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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2화 (22/318)

<22화 > 폭풍은두번친다폭풍은두번친다

- 결투는 아카데미의 유구한 역사 중 하나이다. -

처음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유구한 역사소리 들을 건 세상천지 널리고 널렸는데.

왜 그곳에 결투라는 단어 가 들어 가 있는지, 카일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가서야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생사결을 가르는 결투가 아니라 그냥 적당하게 치고받 아서 한쪽의 명예와 명분을 세워주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이러한 결투가 금지되 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이 어지는 이유.

자칫 가문과 가문의 싸움으로 번지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는 제국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당연히 귀족들의 필수 코스다.

이놈도 귀족, 저놈도 귀족, 개나 소나 귀족, 이러니 갈등도 많이 생긴다.

급이 확 나뉘는 사이 라면 괜찮은데 워낙 온갖 귀족 가문의 자제들이 모이 다보니 그 급을 나누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해서 그 사이에 다툼이 있을 경우 쿨하게 당사자들의 결투로 끝낸다.

가문끼리 싸우다가 서로 사이좋게 패가망신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무슨소란이 있는것 같네요.”

그리 말하며 엘가가 고개를 돌려 1층을 바라본다.

카일 또한 그녀를 따라, 갑작스레 소란스러워 진 연회 장을 살폈다.

연회장 한 곳에서 웅성거림이 시작된 이유.

이 즐거운 파티에서 결투를 하자는 말이 오고간 것이었다.

그것도 귀족 대 귀족이 아닌, 귀족 대 평민으로 말이다.

원래 귀족 학생들은 평민 학생에게 결투 신청을 하지 않는다.

평민을 핍박한다는 말이 나오면 굉장한 이미지 타격이 있으니까.

이 또한 결투에 관한 암묵적 인 룰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저 새끼가 결투 신청을 받은 건데!’

이 안은 평민이 다. 귀족보다 더 한 아가리를 자랑하지 만, 어찌 되 었든 평민 이다.

지금 그의 앞에서 결투 운운하고 있는 학생 이 그걸 모를 리 가 없다.

더해서 평민에게 결투 신청을 하는 게 제 평판에 무슨 영향을 줄지도 말이 다.

그럼에도 저 귀족 학생은 기 어코 이 안에게 결투를 청했다.

허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나중에 이해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거절해! 받아들이지마!’

평민은귀족처럼 명예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다.

그러니 결투를 거절해도 아무 상관도, 해가되는 것도 없다.

애 당초 귀 족 학생 이 평 민 학생 을 괴 롭히 지 못 하도록 거 부권 까지 명 시 되어있다.

“마음대로.”

물론, 뜻대로 움직여준다면 그게 이안일까 싶었지만 말이다.

웅성거리는 이들을 헤치며, 두 남자가 어딘가로 향한다.

그러자 좋은 구경 거리 라도 난 것처럼 학생들이 우르르 그 뒤를 따른다.

‘시발.’

카일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을 감싸 쥐 어 야만 했다.

참고로, 이안은 결투에 나설 때마다꼭 상대방의 팔을 부러트리곤했다.

덕분에 무슨 미친 과학자에게나붙을 별칭까지 붙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팔수집가. 암컬렉터이안.’

« ” …-

엘가는 흘끗, 카일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절대 좋은 표정은 아니 다.

듣자하니 저 이안이라는 남자도 변경백의 추천장을 받았다던데.

그렇다면 카일과 함께 이곳 아카데미까지 같이 온사이다.

그리 고 그런 식 으로 같은 곳, 혹은 같은 방식으로 입 학한 이들은 대 게 묶 여서 평가를 받는다.

지역 망신시키지 마라, 내지는 가문 망신시키지 마라, 와비슷하다고보면 된다.

“•••엘가 공녀님. 죄송한데 좀 가봐야겠습니다.”

해서 카일이 그런 말을 했을 때, 엘가는고개를 끄덕였다.

저 기 서 이 안이 라는 학생 이 무슨 사고라도 치 면 카일로서 는 상당히 난처 할 것이다.

