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嗲 언제할 거냐?
군단장의 감사 인사, 그리고 이후의 대화. 그것은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다음으로 나온 주제 가 진짜였고 군단장으로서는 귀 에 피 가 나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아들이 말하기를병사들식단이….”
식단주제로 넘어가자마자 존나센 남작의 눈빛이 돌변했다.
평소의 그 절대자가 뿜어내는 고고하고도 여유로운 기세는 전부 사라 지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초고도로 숙련된 트레 이 너의 쓴 소리들이 었 다.
“그런 식으로 하면 정말 안 좋습니다. 무엇보다….”
툭툭!-
답답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테 이 블을 두드리 는 존 나센 남작.
주먹으로 내리친 것도 아니다.손가락으로, 딱두 번 두드렸다.
콰직!!-
그 두 번에 칼질에도 끄떡 없는 원목 테 이블이 두 조각이 났다.
카일 이 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내 저 었지 만, 다른 이 들은 아니 었다.
옆에 있던 성녀와 프리실라 단장은 화들짝 놀라서 존 나센 남작을 바라본 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고해야할까.
하지만 맞은편에 앉은 군단장과 그 옆에 선 장교들만큼은 아니 었다.
“•••딸꾹.
장교 하나가 입을 틀어막으며 급히 딸꾹질을 삼키려고 한다.
덩치는 산만 해서 고작 이거에 쫄면 안 되는데 말이지.
군단장도 애 써 참고는 있지 만 얼굴 가득 두려움이 한가득이 다.
카일이 고개를 내젓는 사이에도 존 나센 남작의 설교는 계속되 었다.
“북쪽변경백은 이러지 않습니다. 아무리 서쪽과북쪽의 환경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해 잡힌 소모량이 북쪽이 더 많다고하지만 이것은차후근육….”
평소에는 한 마디조차 겨우 하던 존 나센 남작이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다.
개인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에 대한식단관리여서 그럴까.
아니면 근손실이 나는 것에는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라 그럴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두가 바짝 긴장한 채로 집중 중이라는 점이 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당연한 일이다.
눈앞에서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려서 테이블을 박살낼 정도인데.
경청 안 한다고 눈을 부라리면 그 시선에서 광선이 나오지는 않을까.
아니면 똑바로 안듣냐고 일갈할 때 불을 뿜지는 않을까.
다시 한 번 존 나센에 대 한 온갖 상상의 나래 가 펼쳐 지는 순간이 었다.
아니. 상상의 나래 가 아니 라 망상이 라고 해 야 할까? 아무튼.
‘아무래도 말려야 할 것 같은데.’
카일이 슬그머니 나서려고하지만그걸 닐 영감이 막아세운다.
고개를 천천히 내젓는 걸 보니 그러지 말라는 뜻이 역력하다.
슬쩍 뒤로물러선 카일은 닐 영감의 귓가에 속삭였다.
“왜 말리는 겁니까, 영감님?”
“즐기시게 놔두죠.”
“뭘 즐겨요?”
“왜 그런 게 있지 않습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 가르치는 거.”
고인물이 뉴비 가르치고 또 챙겨주는 거? 그거 말하는 건가?
그 경우랑 지금 이 경우랑 지금 분위 기가 너무 다르잖아요.
이해를못하는 건 아닙니다.충분히 그럴 수 있겠죠.
당장 카일도 이안이나 레토 가르치면서 느꼈던 부분이 다.
고인물로서 뉴비를 바라볼 때의 그 느낌, 알려줄 때의 뿌듯함.
그리고 마침 내 올바른 길로 인도될 때 다가오는 쾌 감까지 .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가되는 부분이다. 그래, 거기는 인정 한다.
‘문제는,지금분위기를보라고! 저게 어디 봐서 잘따라오는뉴비들이냐!’
그냥죽기 싫어서, 두려움에 덜덜 떠는 불쌍한뉴비들에 불과하다.
군단장부터 시작해서 말단장교까지, 전부 겁에 질리지 않았는가.
