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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75화 (175/200)

00175  여행길에서(3)  =========================================================================

비욘느는 에린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마자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콜린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목발을 회전시키듯 던져 비욘느의 다리를 걸어 버렸다.

비욘느는 땅바닥에 그대로 넘어져 몇 바퀴나 구르고 만다.

“아우!”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기운이 빠졌다.

그녀가 아직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곁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료를 이렇게 내버려두고 도망가면 쓰나? 응? 이런 못된 어린애한테는 벌이 필요하겠는데?”

“내 몸에 손대기만 해봐!? 가만 두지 않겠어!”

“아이고 무서워라? 겁 없는 꼬마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이야기지. 하하하!”

사내는 비욘느의 멱살을 붙잡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숨이 막히는지 비욘느는 버둥거리며 켁켁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비욘느와 일부러 시선을 맞추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야, 얌전히 있으렴. 응?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짜악~!

짜악~!

짝! 짜악!

콜린은 수차례 비욘느의 뺨을 때렸다.

비욘느가 더 이상 발버둥치지 못하고 축 늘어질 때까지 그의 손찌검은 멈추지 않았다.

만족할 만한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질질 끌어서 모닥불 근처에 던져둔다.

사내도 불가에 적당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더니 낸시에게 말을 걸었다.

“좀 지켜봤는데 어른들은 없더군. 그렇지? 절름발이?”

낸시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낸시는 심하게 몸을 떨었다.

다리에 다시금 통증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말 잘 들으면 험한 꼴은 보지 않고 끝날 거야. 알았지? 우리들도 돈이 필요한 입장이고, 너희들은 쏠쏠한 벌이가 되어줄 것 같으니까 말이야. 아무래도 상품에 하자가 생기면 값이 떨어지게 마련이니까 우리도 무척 조심스럽다고. 그러니까 말 잘 들어야 한다?”

사내는 마지막에 무척이나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낸시는 다시 한 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따름이다.

그것 말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 그리고 이거 목발. 생각보다 튼튼한데? 부서지지도 않고. 자 돌려줄게.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나는 병신들한테 관대한 편이거든. 같이 다니면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그래서 피터하고도 같이 다니는 거고. 뭐, 이놈은 다른 데에도 꽤 쓸모가 있지만...아무튼 조금 전에 먹은 거 더 만들어 봐. 아직 부족하니까. 피터는 봐서 알겠지만 좀 많이 먹는 편이야. 그리고 배고프면 다루기도 힘들어지고.”

“크..크큭...마..맞다. 피터...마...많이 먹는다. 헤..헤헤...”

낸시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먹을 것을 만들었다.

그동안 콜린은 줄을 가져다가 꼼꼼히 에린과 비욘느를 묶어 버렸다.

물론, 에린이 허리에 차고 있던 칼도 빼앗은 후였다.

주머니도 뒤져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동전도 모두 수거한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나오자 휘파람을 불며 좋아했다.

“하하! 완전 개털일줄 알았는데 이거 상당한 걸? 마음에 들어. 야! 병신 계집애? 너도 돈 좀 가진 거 있지? 자 내놔.”

콜린은 당연하다는 듯 낸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낸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저는 돈 같은 건 없어요.”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낸시를 노려보았다.

“정말? 뒤져서 나오면 다른 쪽 다리도 병신 될 텐데 괜찮아?”

“..괘...괜찮아요.”

낸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씨익 웃더니 낸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럼 믿어줘야지. 하긴, 병신한테 돈 관리를 맡길 리가 없지. 뭐, 나와 봤자 구리동전 몇 개뿐이겠지만 그런 걸로 앉은뱅이가 되는 건 좀 불쌍하니까. 내가 그냥 속아줄게. 알았지?”

“......”

사내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낸시를 계속 쳐다보며 말했다.

“이럴 때는 ‘고맙습니다.’하고 말하는 거야. 알았어?”

“...고...고맙습니다.”

“하하하!”

콜린이 웃음을 터트리자 곁에서 침을 삼키며 먹을 것을 기다리고 있던 피터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낸시는 사내들에게 다시 스프를 건넸다.

그녀의 손은 무척이나 떨렸다.

어떻게 만든 건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다시 떴지만 사내들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피터가 모자른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이...이거 맛나! 아..아주 맛나! 헤헤...따...따뜻하고 마...맛나다. 헤헤...”

