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리고 사가-184화 (184/200)

00184  새벽이 오면 어둠은 물러간다  =========================================================================

미하일은 샬롯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딸아이일세. 그리고 이쪽이 내가 말했던 부상자이고.”

“미하일 경,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 마차도 마부를 태워줄 공간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해가 저물고 있어 여기서 야영을 하는 김에 저녁을 대접해 드릴 뿐입니다.”

“알고 있네. 그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워하고 있다네. 다만 이래서는 도무지 마을로 갈 방법이 요원하네. 자네가 다음번에 들르는 마을에서 이곳 위치를 설명해 주고 마차를 한 대 보내주게나. 많지는 않지만 자네에게도 사례금을 조금 지불할 테니까 말이야.”

“사례금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더 돕지 못하는 것이 죄송할 뿐입니다.”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렇게 낸시 일행은 그날 밤, 미하일 경과 함께하게 되었다.

샬롯은 끊임없이 에린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며 자기 옷매무새를 정돈하기에 바빴다.

정말 잘생겼단 말이야.

평민일까?

하지만 말투를 보아서는 그냥 시골 무지렁이는 아닌 것 같은데...

아빠한테 물어볼까?

아니야. 아직 아빠한테 화가 풀린 것은 아니니까.

내 뺨을 때리다니...

이게 다 그 멍청해 보이는 계집애 때문이잖아?

대체 귀족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여기가 아빠가 다스리는 영지였다면 분명 목을 배었을 텐데...

모시던 영주에게 고작 마을 하나를 받았을 뿐이지만 샬롯은 절대적으로 그걸 영지라고 믿었다.

실제로 보면 그 시골 마을 정경에 꽤나 실망할 테지만 아직은 꿈에 부풀어 있는 상태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아니라 스프는 금세 완성되었다.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모여 앉기 시작했다.

비욘느도 비어 있는 자리에 앉으려 했다.

하지만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갑자기 다가온 누군가가 비욘느를 밀어 넘어뜨리고는 에린의 옆자리에 재빠르게 앉았기 때문이다.

비욘느는 얼굴을 찡그리며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기사가 딸이라고 소개했던 계집애였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무례한 일은 거의 당해본 적이 없는 비욘느로써는 황당할 뿐이었다.

물론, 단연코 최고는 어제 콜린 이란 강도놈에게 볼기짝을 얻어맞은 일이지만 지금 이것도 무척이나 기분이 상한다.

한마디 해주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피터가 쓰러져 있는 비욘느를 번쩍 일으켜 세워주었다.

피터가 바보 웃음을 지으며 비욘느가 뭔가 칭찬의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비욘느는 그냥 무시해 버렸다.

비욘느는 기회를 봐서 한소리 해주겠다고 마음먹고는 샬롯이란 계집의 옆에 앉았다.

낸시가 스프를 떠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건네면 그 사람이 또 옆에 앉은 사람에게 건네는 방식으로 스프는 전달되었다.

비욘느에게서 스프를 건네받은 샬롯은 만면에 활짝 미소를 지으며 에린에게 말했다.

“여기 있어요. 어머! 조금 뜨거운데 조심해서 먹어야겠어요. 제가 식혀줄까요?”

그녀의 노골적인 시선에 에린은 부담을 느끼며 되었다고 말했지만 샬롯은 막무가내로 직접 호호 입으로 바람을 불며 에린의 스프를 식혀주었다.

곁에서 비욘느는 그걸 보며 정말 깬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연히 목소리도 짜증스럽게 변해 말했다.

“어서 네 꺼나 받아! 나도 내 것 받아서 먹어야 하니까! 그런 건 에린이 아무리 멍청해도 지금까지 자기가 알아서 먹었거든. 입천장이 전부 데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그런 걸로 울진 않았으니까 뭐, 괜찮겠지.”

에린은 얼굴을 붉혔다.

정말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에린은 서둘러 손을 뻗어 샬롯이 쥐고 있는 자신의 그릇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샬롯의 손과 포개지고 만다.

샬롯을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머! 몰라...’하며 고개를 숙인다.

딱히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녀의 반응에 에린은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나는...그냥 그릇만 좀 주시오.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그러시겠어요?”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샬롯이 말했다.

비욘느는 ‘우엑!’하고 곁에서 토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마침내 그녀가 그릇을 건네주었다.

