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4 새벽이 오면 어둠은 물러간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호프레는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어제 확인했을 때는 마나 핵이 두 개였는데 지금은 하나밖에 없다.
내가 착각했었단 말인가?
호프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몇 번이고 확인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아무리 살펴도 지금 이 순간 로드리고의 마나 핵은 하나뿐이다.
심각해지는 호프레의 표정을 보고 로드리고가 물었다.
“뭐가 잘못되었나요?”
“딱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조금 더 살펴봐야겠군.”
호프레는 그제야 로드리고의 내상을 살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이상했다.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전부 완치되어 있잖아?!
호프레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도무지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상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있는 셈이다.
“혹시 포션을 마셨나?”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호프레는 물었다.
“있어야 마시죠.”
로드리고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버린다.
“하지만 이건...”
“딱히 불편한 곳은 없어요. 이제 됐습니다.”
로드리고는 호프레를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는 가슴에 압박해 두었던 붕대도 훌훌 풀어버렸다.
그걸 보고 엘가가 소리쳤다.
“그걸 풀면 안 돼! 의사 선생님이 부러졌다고 했단 말이야. 제대로 붙으려면 한 달도 더 걸릴 거야.”
하지만 로드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됐어요. 빨리 낫는 체질이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글쎄요? 아무튼 나았다는 소리죠. 자 봐요!”
로드리고는 자기 가슴을 탁탁 소리 나게 치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호프레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어떻게 정리해야 좋을지 몰랐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군.
하지만 마나 핵이 하나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어제는 두 개였던 것도 사실이고.
몸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안타까운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군.
지금보다 내 실력을 더욱 발전시킬 계기가 되어 주었을지도 몰랐는데...
그때, 로드리고가 호프레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튼 절 제자 삼고 싶다는 거죠?”
로드리고가 갑작스레 말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웃으며 호프레가 말했다.
“그렇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어서 좋군.”
“그럼 조건이 있습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로드리고가 말했다.
“내가 방랑왕인 걸 믿나?”
호프레는 로드리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다는 듯, 유심히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믿든 그렇지 않든 저보다 강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럼 뭔가 배울 것은 있겠죠.”
“하하! 좋은 마음가짐이군. 그럼 조건은 뭐지?”
“치유왕 테레사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치유왕을?”
호프레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친분이 있지 않나요?”
하지만 호프레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대륙 10강이라고 전부 서로를 알고 지내는 것은 아니야.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멋대로 뽑은 것에 불과하니까.”
“그럼 모르시나요?”
“치유왕은 만나본적이 없네. 알다시피 난 몇 년 전까지 기사왕이라고 불렸네. 주로 제국 안에서만 활동했지. 타국과 분쟁이 있으면 국경지대로 갈 때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타국 영토 안으로 깊게 침투해 들어간 적도 드물어. 제국 내에 있는 대륙 10강이 아니라면 딱히 친분은 없어.”
“그럼 법왕이나 마법왕은요?”
“마법왕은 잘 알아. 제국에 있으니까. 황제폐하를 알현할 때, 자주 만나는 편이었지. 법왕은 만나본 적은 있지만 그다지 친밀하다고 할 수는 없고. 아무래도 나 같은 세속적인 사람과는 세계가 많이 다르니까.”
로드리고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말했다.
“그럼 마법왕 마나우스를 만나게 해주세요.”
“이유가 뭐지?”
“아픈 사람이 있어요. 고쳐줘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물어본 사람이 치유왕이었군.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그러지?”
“다리를 절어요. 뼈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었죠. 바로 포션을 사용했더라면 괜찮았겠지만 뭐, 잘되지 못했죠. 포션은 비싸니까요.”
로드리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투였지만 눈빛은 무척이나 쓸쓸했다.
“그렇군. 다리를 저는 것 정도는 마나우스도 고칠 수 있겠지. 그다지 정상적인 친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실력은 확실하니까. 좋네. 그런데 그 다리를 저는 친구는 누구지?”
“그건 왜 묻죠?”
“그야 당연히 데려가야 하니까 묻는 것이네.”
“어디로요?”
로드리고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디긴? 마나우스가 있는 제국이지!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곁에 있지 않고서는 고칠 방도가 없지.”
“아!”
로드리고는 순간 말을 잃었다.
젠장!
물론 고치려면 낸시를 데려가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낸시를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에린과 낸시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일단 마법왕에게 사정부터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뭣하러?”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호프레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게 안 고쳐 줄 수도 있는 거고...”
로드리고가 말을 흐린다.
“치료해야 하는 사람이 엄청난 악인인가?”
“그렇지는 않죠! 그냥...제 또래 계집애예요.”
“그럼 당연히 치료해 주겠지. 얼마 걸리지도 않을 걸세. 딱히 그런 걸로 쩨쩨하게 구는 친구는 아니야.”
“그래도 경우라는 게 있으니까 먼저 묻고, 허락을 구한 다음에 데려오는 편이...”
로드리고는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에린과 낸시의 모습에 일부러 억지를 부렸다.
“생각보다 예의를 많이 차리는 성격이군 그래. 뭐, 정 그렇다면 그 아이를 데려가서 내 저택에 묵게 하고, 마법왕에게 먼저 기별을 넣은 다음에 마나우스가 허락하면 데려가는 걸로 하지. 그럼 조금도 예의에 어긋날 일은 없으니까 말이야.”
“...그..그렇죠...”
“그럼 그 아이는 어디 있나? 여기서 멀리 있나?”
“그게...”
“?”
로드리고는 깍지를 낀 채 손가락을 꿈틀거리다가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 그냥 제자를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뭐?!”
호프레의 표정이 와락 구겨진다.
지금까지 대화가 좋게만 이어졌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방랑왕의 명성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고...”
로드리고가 중얼거렸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낸시 다리는 제가 어떻게든 고치면 될 것 같으니까...어차피 이 여행은 좀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고...”
“지금 나랑 장난하겠다는 건가?!!!!”
호프레의 고함에 건물이 흔들렸다.
로드리고는 그 기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증하지. 충분히 내 명성을 감당하고도 남을 거야. 내가 보증하지. 그런 걸로 걱정하진 않아도 좋네. 그리고 혹시 마나우스 그 친구가 내 부탁을 거절할 거란 생각도 버리게. 그건 그를 모독하는 행위야.”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는 무조건 그러겠노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방금 말한 그 낸시라는 소녀는 어디 있나?”
“프...프레사에 있을 겁니다.”
“그거 참 잘 되었군! 가까우니 말이야. 뭐 조금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할 테지만...”
“...그렇네요.”
조금도 기쁘지 않은 표정으로 로드리고가 말했다.
물론 낸시가 다리를 고치게 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온전히 기뻐할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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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맘때, 마을로 들어서는 마차가 있었다.
“이 마을에 있을 까요?”
“그건 모르오. 하지만 로드리고가 다쳤다고 했으니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오. 그 길목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여기니 차근차근 시작해 봐야겠지.”
“그러는 사이에 멀리 가버리면 어떻게 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비욘느 양!”
“그럼 어서 서두르자고! 여관부터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