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244화 (244/318)

다음 강의를 준비하러 발걸음을 재촉하던 레토.

도중에 카일에게서 묘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갑자기 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전혀 생각지도 못 한 물음.

거기에 레토는 저도 모르게 제 속내를 말하고 말았다.

‘내가 왜 그런 대답을 한 거지.’

원래라면 절대 내놓지 않았을 대답이었다.

속마음을 사실대로 말하는 건 절대 지양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것이 자신과 상대방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하지만 카일이 그 질문을 했을 때, 그러지를 못 했다.

그의 앞에선 무조건 진실만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자칫 거짓말을 했다가 무시무시한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아서.

‘아, 걱정인데. 이거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할 무렵.

“레토!”

“레토 씨!”

“저, 저는 대체 왜요!!”

갑작스러운 두 여인. 아니, 세 여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티샤와 엘가, 그리고 그 사이에 붙잡힌 성녀까지.

‘엘가님? 티샤님에, 성녀님까지?’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하고 생각하는 순간.

“억.”

티샤와 엘가가 레토의 팔을 하나씩 붙잡더니 어딘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에, 엘가님!? 왜 이러십니까! 엘가님?!”

“조용히 하고 따라와요, 레토.”

“제가 뭘 잘못 했습니까? 말씀을 해주시면….”

“엘가님께서 조용히 하시라잖아요. 저 분 가신이라면 따라야죠.”

“티샤님은 또 왜 이러십니까! 아니, 저 잠시 후에 강의가 있는데!”

그러자 엘가가 싱긋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강의보다 지금이 더 중요해요. 그러니 순순히 따라오도록 해요. 명령이니까.”

미래의 대공, 미래의 상사가 내리는 명령이다.

당연히 레토로서는 당황하면서도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다.

“저, 성녀님. 성녀님은 혹시 알고 계시는 게 없습니까?”

와중에 뒤에서 ‘어쩌지.’ 라고 중얼거리며 따라오는 성녀를 향해.

레토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서 질문을 던져본다.

“그, 가시면 알게 될 거예요.”

하지만 이미 두 여자에게 입막음을 당한 것일까.

미안하다는 미소만 지으면서 기어코 대답을 회피하는 성녀였다.

결국 레토는 얌전히 두 여자에게 끌려가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건가. 주변을 둘러보던 레토가 알아낸 것은.

‘두 분이 자주 가시던 카페 쪽 방향 같은데?’

확실하다. 이대로 쭉 가면 카페가 나오게 된다.

혹시 세 여인이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서 카페로 가는 것일까?

엘가, 티샤, 그리고 성녀의 공통 사항이라면 역시나 카일인데.

레토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 자리에 자신이 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다고 본인이 카일에 대해서 뭘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기껏 해봐야 운동을 좋아한다. 미친 듯이 강하다. 사내답다.

이런 것 외엔 토해낼 정보라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반강제로 끌려들어간 카페 안에는.

“어? 레토?”

“레토님?”

무언가 굉장히 뻣뻣해 보이는 두 남녀, 이안과 넬이 앉아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티샤랑 엘가님도?”

이안이 평소의 그답지 않게 살짝 당황해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앉아요, 이안. 어디 가려고 하지 말고.”

바로 이안 옆으로 향한 티샤가 냅다 그를 자리에 앉힌다.

엘가 또한 레토를 마저 데리고서 이안 옆에 앉혔다.

“고, 공녀님 오셨습니까?”

오늘도 결국 이 부담스러운 손님을 받게 되어버린 불쌍한 주인장.

평소라면 그 주인에게 미안함을 표시했을 테지만 오늘은 다르다.

“죄송한데, 의자 세 개만 가져다주실래요?”

“예, 예.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후다닥 달려간 주인장이 의자 세 개를 내어준다.

그러자 그 의자에 앉는 티샤와 엘가, 그리고 성녀.

덕분에 지금 그림은, 테이블 한쪽에는 넬이.

그리고 반대편에는 이안과 레토가 앉아있고.

그 테이블을 바라보는 상태에서 세 여자가 앉은 모습이 되었다.

“저,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

가장 놀란 사람은 역시나 넬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카일과 이안 덕분에 이미 크게 한 번 놀랐는데.

이번에는 엘가와 티샤, 거기에 성녀가 레토까지 데리고 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인지 부조화가 와도 모자랄 지경.

“일단 갑작스레 이러는 점, 정말 미안해요. 넬.”

대표로 엘가가 나서서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를 한다.

덕분에 넬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자 그녀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넬, 당신에게 절대 좋지 않은 일은 아닐 거예요.”

“무슨 말씀이신지 저로서는 도통 이해를….”

“앞을 보세요, 넬.”

엘가의 말에 넬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

“….”

앞에 앉은 두 남자, 이안과 레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셋이서 함께 웃고 떠들며, 단련도 같이 했었다.

다만 여자임을 밝힌 이후 분위기가 살짝 묘해졌다.

이안의 거침없는 말들도, 레토의 부드러운 인사들도 전부 사라졌다.

그 대신 찾아온 것은 굉장히 난처한 침묵들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여자라는 걸 숨기고 남자처럼 지내서.

거기서 오는 배신감 때문에, 내지는 실망감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다.

해서 넬이 둘을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직접 사과까지 했을 정도.