존 나센 남작이 이렇다 할 기세는 조금도 내고 있지도 않은데.
이미 그의 말과손짓 몇 번에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버렸다.
“뿐만 아니라 운동 시설도 매우 낙후되 었습니다. 이래서는….”
전투를 하러 온 이들이 무슨 운동이냐고.
저 기 앉아있는 군단장이 나 다른 장교들이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몇몇 장교들의 입술이 씰룩거리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존 나센 남작은 자신의 의견을 아주 강력하게 피력했다.
이 정도면 조언이 아니라 거의 억지에 가까운 수준인데.
거기에 반대하는 의견 따위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당장 이승 하직 하고 싶은 사람만 ‘그건 좀 힘들겠는데 요.’ 라고 말할 수 있 을 것이다.
결국 카일은 혼자 조용히 막사 바깥으로 나왔다.
어차피 감사 인사는 받았으니 그곳에 있을 이유는 없다.
이 제 그만 죄 없는 군단장과 장교들을 놓아주었으면 하지 만….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 게 현실.
‘닐 영감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지.’
애들은 뭐하고 있으려나. 자율 운동 하라고 했으니 잘 하고 있긴 할 텐데.
그래도또 애들이니 어쩔 수 없이 불안해지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존 나센의 아이들은 길 좀 잃거나, 아니면 뭐 좀 깨먹는 일로 끝이 아니다.
‘잘 하고 있는지 가서 확인 좀 해볼까?’
라고 생 각하며 막 걸음을 옮기 려는 순간이 었다.
“자,잠깐만! 왜, 왜이러세요. 단장님?!”
갑작스러 운 비 명 에 고개 를 돌려보니 , 성 녀 가 막사 바깥으로 반쯤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프리실라 단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손이 휙! 하고 성녀를 밀어낸다.
“단장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휘릭!-
재빠르게 막사 입구를 닫아버리는 프리실라 단장.
덕분에 성녀는 두 눈만 깜빡거리며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실력 하나만 가지고 단장이 된 게 아니구나.’
아주 찰나였으나, 카일은 분명히 보았다.
성녀를 밀어내고 막사 입구를 닫기 전 자신을 바라보던 단장의 눈빛을.
자신이 애 많이 썼으니 뭐 좀 해보라는 그 뜻을 말이다.
“휴우.
한숨을 흘린 카일은 천천히 성녀 곁으로 다가갔다.
“성녀님.”
“ 아.”
막사 앞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성녀가 고개를 돌린다.
그러더니 대번에 귀까지 빨개지며 ‘아니에요!’ 라고소리친다.
“예 ?”
“아무 일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건!”
갑자기 막사 바깥으로 떨려난 게 부끄러웠던 것일까.
도통 이해하지 못 할 말들을 늘어놓는 성녀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일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잠깐 같이 걸으실까요.”
“지금요?”
“네. 호위 분들도 다두고. 저랑 성녀님이랑. 단둘이 서 요.”
이미 성기사들은 프리실라 단장의 명령을 받았는지, 짐짓 모르는 체 하는 분위기다.
카일이야 이미 추기경에 심지어 교황까지 만난 인물이니 신임은 확실할 터
•
성녀와 함께 둘이서 있어도 문제 가 없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 었다.
“저야… 좋긴 한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성녀.
그에 카일은 ‘가죠.’ 라고 말한 후 먼저 걸음을 떼었다.
머지 않은 곳에 조그마한 강이 하나 흐르고 있다.
그 곁을 따라 걸으면서, 성녀는 조심스레 카일의 표정을 살폈다.
‘무슨일이시지?’
카일이 같이 좀 걷자고 했던 적이 있었던가? 절대 없다.
같이 달리기를하자던가, 아니면 같이 운동을 하자던가.
이런 적은 있어도 지금처럼 평온히 걸었던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온갖 상상들이 펼쳐지는 성녀였다.
무슨 말을 할까. 어떤 행동을 보일까.
여태껏 정말 조심스레 품고 있던 무언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성녀님.”
