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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03화 (203/318)

“보고하라.”

“예! 카마라그 버일러. 적 정찰대 한 개를 섬멸했고 하나는 패퇴시켰습니다.”

“피해는.”

“전무합니다. 부상자도 없습니다.”

좋은 소식이다.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니, 분명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정작 그 보고를 들은 남자, 소치르 텡겐 카마라그는 표정이 좋지 못 했다.

‘벌써 서른 명이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모두가 부족 내에서도 엄선하여 선발한 정예 중의 정예다.

단순히 잘 싸우거나 말을 잘 타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날래야하고 과감해야 하며, 무엇보다 전투를 포기하고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혹시나 상대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적을 조우하면 빠져서 보고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모은 정예들로 가한이 도착하기 전까지 제국군의 발을 묶는다.

가능하다면 적의 눈과 귀를 가려서 함부로 진격할 수 없도록 한다.

그게 소치르가 맡은 임무였고 당연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었다.

이틀 동안 무려 7개의 습격조가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더 돌아오는 자들은 없나?”

“예, 카마라그 버일러. 더는 없습니다. 아마 저들이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역시 이상하다. 이럴 수가 없다. 호락호락 당해줄 전사들이 아니다.

만에 하나 역으로 기습을 받아도 사방으로 이탈하도록 해두었다.

말을 다루는 것에서는 제국조차 능가한다는 평을 듣는 자신들이다.

심지어 부족들 사이에서도 자신들은 더욱 뛰어난 기마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넓은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건 상대가 누구여도 자신이 있었다.

‘더는 안 되겠군.’

소치르는 전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적 정찰대에 대한 요격이 아니라 실종된 동료들을 찾으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을 해야 대비가 가능하다고 말이다.

그의 명령에 전사들은 일제히 말을 달려 초원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시신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제국 놈들!”

시신을 찾은 전사들이 분노를 터트린다.

애당초 들키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건지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떠났다.

덕분에 들짐승들이 몰려와선 시체들을 건드린 이후였다.

“버일러. 말만 탈취해서 간 것 같습니다. 시신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병장기까지 하나도 건들지 않았습니다.”

“혹시 처리를 할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닐까요. 제국 놈들도 부상을 입어 말 외에는 챙겨갈 상황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 의견에 소치르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봐라. 저항의 흔적이 전혀 없다. 우리 전사들은 일격에 당한 것이다.”

“가능합니까? 아무리 기습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무기력하게 당할 수가….”

“있지. 적들의 수준이 너희가 상상하는 이상이라면 말이다.”

얼마 전 교전을 벌였던 제국군을 떠올린다.

정확히는, 그 사이에 껴있던 제국 측 강자를 생각한 것이었다.

최고의 순간에 가해진 기습, 그리고 주변 상황에서의 이점.

더불어서 미처 창을 수습하지 못 했다는 것까지 겹쳐 통쾌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제국의 최고 강자라는 자가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꼴이 제법 우스웠으니까.

‘하지만 강하기는 했어. 그가 유리한 조건에서 싸웠다면 패배는 내 것이었을 지도.’

그런 강자들이 제국에는 많다고 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지금은 그 강자들이 은밀히 나서서 이쪽의 눈과 귀를 역으로 잘라내고 있다.

‘곧 대규모 출병이 있을 거라는 뜻인데.’

여기서 결정을 해야 한다. 이대로 이탈하여 본대에 합류하느냐.

아니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며 적들에게 피해를 강요하느냐.

‘가한께서는 내게 결정권을 일임하셨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존중하시겠다는 것.’

거기까지만 본다면 자신의 주인이 자신을 얼마나 믿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그 어떤 피해가 나도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는 말도 된다.

가한의 곁에는 자신 외에도 뛰어난 전사들이 있다.

그들 모두가 제국이 자랑하는 10강과 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자신처럼 각각 제 부족을 대표하는 버일러 자리에 있기도 하다.

이번 제국과의 전쟁에서 본인들이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따라 이후 행보가 결정된다.

누구는 새로운 가한의 최측근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다.

하지만 또 누구는 뒤로 밀려나서 한물 간 측근 자리만을 차지할 것이다.

공명심에 눈이 먼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을 세워야만 한다.

좋든 싫든, 제 부족을 위해서는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나도 합류한다.”

“버일러?”

“우리 목표는 하나다. 형제들을 이리 만든 놈들을 찾아 죽이는 것이다.”

“버일러. 바로 그게 놈들이 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도발을 하는 걸 보면 확실합니다.”

당장 수하 전사들이 소치르를 말리려고 애쓴다.

비록 제 버일러가 강하다고는 하나 적들도 만만한 자들이 아니다.

그 놈들이 대놓고 나오라고 하는 걸 보면 분명 꿍꿍이가 있는 것이다.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가야만 한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버일러.”

“놈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상대가 나오지 않는 이상 계속 반복할 것이다. 심지어 아예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먼저 다가오고 있는 우리 선발대를 괴롭힐 수도 있다.”

“그건 그들의 문제이지 않습니까?”

