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이것이 본퓐…?
“잠시이야기, 가능할까요?”
“지금 말입니까?”
“네.지금요. 왜요? 혹시 급한 사정이라던가, 선약이라도 있나요?”
“그런 건 아니고그냥제가지금은….”
한창 미친 듯이 달린 터라 온몸이 땀으로 범벅 이다.
아주 역한 냄새가 나는 건 아니어도 일단 땀은노폐물이다.
그걸로 몸이 다 젖어있는데 다른 이와 마주하는 건 굉장한 실례다.
설령 상대 가 괜찮다고 해도 본인 쪽이 조금 부끄럽 기도 하고.
“왜 그러는데요, 카일?”
라고 말하던 엘가 역시 얼추 카일의 상황을 파악했다.
방금 전 격한운동을 하고 나서 땀범벅이 된 모습.
혹 그로 인해 자신이 불쾌해할까, 그걸 걱정이라도 하는 걸까.
“혹시 당신 상태 때문에 그런 건가요?”
“네. 일단 가서 좀 씻고 올까 합니다만.”
확실히 땀으로 범벅이 된 상대는 불쾌감을 유발한다.
하지만그 불쾌감도, 땀을 흘린 이가 누구냐에 따라 역으로 유발되지 않기 도한다.
상대가 자신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라면, 그 흘린 땀을 칭찬할 것이고.
반대로 자신과 적대하고 있는 이라면 와락 인상을 찡그릴 것이다.
그런 의 미에서, 지금 카일의 모습은 어떤 불쾌감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쉬는 주말에도 힘껏 단련하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다.
“괜찮아요. 하나도 불쾌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정말로 괜찮으실지….”
“그리고 나중에는 내가 시간이 되 지 않을 것 같아서요.”
엘가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카일도 더는 피하지 않기로 했다.
어 차피 리토리 오와의 관계 개 선은 반드시 거 쳐 야만 하는 부분이 다.
존 나센 사람들이 야 관심 이 없다고 해도, 자신은 그래 야만 한다.
그래야 괜한 시비도 없고, 역으로 리토리오를 뒤에 두고 있을 수도 있으니 까.
그런의미에서 엘가와의 좋은관계는분명 이득으로 작용할 것이다.
카일은 엘가의 옆을 나란히 걸으며 슬쩍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조금 전에 붉은 기운이 머물렀던 것 같은데, 이제는 사라졌다.
역 시 운동이 라도 하고 왔던 건가. 우리 공녀님 도 참 부지 런하시 네.
“카일. 당신, 어제 교단에 갔었다고 했잖아요.”
“네.그랬죠.”
“귀 족 가문의 자제 가 성 녀에 게 초대를 받은 건 굉 장히 희귀 한 일이 에요. 그도모자라서 추기경까지 만났다죠? 성녀님에게 다 들었어요.”
“아….”
딱히 추기경과 만난 게 비밀은 아니니 성녀도 그냥 말한 모양이다.
I |
이러면 자신이 교단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다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말해줄수 있나요?”
뭐지. 이미 다 알고 있을 텐데.설마못들은 걸까?
하지만눈치를보니까 이미 알고서 질문을 하는것 같은데?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까, 아주 잠깐고민하던 카일이었지만.
“별 거 없었습니다. 그냥 사제님들께 좋은 말씀 듣고, 그런 분들을 위해서 제 가 또 조언 좀 해드리 고. 그게 다였습니 다. 그 외 의 이 야기 라 해봤자 아카 데미 이야기가 전부였죠.”
“•••그렇군요.”
엘가가그리 말하며 카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갑자기 이 여자가또왜 이러나 싶다가,순간뭔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지나치듯 내뱉었던 그 이야기에 대해서 말을 안했다.
“•••저, 그리고 말이죠. 실은 엘가님 이야기를좀 했습니다.”
널
카일이 새벽에 일어나 아침부터 운동을 한다고 들었다.
해서 엘가는 어느 때보다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최대한 빨리 일어났 다.
그리고는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수수하지도 않은 차림을 준비했 다.
아직 레토조차도 일어나서 활동하기 전의 시간이다.
그 이른 시 간에, 엘가는 조용히 방을 나서 바깥으로 나섰다.
이 제 막 떠 오른 해 가 식 었던 대 지를 다시 데우고 있다.
조금은 서늘한 공기, 그러면서도 상쾌한 기운이 폐부를 가득 채운다.
이른 아침의 모습은 이렇구나, 라고 생각하며 엘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혹시 씻고 또 준비한다고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걱정이 되려던 찰나.
저 앞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카일의 모습을 발견했다.
“카일 존 나센.”
그 이름을 부르면서, 엘가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일단 이 아침부터 만나러 오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해 야 하지 嘗
교단에서 내 언급을 해주어서 고맙다고 해야하나? 아냐.그건 너무속보 이는 짓이야.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는 길에 우연히 만났다고 하는 건 또 말이 너무 안 되 잖아.
“좋은아침입니다, 엘가님.”
제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일이 다가와서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이렇게만 보면 딱히 자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한 모습인데.
또 정 작 교단에 서는 제 이 야기를 했는데 , 칭 찬일색 이 었다고 한다.
참으로 좋은 분이라고. 그래서 리토리오에 사과의 뜻을 전할수 있었다고.
성녀의 말에 따르면 카일은 추기경에게 그런 어조로 말을 했다고 했다.