“누가 보이죠?”

“이안 님이랑 레토 님이 보이는데요.”

“그렇죠? 그러면, 넬. 그 둘 중에 누가 더 좋나요?”

“…네?”

평소였다면 엘가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다.

바로 직전까지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안과 같이 있지 않았던가.

그 상황에서 이안과 비슷하게 묘한 모습을 보이던 레토.

그리고 그를 데리고 와선 이안과 같이 앉혀둔 세 여인.

마지막으로 ‘누가 더 좋냐.’ 라는, 상당히 속 보이는 질문까지.

눈치 없는 두 남자와 어울리긴 했지만, 그 눈치 제로 병이 옮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저, 혹시… 레, 레토님도 이안님과 같은 상황이신 건….”

“맞아요.”

대답은 레토가 아닌, 티샤가 대신해주고 있었다.

“이안이 넬, 당신을 좋아한다고 했죠?”

“어?”

“잠시만,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안과 레토가 놀라서는 티샤를 바라본다.

한쪽은 어떻게 알았냐는 반응. 다른 한쪽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반응.

하지만 티샤는 눈치 없는 두 남자 따위는 쿨하게 무시했다.

“레토 씨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어어? 잠깐만, 레토?”

“아니. 이안님. 당신은 또 언제부터….”

그야말로 대혼돈의 장이 펼쳐진 상황이었다.

“일단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서. 우리가 이러는 이유부터 설명할게요.”

티샤와 엘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알고 지낸 이안, 내지는 레토가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이대로 두다간 좋아하는 여자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상황이라서.

거기에 감정 이입이 되어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었다.

내 로맨스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또 힘든 일이지만.

남의 로맨스는 두근두근하고, 조언하고 싶고, 내 손으로 진척시키고 싶은.

그런 생각들에서 오는 일종의 자기만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넬. 이안이요. 좀 심하게 눈치도 없고, 말도 거칠고, 자기 생각 밖에 안 하고, 답답한 면도 진짜 많아요. 제가 아카데미에 입학할 시절만 해도 진짜 볼 때마다 때리고 싶었어요.”

“티, 티샤?”

“레토도 만만치 않아요. 눈치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고, 왜 그렇게 소심한지. 그냥 한 번만 다가와줘도 못 이기는 척 넘어갈 텐데 그거 한 번을 죽어도 안 해요. 저 답답한 인간.”

“엘가님! 저, 저는 정말 그런 마음이…!”

역시나 시작은 본인들이 지지하는 사람의 단점부터 논하기.

당사자들이 듣고 있든, 아니면 곤란해하든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실 없는 말 지어내는 것도 아니고, 여태 느낀 것들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니까.

“하지만요. 그래도 남자다운 사람이에요. 검도 잘 쓰고, 존 나센 남작님께서도 인정한 노력의 대가고요. 아마 기사를 꿈꾸는 넬의 입장에선 굉장히 좋은 스승님 겸 동반자가 될 거예요.”

“같은 무를 숭상하는 사람, 좋죠. 하지만 둘이 똑같은 길을 가면 곤란한 일도 많이 생겨요. 오히려 그럴 때는 옆이나 뒤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죠. 바로 레토처럼요.”

그제야 티샤와 엘가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일까.

이안과 레토가 고맙다는 듯, 감격했다는 듯 두 눈을 반짝거린다.

아마 이 자리에 카일이 있었다면 그런 두 남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그걸 이제야 깨닫고 뒤늦게 감동하고 있냐고 한 소리를 했을 것이다.

“아, 저… 그게, 저는….”

한편, 넬은 현 상황을 이해하고선 어찌 대답해야 할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일단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아주 조금은 이안이 더 좋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레토도 정말 좋은 사람이다. 좋은데, 이안에 비하면 약한 게 흠.

명예롭고 강한 기사를 꿈꾸는 넬의 입장에선 이안이 조금은 더 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엘가 공녀님의 말씀도 틀린 건 아니잖아.’

둘 모두 같은 길을 꿈꾸면, 때로는 든든한 동지가 될 수도 있지만.

또 때로는 이기고 싶은 경쟁자가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혹 마음이 상해서 다투거나, 혹은 갈라서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 생각이 드니 여태 보여준 레토의 부드러운 면모들이 떠오르는 넬이었다.

이안에 비하면 레토는 확실히 부드럽고 따스한 부분들이 아주 진했다.

말도 거칠게 하지 않고, 남들과도 굉장히 좋은 관계를 지니고 있고.

“저는 그래서, 이안이 어떠냐고 묻고 싶어요.”

“레토에 대해서도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주었으면 해요.”

지금 그림을 보면, 티샤는 이안을. 그리고 엘가는 레토를 응원하는 것 같다.

당연히 권세로 보면 엘가 쪽이 압도적이다. 리토리오 대공가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세속적인 부분으로서 마음을 정하기에는 절대 못 할 짓.

‘혹시 성녀님은 누구를 지지하실까.’

넬이 성녀를 바라보자, 성녀는 미소를 짓더니 입술을 떼었다.

“저는 두 형제님보다는, 역시나 넬 자매님을 더 응원한답니다.”

와중에 넬이 선택의 부담을 과하게 받지 않도록.

적당하게 무게를 분산시켜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성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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