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7 새벽이 오면 어둠은 물러간다 =========================================================================
“그..그것들은 흉악한 놈들이었습니다. 제가 자는 사이에 접근해서는 순식간에 검을 뽑아들고....”
“거짓말!”
기사가 고함을 질렀다.
병사들의 검이 좀 더 사내를 압박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기사가 명령했다.
“놈을 붙잡아! 그리고 엄지손가락 두 개를 잘라버려!”
“예!”
병사들이 대답하고는 몇 몇이 사내를 꼼짝 못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한 병사가 사내의 손에 검을 가져다 대었다.
“으아아아아! 사...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니...제발 자비를....정말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나으리! 제발....제발...흐윽....흐흑흑...제발....”
칼을 든 병사가 기사를 쳐다본다.
결국 기사는 고개를 저으며 손으로 병사의 다음 행동을 제지했다.
“그렇다면 말하라! 하지만 이번에도 거짓을 고한다면 손가락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예! 말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말하고말고요!”
콜린은 울먹거렸다.
그리고 간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을 고할 수는 없었다.
눈치를 보건데 이들과 그 꼬마들은 아무래도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죄를 지어서 쫓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좋았지만 혹시라도 그런 것이 아니라면 참혹한 결과를 맞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노상강도라고 밝히면 그냥 내버려둘 리도 없다.
모든 잘못은 피터 녀석에게로 돌리자.
적어도 그놈이 비빌 언덕이 없는 놈이란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간밤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하룻밤을 나려고 불을 피웠습죠. 그리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저쪽 수풀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검을 뽑아들고 경계를 하는데 곧 어린애들이 몇 명 숲에서 빠져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순간 경계심을 누그러뜨렸습죠. 아이들이 몹시도 배고파하는 것 같아 부랴부랴 요기할만한 것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봤자 저 같은 형편에 있는 놈이 그리 대단한 것을 대접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따뜻한 스프는 피로를 풀어주곤 하지요. 아이들은 부족한 음식이나마 싹싹 핥아 먹었습니다. 조금 더 대접해 주고 싶었지만 저도 여행길이 아직 많이 남은지라 어쩔 수 없었죠.”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네놈의 양식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기사가 눈을 부라렸다.
“예! 그러려고 했습니다. 나으리! 헤헤...아무튼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소년이 제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살려주세요.’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무슨 소린지 몰라 다시 물었습니다. ‘뭐라고?’그랬더니 곁에 있던 소녀가 소년을 말리며 그러지 말라고 했지요. 도통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이 꼬마 녀석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다시 녀석들에게 괜찮으니 말해보라고 하는데 갑자기 다리병신인 년이...아니...다리를 저는 여자아이가 막 울기 시작했습죠. 저는 그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다리병신인 년이...아니...그러니까 다리를 저는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서...그 아이는 제 품에서 제대로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흐느꼈었죠. 저는 생각했습죠.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이렇게 운단 말인가?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해주자. 비록 돈은 얼마 없는 빈털터리지만 그래도 나는 따뜻한 가슴이 있지 않으냐?”
자기 이야기에 취했는지 콜린은 살짝 눈물을 내비쳤다.