카일이 리토리오가 아닌 교단과 손이라도 잡으려는 건가, 그리 오해했었 는데.
정 작 그는 그 교단에 서 자신을 한껏 띄 워주고 있었단다.
예 상치 못 한 선물을 받은 느낌 이 다.
여태 스스로를숨기고, 축소하고, 그렇게 꽁꽁 싸맸는데.
그리 고 주변 사람들도 그래 야만 한다고 계 속 말을 했었는데.
카일은 오히려 그런 자신을 이끌어 바깥으로 나오라하고 있었다.
“•••네. 좋은 아침이네요.”
애써 두근거리는 심정을 감춘 채 인사를 건넸다.
혹시 자신에게 뭔가할말이 있다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을까.
기다려보려고 했지만 엘가는 결국 먼저 나서고 말았다.
“잠시이야기, 가능할까요?”
엘가의 말에 카일은 잠깐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괜찮다는 엘가의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걷기 시작했다.
이후 엘가는 슬그머니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다.
정확히는, 자신을 생각하여 나섰다는 그 부분을 듣고 싶었다.
하지 만 카일은 이 상하게 도 그 부분만은 꺼 내 지 않았다.
혹 부끄러워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혹 별일 아니었다고 여기는 걸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자그마치 추기경 앞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인데.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런 말을 했을 리 가 없다고, 엘가는 그리 생 각하고 있 었다.
“•••저, 그리고 말이죠.”
와중에 , 카일이 비로소 기 다리고 기다리 던 그 부분을 입에 담는다.
추기경에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당연히 좋은 뜻으로 한 것이라 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는듯 그리 말하는 카일이었다.
‘당신은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네요.’
그가 자신을 딱히 호감이 가는 눈길로 보고 있지 않음은 알고 있다.
이미 첫 시작부터가 마음의 이끌림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가목적 이었으니까.
이득이 되니까.손해 볼 것이 아니니까,그래서 교류를했다.
세상 어떤 이라고 해도그런 처음은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그리 여기지 않아도, 카일은그리 여길 가능성이 무척이나높았다.
해서 티샤에게 질투가 나고, 성녀에게 초조함을 느끼면서도.
정작 대공가의 공녀라는 직위를 이용해 뭔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카데미 안에서 그런 티를 내는 것이 부적절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정말그런 짓을 하면 카일이 자신을 정말 멀리 할까, 그게 걱정되었 다.
이 번 교단 행도 그렇다. 추기 경 이 교단으로의 귀의 를 제 안할 수 있다.
그걸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모르고 있는 건지, 교단과 단번에 연줄을 만 들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자신과의 거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물어보려 했 는데.
알고보니 역으로교단에 자신과의 좋은관계를 밝힌 것이 되지 않는가.
‘자꾸 이러면, 더 욕심이 나잖아요. 카일.’
애써 이 이상은 아니라고,그저 대공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계약 상대라고 •
그렇게 생각하면서 카일에 대한 이 마음을 어떻게든 견뎌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꾸만 간질거리게 하면, 이 바보 같은 마음은 흔들리 고만다.
“•••주말인데도 아침부터 참 열심이네요.”
엘가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자꾸만 간질거리는 이 감각을, 잠깐이라도 떨쳐내고 싶다.
그렇지 않는다면 기어코 이 사람을 제 사람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그런 나쁜 생각을, 못된 계획을 품게 될 것 같아 무서워졌다.
“항상하던 일이니까요. 별거 아닙니다.”
“별 거 아니라고 치기엔 너무 열심히 한모습인 걸요.”
이렇게 보고 있자니 땀으로 젖은 모습이 그리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멋지고 또 남자답다는 생각도 든다.
항상 자신을 갈고 닦으며 결코 무른 모습을 보이 지 않는 남자.
그러면서도 또 은근히 다른 이를 생각하고 챙겨주는 사람을, 어느 누가 싫어할까.
이리 생각하면 티샤가그렇게 자신을경계하던 이유도얼추들어맞았다 .
“가문에서 답신이 왔어요. 존 나센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또 동시에 리토 리오 또한 다시 한 번 사과를 하고 싶다고요.”
사실은 엘가 자신이 재촉하여서 겨우 얻어낸 것이지만, 그건 덧붙이지 않 았다.
아무리 재촉한다고 한들 제 아버지 가, 대공가의 주인이 허락하지 않는다 면.
사과를 받아들인다느니 , 다시 한 번 사과를 한다느니 따위의 답을 할 리 없으니까.
시작은 엘가 본인이 했다고 하나 결국 답을 결정하는 건 대공이다.
그러니 괜히 자신의 조그마한 공을 자랑하듯 내놓고 싶지는 않은 게 엘가 의 마음이었다.
“그거참좋은 소식이네요.”
카일 입 장에 선 더는 리 토리오 눈치 를 볼 필요가 없어서 .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여겨서 짓는 미소였지만.
엘 가에 게 는 그냥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거 에 기 뻐하는 모습으로 비 쳤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빼먹 었기 에 , 엘 가는 바로 덧붙였다.
“기회 가 된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도 하셨어요.”
“예? 무슨 만남… 말입니까?”
“무슨 만남이겠어요.시간이 된다면 자리를 마련할터이니 부디 적절한때 를 알려 달라, 그리 부탁한다고 전해 라 하셨어요. 제 아버지] , 리토리오 대공께 서요. 카일.”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제는 교단을 넘어 대공가인 모양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