비욘느는 짜증스럽게 샬롯의 그릇을 건네주었는데 그때, 샬롯이 비욘느의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못생긴 계집애가 정말! 한번만 더 그렇게 건방지게 굴면 혼날 줄 알아! 얼굴은 퉁퉁 부어가지고!”

비욘느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역팔자로 휘어진다.

비욘느는 순간적으로 샬롯에게 건네고 있던 그릇에 꽉 힘을 주고 만다.

당연히 샬롯은 그릇을 받아들 수 없게 되었다.

샬롯이 노려본다.

비욘느도 노려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마치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 낸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비욘느가 고개를 돌리자 낸시가 비욘느의 스프를 건네주고 있다.

샬롯이 ‘푸웃’ 하고 웃었다.

“아가씨라고? 정말 뭐람? 애들 소꿉장난? 뭐...동경하는 마음은 알겠지만...그렇게 못생긴 아가씨가 어디 있담?”

절대로 못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간밤의 일로 얼굴이 퉁퉁 부은 비욘느는 차마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무척이나 속상했다.

비욘느는 이를 악물며 낸시에게서 스프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세뇨르 선생에게서 받아왔던 모든 식사 예절을 무시한 채, 쩝쩝 소리를 내며 스프를 입에 떠 넣기 시작했다.

화가 난다.

정말 저 계집애한테 화가 난다!

비욘느와는 대비되게 고작 스프 한 그릇에 불과했지만 에린은 무척이나 고상한 자세로 조금도 소리 내지 않고 먹었다.

그걸 보며 샬롯은 역시나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귀족이 틀림없어!

스푼을 든 저 손가락도 얼마나 우아하냔 말이야?

아~!

눈이 하트로 변한 샤롯은 꿈꾸는 표정으로 에린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에린은 부담스런 표정으로 애써 샬롯의 시선을 피하며 식사를 계속했다.

미하일 경은 대충 배를 채우고는 에린을 향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목적지가 어딘가? 딱히 마차에 물건이 실려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여자아이도 둘이나 있어서...그다지 여행에 적합한 조합은 아니군. 뭐, 어른이 한 명 있기는 하지만...그것도...”

에린은 샬롯 때문에 부담스럽던 차에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미하일 경에게 시선을 주었다.

“친구를 찾고 있습니다. 일단은 수도가 목표입니다. 거기에서 정보를 모으는 것이 가장 빠를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이렇게 동생들까지 데려간단 말인가?”

미하일 경이 낸시와 비욘느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에린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동생들이 아닙니다. 낸시 양은 제 친구가 저에게 당분간 돌봐달라고 부탁한 사람이고, 그리고 비욘느 양은...아무튼 동생 같은 건 아닙니다.”

“그럼 저 친구는 뭔가?”

미하일 경이 그릇을 싹싹 핥아 먹고 있는 피터를 가리키자 에린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어제 만난 강도입니다.”

“뭐?”

미하일 경이 자기 귀를 의심하며 재차 묻는다.

에린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미하일 경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아무튼 운이 좋았군.”

“운이라...이제는 모르겠군요. 아무튼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때, 샬롯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어머! 그러고 보니 우리도 요 근래 꽤 큰일을 겪었답니다.”

미하일 경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마차도 부서지고, 굉장한 사람도 만났으니까. 자네 내가 누굴 만났는지 맞춰보겠나?”

샬롯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빠, 그 사내가 누군지 알아요?”

“그렇단다. 너도 들으면 깜짝 놀라고 말게다.”

너무도 확신이 선 미하일 경의 표정에 에린은 대체 누굴 만났길래 그러는지 궁금해졌다.

“뭡니까? 설마 대륙 10강이라도 만나신 겁니까?”

그냥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미하일 경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바로 그렇다네! 방랑왕 호프레를 만났지!”

그 말에 에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건 곁에 있던 샬롯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이 방랑왕이었다고요?!”

“그렇단다. 처음엔 왕국 10강 중 한사람 정도로 생각했는데 사실을 알고는 나도 깜짝 놀라고 말았지. 같이 있던 꼬마 녀석도 실력이 상당하더군.”

“아! 그 꼬마! 이름이 로드리고가 했던가요?”

“!”

“!”

“!”

샬롯의 말에 에린, 낸시, 그리고 비욘느가 동시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린이 샬롯의 손을 움켜쥐고 강렬한 눈빛으로 물었다.

“지금 로드리고라고 했소?!”

그러나 샬롯은 에린의 질문이 조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슴이 미친 듯이 콩딱 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