얼마를 걸었을까. 슬그머니 몸을 돌린 카일이 입술을 뗀다.
“네, 카일 형제님. 말씀하세요.”
“저는요.성녀님이 정말좋습니다.”
“감사합….”
반사적으로 감사하다고, 그리 답하려던 성녀.
하지만 이내 상대 가 한 말에 ‘으아?’ 하고 급히 카일을 바라본다.
“카, 카일 형제님? 지금뭐라고….”
“성녀님 이 좋다고 했습니다. 인품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 좋은 분이라는 게 아니 라. 사람으로서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 말말입 니 다.”
성녀는 답이 없었다. 다만 두 눈을 깜빡이며 카일을 바라볼 뿐이 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손만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귀는 물론이고 목 아래까지 붉은 기운이 퍼져나가는 게 보인다.
아마 얼굴을 들면 십중팔구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터.
“조금 갑작스럽죠.”
“그런데 실은,꽤 되었습니다.성녀님을 좋아한것이.”
거 짓말은 아니 다. 실제로 정말 좋아했다.
그게 여자로서 좋아한게 아니라최애 캐릭터로 좋아했던 것이지만.
어찌 되 었든 좋아했으니 틀린 말이라 할 수는 없을 거다.
“다만, 이 거 하나는 확실히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 다.”
“네…?”
“그 좋아한다는 것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건 존경, 그리고 선망이었 습니다.”
소설 속 행동들과, 주인공들을 이끌어주던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단순 조연에 불과함에도 그러는게 정말대단하게 느껴졌었다.
그걸 최대한 지금의 상황에 맞춰서 풀어내고자 하니, 이런 답이 나오게 되 었다.
“다른 이들에게 친절하고, 따스하고, 때로는 길잡이 가 되 어주시는 분이라 서. 그래서 선망했고 존경했습니 다. 그래서 성녀님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카일의 그 말에 성녀가 비로소 천천히 고개를 든다.
지금무슨 이유로 카일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얼추 이해를 한 것이다 •
나 또한 당신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게 오로지 이성에 대한 연심은 아니 다.
그 안에 다른 감정들이 들어 있다. 그것들 또한 정 말 좋은 감정들이 지 만….
그래 . 너무 좋은 것들이 어 서 , 오해를 불러 일으키 기 에 충분했었을 것이 다.
당신에게 관심이 많다는.보다더 가까워지고싶다는,그런 오해 말이다.
“죄송합니다.”
성녀라는 존재를 그렇게 잘 대해준 건 그 감정들 때문이 었다고.
해서 혹여나 당신이 지금보다 더 다가온다고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도 있다고.
카일의 말을 전부 이해한 성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충격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낙담을 한 것일까.
•••카일 형제님』
불행인지 다행 인지, 성녀가 보인 건 둘 다 아니 었다.
“사람이 아예 싫으면, 그런 감정조차도 안 들지 않을까요?”
“예 ?”
“제 언행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품고, 그모습을 선망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제가 싫은 사람은 아니라는 거잖아요. 정말 그랬다면, 어 떤 언행도 좋게 보이고 들리 지 않았을 것이고, 어떤 모습도 빛나 보이지 않았 을 거예요.”
잠깐만. 뭐 야. 예 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반응인데 ?
실망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아니면 혼자 부끄러워 할줄 알았다.
지금처럼 오히려 더 눈을 반짝일 거라곤, 정말 예상못 했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보다 더 노력하면 되 겠네요.”
“성녀님. 그러니까 저는….”
“카일 형제님더러 변하시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제가 변하게 해드릴게요.
캐릭터들이 고구마 한 가득 물어서 독자들 목을 막히게 할 때.
그럴 때마다 성녀는 항상 사이다 뚜껑을 열어서 시원하게 붓곤 했다.
공식 사이다 머신인 그녀답게 , 말 한 마디에도 막힘 이 없다.
‘이러면 진짜 반칙인데….’
흔들려고했는데.되레 본인만 더 흔들리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