로 알려주면 확실하게 처리했거든. 뭐, 워낙 멍청해서 하는 행동이 때론 재밌기도 했고. 놈이 곁에 있었을 때는 이렇게 심심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여기저기서 못살겠다고 불평이 들어오긴 했지만...”

“맞습니다. 호프레 경은 훌륭한 기사였죠.”

“하아~! 이런 멍청한...네놈은 여전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놈이 훌륭한 기사였는지 형편없는 기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강하긴 했지. 고리타분하지도 않았고. 정말 솔직한 멍청이였는데...그런 멍청이는 정말 흔하지 않지. 놈의 아들놈도 괜찮은 놈일 줄 알고 한 번 만나봤는데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군. 잔뜩 긴장해서 꼴불견이었어. 놈의 멍청함이 그립군. 이럴 줄 알았으면 놈의 사직서를 받아들여 주지 않을 걸 그랬어. 대체 왜 그만 둔거지? 그때는 놈이 하도 귀족가 애새끼들을 때리고 다녀서 귀찮은 마음에 허락했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갑자기 여행을 떠나서 돌아올 생각은 하지도 않고....”

“하지만 알폰소 경이 호프레 경의 빈자리를 확실히 메우고 있지 않습니까? 기사왕이란 칭호에 절대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 확실히 실력은 나쁘지 않지. 시키는 일도 잘 하고. 그러나 호프레가 가진 중요한 재능을 놈은 가지고 있지 않아. 호프레 놈의 어릿광대 재능은 정말 타고난 것이지. 보고 있으면 어떤 애완동물에게서도 발견하지 못한 재미를 선물해 준단 말이야.”

“그런 재능은 기사왕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기사왕에겐 필요하지 않지. 그러나 나 같은 무료한 황제에게는 무엇보다 귀한 재능이야. 요즘은 딱히 시끄러운 일도 없고, 모든 게 너무 평온하단 말이야. 심심한데 전쟁이라도 해볼까? 제국 아래쪽에 있는 아무 왕국이나 하나 골라서 공격하는 거지. 놈들의 겁에 질린 표정이 꽤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한데...”

“폐하~! 전쟁은 재미로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럼 호프레나 찾아와. 이 무료함을 좀 달래 수 있게 말이다. 하아...늦어지면 전쟁 할지도...”

사내는 고개를 푹 숙여 보이고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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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납치되셨을 수도...”

제이미 경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브라우닝 자작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간에 잡힌 골이 그 깊이를 더한다.

곧이어 힘없는 목소리가 자작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이제...이제 그만 병사들을 쉬게 하시오.”

“하지만 자작님!”

“됐소! 병사들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피곤할 게 아니오?”

“알겠습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집사가 들어왔다.

“자작님, 크레이머 남작이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아...그렇군. 원조와 던전 개발에에 대해서 아직 처리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그래. 들어오라고 하게.”

잠시 후 크레이머 남작이 들어왔다.

자작이 자기 맞은 편 자리를 가리키자 남작은 고개를 잠시 숙여 보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자작님, 비욘느 영애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렇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이 일이 남작가에 대한 원조를 불안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오.”

“그런 의미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실은...하아...”

“무슨 일이오? 지금 뭘 말해도 내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오. 그러니 마음껏 말해 보시오.”

“...제 아들놈도 사라졌습니다.”

“뭐라?!”

자작의 표정이 조금 굳는다.

“제 생각에는 로드리고라고 했던가요? 아무튼 그 꼬마 녀석이 데리고 있던 하녀와 함께 성을 떠난 것 같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제게 찾아와 도와 달라고 했었는데...그게 어디 될법한 말입니까? 당연히 거절했는데 놈이...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브라우닝 자작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 준 것은 고맙소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오. 모든 성문은 봉쇄되어 있었소. 혹 어딘가 숨어 있을지는 모르나 도망간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오. 조만간 발견 되겠지. 솔직히 말한 남작의 얼굴을 보아서 에린 공자를 처벌하지 않고 남작에게 돌려보내주겠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렇다면 안심이지만...”

그때,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이미 경이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자작님?”

“음? 뭔가?”

“실은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성문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습니다만 보고된 바에 따르면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뭐라?!”

“한 소년이 마차를 타고 지나갔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분명히 아무도 지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명했는데 감히 누가 내 명령을 어겼단 말이오?!”

“...죄송합니다. 하지만 세뇨르 선생이 간곡히 부탁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세뇨르가?!”

“그렇습니다. 보고를 받았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만 이렇게 크레이머 남작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무래도 성문을 나간 소년이 에린 공자 정도의 나이였던 터라...”

“하아...이런...그렇지만 소년 혼자였다면 하녀는 아직 이곳에 있다는 말 아닌가?”

“아마 짐칸이나 그런 곳에 숨어 있었겠지요. 세뇨르 선생의 부탁이라 꼼꼼히 조사하지 않고 마차를 내보낸 모양입니다.”

“...그럼 거기에 비욘느가 숨어있었을 지도 모르겠군.”

“그럴 리 없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크레이머 남작이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에린이 그런 멍청한 짓을 저질렀을 리 없습니다. 어찌 영애를 납치한단 말입니까?!”

“납치라고 말하진 않았소. 그러니 진정하시오.”

“하지만!”

“이렇게 도시 전체를 찾아보았는데도 찾을 수 없다는 건 이미 이곳에 없다고 보아야 옳소. 게다가 이 도시 안에서 누군가 감히 자작가의 영애를 납치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소. 그럼 결론은 내 딸 아이가 멋대로 가출했다는 결론 밖에는 내릴 수가 없지.”

“가...가출?!”

남작과 제이미 경의 눈이 커졌다.

“하아...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소.”

착잡한 표정의 자작은 간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미 경, 하지만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소. 이미 비욘느는 로드리고를 찾으러 갈 예정이었소. 그런데도 왜 에린 공자와 그 하녀를 따라 갔을까 하는 의문이오.”

“그...그게...”

“솔직히 말해 보시오.”

“그것이...더 재미있어 보여서 그런 건 아닐는지...무...물론 저는 아직 아가씨께서 가출하셨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확실히 가출이오. 나는 알 수 있소. 더구나 비욘느라면....분명 더 재밌어 보였다면 그 아이들을 따라 갔을 수도 있겠군. 제이미 경!”

“예!”

“로드리고 군에 대한 소식은 알아냈나?”

“그게...아직입니다.”

“끝이 없군.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어! 로드리고 군을 찾으러 가려던 일행의 임무를 비욘느를 추격하는 것으로 변경하게. 당장 출발 시키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성문을 다시 개방하게. 더 이상 도시를 폐쇄한 채로 남겨 둘 수는 없으니까. 이번 폐쇄로 손해를 본 상인들에게는 적당한 보상을 해줄 테니 날 찾아오라고 하고. 그리고...세뇨르 선생에게 내가 좀 보자고 했다고 전하게. 아! 마지막으로 성문을 열어 준 기사는 감봉조치하고, 자네가 추가적인 처벌을 해주게.”

제이미 경은 고개를 푹 숙여보이고는 방을 나섰다.

남작은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정황상 보면 자작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이 같은 일이 벌어진 데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됐소. 딱히 누구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그보다 원조와 던전 개발에 대한 사항이나 마무리 짓도록 합시다.”

“아! 예.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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