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화 嗲 괴로운 그이름, 방학
책으로 난잡하던 방 안은 이제 텅 비 었다.
온갖 주술 관련 술식을 적은 종이들로 가득하던 바닥도 깨끗해졌다.
“흣챠.”
방 정 리 를 끝낸 티 샤는 나름 뿌듯한 표정을 지 었다.
두 달 후면 다시 돌아올 테 지 만 그래도 나갈 때 깨끗한 게 좋은 법.
매일 하는 건 힘들어도 가끔 하는 청소는 이렇게나 상쾌하다.
무엇보다 카일이 조금 전 돌아왔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늦어도 내일쯤이면 북부로귀환 길을 잡을 터.
‘성녀님도. 그리고 공녀님도 없어. 두 분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방학동안에 아카데미에서 머무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더 많은주술술식들을 찾고, 연구하고, 향상시키려고 했 다.
재료도 부족하지 않고 무엇보다 자료 면에서 비교할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얼마 전 굉장히 긴장되는 말을 하나들었다.
“방학이잖아? 카일이 아카데미에 묶여있지 않은 시기.존 나센으로돌아 갈 거 아냐. 그 때 나도 같이 가려고. 카일의 고향으로.”
황녀가 존 나센으로 간단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 카일의 옆에 있겠다고 !!
‘안돼. 그 분과 카일이 계속 붙어있게 둘 수는 없어.’
리 토리오 공녀 , 엘 가가 그리도 경 계하던 인물이 다.
그 영리한 여자가 경계할 정도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
사실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얼마 지 나지 않아 티샤 본인도 알게 되 었으니 .
‘소유물이 되겠다니.황녀님이 그런 말을 하실 줄은….’
엘가나 성녀처럼 최소한의 선을 지킬 인물이 절대 아니다.
아마 존 나센에 가면 바로 자신의 목적을 실행하고자 하겠지.
그방법은고민의 범주에 단 1도들어가지 않을 테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이 될 수는 없잖아.’
황녀, 그리고 얼마 전 성녀까지. 두 사람이 다곤 존 나센 남작과 만났다.
존 나센의 가주를, 카일의 아버지를 먼저 본 것이다!
엘 가에 게 는 참 미 안한 일이 다. 하지 만 어 쩔 수가 없다.
맨 처음과 맨 마지 막은 항상 기 억에 남는 법 이 라고 했다.
처음은 되지 못 했다면 최소한 마지 막은 되 지 말아야 할 터!
마침 자신이 머무르던 곳이 제국 북부다.
그리고 존 나센은 그런 북부의 끄트머리 에 자리하고 있다.
일단 돌아가는 길부터 겹친다. 아카데미에 왔을 때와똑같이, 동행하면 그 만.
그 길에 카일에게 한번 넌지시 부탁을 해볼 생각이었다.
혹시 가능하다면 존 나센에 서 좀 지 낼 수 있겠냐고.
이유는… 음. 이유는 이 제 부터 생각을 해 봐야 할 듯 싶다.
‘일단 카일부터 좀 만나러 갈까.’
리토리오 대공가의 정식 초대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곳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묻고 싶다.
정확히는,그래. 엘가와혹 어떤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알고 싶다.
하지만 그걸 차마 직접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아직은, 아직은정식 연인이 아니니까.친구와연인,그사이의 어딘가니까.
그 관계를 이번 방학에 조금이라도 진전시켜보자.
바로 그게 이번에 아카데미를 벗어나 존 나센까지 따라가려는 이유였다.
코너를 돌아 정원으로 나가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카일의 목소리다.듣기만해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카일….”
이 름을 부르며 막 바깥으로 나선 티 샤가 본 것은… .
“그러고 있으면 내가곤란해요, 안 곤란해요?”
“고,곤란하십니다.”
“그런데도 그러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감사의 뜻을 전할 방법이 이 것밖에 없어서….”
“감사하면 운동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넬?”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팔짱을 낀 채 혀를 차고 있는 카일.
그 앞에서 스쿼트 자세로 벌을 받고 있는 넬.
