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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77화 (177/200)

00177  여행길에서(4)  =========================================================================

밤은 찾아왔다.

엘가와 로드리고, 호레, 그리고 기사 일행까지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았다.

엘가는 걸쭉한 스프를 만들었고,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모두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하지만 샬롯과 마부는 음식을 남겼다.

샬롯은 음식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아서 남긴 것 같았지만 마부는 통증 때문인 것 같았다.

호레는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그가 마부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마부는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어댔다.

결국 호레도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릇도 대충 정리하고, 이제는 잠자리에 들 일만 남았다.

로드리고는 눈치를 보다가 엘가에게 말했다.

“저기...같이 자도 되요?”

꽤나 절박한 표정이었다.

엘가는 처음엔 놀란 것 같았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로드리고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내 순결을 지킬 수 있어!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로드리고가 쭈뼛거리며 엘가의 모포를 같이 뒤집어쓰려고 하자 호레가 다가와 손으로 살짝 로드리고의 머리를 때렸다.

“녀석! 다 큰 녀석이 뭐하는 거냐? 혼자 자기 뭣하면 내가 같이 자줄 테니까 자 이리로 와라.”

로드리고는 절대로 싫다는 듯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저는 여기가 좋아요.”

말은 똑 부러지게 했지만 호레와 시선은 마주치지 못했다.

호레는 더 이상 로드리고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 그의 몸을 그대로 집어 들고 어깨에 들쳐 멘다.

발버둥을 쳐보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혼자 자는 거야. 그래야 강한 남자가 되지. 누나 품에만 있으려고 해서는 제대로 된 남자가 될 수 없지. 네놈 뭐라고 했었냐? 누나를 지킬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럼 좀 그럴듯한 모습을 보여 봐라. 응?”

이게 누구 때문인데 설교야?!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호레와 같이 모포를 덮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자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과연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를 구해줄 사람이 이 중에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나는 그런 일을 당하는 동안 도와달라고 소리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런 창피한 일을...

모두가 알게 되는 거다.

크으윽...

오늘 검의 신전에 가야 할까?

만약 갔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제때에 저항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려움에만 떨 수도 없다.

결국 로드리고는 검의 신전에 가기로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놈보다 뛰어난 혹은 적어도 엘가를 데리고 도망칠 수 있는 무력 정도는 얻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어.

그는 루트를 쥐고 눈을 감았다.

조금 있으니 의식이 몽롱해졌다.

“하하! 어서 오게.”

황혼의 기사가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로드리고는 그와 정답게 인사를 건넬 정신이 없었다.

곧바로 기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큰일입니다!”

“?”

로드리고는 마차로 그 사내가 마부를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마차를 집어 던진 괴력은 얼마나 굉장했는지를 말했다.

마지막으로 조금 주저하다가 입술을 깨물며 남색을 하는 사람 같다고 밝혔다.

지금도 자신의 순결은 몹시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며 몸을 부르를 떨었다.

기사는 로드리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남색은 권장할만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네.”

순간 로드리고가 기사의 손을 탁 소리나게 치면서 한걸음 물러났다.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설마...

“그럼 기사님도?”

하지만 황혼의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네. 애초에 그런 욕구도 사라져 버렸고. 육체를 제대로 통제하게 되었으니까. 아니...육체라고 해도 좋을지 나도 모르겠군. 아무튼 난 자네의 몸에는 아무런 욕구도 생기지 않으니 안심하게.”

“그래도 예전에는 그랬다는 것 아닙니까?!”

실망했다는 듯이 로드리고가 소리쳤다.

그러나 기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다만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을 뿐이다.

“딱히 남자에게 흥미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야. 다만 남자끼리 오랫동안 임무를 수행하거나 훈련을 받게 되면 그런 쪽으로 약한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지. 한창때의 사내들이 자기 욕구를 참으며 오랜 기간 목표를 가지고 정진하는 거네. 그러다보면 욕구를 해소해야 하는 때도 생기는 법이지.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약해지는 때는 있지 않겠나? 그저 남들이 하기에 잠시 호기심을 가지고 몇 번 경험해 봤을 뿐이네.”

