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화 > 서쪽나들이
서쪽으로 향하는 여정은 지극히 단조로웠다.
이동, 휴식, 이동, 휴식, 이동, 수면. 그 외엔어떤 변화도 없었다.
평범한 마차 여행도 아니고, 바로 옆에 대공과 휘하 기사단, 그리고 군단 이 있다.
새로운 곳에 서 새로운 누군가와 만남을 가질 조건이 전혀 아니 다.
아마 변화가 생 겨나려면 아무리 못 해도 서쪽 경계 부근에는 다다라야 할 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프리 실라 단장이랑 한 판 할 걸 그랬… 와, 나 미쳤 나봐. 진짜.’
빙의 라고 해도 존 나센의 피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일까.
변함없는 여정의 지루함보다는 오히려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 함에 더 아 쉬움이 느껴졌다.
오죽하면 저번에 만난 프리실라와 거하게 붙어야 했나, 하고 생각까지 할 까.
제 볼을 몇 번이나 찰싹이며 카일은 열심히 고개를 내저었다.
‘내 안의 존 나센을 가라앉혀야한다. 제발진정 좀해, 빌어먹을.’
존 나센 의지하니 요 얼마 전 성녀와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좋은 상황에서 뜬금없이 몸에 어떤 영향을 주냐는 자신도 떠올랐다.
성녀와 분위기 참 좋았는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는데.
거 기 서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간질 거 리는 대화를 날리 면 완벽 했는데.
정작튀어나온 말은 전형적인 로판 남주나 할 법한눈치 제로소리라니.
절로 온갖 욕설이 튀 어 나와도 전혀 문제 가 없는 상황이 었다.
최 애캐와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 였는데!
왜 자꾸 좋아하지도 않는 운동에 뇌 가 돌아가서 헛짓을 한단 말인가!
“카일, 너도 답답한 모양이구나.”
카일의 속내를 전혀 알 리 없는 레아는 그냥 운동을 못 해서 그러는 줄 아 는 모양.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라는 말이 바로 아래까지 치솟는 건 덤이었다.
“안되겠다.나가서 달리기라도 해야겠어.”
참다 못 한 리 어는 결국 마차를 뛰 쳐나가 유산소를 조지 기 시 작했다.
이후 레 아마저 먹은 만큼 써 야 한다며 제 오라비와 같이 달린다.
카일은 자신과 성녀의 사이를 훼방 놓은 존 나센 의 지 가 싫어서 버티고 있 는 중이었다.
하지만그런 카일의 고집은 안타깝게도오래 가지 못했다.
“카일! 같이 좀 달리자!”
마차 문을 열고 들이 닥친 레 아와, 그렇지 않아도 갈등하던 카일의 속마음.
그 와중에 점심 식사로 고열량의 전투 식량까지 받아 드니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 시바아알!!’
운동 싫다. 식단 조절도 싫다. 다 싫다! 하지 만 가장 싫은 건!
이미 거기에 물이 들어버려 싫은데도포기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다!
신이시여! 도대체 왜! 어쩌다가 이런 놈에게 빙의가되어서!
로맨스 판타지에 이런 종족이 왜 있는 거냐고! 작가 이 미친 것아!!
이게 로판이야!? 로판이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에바잖아!!
.
절절한 비명을 외치며 카일은 형과 누나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그 모습을, 슈렐리츠 대공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더 편하게 가라고 내 어준 마차, 심지어 황실 측에서 내어준 것인데.
이래서는 아무 것도 할수 없다며 마차를 두고 나와서 뛰고 있다.
보고에 따르면 앞서 나가는 선봉 및 정찰대의 위치를 몇 번이나 찍고 왔단 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선두와 본대가 어느정도의 거리를두고 있는데.
그 위치까지 그냥 달리기로 몇 번이고 오고 가다니,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
‘소문으로듣기는했지만, 과장된 줄 알았는데.’
아무리 노력파 기사라고 해도 저 정도로 단련을 하지는 않는다.
저런 식으로 하다가는 몸이 버티지 못 하니까. 되 레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까.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고 해도 저건 아무리 봐도 그 정도를 넘어섰다.
그러나 존 나센에 서 왔다는 삼남매는 이까짓 게 뭐 대수라고 말하는 것처럼.