책임을 떠넘기는 말 같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가한이라는 하나의 주인 밑에 모였다고 하지만 저마다의 부족이 있다.

그 부족들이 맡은 일들이 다르니 그들이 어떤 일을 당하든 알 바는 아니다.

“너희 말대로, 우리 일은 아니지. 하지만 놈들이 그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한다면 할 말이 없게 된다. 가한께서도 유감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다.”

“…버일러께서 난처하겠군요.”

“우리 부족도 난처해진다. 그렇기에 더더욱 처리해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부딪쳐서 막아보려고 했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한의 비상을, 제 주군의 승리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해서 이들은 더더욱 긴장하고 있었다. 그 옆에 마지막까지 있어야 하기에.

그래야만 먼저 떠난 동료들과, 그 남은 가족들에게 미안하지 않기에.

“버일러! 평원 너머에서 제국의 정찰대로 보이는 이들이 접근 중입니다.”

기회는 결심한 순간 바로 찾아온다고 했던가.

소치르는 당장 활과 화살, 도를 챙긴 후 말 위에 올랐다.

“버일러. 만약 적들이 단순한 정찰대라면 어쩌실 겁니까.”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나서서 처리하면 된다. 반대로 저들이 우리 형제들을 사냥하던 자들이라면, 역시나 내가 처리하면 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며 사방에 제 전사들을 매복시킨다.

제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래도 만약이 있지 않은가.

“가자.”

이동하는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소치르가 마침내 말을 달린다.

과연 저들이 정말 자신이 생각하던 그것들이 맞을까.

아니라면, 역으로 또 다른 함정이 자신을 맞이하려고 하는 걸까.

잠깐이나마 잡생각에 빠졌으나 곧 그것들을 걷어낸다.

‘지금은 당장의 싸움에 집중한다. 소치르 텡겐 카마라그의 명예를 걸고.’

두두두두!!-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그리고 소치르는 드디어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저들은 사냥감이 아니라 사냥꾼들이었다.

“너희는 즉시 말을 돌려서 돌아가라. 그리고 혹 내가 밀리는 듯 싶으면 바로 시위에 화살을 먹여서 날리도록 한다. 명예롭지 못 한 일이지만, 여기서 전력 손실은 피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버일러.”

뒤따라오던 일부의 전사들이 다시 말머리를 돌린다.

혹 그들을 따라가지 못 하게, 소치르는 더 빠르게 말을 달렸다.

다행히도 적들은 도망가는 자들에겐 관심이 없다는 듯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응?”

그러다 문득, 소치르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말을 타고 접근하던 적 중 하나가 갑자기 말에서 뛰어내린다.

저게 무슨 짓인가 싶어 두 눈을 가늘게 뜨는데, 그 적이 갑자기 사라졌다.

“뭣….”

사라졌던 적이 훨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제국이 사용하는 마법이라는 걸 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저 자는, 그냥 미친 듯이 빠른 것이다.

‘좋지 않다.’

소치르는 반사적으로 시위에 화살을 걸고 그대로 잡아당겼다.

그의 감이 외치고 있었다. 저 상대가 다가오기 전에 견제를 해야 한다고.

저 속도 그대로 부딪치면, 열에 아홉은 자신이 밀릴 것이라고!

슈아아악!!-

흉악한 파공음과 함께 화살이 정확하게 적을 겨누고 날아간다.

당장 가슴팍에 적중을 당하여 고꾸라져도 아무 문제가 없을 수준.

그러나 적은, 그 화살을 손으로 낚아채는 더 흉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하다!’

이를 악문 소치르는 다시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이번에는 화살 두 대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날아가는 공격이다.

‘피하기도 애매하고 막기는 더더욱 애매하다. 어쩔 것이지?’

소치르의 질문에 적은 이렇게 화답했다.

손이 두 개인데, 화살 두 개를 못 잡겠냐고.

“허!”

화살에 그대로 적중 당하는 듯 했으나 적은 다시 한 번 기행을 선보였다.

간발의 차로 화살 두 대를 전부 손으로 잡아낸 것이다.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되겠구나.’

왜 말을 버리고 달려드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저 남자는 아무 것도 없이, 자신의 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강자다.

채앵!-

거대한 곡도를 뽑아든 소치르가 상대의 목을 노리고 크게 원을 그린다.

말에 올라있기에 자신이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런 조그마한 이점이 승리로 직결되는 것임은 누구나 다 아는 일.

콰직!-

“…?!”

하지만 정작 허공으로 치솟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소치르 본인이었다.

가공할 만한 위력에 자신이 버티지 못 하고 낙마한 것이었다.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히기 전 소치르는 가까스로 몸을 굴렸다.

충격이 컸으나 겨우 어디 한 곳이 부러지는 건 면할 수 있었다.

“와.”

그 모습을 바라본 청년이,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탄성을 흘린다.

“좀 치시네!”

그대로 나가떨어져서 못 해도 몇 초는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역시 10강을 꺾은 또 다른 강자는 다르구나. 라고 중얼거리며.

“만나서 반갑습니다.”

존 나센 최약체가 천천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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