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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37화 (237/318)

미래의 며느리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거기서 무언가를 확신한 여인들이 재빠르게 서신을 낚아챈다.

카일이 미처 나눠주기도 전에, 무슨 한 마리 독수리처럼.

“같이 좀 봐요, 엘가님! 잘 안 보여요.”

“두 자매님이 싸우시면 안 되니까 제가 가운데에 있을게요!”

“어림도 없어요, 성녀님. 거기 얌전히 계세요.”

[ 저기, 나는 볼 수도 없는데 어쩌라고? ]

세 여인과는 다르게 지금 자리에 없는 황녀가 ‘나는!’ 이라고 연신 외쳐댄다.

그에 카일은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

옹기종기 모여서 카일이 내민 서신을 열심히 읽고 또 읽는 세 여인.

와중에 마법 통신구 안의 황녀는 꽤나 초조한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본인만 이 자리에 없어서, 그래서 뒤처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당연한 일.

“…카일.”

마침내 서신 확인이 끝난 것인지, 티샤가 슬그머니 입술을 뗀다.

“이거, 확실한 거죠? 나중에 말 바뀌는 거 아니죠?”

“설마요. 다른 분도 아니고 어머니께서 보내신 건데.”

“하긴… 다른 분도 아니고 그 분께서 보내신 거라면….”

[ 나도, 나도 서신 좀 보여줘, 카일. 얼른. 이러다가 다시 그쪽으로 돌아갈 것 같다고. ]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서 재촉해대는 통에 카일은 서신을 들었다.

그리고 통신구 앞으로 서신을 붙여주니 그제야 읽기 시작한 황녀.

이후 ‘오호.’ 하고 탄성을 흘리는 걸 보니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잠깐만. 그러면, 이래도 황녀 저하가 너무 유리한 거 아닌가요?”

무언가 생각하던 엘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그도 그럴 게, 첫 번째가 정해지고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방법이 끊임없는 노력을 하여 증명할 수 있는 강함이라면.

당장 황녀는 이미 가지고 있는 상태이지 않은가!

“어? 그러네요? 황녀님은 원래부터 강하신 분이잖아요.”

어지간해서는 중립을 지키는 성녀조차도 슬그머니 거들고 나선다.

단련 부분에 관해서는 압도적인 꼴찌. 그게 바로 성녀의 현 상황이니까.

그러자 겨우 서신을 다 읽은 황녀가 그게 아니지! 라고 반박한다.

[ 존 나센이 단순하게 결과만 보는 곳인 줄 아니? 시작점이 어디인지, 과정은 어떻게 보냈는지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야. 약하다고 하여 그 노력을 절대 폄하하지 않는 곳. 내 말이 틀려, 카일? ]

“황녀님 말씀이 맞죠. 지금 여기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마지막의 결과물만이 아니에요. 물론 아예 안 보는 건 아니지만, 그것 외에 또 중요한 게 있죠.”

그러자 티샤가 알겠다는 듯 탄성을 흘린다.

“각자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 그리고 그 성장.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겠네요.”

“네. 성녀님이 아무리 노력해도 황녀님과 같아지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사람이 지닌 체질이 있기에, 존 나센도 몸을 해치면서까지 그러라곤 절대 안하거든요.”

몸을 마구 망가트리면서 강해지는 걸 가장 싫어하는 존 나센이다.

노력은, 단련은 자기 분수에 맞게. 긍정적인 부분에서 ‘최선을 다했다.’ 정도가 충분하다.

“으음… 그렇단 말이죠…?”

역시나 손익 계산에 가장 밝은 엘가가 가장 먼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게는 전혀 나쁘지 않은 조건이야. 정실 자리를 내어주자니 명색이 대공 후계자인데, 그랬다간 반드시 말이 나올 거고. 그렇다고 황녀 저하를 밀어내고 정실을 차지할 확률은 높지 않고.’

그 상황에서 절대적이지 않은 첫 번째의 자리라면, 오히려 좋다.

분명히 기회는 온다. 그걸 낚아채면 된다. 그렇게 하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 단순히 무력만을 보고서 그 자리를 정하는 것도 아니란다.

황녀는 황녀의 수준에 걸맞게 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미 강자인 그녀로서는 이렇다 할 큰 성장치를 보이기 힘들 것이다.

반대로 성녀는 워낙 약하니 조금만 노력해도 성장치가 확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오히려 더 힘들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평균 이상인 내가 가장 유리해!’

나름 기사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존 나센에서도 단련을 받은 자신이다.

때문에 자신이 있다. 확신이 든다. 정실 자리를 먹고, 또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엘가가 내뱉으려던 말을, 티샤가 먼저 치고 들어온다.

그녀 또한 엘가와 비슷한 생각을 이미 끝마친 상태.

신분으로는 황녀도, 엘가도, 성녀도 이길 수 없다.

자신은 일개 평민이다. 심지어 뒷배조차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국의 관습을 따르면 본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정실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말.

하지만 존 나센의 관습을 따르면 그 모든 건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

심지어 그걸 가지고서 제국에서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존 나센이 제국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협력, 내지는 동맹 관계다.

황실의 확고한 봉신으로서 고개를 숙일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

때문에, 그냥 본인이 노력만 하면 황녀고 엘가고, 전부 이길 수 있다.

성녀까지 이겨버리면 아주 조금은 미안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어차피 한 번 정해지면 불변이 되는 것도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티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구나.’

‘엘가님도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시고 동의하시는 모양이네.’

눈빛이 교차하자 두 여자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 정도면 전혀 나쁜 게 없으니 밀어붙이자는 뜻.