“저기,카일.나는왜 같이 벌을받는거지?”
그리고 넬의 옆에서 똑같이 스쿼트 자세를 하고 있는 이안이 있었다.
“벌? 이안.지금이게 벌이라고느끼는거예요?”
“어? 벌이 아닌 건가?”
“아직 마음가짐이 덜 잡혔네요. 이럴 때는 벌이 아니라하체 과부하준다 고 생 각하는 겁 니 다. 공짜로 운동하니 고맙다고 여 겨 야 정 상이 라고요.”
아, 뭐 야? 벌이 아니었어? 고맙다고 여겨야 하는 거였어?!
“자, 다시. 이안. 지금벌 받고 있는 건가요?”
“…아니다. 이건 발전을 위한 단련이다.”
“그렇죠. 자. 그 상태로 우리 30분만 더 있죠.”
30분이 나?! 기겁을 한 티샤가 두 눈을 깜빡인다.
저러고 30분을 버티라고? 아무리 단련이라고 해도 저건 좀 심하지 않나?!
나설까 말까 고민하던 티샤는 결국 전자를 택하고 말았다.
“카일!
티샤가 정원으로 나서자 카일이 고개를 돌린다.
놀라는 기색 하나 없는 걸 보니 진작근처에 왔음을 알고 있던 모양.
“아, 혹시제가 방해한건가요?”
“아뇨. 전혀요. 그냥 넬이랑 이 안이 랑 하체 좀 더 하라고 해주고 있었죠.”
“그렇군요! 저,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조금 힘들어 보이는데 …. 카일이랑 할 이야기도 있고 하니 잠깐관두는게 어떨까 싶네요.”
저러고 개고생하는 게 내심 마음에 걸렸던 건가.
아니, 이거 진짜벌 아닌데. 억울하다고.하체 과부하에 좋다니까?
한숨을 내뱉은 카일은 손짓으로 이안과 넬을 일으켜 세웠다.
“잠깐 있어요. 이 야기 좀 하고 올 테니.”
“알겠습니 다! 저 , 그러면 이 안님. 간단하게 대 련 한 번 어떠 십 니 까?”
“상체 할시간이긴 한데 뭐 나쁘진 않겠지.”
이안의 말에 좋아라 해서는 바로 목검을 가지러 가는 넬.
슬쩍 눈치를 보니 넬 이 남자가 아니 라 여 자라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레토도 그렇고 이안도 그렇고, 남주들은 눈치 없는 게 패시브인가?
“카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요?”
“조금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어요. 저, 그러니까… 넬 말이 에요. 남자 맞죠 ?”
아닌데요. 라는 말이 바로목구멍 아래까지 차오른다.
언젠가들킬 거 그냥 이번에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지. 남의 비밀을 들었을 때는무조건 지켜주는 거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비밀을지켜줄자신이 없다면 아예 비밀 자체를듣지 말라고했다.
그리고 혹 비밀을 들었다면 누구에게라도 발설하지 않는 거라고도 했다.
그게 매너다.비밀을말한이에게 대한최소한의 매너.
“이 상한 질문이 긴 하네요. 갑작스럽 기도 하고.”
“역시좀그랬죠? 미안해요. 그냥 조금 이상해서요.”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여자 같은 남자. 혹은 남자 같은 여자.”
“아… 네. 그런 경우가 있죠. 이해해요.”
“그러니까 그냥 지 켜봐요. 괜한 오해는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카일의 말에 엘가가 아아! 하고 탄식을 흘린다.
그러더니 제 생각이 짧았다며 굉장히 미안한 표정까지 짓는다.
실상 진짜 미 안해 야 할 건 다름 아닌 카일 쪽인데 말이 다.
“그보다, 닐 영감님이 늦네요.”
“닐 영감님 이요? 그 분이 누구시 기 에 ….”
“아, 티샤는 모르겠네요. 얼마 전에 서쪽에 다녀왔잖아요? 거기서 아 버지와 고향 영지의 아이들과 만났다고도 했고요. 기 억나죠?”
“그렇죠? 기억나요.”
