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렐리츠 대공과 10강들은, 멍하니 전투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들이 돌격하는 그 순간. 흥분되어서 어쩔 줄 모르던 이들도 일제히 달려나갔다.
말에 타지 않았다. 그냥 두 다리로 뛸 뿐이다. 그런데, 말을 탄 기수보다 더 빠르다.
심지어 몇몇은 그대로 땅까지 박차고 하늘로 치솟았다.
도움닫기를 한 곳은 별똥별이 떨어진 것 마냥 그대로 움푹 패여 나갔다.
그리고 불과 스물도 채 안 되는 이들이 적들을 그대로 짓뭉개기 시작했다.
“우아아아!!”
“으아아아!!”
동쪽의 저 전사들이 저런 비명을 낸 적이 있었던가.
없다. 절대 없다. 죽으면서도 괴성을 지르던 자들이다.
본인들이 늑대의 후예라 굳게 믿으며 싸우고 죽이는 맹수들이다.
죽어가면서도 적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며 쓰러지는 영혼들이다.
그런 자들이, 공포가 서린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마법 방벽은 잘 작동하고 있겠지?”
“예. 대공 각하. 존 나센 사람들이 나간 이후로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제국군이 딱히 진형도 바꾸지 않고 제자리에 대기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지금 유지되고 있는 마법 방벽의 바깥으로 나서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카일. 그, 걱정이 되어서 이러는 건 아닌데… 정말 이러고만 있어도 되는 건가?”
슈렐리츠 대공이 정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옆에서 벤치 프레스를 하고 있던 카일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입을 연다.
“불안하시면 10강 분들만 내보내세요. 그런데, 그러다가 휩쓸리시면 저도 책임은 못 집니다.”
카일은 그리 대답하고선 다시 과부하에 집중했다.
치료 담당이 말한 휴식 권유에서 벌써 이틀이나 흘렀다.
더 쉬고 있다간 온몸의 근육이 굳어버릴 것 같았다.
‘금단 증상이라기보다는… 음, 무섭다고 해야 하려나.’
존 나센에서는 하루만 쉬어도 근육이 물렁해진다고 했다.
이게 미신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하루만 쉬어도 큰일이다.
그 단련을 이틀이나 쉰 카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불안감이 커진 게 당연했다.
“… …!!”
이때, 저 멀리서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굉음이 온 세상을 뒤엎었다.
곧이어 유목 전사들이 있던 곳의 대지가 뒤집어지고 사람과 말이 전부 날아갔다.
“저, 저게 무슨?”
“뭐야. 마법이라도 쓴 거야?”
“미친….”
기겁을 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카일은 태연한 모습이었다.
‘표현하자면 갈! 이랑 비슷한 거려나. 애들은 집에 가라는 아버지의 따스한 호의인 거지.’
실제로 저기에 휩쓸려 전투 불능이 된 이들은 몇 없을 것이다.
대신 공포에 질려서 도망치는 이들은 부지기수로 늘어날 터.
이제 거기에서 버틴 이들만이 존 나센과 싸울 수 있는 영광을 얻는 것이다.
“대공 각하. 얼른 누우세요.”
“이, 이보게. 카일. 지금 나는 지휘를….”
“거 잠깐 지휘 안 하신다고 큰일 안 납니다. 하지만 운동은 잠깐 안 하면 몸에 굉장히 안 좋아요. 저를 보세요. 이틀 쉬었다가 근육이 다 빠지지 않았습니까?”
그 말을 들은 대공도, 그리고 10강들도 이리 묻고 싶었다.
대체 어디를 봐서 근육이 빠졌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거냐고.
“어서요. 누우세요.”
와중에 기어코 대공을 벤치 위에 눕히고 마는 카일이었다.
‘대공 각하 운동 안 시키면 아버지가, 형님이 불편해하신단 말입니다.’
실은 카일도 살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
삐이이….
“끄윽….”
가한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들끓던 마나가 겨우 진정된다.
온몸을 옥죄던 거대한 압박감도 이제는 거의 다 사라졌다.
“소치르! 체기! 괜찮은가!”
“예, 가한. 괜찮습니다. 소치르도 멀쩡합니다. 다만….”
체기가 뒤를 돌아보며 난색을 표한다.
방금 전의 그 포효 한 방에 부족 전사들이 완전히 와해되었다.
말들이 공포에 질려 미쳐 날뛴다. 거기에 휩쓸린 전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경험이 많고 용맹한 자들조차도 말들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무슨 이런….’
처음에는 마법이라도 쓴 줄 알았다. 제국의 병기 중에는 분명 마법도 존재한다.
하지만 마법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금 전 그것은, 정말 단순하게 거대한 울부짖음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쿵-.
“그대가, 늑대구나.”
영혼을 진동시키는 웅혼한 목소리에 가한의 몸이 움찔 떨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중년 남성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장성한 자식을 보는 부모마냥 감탄하고 있었다.
“기대 이상이다. 대단하다. 얼마나 많은 단련을 했는지, 눈에 보이는군.”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분노하여 그리 일갈하고 싶었다.
허나 그 순간 본능이 가한의 행동을 재빠르게 막아냈다.
덕분에 그는 흥분을 거두고 제 앞에 선 이를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겉모습은 사람이다. 그래. 사람인데, 전혀 사람의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 안에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자신을 가늠하고 있다.
적으로서 응당 상대방을 탐색하는 것인가? 아니, 아니다. 그게 아니다.
저 눈빛은, 마치 키우던 개가 얼마나 컸나 재보는 것과 비슷했다.
