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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91화 (191/200)

00191  새벽이 오면 어둠은 물러간다  =========================================================================

호프레는 홀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딱히 천장에 무언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침대에 누우니 곧바로 보이는 것이 천장이었을 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포션이라도 몇 개 챙겨둘 걸 그랬어.

내 실력이라면 딱히 다칠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런 걸 가지고 다니는 것은 고려해 보지도 않았는데...

아무래도 내일은 로드리고를 내가 직접 치료해봐야겠군.

마나를 움직여서 부상을 호전시키고 정신이라도 들게 해야지 이래서는 엘가라는 그 아가씨와 영 불편해서...

하여간 나도 병이군. 병이야.

그녀가 약한 모습을 보이니 무의식적으로 안아버리고 말았어.

그러니 마누라가 매일 바가지를 긁었지.

하아...

하지만 마나 핵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녀석인데 과연 보통 하던 방식으로 치료를 시도해도 괜찮을까?

괜히 상황만 더 나빠지는 거 아니야?

그냥 좀 더 참고 신전이 있는 도시까지 가서 포션을 사 먹이는 편이 나을까?

이거 참...

아무튼 오늘은 이만 자자.

내일 다시 한 번 녀석의 내부를 살펴보고 결정해도 늦지는 않겠지.

한편 엘가는 침대 맡에서 로드리고를 지켜보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갑자기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루트였다.

엘가는 루트를 잠시 쳐다보고는 그걸 로드리고의 손에 쥐어주었다.

얼마 전에도 잠들 때, 이걸 손에 꼭 쥐고 자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로드리고가 이렇게 하는 걸 좋아한다면 정신을 잃은 지금도 손에 쥐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뒤 여행의 피곤이 겹쳤던 엘가도 로드리고의 침대 맡에 엎드려 잠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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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검의 신전에 자신이 서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분명히 그 사내와 겨루다가...

그래...졌지.

변명의 여지도 없이 지고 말았다.

그래도 조금은 자신이 있었는데...

그때, 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말이 아니군. 몸이 엉망이 되고 말았어.”

황혼의 기사가 혀를 차며 로드리고에게 말했다.

로드리고가 눈길을 주자 기사가 물었다.

“졌나?”

“...완패입니다.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어요. 마치...벽에 마주한 것 같았습니다. 노력한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쓸쓸한 목소리로 로드리고가 말했다.

그러자 황혼의 기사는 씨익 이를 보이며 웃어보였다.

그는 큼지막한 손을 로드리고의 머리 위에 얹었다.

“누구든 질 때가 있지. 나도 숱하게 패했었네. 아직 온전히 준비되지 못한 자는 그럴 수밖에 없어. 패하는 것은 분하지. 슬프고, 스스로에 대해 회의가 들 때도 있어. 영원히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것 같고, 자신의 재능에 불평도 하지. 패하는 건 무척이나 마음이 아픈 일이지.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경험...그것이 패배일세. 하지만 패배는 과정이야. 그것이 끝이라면 소망을 갖기 힘들 텐데 정말 다행이지 않나? 자네가 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을 진심으로 전력질주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패배라는 것이 도사리고 있어.. 숱하게 패배를 겪다 보면 결국은 이기게 되지. 그리고 어느 순간 패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네. 자네는 아직 과정 중에 있는 거야. 실망하지 말게.”

“좋은 말이지만...저는 꽤 위험한 상황에 쳐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패배는 곧 순결을 잃는 결과입니다만...”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로드리고가 말을 흐렸다.

“그걸 한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아니 나는 그냥 위로를 하려고...”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 건 위로가 아닙니다!”

로드리고가 숨을 몰아쉬며 고함을 질렀다.

황혼의 기사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했다.

“뭐, 일단은 몸부터 고치는 게 낫겠네. 뭘 하든지 멀쩡한 몸은 중요하니까.”

로드리고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가슴 언저리가 욱신거린다.

몸 내부도 통증이 느껴졌다.

“고칠 수 있으세요?”

미심쩍은 눈초리로 황혼의 기사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이런 건 별거 아니야. 나정도 실력이면 간단하지. 게다가 자네가 익힌 마나 수련법도 내가 직접 만든 거고. 다만 내가 고칠 수 있는 건 직접 여기에 올 수 있는 자네밖에 없지만...”

황혼의 기사가 로드리고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막대한 기운이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고통은 없었다.

한동안 로드리고의 몸 내부에서 휘몰아치던 기운은 황혼의 기사가 손을 떼자 곧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움직여 보게.”