“닐 영감님은 바로 그 일행 사이에서 아버지와 아이들을 수행하던 분이셨 어요. 아버지와 아이들은 돌아갔지 만 영감님은 할 일이 있어서 저와 함께 제 국으로 온 거고요.”
할 일이라함은, 과거 제국과의 전쟁 시절 싸웠던 이를 찾아가는 것.
당시에는 적이 었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거의 전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증오심을 품은 것이 아닌, 무인으로서 존경심 을지녔었다.
때문에 닐 영감도, 그리고 그와 싸웠던 프리실라 단장의 조부도.
수십 년만의 만남을 당연히 기대하고 또 즐거워할수밖에 없다.
‘저번에 도착한서신 내용에 따르면 드디어 만났다고했는데.그 이후로 무소식이네.’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괜히 걱정되네.
아니 다. 괜한 생 각은 관두자. 무소식 이 희소식 이 라잖아.
닐 영감이 또 무턱대고 휘두르는 성격이 아니라 연륜에 맞게 절제도 하고.
걱정을 옆으로 대충 밀어둔 카일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뭔가요? 설마 이게 끝일 리는 없고.”
“아•••그게요. 음… 그러니까….”
아무래도 말을 꺼 내려면 시 간이 좀 걸릴 듯 하다.
티샤가 열심히 고민할동안어디 벤치 근처에 가서 운동이라도좀할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도 그건 좀 아니 지, 하고 생 각을 접 었다.
대신 근처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티샤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저. 카일.”
“네. 티샤. 듣고 있어요.”
“저… 실은.제가저번에 아카데미에서 방학을보낸다고했잖아요?”
“그렇게 말했죠? 고향으로 가는 것보다 그게 주술 연구에 더 좋다고 하면 서요. 이해해요. 아카데미의 도서관에 방대한 자료가 쌓여있고 또 방학동안 에는 강의 출석도, 귀찮은 과제도, 무조건 치러야 하는 시험도 없죠. 아카데 미에 남는 게 티샤에겐 이득이긴 해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마치는 카일.
그러더니 ‘그런데,왜 그런 말을해요?’ 하고반문한다.
“실은, 이번 방학에 그냥북쪽으로 가려고요.”
“아. 원래 지내던 곳으로 가는 건가요? 세워두었던 계획은 어쩌고요.”
“생각해보니까굳이 방학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그리고 이미 정말 필요한 책들은 도서관에서 대출까지 받아서 개학 후에 반납해도 되고요.”
“아하.그러면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겠네요. 티샤도 같이 간다니까.”
활짝 미소를 짓는 카일 덕분에 티샤는 가슴을 짓눌러야만했다.
왜 이래, 심장아. 나대지 마. 아직 본론도 안 꺼 냈단 말이 야.
“저랑같이 있으면 좋은가요?”
“당연하죠. 생 각해 봐요. 저 것들 데 리 고서 고향 가는 길 이 라니.”
카일이 가리킨 곳에는 한창 검을 주고받는 이안과 넬이 있었다.
사람 자체 가 못돼 먹 었거 나 흉악한 이 들은 아니 다.
다만 이 상하게 카일을 자꾸 귀 찮게 하는 데 에 도가 튼 이들이 라서 그렇지 .
“어우.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가는 길에 스트레스 받아서 기절할 지도 모 르고요.”
“설마요. 카일이 그 정도로 약한 사람은 아니 잖아요.”
“세상 일 또 모르죠. 신이 강해도 심이 허하면 훅 가는 거예요. 아무튼, 가 는 길이 같으니 좋네요. 어디까지 가나요? 북부 변경백령에서 헤어지려나요 ?”
“•••아뇨.”
“그러면요?”
후우, 심호흡을 내뱉은 티샤가 조심스레 입술을 뗀다.
“안헤어져요. 계속 같이 있을 거예요.”
“네?”
“카일. 저, 존 나센에 가보고 싶어요.허락해줄래요?”
이안,그리고넬에 이어서 이번에는 티샤까지.
갑작스레 손님이 점점 늘어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