로드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보고 지금 그 남자에게 엉덩이를 내주라는 말인가요? 그게 그렇게 나쁘지 않으니까?!”

“아닐세. 그런 건 상호간에 의견이 일치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지. 한 사람의 강요로 억지로 해서는 안 돼.”

“저...저는 무조건 싫어요! 만약 하게 된다면 억지로 하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하하! 걱정 말게. 단련 시켜 줄 테니 말이야.”

“아주 굉장한 걸 가르쳐 주세요. 놈을 한 순간이라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그런 거요!”

하지만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급하게 가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아. 한순간의 실력은 높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그걸 메우기 위해 더욱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만 하지. 결코 현명하다고 할 수 없네.”

“그건 기사님의 순결이 위협받지 않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실 수 있는 겁니다! 아니...이미 거기 순결을 잃으신 건가요?”

로드리고가 애매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절대 아닐세! 나는 공이었지 절대 수가 아니었어! 내 거기는 아직 순결하네.”

조금 자존심이 상한 듯 기사의 눈초리가 약간 꿈틀거렸다.

그걸 보고 로드리고는 자기가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괜히 기분이 상했다고 가르치는 것이 어영부영되어 버리면 손해는 전적으로 로드리고가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때라면 별로 상관없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하다.

“아..압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죠. 하...하하하...저는 그저 기사님만 믿을 뿐입니다. 지금의 놈을 상대할 수 있는 그런 걸...부디...”

“뭐, 생각해 보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몸에 상당히 무리는 가겠지만 그래도 결국은 회복되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고수를 상대할 때, 한순간 곤란하게 할 수 있는 비장의 수를 마련해 두는 것도 현명하다 할 수 있지. 좋네. 지금부터 배우게 될 것은 시간을 격하는 움직임일세. 본래라면 하루 만에 배울 수 없지만 내가 자네 몸에 마나를 주입해서 마나의 밀도를 높이게 되면 어떻게든 될 걸세. 그 움직임의 규칙적인 흐름도 기억하고 말이야.”

“그거면 정말 그를 이길 수 있는 겁니까? 파박 하고요?”

로드리고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러나 기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이길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네. 그래도 누구든 당황하게 할 수는 있겠지. 예를 들어 상대방은 이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상대해 주고 있다가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결국 손발이 분주해지게 마련이지. 그거면 잠시 동안 우위를 점할 수 있어. 진정한 실력자가 할 법한 기술은 아니지만 지금의 자네라면 한동안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걸세. 그래도 과신하지는 말게. 상대방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는 자네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항시 존재하니까.”

“배우기는 어렵겠죠?”

“쉬워서야 비장의 수라고 할 수 없지. 누구든 배울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것 참 힘이 되는 말이네요.”

“하하! 뭐 내가 가르치는 거니까. 여기 올 수 있는 건 자네밖에 없고.”

말 한번 예쁘게도 하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확실히 시간을 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나 로드리고는 참을 수 있었다.

지금은 고통을 호소할 여유는 없다.

오로지 전진뿐이다.

그러나 이걸로도 안 되면 어쩌지?

놈을 이길 수 있는지 시험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냥 대놓고 겨뤄보자고 할까?

그랬다가 놈이 내 한수를 보고 위협을 느껴 죽이겠다고 마음먹으면...

아니...그래도 놈은 내 순결을 노리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겠지.

아무튼 황혼의 기사가 비장의 수라고 말한 기술이다.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진 않을 거야.

그리고 혹시 이기지 못하더라도 내가 만만치 않은 놈이란 걸 놈에게 인식시킨다면 놈도 지금까지처럼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하겠지.

나는 나날이 강해진다.

살아만 있다면 조만간 놈 정도는 어떻게든 이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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