로드리고는 정말로 몸이 멀쩡해 진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황혼의 기사는 눈을 찡긋 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게. 아무리 그래도 자네는 내 취향이 아니야. 나는 좀 더 미소년이 취향이거든. 그쪽 분야는 그 사내에게 직접 배우게나.”

로드리고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절대로 배우지 않을 겁니다! 그러느니 죽고 말 거예요!”

“하하! 진정하게. 진정해. 자네가 죽어 버리면 내가 곤란하니까. 또 여기서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 그러느니 나야말로 죽고 싶네.”

“뭔가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기사님은 최강이라고 항상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제자가 부끄러운 짓을 당할 위기인데 그냥 가만히 있으실 생각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무력을 갖추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네. 그런 걸 무시할 수는 없어. 물론 내게 배우면 그 시간이 상당히 단축되지만 그래도 하루 이틀 만에 끝낼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럼...저는...”

로드리고가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늘어뜨린다.

“후우...”

황혼의 기사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로드리고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온다.

“그럼 뭘 망설이고 있으신 겁니까?! 어서 가르쳐 주십시오!”

“하지만 위험한 방법이네. 게다가 이것도 중요한 한방이라고 하기에는 미적지근한 부분이 있거든. 물론, 나름대로의 장점은 있지. 그래도...”

“지금 저는 위험하고 안전하고를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도 일단 들어보게나. 그리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까 말이야.”

“좋습니다. 어디 들어보죠.”

“현재 자네의 몸에는 마나 핵이 두 개 존재하고 있네. 하나는 심장에, 또 하나는 아랫배에 있지.”

“예.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걸 추가로 몇 개 더 만드는 거네.”

“더 많이요? 그게 가능하나요?”

로드리고가 고개를 갸웃 거린다.

“솔직히 말하면 자네 몸에 있는 두 개의 마나 핵도 내가 살아 있던 때에는 불가능한 것이었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크게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네. 사람이 일평생동안 연구해서 정진한다고 해도 한계는 뚜렷해. 연구 성과를 제자에게 남긴다고 해도 결국 스승의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그럼 결국 그 다음 단계의 연구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아. 게다가 처음 스승이 의도했던 방향과 달라질 가능성도 높지. 그리고 실험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몸을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상당한 기간 동안 수련을 시켜야 하지. 그럼에도 실험이 실패로 끝나면 그 사람이 온전히 살아있을 가능성도 무척이나 적네.”

“그럼 지금 저를 실험용으로 사용한다는 말이에요?”

로드리고가 미간을 좁히며 황혼의 기사를 경계한다.

“하하! 위험해도 무조건 할 것처럼 말하더니 벌써부터 그렇게 겁에 질려서 어쩌자는 겐가? 아무튼 오해하지 말게! 그런 짓은 하지 않아. 자네는 내게 무척이나 중요하네. 나는 세상과 나를 잇는 유일한 통로를 실험에 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

“그럼 대체 뭡니까?”

“그 실험을 나는 내 몸에 충분히 해보았다는 말이네. 아주 오랜 세월동안 말이야. 여기에서 나는 절대로 죽지 않으니까. 어떤 실험을 해도 곧바로 회복할 수 있고 말이야. 그래서 세상에서 몇 만 년이 걸려도 불가능한 성과를 혼자서도 낼 수 있는 거야. 덕분에 여러 형태의 마나로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지. 그래봤자 최종 단계는 결국 하나였지만...”

“그 최종 단계는 뭡니까?”

“온 몸이 하나의 마나 핵이 되는 것일세. 결국 어떤 마나로드를 통해 수련을 해도 모든 극의를 깨닫게 된다면 거기로 수렴하게 되어 있어. 물론, 마나로드라는 게 곳곳에 상당히 엉성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라 혼자 끙끙 대다가 제자리만 빙빙 도는 경우가 허다하지. 실제로 마나로드를 만든 수많은 고수들도 가보지 못한 길이지.”

“그럼 황혼의 기사님은 지금 온 몸이 마나 핵이라는 말인가요?”

“그렇지. 이 다음 단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일단 여기가 최종 단계라고 생각하네. 여기까지 도달 할 수 있는 여러 경로를 연구할 수는 있지만 내 실력은 몇 백 년 째 답보하고 있어. 스킬이나 마나 사용의 효율적 면에서는 예전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봤자 나는 예전에도 최강이고 지금도 최강이지.”

“어째 자랑처럼 들리는데요?”

“자랑이라기보다는 사실이지.”

“......”

“뭐, 자네 수준에서 그런 반응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아무튼 이야기를 다시 처음으로 돌려서 제 몸에 더 많은 마나 핵을 만들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야 당연히 강해지지.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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