“그래. 별로 넣은 것도 없는데 꽤 솜씨가 좋네. 병신 꼬마야, 너는 가다가 괜찮은 식당 같은 곳에 팔아 줄게. 뭐, 일하는 게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게 노예시장 같은 곳보단 더 나을 거야. 어차피 병신은 별로 값도 쳐주지 않을 테니까 빨리 떼어버리는 편이 낫지.”

“비욘느랑...에린은요?”

낸시는 일부러 아가씨나 공자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사내는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당연히 노예시장이지. 사내놈은 보아하니 무기 좀 다룰 줄 아는 모양인데 실력에 따라선 돈 좀 만질 수 있겠지. 그게 안 되면 잘생겼으니까 부잣집 마나님께 팔거나. 크크큭. 뭐, 재미 좀 보겠지. 어린놈이 아주 부러워. 그리고 저 계집애도 꽤 예쁘게 생겼으니까 그렇고 그런 취미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면 꽤 짭짤하겠지.”

낸시는 사내가 하는 말을 완전히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무척이나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낸시는 소리 내지 않고 서둘러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그걸 봤는지 피터가 손가락으로 낸시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헤헤~! 우..운대요~! 헤헤헤! 내...내가 다 봤어! 혀...형...이...계집애...우...운다. 헤..헤헤...”

“시끄러워!”

하지만 뭐가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지 콜린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피터는 웃다 말고,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귀를 막아 버렸다.

그가 무릎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중얼거렸다.

“자...잘못했어...내...내가 잘못했다...또...또 자...잘못했다....”

콜린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낸시를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봤지? 난 저런 걸 보면 아주 좋아. 내가 조금만 고함질러도 저렇게 겁에 질리잖아? 덩치는 커다란 녀석이...크큭....이래서 병신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지. 좀 더 보여줄까? 응?”

낸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콜린은 그녀의 대답은 애초부터 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피터의 곁으로 가더니 뒤통수를 소리 나게 손바닥으로 몇 번이고 때렸다.

짜악!

짝!

피터는 얻어맞으며 계속해서 용서를 구했다.

“자..잘못했다...형아..내...내가 자...잘못했다...흑...흑흑....”

“씨발! 내가 뭐라고 그랬어?! 응?! 병신은 세상에 살아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했어? 안했어?! 내가 널 돌봐주니까 네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 거라고 했지?! 응?! 그런데도 씨발 새끼가 내 신경 거슬리는 짓 또 할래?! 응?! 이 씨발! 너도 다른 병신들처럼 죽어볼래?! 응?! 여기서 콱 죽여줄까?!”

“자...잘못했다. 내...내가 자...잘못했다...”

“하악...하악...후...”

콜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낸시를 향해 살짝 한쪽 눈을 감았다 뜨며 씨익 웃었다.

피터는 흐느끼며 숨죽여 울었다.

낸시는 그 울음소리가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저 울음소리를 알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숨죽여 우는 소리...

콜린은 손짓으로 낸시를 불렀다.

“야! 이리 와! 너도 손발 묶어야지! 괜히 골치 아파지기 전에 말이야.”

“그 전에 비욘느하고 에린을 살펴봐도 될까요? 다친 거 같으니까...”

“뭐?! 이 계집애가 미쳤나?! 야! 병신이라고 상냥하게 대해주니까 정신 못 차리냐?! 응?! 너 좀 쳐 맞아 볼래?! 너도 피터처럼 맞아보고 싶어?! 응?!”

콜린은 금세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낸시를 노려보았다.

낸시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다.

“크큭. 뭘 그런 걸로 겁먹고 그래? 그냥 농담한 거야. 크큭. 아! 그리고 너 병신이지. 하하! 내 정신 좀 봐. 그냥 거기 있어라. 내가 가서 묶어 줄 테니까.”

콜린은 줄로 낸시의 두 손은 묶었지만 다리는 묶지 않았다.

“뭐, 도망가려면 가던가. 그래봤자 몇 걸음일 테지만. 그리고 괜히 저것들 풀어주려고 했다간 나도 내가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 조심하고. 알았지?”

낸시는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겁먹은 모습을 보고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콜린은 에린이 깔아 두었던 모포 속으로 몸을 누였다.

하지만 여전히 피터의 흐느낌은 계속되었다.

콜린이 욕설을 퍼붓자 피터는 숨을 참으며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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