남들은 말을 타고도 힘들어 할 거리를 몇 번이고 왕복하는 중이었다.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어.’
무가로 무조건 첫손에 꼽히는 슈렐리츠 대공가, 그곳의 가주조차도 고개 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제국의 군단이 출정했다는 소식은 바로 서쪽 왕국 연합에 전해졌다.
비 밀리 에 출발한 것도 아니고 설령 비 밀리 에 출발한다고 해도 얼마 지 나 지 않아알수 있다.
그리고 정보를 취 합하던 연합 측 수뇌부는 이상한 소식을 받게 되 었다.
“제국 군단이 단 하나만 오고 있다? 확실한가?”
“예.먼저 소집되었던 몇 개의 군단이 제 위치로 돌아갔고,현재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건 단 하나의 군단이 라고 합니 다.”
원래 예상했던 규모보다그 수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다.
아무리 서쪽 왕국들이 이전만큼의 힘을 지니지 못 했다고 하지만.
과거의 영광에 취한, 허물어져가는 모래성이라고 하지만, 제국은 제국이 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적을 상대로 방심한 적이 없다.
그 무시무시한 강점 덕분에 바로 지금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국력이 좀 강해졌다고 하여 오만함을 부렸다면 그리 되지 못 했다.
헌데 그 제국이, 자신들 쪽으로 군단을 단 하나만 차출했단다.
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턱도 없다.
이쪽에도 몇 만의 병력과 다수의 기사들, 그리고 마법사들이 있다.
고작 일개 군단 하나 가지고는 국경조차 넘을 수 없을 거다.
여기서 더 이상한 건, 그 군단하나에 슈렐리츠 대공과 검의 형제 기사단이 있다는 점.
‘군단 하나 이끄는 일에 슈렐리츠 대공을 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해.’
슈렐리츠 대공가. 제국에 존재하는세 대공가중하나. 제국의 검, 개전의 나팔.
제국과 타국 간의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항상 앞장서서 나서던 곳이다.
거의 모든 전쟁에 참여했기에 이번에도 군단을 이끄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쳐도.
그래도 단 셋만존재하는 대공가로서의 자존심이, 그리고 체면이 있다.
군단하나가 가는 일에 대공이 직접 참전하다니. 못 해도 일곱은 있어야 한 다.
그 정도는 되 어 야 대 공이 움직 이 는 이 유라도 될 것이 다.
하지만 제국은 슈렐리츠 대공을 보냈고 그는 군말 없이 진군하고 있다.
황실과 대공가가 일종의 정치적 파트너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무례한 처 사다.
혹시 황실과 대공가 사이에 무슨 마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저들에게 내리는 일종의 벌로 종군을 명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 에 는 슈렐리 츠 대 공가가 바친 충심 이 나, 인내 한 시 간이 있 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하도록. 정말로 제국 군단이 하나만 오는 게 맞나, 혹시 그 주변에 미리 대기하고 있는군단은 없나.그게 아니면 이미 서쪽국경에 다수 의 군대를 배치한 것은 아닌가. 아주 세세한부분까지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 보고하도록해.”
연합 수뇌부의 명령에 정보 조달 책임자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이후 제국군이 계속해서 다가오는 동안 몇 차례 더 살피고 또 살폈다.
하지 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는 건 당장 진군하고 있는 하나의 군단.
거기에 속한 슈렐리츠 대공과 휘하 기사단인 검의 형제 기사단이 전부였 다.
더 이상한 건 제국도 딱히 무언가 숨기고 있는 모양새 가 아니 라는 점 이 었 다.
마치 연합더러 볼 테면 보고, 살필 거라면 얼마든지 살펴라, 라는느낌이다.
그 때문에 수뇌부는 오히려 더더욱 크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게 말이 됩니까? 고작군단 하나라요.”
“우리 연합이 당장동원할수 있는병력만 敢만이 훨씬 넘습니다. 당연히 각 성의 수비군은제외한숫자이지요. 전투에서 숫자가 전부는 아니라하지만 분명 큰 도움이 됩 니 다. 그걸 제국이 모를 리 가 없습니 다. 항상 유리한 전투 를하던 자들이 아닙니까.”
무언가 있다. 어디 성 하나를 치는 것도 아니고 연찹 전체를 노리고 오는 자들이다.
