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嗲 언제할 거냐?
“부디 먼저 떠나간 이들이 편히 쉴 수 있기를.”
성 녀 가 손을 모은 채 기 도를 올리 니 , 그 끝에 서 빛무리 가 흘러 나온다.
그 빛들은 연기처럼 움직이며 검은 밤하늘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이곳에 모인 모두의 염원을 담은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어떤 원리로 저런 일이 가능한지 세상누구도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마법으로도, 과학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이 곳 세 상 사람들은 저 걸 신 이 내 리 신 힘 이 라 하여 신성 력 이 라 부른다.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단 말이 야.’
멀찍이 서서 전사자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성녀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은 허공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빛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카일은 그 빛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보다 더 노력하면 되 겠네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생각을 했을까.
어이가 없으면서도, 기대가되는 건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혹시 이렇게 하면 성녀가조금은 거리를두지 않을까싶어 그런 건데.
역으로 성녀의 참전 의지만 더 강하게 불태우는 결과가 되었다.
잘된 일인지, 아니면 안 좋은 일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진심을 밝혔으니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괜히 성녀를 더 재촉하게 만든 건 아닐까, 하니 안좋은 것 같기도하다.
‘고민해서 뭐하냐. 이미 벌어진일.’
속으로 한숨을 한 번 내뱉고선 다시 성녀를 바라본다.
마침내 마지막 일정, 기도회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성녀.
다른 이들은 마저 기도를 올리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덕분에 카일은 꽤나 거리가 되었음에도, 성녀와 시선이 딱 마주하게 되었 다.
‘이게 이렇게 눈이 마주친다고?’
역시 로판은로판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어찌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먼저 손을 들곤 살짝 흔들어 준다.
그러자 성녀 또한 살포시 미소를 짓고서는 고개를 숙인다.
“잘 가라!”
“잘 가라, 이자식들아!!”
기 도가 끝나자 병 사들이 저 마다 소리 를 지 르며 떠 난 자들을 배 웅한다.
부디 편히 쉬라고.그곳에서는행복하라고. 만약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 다 더 잘 살라고.
본인들의 소망일지도 모르는 것들을, 그렇게 보낸 이들에게 대신 전달한 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카일은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명복을 빌어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전사戰死 라면 누구라도 기릴 이유가 충분 했다.
모든 걸 건 전투를 벌였고 그 치열함 속에서 스러져간 이들.
그게 누구라도, 고귀한 기사부터 말단 병사까지, 모두가그럴 자격이 있었 다.
널
한껏 들이 마신 차가운 새벽 공기 가 폐부를 가득 채운다.
상쾌하다. 북쪽만큼 시원하지는 않아도, 이 정도면 청량하다 할 수 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번 한 카일은 가볍게 조깅을 시작했다.
탓탓탓!-
물론 말만 조깅 이 지, 남들이 보기 엔 전력질주다.
그것도 군단 숙영지 전체를 빙 도는 미친 거리를 말이다!
“막내 도련님.”
뒤에서 들리는목소리에 흘끗고개를돌리니 닐 영감이 보인다.
일흔이 훨씬 넘은 몸인데도 카일을 어렵지 않게 따라잡았다.
심지어 호흡조차도 전혀 흔들린 기색 따위 보이지 않는다.
“좋은 새벽이네요, 영감님.”
“그렇군요. 아. 오늘 떠날 예정입니 다.”
“오늘이요?”
“예.원래는 어제 떠나려 했으나남작님이 좀오래 즐기셔서.”
뉴비 괴롭히기는즐겨야하는게 아니에요, 영감님.
차라리 운동 좋아하는 사람 붙잡고 가르치는 게 나은데.
“아침 운동만 끝내고 바로 출발할 생 각입 니 다.”
“아버지가그렇게 결정하신 건가요?”
“그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하도 성화를 내서 말입니다.”
“아이고.”
“심 심하다고 보채는데, 이러다간 기사랑 싸울 것 같아서 걱정입니 다.”