이전의 존 나센 남작가의 영애가 벌인 일도 있고, 오늘의 책상 선전포고 사 건도 있다.

거 기 에 같은 추천 장을 받은 동기 까지 저 런 식 이 면 말 다 한 셈 이 다.

추천장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무적은 아니다.

그 추천장을 받기에 부족함이 있다고 판단되면 황실이 나설 수도 있다.

“같이 가요, 카일.”

“예 ?”

“결투를 말리려고 그러는 거죠? 그러면 내가도와줄 수도 있어요.”

당연한 말이 지 만 중재 라는 것도 존재 한다.

보다높으신 분이 와서 ‘여러분, 그만하고 사이좋게 지내세요!’ 하는 것.

바깥세상보다 아카데 미 가 조금은 더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도 결국 세상 의일부다.

더군다나 아카데미에서 영원히 지낼 것도 아니고 아무리 길어야4년이 한 계다.

그 이후 다시 바깥에서 상대를 마주해 야 하는데 사회 생활을 개 판으로 할 수가 있나? 당연히 안되지.

‘•••엘가가 나서서 말린다면 들어먹을 수도 있어. 리토리오 대공가의 영애 니까.’

하지 만, 카일은 고개 를 내 저 었다.

“뭐죠? 내 도움은 필요 없다는 건가요?”

“아마도 그럴겁니다.”

이 안 그 자식 이 워 낙 강력한 도발을 걸었을 테 니까요.

장담하겠는데, 황제 가 와서 말리는 게 아니 면 상대는 무조건 결투를 할 걸 요.

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카일은 몸을 돌려서 1층으로 내려갔다.

“•••하!”

기 가 막혔다. 어 이 가 없었다. 이렇게 또 자신을 밀어내다니 .

어떤 보상을 원하고서, 거래를 제안하기 위해서 내민 손길은 결코 아니었 다.

그저 단순히, 한번 내밀어본 것인데 그걸 카일은 바로 내쳤다.

이 정도면 짜증이 나는 걸 넘어서서 불쾌할 정도여야 한다.

헌데도 정작 엘가는, 저기 멀어지는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해지는 걸 느꼈다.

아니, 실은 호기심 만이 아닌 ‘호감’ 도 있지만. 그건 애 써 부정 중이 었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한 건 아닐 테고.’

한숨을 내뱉은 그녀는 풀썩 , 의 자에 주저앉았다.

역시 이 모든 건 레토 때문이다. 그래, 그 녀석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서 그런 거야.

라고 생 각하며 엘 가는 앞에 놓여 있던 잔을 잡아들었다.

카일이 제 소꿉친구였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과 함께.

“티 샤!”

“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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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 장 앞 정원으로 우르르 몰려나가는 학생들.

그 사이에 얼떨결에 끼게 된 두 남녀는 겨우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뭐에요, 갑자기! 무슨 상황이에요?!”

“저, 저도 잘모르겠어요. 가보니까 저런 상황이더라고요!”

“혹시, 한번 나서서 이안말려봤어요?”

자신의 말은 바로 무시 할 이 안이 지 만 티 샤는 아니 다.

그녀가 의견을 내놓는다면, 그 인간은 분명히 경청하려고 할 것이다.

“해보려고 했는데, 다른 학생들한테 휩쓸려서 말도 못 걸어봤어요. 미안 해요.”

“티 샤가 미 안해 할 일은 아니 에 요. 그보다 큰일이네 요. 하필 이 런 파티 자 리에서 결투라니.”

“제 말이요! 원래 이런 자리에서의 결투는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는데!”

그만큼 결투를 청한 귀 족 학생 이 망나니 라거 나, 아니 면 이 안이 세 게 도발 을 했거나.

솔직히 전자보다는 후자에 조금 더 무게 가 실린다고 봐야 했다.

‘어차피 상황 묻기는 끝났어 . 일단 말리 자. 사과만 제 대로 하면 넘 어 가줄 거야.’

