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카일은 새로운 개념을 하나 얻었다.
순간이동이란, 스쿼트와 런지로 단련된 대퇴근과 카프레이즈로 단련된 비복근으로 몸을 박차 제자리멀리뛰기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갑자기 무슨 황당한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걱정할 것 없다.
카일조차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순간 이해하지 못 했으니까.
‘그냥 들었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했을지도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헛소리도 좀 정도껏 하라고 욕설을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이동 마법진이나 이용하면 될 것이지 무슨 제자리멀리뛰기를 운운하고 있냐고.
그리고 사람이 아무리 제자리멀리뛰기를 해도 어떻게 그걸로 이동을 할 수 있냐고!
하지만 저 인간들은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기어코 해냈다.
존 나센 제자리멀리뛰기. 아니, 존 나센 순간이동을 말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과 같은 시간 단축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찾아온 이들은 존 나센 남작과 리어가 끝이 아니었다.
“작은 도련님! 저희 왔습니다!”
“아이고. 다치셨나? 몸에 붕대를 두르셨네?”
“누구랑 싸우신 겁니까? 강했습니까?!”
“설마 혼자 싹 쓸어 가신 건 아니죠?! 우리 것도 남아있습니까?!”
인사를 건네는 건장한 사내들과 그들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강인한 여인들을 바라보며.
카일은 진심으로 유목 부족인지 뭔지 하는 것들의 애도를 빌어야만 했다.
아버지와 형님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저 사람들까지 데리고 왔어?!
“형님. 저기, 저기 같이 온 사람들…. 그 사람들 아닌가요.”
“네 말이 맞다. 아버지께서 특별히 인원을 추려내라고 하셨거든. 동쪽으로 같이 떠날 이들이라나. 해서 저들을 중점으로 뽑았다.”
“특별히 추려내라는 게 무슨 기준으로 하신 건데요?”
“사람을 가장 잘 치는 자들로 모으라고 하셨다.”
순간 오싹, 하고 소름이 다 돋는 카일이었다.
중량 잘 치는 사람들로 데리고 와도 제국 기둥을 뽑아버릴 사람들이다.
하물며 ‘사람’을 잘 치는 자들? 말이 잘 치는 거지 실상은….
‘아니다. 상상하지 말자. 어우, 생각만 해도 무섭네.’
존 나센의 모두가 제국으로 따지면 압도적인 실력자들이다.
노인부터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이가 한 명도 없다.
하지만 그런 이들 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이들이 있다.
성별도, 나이대도 각양각색인 진정한 존 나센의 강자들.
카일이 알기로는 아마 제 형과 누나 바로 밑의 수준이다.
본인도 정말 전력으로 싸운다고 했을 때 쉽사리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
그런 자들 중 일부를 이끌고서 이곳 동쪽까지 온 남작이었다.
왜 왔는지,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카일이 보낸 서신 한 장 때문이었을 테니까.
“…잠깐만요, 형님. 혹시, 그 미리 출발하신 건 아니죠?”
“아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미리 출발하시겠느냐. 하루, 하루 단련을 하시느라 바쁘신데 말이다. 막내, 네가 보낸 서신을 받고서 곧장 그 날로 준비를 해서 떠난 거다.”
“아무리 순간이동을 했다고 해도 그렇지, 그게 얼마나 지났다고….”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지만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이동 마법진을 탔다고 해야 겨우 맞을 법한 시간이다.
한데 이 인간들은 그 와중에 또 단련을 한다고 제자리멀리뛰기를 했단다.
결과적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거의 일주일은 넘게 일찍 도착했고 말이다.
“카일.”
“예, 아버지.”
“이곳 총책임자는 어디 있느냐. 지휘부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아, 슈렐리츠 대공이라면 새벽에 이미 출전했습니다.”
카일의 대답에 존 나센 남작이 그래? 하고 입맛을 다신다.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같이 갔을 텐데. 라고 중얼거리는 건 덤.
“막내야. 그런데, 너는 왜 남은 거니?”
그게 못내 궁금했던 것인지 리어가 슬그머니 질문을 던진다.
제 동생이라면 진작 그 지휘부와 함께 동쪽에 도착했을 터.
그런데 전장이 아니라 진영에 머무르고 있는 게 이상한 모양이었다.
“아, 실은요.”
“어제 동쪽의 강자랑 한바탕 했어, 리어 존 나센.”
여태까지 상황을 관망하던 황녀가 스리슬쩍 나선다.
정확히는 카일의 옆에 찰 붙어서는 팔짱을 낀 채로.
“아니지. 카일. 이제는 아주버님이라고 불러야 할까?”
“…황녀님. 자꾸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저리 가세요.”
지금 눈앞에 있는 분들이 나타난 것도 혼란스러운데 이러지 좀 맙시다.
“강자와 싸웠다고?”
“네, 형님.”
“어땠느냐. 강했니? 막 서쪽에서 만났던 그 인간들과 비슷한 건….”
서쪽의 그 약쟁이들만 떠올리면 분노가 치미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리어.
덕분에 카일은 어어어!! 하고 식겁하며 다급하게 답했다.
“절대 아닙니다. 서쪽의 약쟁이들이랑은 다릅니다. 여기 강자들은 정말 단련을 통해서 만들어진 강인한 자들입니다. 확실해요. 저도 싸우는 내내 너무 즐거웠습니다.”
“오호.”
굉장히 기대가 된다는 듯 리어가 탄성을 흘린다.
그러다가 카일의 몸을 두르고 있는 붕대들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름 괜찮은 자들인 모양이구나. 막내, 네가 많이 다친 걸 보면 말이다.”