닐 영감의 말에 카일은 크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반은 농담 같은데,또 반은 진담일 수도 있는 부분.
“닐 영감님은 어쩌실 겁니까?”
“저와 싸웠었다는 그 노장에 대한 일 말입니까.”
“네 . 프리실라 단장의 부탁이 기도 했고, 솔직히 닐 영감님도 그 기 사를 다 시 한 번 보고 싶어 라는 눈치 같았는데요. 제 가 잘못 본 건가요?”
“맞게 보셨습니다. 실은 그 부분 때문에 어제 남작님께 말씀을 드렸습니 다.”
“결과는요?”
그 물음에 닐 영감이 천천히 속도를 줄인다.
카일이 거기에 맞춰 역시 걸음을 늦추니 닐 영감이 미소를 짓는다.
“오래 걸리지만 않는다면 다녀오시라고 했습니다.”
“좋네요. 이참에 닐 영감님도제국 나들이 한번 가시는 걸로.”
그렇게 새벽 조깅(嘗)을 마친 카일은 곧장존 나센 남작의 막사로 향했다.
이미 새벽에 조용히 숙영지를 나서서 바위 숄더 프레스를하고왔단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 막사 안으로 들어 가니 물구나무 팔굽혀펴 기 중이 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운동 중의 운동인데.
남작은 그걸 양손 검지 하나씩으로 지탱 중이었다.
정말이지 볼 때마다놀랍다.
“닐 영감님께 들었습니다. 오늘 떠 나신다고요.”
“그래. 애들이 일어나면 운동좀 하고 곧장 이동할 생각이다.”
“인사는 안 하셔도 되 겠습니 까?”
“조용히 떠나주는 게 최고의 인사다. 괜히 바쁜 사람들 붙잡을 필요는 없 지.”
어제 군단장을 붙잡고 거의 세 시간을 넘게 설교를 했다던가.
존 나센 남작도 양심이란 게 있었는지 오늘은 조용히 떠나기로 한 모양이 다.
성 대 한 배웅은 기 대도 안 하고, 원하지 도 않을 테 니 말이 다.
“그래도성녀님께는 얼굴좀비치고 가시죠.”
“굳이?”
“닐 영감님과 프리실라 단장님도 있고, 저랑 성녀님도 그렇고. 이 정도면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꾸나.”
생각보다 쿨하게 카일의 제 안을 받아들이는 존 나센 남작.
카일의 부탁이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닐 영감과 프리실라를 고려하여 택한 결정이라는 느낌이 꽤나 강하게 들었다.
“가서 바로 모시고 오겠습니 다.”
“빨리 와라.곧 애들 기상시간이고,운동도금방 마칠 거다.”
존 나센 남작의 말을 뒤로 한 채 성녀가 머무르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 또한 새벽 기도로 인해 이미 아까 전 기상을 한모양이었다.
“성녀님. 아, 단장님도 계셨군요.”
성 기사들의 안내를 받아 막사 안으로 들어가니 성녀와 프리실라가 보인 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아침부터 찾아온 이유를 설명한다.
“그렇습니까. 잠시 후 떠나신다고요.”
“네, 단장님 .그러실 것같습니다.”
“하기 야, 볼일도 다 봤는데 오래 계시긴 했지요. 저, 그런데….”
프리실라 단장이 카일의 눈치를 슬슬 본다.
이 말을해야할까, 말아야할까,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걱정 마세요. 닐 영감님은 저와 함께 제국으로 잠깐 가신다고했으니.”
“ 아!”
“길게는 못 있을겁니다.”
“충분합니 다. 정말 감사합니 다. 카일 형 제 님.”
“감사 인사는 조금 있다가 제 아버지께 하시면 되고요. 그보다, 성녀님은 어디 가셨죠? 조금 전까지 바로 옆에 계셨던 걸로….”
“여기요, 카일 형제님.”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성녀.
원래 입고 있던 복장에 케이프까지 걸친 걸 보니, 카일의 말을 듣자마자곧 장 존 나센을 배웅하기 위해 준비에 들어간 듯 했다.