뒤편에서 듣고 있던 병사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콜린의 이야기에 흠뻑 빠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흉악한 녀석이 나타난 겁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녀석이었죠. 얼굴도 험상궂어 보여 저는 곧바로 놈이 흉악한 범죄자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칼을 집어 들고 어린 애들을 제 뒤로 물렸습니다. ‘어서! 어서!’하고 소리쳤죠. 그리고 다짐했습죠. 이 아이들은 내 목숨을 걸고 지킨다. 비록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도리를 해야지! 나는 별 볼일 없는 놈이지만 이런 일은 당연한 거야. 저런 흉악한 녀석에게 어린애들을 넘겨준다면 그건 인간으로서 잘못된 것이다! 그때, 뒤편에 물러서 있던 사내놈이 분연히 검을 뽑아들더니 제 옆에 떡하고 버티고 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때까지 소년이 검을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습죠. 그러나 용기를 낸 그 소년이 잔뜩 긴장해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안쓰러워서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 그만 도망가라고 했죠. 그러나 소년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때였죠. 그 흉악한 놈이 고함을 질렀습니다. ‘에린~! 이 개새끼!’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소년의 떨림은 배가 되었습니다. 제가 소년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했을 때, 갑자기 뒤통수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제 뒤편에 피해있던 다리를 저는 소녀가 들고 있던 목발로 제 뒤통수를 내려친 겁니다. 그러나 고만한 소녀가 내려쳐봤자 기절하기에는 요원한 일이죠. 그러나 제 마음은 무척이나 아파왔습니다. 도와준 아이들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으니까요. 제가 그 괴한도 잊고 소녀를 쓸쓸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소녀는 뒷걸음질 쳤습니다. 저는 조금도 소녀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었는데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소녀는 상대방을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었죠. 저는 손을 저으며 소녀에게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괜찮단다. 괜찮고말고.’ 그러나 제 상냥함은 그 소녀에게 가서 닿지 않은 겁니다. 왜냐하면 다시 한 번 그 흉악한 놈이 고함을 질렀기 때문이죠. ‘에린~! 저놈이 저 다리병신년을 죽이려고 하잖아?! 이대로 내버려 둘 거냐?!’ 저는 제 곁에 있는 소년에게 시선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이를 악물며 제게 달려들더니 저를 넘어뜨렸습니다. 그 녀석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미안해요...아저씨 미안합니다...’ 전 차마 소년을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소년이 사정없이 저를 폭행했음에도 저는 꾹 참았습죠. 들고 있던 검도 놓아버렸습니다. 잘못하다 소년이 다칠 수도 있었으니까요.”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심스런 눈초리로 사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게 사실인가?”
“추호도 거짓이 없습니다. 전부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 꼬마 일행은 괴한에게 잡혀서 강도짓을 하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할 수만 있었다면 제가 어떻게든 했을 테지만 제 실력이 미천하여...크흑...”
사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울음을 참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야기는 그게 단가?”
“아닙니다! 아니고말고요! 그 후로 녹초가 되어 버린 저를 저 나무에 묶어 두고는 괴한이 어린애들을 겁주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말을 듣지 않은 소년을 구타하고, 그..비욘느라고 했나? 아무튼 그 꼬마계집애의 뺨을 이유도 없이 때렸습니다. 꼬마계집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 괴한은 조금도 개의치 않아하더군요.”
“뭐라고!!!!!!???????”
기사가 분노해서 소리쳤다.
“예?! 그게...꼬마 계집애가...얻어맞았다고...”
“꼬마 계집이 아니다!!!!!!!!!!!!!”
어찌나 박력이 넘치는 고함인지 콜린은 잔뜩 쫄아서 어안이 벙벙했다.
그 계집애가 찾는 아이일까?
반응이 무척이나 격한데?
“그래서...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그게....기절했습니다. 그러자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두더니 다리병신인 년을...그러니까..아! 맞다! 그년은 낸시라고 했는데...”
“낸시?!!!!”
곁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헤나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 꼬마 계집애는 또 뭐야?!
가뜩이나 긴장되는 와중에?!
콜린이 눈을 부라리며 헤나로를 위아래로 째려본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헤나로가 말했다.
“정말 낸시 언니에요?! 다리가 불편하다고 하는 걸 보면 언니가 맞는 것 같은데...하지만 그럼 오빠는 어디 갔지? 로드리고라고 같이 있지 않았어요? 저보다 좀 더 크고...그냥 대충 생겼는데...”
“그런 거 몰라! 조...조용히 해, 너는! 정신사납게 하지 말라고!”
콜린이 헤나로에게 소리를 쳤다.
그러나 기사는 그런 콜린을 손으로 막으며 헤나로에게 말했다.
“꼬마야, 너는 누군데 로드리고 군을 알고 있는 것이냐?”
“로드리고 군? 우리 오빠요? 그야 동생이니까 알죠. 낸시 언니 다리 고쳐준다고 했었는데 또 어디 간 거야? 아저씨는 우리 오빠 알아요?”
“이거 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걱정이군. 아가씨가 그런 지경에 처해계시다니...이봐, 자네!”
기사가 콜린을 부른다.
“예! 나으리!”
“그럼 그 괴한은 언제 떠난 거지? 그리고 어디로 간다고 했나?”
“이쪽 길로 간 것은 확실하지만 저도 확실히는 모릅니다. 아무래도 경황이 없어놔서...”
기사는 병사들 몇을 지명하더니 말했다.
“너희는 먼저 전력으로 달려가서 아가씨의 위치를 확보해라!”
“예! 기사님!”
먼지를 날리며 부하들이 달려가 버린다.
“그럼 네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