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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사가-197화 (197/200)

00197  새벽이 오면 어둠은 물러간다  =========================================================================

비욘느가 피터와 함께 여관 입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말을 탄 병사들이 나타났다.

베드렘이 보낸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비욘느를 보았음에도 그녀가 자신들이 찾는 아가씨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얼굴이 퉁퉁 부어서 그들이 알던 귀여운 모습이 아니었고, 옷차림도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다르게 비욘느는 브라우닝 가문의 문장이 병사들의 방어구에 새겨진 걸 보고,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들이 한차례 비욘느를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자연히 시선을 끄는 것은 덩치 큰 사내, 피터였기 때문이다.

선임 병사를 의심스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가씨가 덩치 큰 사내에게 붙잡혀 왔다고 들은 탓이었다.

“네놈! 이름을 밝혀라! 여기 출신인가?”

병사의 물음에 피터는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피..피터...나..피터다..피터...길에서 왔는데...그냥...길...”

그의 어눌한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까지 어떻게 보아도 지능이 떨어지는 자였다.

선임 병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곁에 있던 다른 병사가 말했다.

“이자는 아닐 것 같습니다. 덩치는 크지만 아무래도...”

“그렇군. 그자가 말했던 것처럼 흉악한 괴한으로 보이지는 않으니 말이야. 자네는 여관에 들어가서 주인에게 숙박하는 자중에 그 괴한과 아가씨를 보았는지 물어보게. 나는 다른 루트로 찾아볼 테니 말이야.”

그렇게 그들은 눈앞에서 비욘느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가버렸다.

남은 병사 한 명도 여관주인이 보지 못했다고 했는지 그대로 어디론가 말을 타고 달려가 버렸다.

비욘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못 알아 볼 정도로 형편없는 몰골이라고 생각되어 속상하기도 했다.

그때, 여관입구로 로드리고가 나왔다.

비욘느는 깜짝 놀라 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려 버렸다.

어쩌면 로드리고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몰라.

옷도 이 모양이고, 얼굴도 붓기가 빠지지 않았고...

분명 추하다고 생각하겠지.

아...몰라...

그러나 로드리고는 곧바로 비욘느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가씨! 도대체 여기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그렇지만 비욘느는 대답지 하지 않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나를 곧바로 알아보았을까?

이런 몰골인데...그런데...

당연히 알아본 이유는 에린이 여관 밖에 비욘느가 와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얼굴도 가리고 있는데 알아볼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비욘느는 그 사정을 몰랐고, 그래서 조금은 감동하고 말았다.

그녀는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로 말했다.

“아가씨가 아니라 그냥 비욘느!”

투정을 부리는 말투다.

로드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비욘느, 여긴 왜 온 거예요?”

“그야 로드리고가 말도 안하고 그냥 가버리니까 그렇지! 나한테 검술도 가르쳐 주기로 했었으면서...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그런데 다음날 사라져 버렸잖아?!”

로드리고는 마구 머리를 긁어댔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게다가 편지에도 나한테는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어! 몇 번이나 읽어 봤는데 그런데...내 이름은 없었단 말이야!”

그야 나도 그때는 내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들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완전히 마음이 산산조각 나있었다구!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비욘느, 그렇게 화내지 말고, 손도 좀 치워 봐요. 그 예쁜 얼굴도 좀 보여주고. 응?”

로드리고는 더 이상 사과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대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그러나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다.

로드리고의 그 말에 비욘느는 오히려 몸까지 완전히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예쁘지 않아! 엉망이란 말이야! 못 알아 볼만큼 형편없어 졌다고! 이젠 추해! 아주 추하단 말이야!”

이것도 안통하나?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일단은 이걸로 계속 밀고 나가자.

“제가 비욘느 아가씨를 못 알아 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매일 생각하고 매일 그리워했는데...그 미소, 그 목소리, 그리고 작은 몸짓부터 희미한 미소까지 전부 제 머리에 새겨져 있어요.”

로드리고는 어느 순간부터 과거 자신이 그리워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어투와 어딘지 가라앉은 목소리가 상당히 상대방의 마음을 자극했다.

“..정말?”

아직도 심통이 난 목소리지만 그래도 기쁨이 묻어나온다.

“비욘느 아가씨는 제게 있어서 가장 예쁘고 귀여운 여자예요. 그건 변하지 않죠. 절대로...”

“무...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황한 듯 비욘느가 말을 더듬었다.

“자 손을 치워 봐요. 응?”

로드리고가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자 비욘느는 머뭇거리다 두 손을 얼굴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본 로드리고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뭐냐?!

왜 얼굴이 저렇게 퉁퉁 부어있어?!

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

대체 누구냐?!

이대로 성장해서 내가 과거 그렇게도 사랑해 마지않던 그 모습이 되어주어야 하는 그녀가!!!

로드리고의 반응에 비욘느는 다시 손으로 얼른 얼굴을 가리고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봐! 거짓말쟁이!”

그러나 로드리고는 더 이상 그녀의 투정을 들어줄 여유가 없어진 걸까?

힘주어 비욘느의 손목을 움켜쥐고는 얼굴에서 손을 치웠다.

그리고 뚫어져라 그녀의 눈에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누굽니까?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

로드리고는 무척이나 화가 나 보였다.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이 무척이나 무섭게 보였다.

그러나 비욘느는 겁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나를 위해 화를 내고 있어.

“이미 지난 일이야.”

로드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 일이 아니에요!”

로드리고가 비욘느의 손목을 놓고는 부드럽게 뺨을 어루만졌다.

비욘느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가 결국 로드리고의 목을 끌어안고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아앙!!!!”

로드리고는 비욘느를 부드럽게 안아주며 생각했다.

이런 꼬맹이를 이렇게까지 두드려 패다니...뭐 그런 놈이 다 있어?

어디서 라몬 같은 쓰레기라도 만난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냥 프레사에 있지, 여긴 뭣 하러 온 거야?

한편 그때, 여관방에서는 호프레가 낸시를 침대에 앉히고 말했다.

“제가 다리를 살펴봐도 될까요? 레이디?”

그가 낸시를 빤히 쳐다보자 낸시는 조금 전 그가 자신의 이마에 키스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조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프레는 손으로 다리 곳곳을 만지며 유심히 그녀의 다리를 살폈다.

그러면서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이것은 누군가 둔기로 다리의 뼈를 산산조각 낸 것이 틀림없었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한때 기사왕이라고 불렸던 호프레의 입장에서는 아직 작은 소녀에 불과한 아이에게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았다.

낸시에게 그때의 사정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소녀에게 다시 한 번 그때의 일을 상기시키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그러나 그의 굳어버린 표정을 보고 오해한 것인지 낸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치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 말에 호프레는 입술을 깨물며 조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나 곧 마음을 추스르고는 낸시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정도면 고칠 수 있을 거야, 꼬마 아가씨. 그러니 좀 더 기대를 가져도 좋다고. 응?”

호프레의 그 말에 낸시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손으로 부드럽게 낸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곁에서 그걸 지켜보던 에린이 말했다.

“정말 잘 되었군요. 낸시 양. 호프레님이 하신 말씀이니 틀림없을 겁니다.”

낸시가 울음을 참아 빨갛게 되어버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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