“아, 별 거 아닙니다. 그냥 좀 베인 게 전부에요. 큰 부상은 아닙니다.”
아마 카일의 상처를 치료했던 이들이 그 말을 듣는다면 경기를 일으킬 지도 모른다.
큰 부상이 아니라니. 하마터면 팔 하나가 떨어져나갈 뻔 했다.
그 외에 출혈이 더 생겼다면 자력으로 귀환하지 못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저렇게나 태평한 반응이라니. 남들은 죽음의 문턱을 밟은 수준인데!
“아이고, 작은 도련님. 그렇게 연약해서 어쩌십니까!”
“날붙이에 이리 다치신 거란 말입니까? 작은 도련님. 제가 고향에 돌아가면 보양식들 해서 도련님이 계시는 그 아카데미라는 곳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와중에 존 나센 사람들은 카일이 다친 것에 어쩌냐고 호들갑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세 살배기 어린 아이가 종이에 손을 베인 걸 본 친척들 같다고 할까.
“아버지. 막내가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여린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카일. 단련을 절대 쉬지 말거라. 그렇게 다쳐서는 안 된다.”
존 나센 남작과 리어도 비슷한 반응.
그에 카일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제가 좀 부족하기는 하죠.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해서 안 다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 내 아들답지.”
장하다는 듯 카일의 어깨를 몇 번이고 두드려주는 존 나센 남작.
“….”
덕분에 황녀는 ‘이게 뭐야.’ 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카일을 대하는 게 영락없는 꼬마 아이를 대하는 모습이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혹시 다칠까 걱정스러운 연약한 존재마냥!
실상은 자신도 힘들 것 같은 강자를 놓아주기까지 하는 괴물인데 말이다.
“아, 그런데 안정은 취해야 한다고 해서 말입니다. 한 이틀 정도는 안타깝게도 단련을 하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에….”
엄청난 비극이라도 마주한 것 마냥 입까지 틀어막는 리어였다.
존 나센 남작도 잠깐 동안 눈만 깜빡거리고 있다가 겨우 입술을 떼었다.
“네 엄마가 오면 무척 걱정하겠구나.”
“…아니, 잠깐만요. 어머니도 오세요? 그러고 보니 누님이 안 보이는 게….”
“오랜만의 외출이시라고 어머니께서 알게 모르게 신이 나신 모양이다. 막내야. 해서 누이랑 같이 제국 구경 좀 하느라 살짝 늦으시는 것 같다.”
아버지, 형님에 이어 어머니와 누님까지 온단다.
세상에. 서신 괜히 보냈나? 유목 부족이 갑자기 불쌍해진다.
맛집 한 번 알려주었다가 한 번에 거덜 낼 기세인데.
“마저 쉬고 있거라, 카일.”
“아버지는 어쩌시려고요. 혹시 당장 가시려는 건….”
“걱정 말거라.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막내야. 사실은, 아버지께서 바삐 오시느라 운동을 하나도 못 하셨다. 당장 전선으로 달려가고 싶은 건 맞는데, 그 전에 일단 못 한 운동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빈 말이 아니라 실제로 존 나센 남작과 그 일행들은 맨몸이 아니었다.
다들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데 봉과 원판, 덤벨, 거기에 기구들까지 전부 해체해서는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당장 바깥에서 무언가 덜컥! 덜컥! 하고 조립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본격적으로 전투를 하러 가기 전에 앞서서 루틴 좀 돌리려는 것 같았다.
“푹 쉬어라. 그래야 얼른 일어나서 운동을 할 거 아니냐.”
“넵, 아버지.”
존 나센 남작은 그 말을 끝으로 먼저 막사를 나섰다.
“쉬어라, 막내야.”
리어도 카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후 몸을 돌렸다.
그러다 말고 황녀를 바라보더니 쯧, 하고 혀를 차곤 말한다.
“막내 너무 귀찮게 하지 마시길. 피곤할 겁니다.”
“나도 알아. 알아서 참고 있는 중이라고.”
“참으셔야 합니다. 막내의 몸이 괜찮아지면 운동을 해야 하니까요.”
황녀와 리어는 서로 안면이 있다. 해서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와중에 낫자마자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게 은근히 무섭다.
그렇게 카일과 황녀를 두고서 존 나센 부자가 바깥으로 나왔다.
“리어.”
“예, 아버지.”
조금 전과는 다르게, 바짝 긴장한 모습의 리어.
평소에 변화가 거의 없는 이가 왜 그러는 것인지는 직후 알 수 있었다.
“막내가 다쳤더구나.”
“….”
“심각한 부상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막내가 다쳤다. 그래서 저리 누워있다. 그래서 녀석이 운동도 못 하고 쉬어야만 한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 그렇지 않느냐? 운동을 못 한다니. 아마 녀석도 애써 드러내지 않을 뿐 힘겨워하고 있을 게야.”
“예. 아버지. 참 안쓰러운 일입니다. 막내도 힘들 겁니다. 휴식을 취해야 해서, 그래서 운동을 하지 못 해서 말입니다.”
카일이 이 말을 듣는다면 ‘전혀요? 전혀 아쉽지 않은데요?!’ 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 카일은 없었다. 오직 존 나센 부자만 있을 뿐이다.
“원래는 적당하게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구나.”
정당한 전투였다면 그 결과에 딱히 관여하지 않는 게 원래 존 나센의 법칙이다.
과정이 비겁하지 않았다면 그저 박수를 보내는 것이 존 나센이다.
하지만 때로는, 예외의 경우도 생기는 법이다.
“막내의 일은 다르다. 그 연약한 아이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끊임없는 단련인데 그것을 빼앗다니.”
존 나센 남작의 입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앗아간 것에 대한 책임은, 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