“어서 가요. 카일 형제님의 아버님과 고향 분들이 가시는 길에 늦으면 안 되잖아요! 얼른요!”
“예? 아, 네. 네! 저, 그런데 성녀님? 너무 서두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 들이 운동부터 하려고 할테니 여유가조금….”
“카일 형제님 운동 하시는 속도를 생각하면 아슬아슬하다고 생각이 드는 데요?!”
•••음,뭐라고반박할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카일이 침묵하고 있자 성녀가 ‘그것 보세요!’ 하고 마저 외출 준비를 서두 른다.
그 모습을 본 프리 실라는 의 미 심 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이 었다.
“다됐어요 얼른 가요!”
성녀의 재촉에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는 카일.
너무빨리 가는 게 아닌가싶었는데,그게 아니었다.
군단숙영지 출입구에 가보니 벌써 떠날 채비를 맞추고 모인 존 나센 아이 들.
그모습을 눈에 담은 카일은 ‘역시 성녀님.’ 이라고 다시 한번 감탄할수밖 에 없었다.
“지각이다!! 막내 도련님 지각!!”
“지각이면 푸시 업 100개,버피 100개!”
그래. 저러니 애들이 어떻게 엇나갈수가 있겠냐고.
지 각만 해도 보통 사람들은 지옥을 경험하게 되는 운동을 해 야 하는데.
“자자, 애들아. 다들출발 준비는 마친 거니?”
“네 ! 아침 많이 먹었어요!”
“이대로뛰어가면 될 것 같아요!!”
어디선가 황망하다는 감정이 진하게 느껴진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보인다.
존 나센이 무슨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쉬지 않고 말을 달려도 나흘은 거뜬하게 걸릴 텐데.
그 거기를 맨다리로, 뛰어서, 그것도 애들이 간다니.
“사람이 아니야.”
그들의 속마음이 아주 진하게 들려오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막내 도련님! 안하실 거예요?!”
“•••해야지. 그래. 한다, 해. 이것들아!”
성녀와 프리실라에겐 가서 먼저 인사좀 하라고 한후.
카일은 곧장 자리에 엎드려서 빠르게 푸시 업부터 수행했다.
솔직히 푸시 업은 진짜 너무 쉽다. 버피는 음… 조금 귀찮은 정도?
자체 적으로 벌칙 수행을 하는 카일을 뒤로 하고 성녀는 존 나센 남작 앞에 섰다.
성녀 따위는 한 손으로 구겨버릴수 있을 정도의 위압감을 주는 사내.
아주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들지만, 어렵지 않게 그 감정을 떨쳐낸다.
“존 나센 남작님.오늘 떠나신다고들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가시는 길이 평온하시길 기원할게요.그리고….”
“아아. 그거 말고.”
“네?,,
“가는 길에 강한 몬스터라도 만나라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세상 어떤 이가도보로 이동하는데 몬스터를 만나기를 원할까.
.
그것도 아예 그래 달라고 다른 누군가에 게 빌 어 달라고 하다니.
“그리 해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존 나센 남작은 진심이 었다. 그리고 진지했다.
때문에 성녀는 ‘네,네.그럴게요.’ 라고 답할수밖에 없었다.
“인사는 다 나누신 겁니까?”
지각에 대한벌로푸시 업과버피 100개 클리어.
그런 카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존 나센 남작이 한 마디 한다.
“느리다.”
“느렸습니까? 이상하네. 평소하던 대로했는데.”
“그러니 네 어머니가걱정하는 거다.”
“아, 제발요. 아버지. 가셔서 어머니께는 아무 말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절로 위 압감이 드는 부자 둘이 꽤나 귀 엽게 티격태 격한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절로 웃음이 피 어오르는 것 같다고.
그리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인사를하려는성녀….
“아, 카일.
“네.아버지.”
“5황녀와의 혼담은진척이 있는 것이냐.”
“•••네?”
“저번에 敢황녀가와서 포부를 밝히던데. 너랑반드시 혼인하겠다고.”
성녀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데에는, 敢초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