“어… 이러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카일 형제님?”

한편, 성녀는 다른 방향으로서 접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식이면 여기 계시는 자매님들의 사이가 너무 멀어지는 일도 없을 것 같아요. 한 번으로 끝이 아니고, 계속 바뀌는 거니까요. 더 잘 풀리면, 양보라는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와중에 양보라는 경우의 수까지 꺼내놓는 성녀였다.

그녀야 마음이 선해서 내놓은 경우인데, 그걸 또 엘가와 티샤는 다른 방향으로 해석했다.

‘그러네? 성녀님 말씀대로, 한동안 경쟁하다가 순번을 정해서 밀어줄 수도 있잖아.’

‘경쟁이 너무 과해지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그런 식도 나쁘지 않을 지도.’

이것이야말로 동상이몽,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었다.

[ 뭔가 내게 유리한 것 같으면서도 또 가장 불리한 것 같기도 하군. ]

그에 반해 황녀는 딱히 끌리지가 않는다는 목소리였다.

가만히만 있으면 거의 정실 자리가 확보되어 있는 게 바로 황녀다.

카일이 해결책을 가지고 왔지만 본인에겐 큰 이득이 없는 상황.

다른 이였다면 지금의 이 타개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본인이 지닌 강력한 이점 둘을 전부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니까.

[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

그러나, 이 여자. 5황녀 율리카가 어떤 사람인가.

그 존 나센에서 ‘존 나센이 아니지만 참 존나센스럽다!’ 라는 평을 들은 여인이다.

황제가 ‘대체 우리 막내딸은 왜 이런 성격을 지닌 걸까.’ 하고 의문을 지녔던 황녀다.

[ 이렇게 무한 경쟁이라면 하루, 하루가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아. 아주 흥미진진하겠어. 과연 너희 셋이 어디까지 올 수 있나, 그걸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말이야. 위에 올라있는 자로서 응당 지녀야 할 모습이랄까? ]

“대단한 자신감이시네요, 황녀 저하.”

[ 타당한 이유가 있는 자신감이지. 그래서, 싫은가. 공녀? ]

“설마요. 황녀 저하의 말씀이 참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황녀의 대답에 카일은 내심 어머니의 혜안에 감탄했다.

설마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이런 답을 주신 건 아니겠지?

정말로 그렇다면 아버지나 형님보다 어머니가 더 무서워질 것 같은데.

“그러면… 다들 뜻은 정해진 것 같죠?”

“당연하죠.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님께서 친히 보내주신 서신인데.”

“어, 어머님! 버, 벌써 그렇게 불러도 되는 건가요?”

“성녀님은 싫으시다면 남작 부인이라고 불러도 된답니다.”

[ 친근감이 떨어져. 난 그냥 어머님이라고 부를래. ]

“아앗! 저, 저도 그러면 어머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정리가 되니 이렇게나 속이 편안해질 수가 없었다.

반드시 하나를 정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게 되었다.

선택을 한 후, 다른 여인들이 혹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걱정도 사라졌다.

그리고 대체 나는 누구를 택해야 하는가, 확신을 내리지 못 하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한심함도 전부 해소가 되었다.

‘존 나센은… 역시, 역시 가장 위대한 곳이야!!’

당장 북쪽을 향해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카일이었다.

자신은 몇 달이나 끙끙거리며 고민했던 부분을, 단 며칠 만에 타파해버렸으니.

“그러면, 이제부터는 참을 필요가 없다는 거네요?”

“예?”

“그렇잖아요, 카일. 여태 우리가 눈치를 왜 봤는데요. 아무리 내가 다가가도, 당신이 정하지 않으면 허튼 일이 되어버리니까. 자칫 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거죠.”

순간 엘가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 한 카일이 침묵하고 있던 찰나.

[ 이런. 정작 이런 때에 내가 거기에 없다는 게 천추의 한이네. ]

황녀가 분하다는 듯 두 눈을 감고 입술을 질겅거린다.

“저기, 엘가님.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인데요?”

“아직도 눈치 못 챘어요? 이제부터는 정말로, 오로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린 일이니까. 여기 보세요. 어머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꾸준한 노력, 찬사가 나오는 단련, 그리고 남성을 버티지 못 하게 하는 여인들만의 방법까지.”

…잠시만, 방금 뭐라고? 뭐라고 쓰여 있다고요?

여인들에게 주는 서신이 자신이 받은 것과 같다고 여겼던 카일이다.

거기에 남에게 가는 편지는 보지 않는 게 매너라고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 내용을 볼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는데….

“설마 정말로 단련만으로 설득을 하셨을 리가 있겠어요? 우리들이 남자도 아니고, 여인들인데.”

엘가의 말에 카일은 급히 어머니가 보낸 서신을 확인했다.

…그래, 이 부분. 여기까지는 자신이 받은 것과 동일하다.

문제는 그 다음으로 이어진 부분들인데….

“아.”

- 아, 그리고요. 우리 아가들. 막내 녀석이 아닌 척 해도 쑥맥 기질이 좀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존 나센 식으로만 말고, 때로는 여인들의 방법을 써도 좋아요. 원래 여인들의 무기는, 남자들처럼 힘만 있는 게 아니니까. -

…아니, 어머니!

- 존 나센 식 여인들의 경쟁은 결혼의 뜻을 밝힌 이후에요. 그 전까지는 며늘아가들이, 우리 막내 곁에서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어요. 경쟁 전에 벌어지는 일종의 치팅 데이랄까? -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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