“즐겁게 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앞으로 다가온 남자가, 뒤에 두고 있던 오른손을 꺼낸다.
섬뜩하리만큼 거대하고 소름이 다 끼치는 기운을 내뿜는 주먹이었다.
“제대로 한 번 해보겠다.”
가한은 본능적으로 칼을 들었다. 그리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했다.
칼과 주먹, 당연히 전자가 이길 것만 같은 부딪침이 이어진 순간.
쿠구구궁!!-
고오오오오!!-
거대한 폭발과 함께 모래폭풍이 온 사방을 휩쓸었다.
“가한! 으으윽!!”
가한 옆에 있던 소치르와 체기가 폭발에 휘말려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 한다.
가한의 무력은 수하인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칼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하늘까지 닿았던 사내다.
그 강하다는 자신들조차 결국 한 번도 이기지 못 한 상대다.
어릴 적의 패배들을 몸에 새기고 그걸 승리의 밑거름으로 만들었다.
압도적인 육체와 살과 피를 내놓는 단련으로 최강의 전사가 되었다.
소치르의 속도도, 체기의 힘도, 그리고 다른 전사들의 능력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한이라는 호칭을 씀에도 누구도 반박하지 못 했다.
그 이름을 걸고서 공격해도 어느 부족도 그를 끌어내리지 못 했다.
‘한데, 그런 가한께서….’
먼지가 가라앉고 보이는 건,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는 가한이었다.
한 번,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칼이 닿지 않은 곳까지 그 흔적이 새겨진다.
하늘로 튕겨 나간 휘두름은 구름조차도 갈라낼 정도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전투의 주도권을 쥐지 못 했다.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압도적인 마나로 밀어붙이려고 해도.
한 남자의 주먹 앞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꼴이 전부였다.
“가한!”
체기가 다급히 싸움에 끼어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 또한 늑대가 아니라 양이 되는 건 오래 지나지 않았다.
“당신은, 내 겁니다.”
청명하던 하늘에서 별안간 사내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역시나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육체 하나만이 전부다.
“크헉!”
하지만 그 육체 하나로, 주먹 하나로, 체기는 저도 모르게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고작 주먹 하나를 버티지 못 해서 주저앉고 말다니.
분명히 칼로 막았음에도 힘에서 밀려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
“으아아악!”
괴성을 내지르며 체기가 칼을 내던지고 제 도끼를 꺼내든다.
진짜 상대를 만났을 때만 꺼낸다는 그의 애병. 그걸 망설임 없이 빼들었다.
그만큼 방금 부딪친 적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녔었다.
흐읍! 하고 기합을 넣은 체기가 거대한 도끼를 휘두른다.
인간의 살과 근육, 뼈를 통째로 잘라내고 짓뭉갤 만한 위력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절로 소름이 다 끼치는 무시무시한 힘이다.
콰앙!!-
“끄윽?!”
하지만 상대는 그 일격마저 또 다시 맨손으로 쳐냈다.
그것도 정확하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끼날을 정면으로서 말이다.
“소치르!”
힘겹게 방어를 해내가던 체기가 자존심까지 내리고 협공을 제안한다.
적은 그만큼 강했고, 강자로서의 본능이 결론을 내렸다.
혼자서는 못 이긴다. 되레 당할 수도 있으니 무조건 도움이 필요하다고.
채앵!-
소치르 또한 자존심을 내려두고 지금은 승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례한 짓임은 잘 안다. 숭고한 결투에 끼어드는 것이니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은 사냥이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그런 삶의 투쟁이다.
그곳에서는 초원의 늑대들도 떼를 이루어 하나의 사냥감을 상대한다.
쿠웅!!-
때를 노린 체기가 이를 악물고 도끼를 휘둘러 남자를 몰아붙인다.
그가 공격을 슬쩍 피해내자 빈틈을 노린 소치르가 칼을 빼들고 달려들려고 했다.
“잠까아아아안!!”
익숙한 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콰아아앙!!!-
또 한 번 대지가 진동하며, 무언가가 굉음을 내며 나타났다.
체기를 상대하던 남자와 닮은 구석이 있는 그 청년의 정체는.
“너.”
“소치르 씨. 이러면 안 되죠. 저 두고 제 형이랑? 이건 좀 서운하네요.”
기억한다. 카일, 이라고 했다. 자신을 그렇게도 몰아붙이던 청년.
나중에 더 싸우자며 거의 다 잡은 자신을 놓아준, 말도 안 되는 괴물.
“막내야. 여기는 왜 온 것이냐.”
체기의 얼굴에 주먹을 한 대 날린 리어가 질문을 던진다.
위험한 곳에 왜 왔냐는 타박이 아니다. 왜 자신의 사냥감을 하나 뺏어 가냐는 물음이다.
“적당하게 오늘치 루틴 돌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대공 각하도 운동 좀 시키고 왔고요. 빠르게 끝내고 대공 각하께서 다음 루틴 들어가기 전에 돌아가겠습니다. 이러면 되는 거죠, 형님?”
“…그래. 그 정도면 되었다.”
조금은 아쉬운 눈치이지만 어쩌겠는가. 저 상대는 제 동생이 먼저 침을 발라두었는데.
리어는 쿨하게 소치르를 제 막내 동생에게 양보해주었다.
“이것들이 지금 우리 늑대들을 두고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내 당장… 끄엙!”
리어의 발길질에 그대로 허리가 접혀 땅에 처박히는 체기.
그런 체기와는 반대로, 소치르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카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의 형이라고.”
“네.”
“그러면 가한과 싸우는 저 남자는.”
“제 아버지죠.”
“….”
소치르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