그군의 규모가고작 만 여 명으로끝날수가 없다.분명히 뭔가 더 있다.
이윽고 연합 수뇌부에 게 다른 정보 몇 개 가 도착하게 되 었다.
“•••존나센 남작가?”
“예. 제국에서도 극도로 껄끄러워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존 나센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북쪽에 살던 야만족들이 아닙니까. ”
“저도 들어봤습니다. 제국을 상대로 몇 년을 버텼다고 하더군요.”
거기까지 들은 이들은 대충 어떤 상황인지 예측을 할 수 있었다.
군의 규모를 줄이는 대신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자들을 데리고 오고 있단 소리다.
제국이 껄끄러워하던 곳의 사람들이라면 분명 큰 전력이라 할수 있을 터.
“그래도 고작 몇 명 가지고 군단수를 줄였다는 건 이상합니다.”
“혹 그 안에 제국 10강이 있는 건 아니겠습니까. 소수 정예로 밀어붙이겠 다는 뜻 같은데.”
다만 존 나센에 대해서는 비교적 아는 것들이 적은 터라.
그들이 제국에서 활동을 하지 않은 게 30년이 다되어가는 터라.
연합의 수뇌부 입장에서는 존 나센 자체보다는 다른 것을 더 걱정하고 있 었다.
“아예 마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제가듣기로그존나센의 영애가 아카 데미를 반파시켰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국 10강 수준, 혹은 그보다 살짝 아래, 그 정도라해도 엄청난 전력임은 확실합니다.”
다행히도 몇몇 인원들이 그런 걱정을 드러냈다.
무엇 하나 함부로 넘 겨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모양.
그에 수뇌부는 이쪽 또한 최고 전력을 전부 동원하기로 했다.
“삼걸三傑 에게 서신을 넣게. 지금 당장 전선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라고.”
제국에 10강이 있다면 연합에는 삼걸이 있다.
당장 제국에 비해서 숫자가월등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긴 하다.
아무리 삼걸이 강하다고 해도 비슷한 수준의 강자들을 배로 맞이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연합은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더는 잃을 것도 없고, 더 이상물러설 곳도 없어졌다.
삼걸이 라는 존재 들도 여 기 서 밀리 면 끝장이 라는 걸 알고 있다.
이런 때를 대비하여 비장의 수를 만들어둔 연합은, ‘그것’ 을 사용하기로 했다.
“효과는 몇 번이고 확인했다고 했지요.”
“예. 사용 후 극심한 마나 탈력이 오긴 하지만 전처럼 신체 가 붕괴되 지는 않을겁니다.”
“시 간도 최소 두 배에서 세 배 로 늘렸고요. 제 국 10강을 상대로도 충분합 니다.”
이전에 결사대에게 나눠주었던 마나폭주제의 향상 버전.
안정성을 높이고 효과도 높여 마침내 효과적인 증폭제를 만들게 되 었다.
문제는 이 게 워 낙 어려운 일이 라 그 고생을 했음에 도 단 세 병 이 전부라는 점.
모든 기 사들을 그 증폭제 로 무장시 키 면 참 좋겠으나 그 계 획 은 무산되 었 다.
세 병을 만들기 위해 연합의 모든 마법사들이 매달려야했고 들어간 자금 도천문학적이다.
효과는 좋은데 그를 위해 희생해야 할 대가가 너무나 비싸다고 할까.
그렇지 않아도 휘청거리는 연합이 그 세 병으로 인해 더 흔들렸을 정도다. 때문에 수뇌부는 정말 최악의 경우 그 증폭제를 사용하라고 일러두었다. *
서쪽, 제국과 연합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
제국의 군단을 맞이하기 위해 연합의 모든 병력이 집결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삼걸이라 불리는 연합 최고의 강자들이 자리했다.
“후우.
제국 국경 쪽을 바라보며, 기사고 병사고, 너나 할 것 없이 긴장감을 내보 인다.
머지않아 저 너머에서 제국의 군단이 번쩍이는 위용을 과시하며 나타날 것이다.
심리적으로 압박을 주기 위해 천지를 진동시킬 고함을 내지를 것이다!
사박사박-.
“•••응?
하지만 정작 연합 측 병사들이 본 광경은, 그런 것들이 아니 었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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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군단은 어디 가고, 정체 모를 세 남녀가 나타난 것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