다른 때에 결투를 하는 거야 딱히 개의치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신입생 환영 파티에서 결투라니, 이보다 더 시선 끄는 일이 어디 있 는가.

자신과 관련된 말들이 잠잠해진 후에 일 좀 벌였으면 하는 것. 그게 현재 카일의 마음이었다.

“이안!”

겨우 학생들을 헤치고 다가간 카일은 이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솔직히 어깨가 아니라 멱살을 쥐고 싶었지만, 그건 일단 나중에.

“왔나.”

“왔죠. 그보다, 결투 한다면서요.”

“들은대로.,,

“뭐 라고 한 거예요. 대체 뭐 라고 했는데 이런 날에 결투를 하자는 말을 들 었어요?”

“그냥 영 별로인 것 같은 놈이 자꾸 검술로 으스대서. 한 마디 해주었는데. ”

“그러니까 뭐 라고 했냐고요. 그 한 마디 가 도대체 뭔데 !”

너님 실력개병신임.뭐 이런 직설적인 말만아니었으면했다.

제 발 부탁이 니 까 어 떻 게 대 화로 해 결할 수 있는 도발이 었기를 바랬다.

하지만 다음 들려온 말은, 카일의 기대를 박살내기에 충분했다.

“그 정도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니, 부모님이 검술에 대해 잘모르는 거 아니냐고.”

“•••정말로그렇게 말했다고요?”

“응.정말로그렇게 말했다.”

« ”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바로 패드립. 가족, 특히 부모님을 끼워서 깎아내리는 것.

이러면 설령 불속성 효자라고해도 바로눈깔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 말을 들은 귀족이 결투를 신청하며 화를 낸 게 이해가 간다.

다른 귀족이 라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 다. 죽여 버리 겠다고 날뛰 었을 지도 모른다.

검술이 별로면 별로인거지, 왜 거기에 부모님을 끼워 넣고 지랄인지!

‘이러면 사과를 해도 안 받아줄 텐데.’

그리고 카일의 예상은보기 좋게 적중했다.

“사과? 하H 사과는 본인이 직접 와서 하는 겁니다! 대타를 보내서 미안하 다, 그러니까 결투는 없던 일로 하서자? 조금 전까지 무슨 검술에 조예가 깊은 이처럼 말하더니 이제 와서 탄로가 날까 두려운 모양이죠? 미안하지만 결투 는꼭 성사될 겁니다!”

이안에게 패드립을 들은 귀족 신입생은 불 같이 화를 냈다.

한 번만 넘 어가줄 수 없냐는 카일의 의 견은 당연히도 씹었고 말이 다.

“왜 자꾸 결투를 말리는지 모르겠군요. 혹 그 인간이 걱정이라도 되는 거 라면 그쪽이 대신 결투를 하던가요!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예? 그건….”

“못 하겠습니까? 하H 그러면서 결투를 멈춰달라는 그런 말을 합니까? 끼리끼리 논다더니, 겁이 많은 자와 약한 자가 서로 모여서 갖은 폼만 잡고 있 는거였습니까!”

그 순간, 카일의 머릿속에서 뭔 가 ‘툭’ 하고 끊어졌다.

겁이 많은 자는 이 안을 말하는 거겠고. 약한 자는 자신을 뜻하는 것일 텐 데.

약하다? 약하다고? 지금 그 말,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거기에 이안 같은놈과동류라는 ‘끼리끼리’ 말까지 썼네?

내 가 그 자식 이 랑 동류라고? 와. 이 건 선을 넘 어도 너무 넘는데 .

“하죠.”

“뭐라고요?”

“결투. 대 신 하겠다는 말입니다. 저랑 한판 하죠.”

“하! 이제 와서 무슨! 뭐,좋아요. 정 원한다면! 자, 당신의 이름을대세요!”

“카일.존나센의 카일입니다.”

“좋아요.존 나센의 카일. 아까그 자를 대신하여 당신에게 결투를 청합니

다!”

직후, 시끌시 끌하던 장내 가 일순간 조용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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